난 할 수 있어 379화
대찬을 취재했던 언론사에서 기사를 내자, 그게 여러 언론사에 인용되었다.
뭐가 됐든 싸움구경은 최소한의 재미를 보장하기 마련이다.
인터넷 상에서는 볼 만한 싸움판이 또 열렸다며 팝콘을 튀기네 어쩌네 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이제 공은 MFG그룹 측으로 넘어갔다.
그쪽에서 호기롭게 대찬의 도전을 받아들이면, 정말로 공개된 자리에서 논쟁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MFG그룹 쪽에서는 반응이 없었다.
이대로 사그라지길 기다리는 걸까.
대찬은 그렇게 가만히 둘 생각이 없었다.
대찬은 허운을 십분 활용했다.
“형, 이왕 내친걸음 몇 걸음만 더 걸을까?”
“싫은데요.”
“게시물 몇 개만 쓰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인데.”
“아, 싫다고요.”
“건당 20만 원 쳐줄게.”
“…싫은데.”
“건당 15만 원.”
“아, 20만 원에 해. 너는 진짜 인간성이 구려. 한 번 튕기면 값을 올릴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깎냐?”
“내가 형을 몰라?”
대찬은 흐흐 웃으면서 허운에게 밀지를 전달했다.
MFG그룹의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를 장부에 기입하도록 되었다.
허운은 자기 이름은 가명으로 적었지만 휴대전화 번호는 제대로 적었다.
적은 번호로 MFG그룹 측에서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MFG그룹의 최신 동향을 가장 먼저 확인하세요.
문자메시지에는 URL도 첨부되어 있었다.
그 URL을 클릭하면 MFG그룹 투자자들 사이의 내부 커뮤니티로 연결되었다.
그곳에 가입해 접속하면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듯했다.
그곳의 투자자들은 거의 신도를 방불케 했다.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MFG그룹을 찬양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물론 거기에는 MFG그룹의 수뇌부가 심어놓은 바람잡이들이 다수 포진해있었다.
그 와글거리는 판에 허운이 슬그머니 잠입했다.
그리고는 한 개의 게시물을 작성했다.
제목.
조대찬인지 뭔지 하는 개XX 혓바닥을 뽑아버리고 싶습니다.
내용은 제목의 거친 정도에 준하여 작성되었다.
감히 새파랗게 어린놈이 우리 고 회장님하고 맞먹으려고 든다.
감히 중림대에서 연구하는 주제에 카이스트에서 연구하는 우리 회사한테 맞먹으려고 든다.
감히 윤이영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장사하는 주제에 뭐가 있는 것처럼 군다.
로튼 프룻츠를 성토하는 문장마다 ‘감히’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글이 진행될수록 점점 정도가 흉악해졌다.
눈알을 뽑아서 젓갈을 담그네, 혓바닥을 삶아서 수육을 해 먹네 어쩌네.
대찬은 자기가 시켜놓고도 몸서리가 절로 쳐졌다.
‘이 인간 평소 생각이 이런 거 아니야?’
대찬은 신빙성 높은 가설을 머릿속에 품었다.
글의 말미에는 MFG그룹을 공격하는 대찬의 영상이 삽입되었다.
그나마도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짜깁기되었다.
허운의 현실적인 분노와 대찬의 ‘싸가지 없는’ 발언이 생생하게 실린 게시물.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MFG그룹의 충실한 신도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투자자들은 분노에 사무쳐 열성적으로 댓글을 달았다.
댓글의 흉악한 정도가 본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걸 읽는 대찬의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야밤에 테러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대찬은 뜬금없이 윤이영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부를 남겼다.
“이영아, 나 때문에 괜히 네가 해코지 당할까봐 무서워서 그러거든. 매니저 분 수고로우시겠지만 짧은 거리 가더라도 꼭 차로 움직여.”
“웬 유난이야.”
“나도 유난이었으면 좋겠어. 근데 저 양반들 진짜 미친 거 같아.”
“알았어. 오빠 말대로 할 테니까 난 걱정하지 말고, 오빠 목숨이나 잘 간수해. 나 결혼하기도 전에 과부 만들지 말고.”
“그래.”
대찬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허운이 불씨를 던지니 커뮤니티는 순식간에 마른 장작처럼 확 불타올랐다.
불을 질러놓은 대찬은 MFG그룹 수뇌부의 반응을 주시했다.
수뇌부의 반응은 바람잡이들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대찬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추려 꼼꼼히 살펴보았다.
‘가만히 있네.’
작은 이슈에도 온갖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다 떨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허운의 대형 방화에는 수수방관했다.
심지어는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곤란하다며 투자자들을 진정시키기까지 했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사뭇 결이 달랐다.
‘수뇌부는 과도한 언론 노출은 경계하고 있다.’
이는 MFG그룹 스스로가 자신의 알맹이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방증이었다.
상대가 멀찍이 떨어져 있을 때는 잘만 짖어대다가 몇 발짝 다가서니 꼬리를 말고 슬금슬금 눈을 피하는 하룻강아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
허운은 몇 개의 게시물을 더 올렸다가 아예 계정이 정지당했다.
며칠 후.
대찬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로튼 프룻츠 조대찬 대표 되십니까.”
“맞는데요. 누구시죠.”
“여기 MFG그룹 홍보실입니다.”
대찬은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무슨 일로.”
“최근 언론 인터뷰를 너무 과격하게 하시는 게 아닌가 해서…….”
“경쟁사 대 언론 스킨십까지 신경 써주시고, 많이 한가하신가 봐요?”
대찬의 도발적인 말에도 홍보실 직원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니라, 하시는 말씀이 다름 아닌 저희 회사를 겨냥하고 계셔서요.”
“그래서, 불쾌하시다?”
“아니라고는 못할 것 같습니다.”
대찬은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응답했다.
“너무 염치없으신 거 아닙니까? 그동안 실컷 저희 회사 물고 뜯고 하시던 걸 생각하셔야죠.”
“그래도 정도가 있죠. 장외에서 간접적으로 언론 플레이 하는 것 하고, 아예 대놓고 한 판 붙자고 하는 것 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네, 어떻게 같겠어요. 그쪽이 치졸해도 한참은 더 치졸하지.”
“…조 대표님.”
“어르고 달래실 거면 좋은 말로 하세요.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지 마시고. 그러니까 오히려 역효과 나잖아요.”
대찬의 말에 홍보실 직원도 울컥했는지, 다소 언성이 높아졌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어르고 달래려고 전화 드리는 거 아니거든요?”
“그럼 왜 전화하셨는데요?”
“선 넘지 말라는 경고를 드리려고 전화를 드린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그쪽에서 먼저 하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네요. 경고 잘 들었습니다. 잘 들었으니 더 용건 없으신 거죠. 끊습니다.”
뚝.
대찬은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엔 걸걸한 중년 남자의 목소리였다.
대찬의 귀에도 제법 익은 목소리.
“조 대표, 나 고범수 회장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원랜 안녕했는데 요새 조 대표 때문에 조금 덜 안녕해졌어.”
“그렇습니까.”
고범수는 제 딴에는 분위기 좀 물렁하게 만들어보려고 농담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받아치는 대찬의 태도는 딱딱하고 차가웠다.
대찬은 농담이나 따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대찬이 차갑게 나오자 고범수의 목소리 역시 다소 굳었다.
“뭐, 우리 홍보실 직원이 다소 감정적으로 대응한 거 같아서 사과 차 전화 드렸어요.”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저 조 대표도 좀 언론 대응이 미숙했다, 그죠?”
“아뇨, 안 미숙했는데요.”
대찬이 숨 한번 쉬지 않고 부정하자 고범수의 미간에 탁 주름이 잡혔다.
“지금도 거, 내가 아버지뻘인데 예의 없이…….”
“저는 지금 우리 회사 대표 자격으로 MFG그룹 대표님께 전화를 받고 있는 겁니다. 대표님께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없습니다.”
“저자세가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추란 거 아냐.”
“사람 대 사람으로서 예의는 회장님이 애저녁에 국 끓여 드셨잖아요?”
“뭐, 뭐야? 이 사람이 지금 누구한테 뒤집어씌워!”
“경쟁업체끼리 사소한 입씨름 정도야 좋습니다. 그런데 남의 애인까지 끌어들여서 물을 먹여요?”
“아니, 그건…….”
“이게 상도의에 맞다고 생각하세요? 차마 맞다고는 못하시겠죠.”
“어허, 조 대표!”
“언성 높이지 마세요. 저도 높이고 싶은 거 참고 있습니다.”
고범수의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수화기에 입을 갖다 댔다.
“우리도 조금 과했던 거 인정하고 자중할게요. 그러니까 조 대표도 좀 톤 다운 좀 하자고.”
“기왕 제가 판 벌려놨으니 한번 붙는 것도 비즈니스적으로 나쁘지 않잖아요?”
“…….”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마케팅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겁니다.”
“좋은 일로 오르내려야지.”
“회장님은 MFG그룹에서 만드는 제품에 자신감이 없으십니까.”
“없기는!”
고범수는 찔리는 만큼 더 큰 목소리로 반응했다.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있으시면 공개된 자리에서 저희 회사를 찍어 누르세요. 그럼 MFG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될 테니.”
“어허, 그게 아니래도.”
“지금껏 저희가 실속도 없는데 언론 마사지 받고 앞서 나갔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걸 타파할 기회를 드리겠다는 건데요.”
“난 괜한 분란을 싫어하는 사람이야.”
“괜한 분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설마 저희 회사한테 밀릴까봐 그러시는 건 아니죠?”
고범수는 와락 역정을 냈다.
“아니라니까!”
“그럼 됐습니다. 양사 간 홍보실 통해서 일정 조율하시죠. 응답 없으시면 자신 없으신 걸로 알겠습니다.”
대찬은 고범수의 대답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대찬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MFG그룹 측은 공개제안에 대해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대찬은 불씨가 아예 꺼지기 전에 다시 장작을 집어넣었다.
그는 자신이 단독을 주었던 기자에게 다시 말을 흘렸다.
“MFG 회장님이 전화를 해서 적당히 없던 일로 하자시더군요.”
“예? 없던 일로? 그럼 대충 뭉개고 넘어가자, 이런 취지로?”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까지 당당하시던 거랑은 사뭇 다른 모습이라 좀 놀랐습니다. 얼굴 앞에 두고 얘기 나누시려니 좀 긴장하셨나?”
“이거 오프 더 레코드 아니죠?”
“아니죠. 온 더 레코드.”
기자는 신이 나서 기사를 올렸다.
싸움을 일으키는 것만큼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
[단독]로튼 프룻츠 “MFG 회장이 은밀히 전화해 없던 일로 하자고 해…긴장했나?”
이렇게 되니 잠잠해졌던 MFG그룹의 내부 커뮤니티가 다시 불타올랐다.
이제는 굳이 허운의 공작이 없어도 스스로 잘 탔다.
수뇌부의 어영부영 침묵으로 잠재울 수 없을 정도로 투자자들의 분노는 커졌다.
개중에는 이제 비난의 화살을 경영진에 돌리는 치들도 등장했다.
-도대체 경영진은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는 겁니까?
-경영진 뭐 켕기는 거 있어요? 빨리 대응해야죠. 이러다 투자자들 다 빠지겠네.
-지금까지 일처리 시원시원해서 좋았는데 저 막돼먹은 로튼하고 엮이기만 하면 답답해 죽겠네요.
-왜 다른 언론에는 잘만 나가면서 로튼하고의 공개석상에는 왜 안 나가는 거죠?
-여기서 로튼 실상을 까발리면 우리나라 배양육 시장은 MFG가 석권하는 건데.
이른바 충성파로 분류되는 쪽에서 더 불만이 들끓었다.
그러자 MFG그룹의 경영진도 더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로튼 프룻츠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고범수는 회장 본인의 이름으로 내부 커뮤니티에 글을 게시했다.
-친애하는 MFG 가족 여러분!
절절한 외침으로 글은 시작되었다.
이후로 이어지는 내용도 제갈공명의 출사표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비장미가 넘쳐흘렀다.
고범수는 자기 안방에서는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 휘두르는 여포와 다름이 없었다.
말만 들으면 당장이라도 대찬의 모가지를 따다가 투자자들에게 자랑할 것만 같았다.
투자자들은 고범수의 당당한 일성에 감동했다.
역시 우리 회장님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날짜는 가까운 주말로 합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