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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78화 (378/556)

난 할 수 있어 378화

대찬이 이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고범수는 되는 대로 떠들었다.

“그런 빈 깡통들이 우리보다 한 발짝 먼저 고개를 치켜들었다고 온 나라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있어요. 이거 분한 일 아닙니까?”

“맞아요, 맞습니다!”

“장복광이가 투자했다고 아주 세상이 떠나가라 선전을 하던데, 장복광이 그거 반쪽발이인 거 다들 아시죠?”

“네!”

“그 인간이 우리나라 잘 되라고 투자를 하겠어요?”

“아니요!”

“아니죠. 어떻게든 나라 거덜 낼 궁리만 하고 있을 겁니다. 일본 놈들이 다 그렇지. 본토 일본 놈들보다 조선 피 반 섞인 반쪽발이들이 더하다니까.”

고범수의 말에 사람들은 전혀 필터링을 거치지 않았다.

그저 웃기면 웃었다.

“그런 놈하고 손을 잡은 게 뭐 자랑이라고 시끌벅적 자랑질을 해대, 해대기는. 교황쯤은 돼야, 여당 중진하고 청와대 핵심쯤은 돼야 자랑질 좀 한다 아닙니까, 그렇죠?”

“네!”

“지금 저것들이 아주 승승장구하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거짓된 이름은 곧 머지않아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누가 진짜배기인지 사람들도 곧 알게 될 겁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먼저 알게 된 거고.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누가 무슨 로튼 프룻츠니 뭐니 그런 소릴 지껄이면 아주 콧잔등에 주먹을 박아버리세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고.”

대찬의 주변은 일제히 와하하 시끄럽게 웃어댔다.

대찬은 팔짱을 낀 채로 고범수를 묵묵히 바라봤다.

바람을 탄 고범수는 그 이후로도 한참 로튼 프룻츠를 물어뜯는 데 시간을 썼다.

역시나 MFG그룹에 대한 비전이나 내실은 극히 적은 시간만을 들여 공개했다.

어차피 더 들어봤자 영양가도 없다.

대찬은 휙 몸을 돌려 고범수의 장광설이 절정에 달할 무렵 MFG그룹 사옥을 빠져나왔다.

이전처럼 분노가 들불처럼 끓지는 않았다.

MFG그룹의 실체가 그야말로 별 것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하룻강아지가 왕왕 짖어대는 말을 참고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허운 역시 대찬의 언질이 없었음에도 자진해서 그 소란스러운 난장판을 빠져나왔다.

둘은 차 안에 들어가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대찬은 갑갑한 안경부터 벗어던졌다.

그는 최재한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최귀원 원내대표, 송일준 의원, 김태홍 대변인, 이신옥 수석.”

“그 양반들 이름은 뜬금없이 왜?”

“이쪽하고 직통 있어?”

“본인하고는 아니어도 바로 밑에 보좌관들하고는 있지.”

“지금 영상 하나 보낼게.”

대찬은 최재한에게 촬영된 화면을 전송하고, 고범수의 말을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러자 최재한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사람 일 모른다지만 그 양반들이 그런 소꿉놀이에 관심 가질 정도로 한가하진 않을 텐데?”

“그렇지?”

“더군다나 올해가 집권 마지막 해야. 선거 준비로 바빠 죽을 텐데 배양육은 무슨. 이건 너희 회사라도 상황은 안 다를 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확인 좀 해줘.”

“오케이.”

최재한의 답변을 듣는 데는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일단 직통번호 있는 송일준 의원한테 전화했어.”

“송 의원이 뭐래?”

“무슨 헛소리냐고 그러던데.”

“그럼 사진은 어떻게 같이 찍었대?”

“그냥 대전지역 유지들하고 만나서 친목이나 다지는 자리였대. 회장 이름도 기억 못하더구만, 뭘.”

“나머지도 비슷하겠지?”

“안 봐도 비디오지. 확인은 해보겠지만.”

“알았다. 확인되는 대로 연락 줘. 고맙다.”

대찬이 전화를 끊자, 허운은 팔짱을 낀 채로 현장에 다녀온 감상을 말했다.

“무슨 사이비종교 집회현장 다녀온 기분이야.”

“어, 잘 느꼈네.”

“어쩔 거야?”

“글쎄.”

“이거 그냥 조 이사님 잘 아는, 방금 통화한 최재한 기자한테 넘기면 끝 아니야? 관심 보일 텐데.”

대찬은 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그게 가장 정석이긴 한데.”

“왜, 뭐가 또 켕겨?”

“응, 언론이 터트리면 우리까지 싸잡아 이미지가 깎일까봐.”

“배양육 취급하는 것들은 죄다 사짜들이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언론 힘을 안 빌리면 무슨 수로 이걸 까발릴 건데?”

대찬은 잠시 주저하다가 허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내가 직접 까면 좀 그래?”

“뭐? 네가 직접 깐다고?”

“응.”

허운의 미간이 팍 좁혀졌다.

“글쎄, 별로 좋은 생각 같지는 않은데.”

“왜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닐까?”

“이런 개싸움은 원래 전문적인 싸움꾼한테 맡기는 게 정석이지.”

“그건 그런데…….”

“언론이 터트리면 너희도 같이 싸잡혀서 이미지가 떨어진다지만, 네가 직접 총대 메고 나서는 건 또 그것대로 이미지가 깎이지.”

“흠…….”

대찬은 딱 부러지게 대답하지 않고 계속 질질 끌었다.

허운은 그의 속뜻을 알아챘다.

“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이미 결정했지, 네가 싸움닭 하기로.”

대찬은 허운을 보며 말없이 흐흐 웃었다.

허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찬은 서울로 올라와 허운과 술을 적잖이 마시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취기가 꽤 올라왔지만 대찬은 바로 잠들지 않았다.

냉수 한 잔 받아놓고 혼자 서재에 앉아서 한참을 고심했다.

대찬은 결국 자신의 주관을 그대로 관철시켰다.

직접 링에 올라 MFG그룹과 대적하기로 했다.

위험부담이 적지 않다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부담을 어깨에 짊어지고도 MFG그룹과 직접 붙으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직접 MFG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면 그런 사기꾼들과 한 데 묶이는 불명예를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그들과의 입씨름에서 승리를 거두면 전화위복으로 도리어 플러스 요인을 얻게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선제타격을 할 생각은 없었다.

MFG그룹이 로튼 프룻츠를 욕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네들 내부에서 수군대던 것이다.

MFG가 언론을 통해 로튼 프룻츠를 겨냥해 적잖이 도발적인 언사를 건네 왔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로튼 프룻츠, 다섯 글자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포문을 열면 명백히 로튼 프룻츠가 선제타격을 한 셈이 된다.

조금 더 고범수의 도발이 수위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고범수 그놈 성깔을 보아하니 가만히 있으면 자진해서 먼저 찌르고 올 거야.’

대찬은 우선 수면 아래 몸을 숨긴 채 잠자코 있었다.

사기를 치려면 당당해야 한다.

괜히 켕기는 것, 찔리는 것이 있으면 사기도 못 친다.

켕기거나 찔리는 것이 있어도 모른 척 하고 당당해야 하는 게 사기의 기초다.

그 기초를 넘어서 자기에게마저 사기를 치는 경지.

스스로 아닌 걸 맞다고 믿게 만드는 경지에 오르면 크게 한 탕 쳐낼 사기꾼으로서의 자격이 갖춰지는 것이다.

고범수가 그러했다.

내세울 알맹이가 없으면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알음알음 주변사람 몇몇만 등쳐먹고 허겁지겁 판을 거두기 마련이다.

그런데 고범수는 정말 자신이 뭐라도 된 듯한 착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는 더욱 과감하게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방송 CF까지 제작해 케이블과 종편 채널을 중심으로 내보냈다.

심지어는 지상파 아침 교양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거기서 고범수는 한창 자기 자랑을 떠벌렸다.

그러자 합을 맞춰주던 사회자가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죠. 그 배양육이라는 걸 만드는 회사가 고 회장님 회사 말고도 한 군데 더 있지요?”

“아, 예.”

“솔직히 우리 같은 대중 사이에서는 회장님 회사보다는 그 회사가 아무래도 귀에 더 익거든요?”

고범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뭐, 그러시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 그쪽은 유명 여배우를 간판으로 내세워서 장사를 하지 않습니까?”

“유명 여배우라면…….”

고범수는 시시덕거렸다.

“제가 뭐 실명까지 밝혀야 옳겠습니까? 윤 모 양 있잖아요, 윤 모.”

“아, 하하…….”

“정말 모르세요?”

고범수가 제법 돌발적으로 반응하자 사회자는 적당히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한번 시동이 걸린 고범수의 입이 멈추지 않았다.

“참, 세상 불공평하죠?”

“…네?”

“아무리 실력이 좋으면 뭐합니까? 저처럼 이목구비가 뒤죽박죽으로 생긴 인간이 회장으로 있으니까 사람들이 의구심부터 품어요.”

“하하…….”

“반대로 거 아무것도 없는데 생김생김이 번듯하고, 대표의 애인이란 사람이 또 유명한 여배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뭣도 모르고 눈먼 돈을 갖다 바친다, 이거 아니에요.”

“뭐,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마는…….”

“참 속상합니다. 지금껏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마음이 좀 그랬어요.”

“하하, 알겠습니다.”

“사람들한테 꼭 좀 당부하고 싶은 게, 겉모습만 보지 마시라. 알맹이를 봐주시라,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주말 아침에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던 대찬도 마침 그 장면을 보았다.

대찬은 권태로운 표정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막 나가네, 아저씨.”

확실히 지상파는 중앙일간지보다 한 단계 더 높은 파괴력을 지녔다.

극동일보 역시 더 악착같이 이 판에 들러붙었다.

그들로서는 이 상황이 꽃놀이패였다.

자신들이 나서서 로튼 프룻츠를 때리는 것이 아니다.

MFG그룹이 떠드는 말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혹여 MFG그룹의 공세가 잘못된 것일지라도 책임소재는 그쪽에 있을 뿐이었다.

극동일보는 신나게 나발만 불면 되는 일이었다.

고범수 회장이 지상파 생방송에서 로튼 프룻츠를 때리자, 언론들은 이제 대찬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몇몇 부지런한 기자가 일찌감치 대찬의 출근길에 찾아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조 대표님, 최근 MFG 고범수 회장님 나온 방송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찬은 한쪽 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기자를 바라봤다.

얼굴에는 엷은 웃음기를 띠었다.

“그쪽에서 먼저 세게 얘기하셨으니까 저도 좀 세게 얘기할게요.”

“예, 그러시죠.”

기자는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말의 강도가 셀수록 그가 새벽같이 대찬을 찾아온 보람이 있다.

대찬의 말은 그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수준이 되었다.

“과연 면전에서도 그렇게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마주앉은 자리에서 하시죠. 용의가 있으시다면 제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공개된 자리에서 토론을 벌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거창하게 토론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쪽에서 의혹을 제기할 게 있으면 제가 있는 자리에서 하시란 겁니다.”

“조 대표님께서 즉시 해명하실 수 있게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근거 없는 공격을 더 참고 들어주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고 회장님 측에 여러 가지 여쭙고 싶은 게 많으니까요.”

“그 말씀은, 로튼 프룻츠 역시 MFG그룹 측에 제기할 의혹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고 회장님께서는 뭐라고 대답을 꼭 해주시길 바랍니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도발적인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으시거든, 더 이상 근거 없는 언론플레이를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고범수가 근거 없는 언론플레이를 중단해주었으면 하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고범수가 꼬리를 말고 몸을 웅크릴까 봐, 퍽 도발적인 말로 그가 그러지 못하도록 붙들어두는 것이었다.

저렇게 도발을 해두면 고범수 본인은 숨고 싶을지라도 그의 곁을 지키는 충성스러운 심복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대찬의 말을 받아 적던 기자는 대찬을 올려다보며 그의 말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 이대로 내보내도 되는 거죠?”

“예, 이대로 내보내시면 되겠습니다.”

대찬은 시원하게 대답하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대범하게 대답을 한 대찬은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시도 때도 없이 인터넷으로 기사가 올라오는 것을 확인했다.

9시, 10시, 11시를 지나도 기사가 올라오지 않았다.

대찬은 저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러다 점심을 먹으려고 다른 직원들이 슬금슬금 준비를 하던 11시 48분.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로튼 프룻츠 “MFG, 자신 있으면 공개토론 하자” 전격 제안

“그렇지.”

대찬은 손가락을 부딪치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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