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377화
“가치라는 건 절대적인 것도 있지만 상대적인 면이 더 부각되니까요. 비슷한 체급의 회사가 하나 더 생기면 투자처로서의 매력이 뚝 떨어지죠.”
“기사대로라면 체급 자체도 우리가 달려요. 쥐고 있는 돈이 천억 대라니.”
다르샨 싱 전무는 뚱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일 리가 없어요. 이 기술이 그렇게 뚝딱 도깨비방망이로 만들 듯이 얻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거든요.”
“도깨비방망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우셨나요?”
“우리 한국어 과외선생님이 알려줬어요.”
민승기는 다르샨 싱 전무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말을 얹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문제는 문제예요. 당장 MFG는 사기꾼 집단 낙인이 찍힐 테고.”
대찬이 얕은 한숨에 섞어 그의 말을 받았다.
“겉으로 봐서는 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우리도,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찬가지로 묶이겠지요.”
그 말에 박 이사가 펄쩍 뛰었다.
“아니, 사기는 그놈들이 치는데 왜 그 똥물이 우리한테 튑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디 있어요?”
“박 이사님도 아시겠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일어나는 걸요. 억울해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요. 해결을 해야지.”
“으음…….”
임원들이 불편한 얼굴로 앓는 소리를 내는 와중.
맹윤주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대찬에게 간단한 보고서를 한 장 건넸다.
그가 글을 읽기 전에 구두로 설명해주었다.
“회사의 실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어요.”
“그래요?”
“네, 카이스트랑 협력해서 따냈다는 특허가 있거든요. 뭐더라, 그게…….”
대찬은 맹윤주를 흘끗 올려다봤다.
“버섯추출물을 통한 인공육류 제작에 관한 특허.”
“네, 그게 별 거 아니더라구요? 우리 먹는 콩고기랑 크게 다를 게 없어요. 콩단백이 버섯 단백질로 바뀌었을 뿐이지. 자, 여기 그 특허에 관한 서류예요.”
대찬은 그 서류를 흘끗 보다가 깊게 읽지 않고 바로 다르샨 싱 전무에게 넘겨주었다.
다르샨 싱 전무는 영문 번역본 없이 그림만 보고도 헛웃음을 지으며 탁 서류를 치워버렸다.
그는 안경을 벗어 탁자에 내려놓으며 급히 피로감이 몰려온 듯, 콧잔등을 주물렀다.
“대표님 말씀이 정확합니다. 이건 배양육 기술이 아니에요. 이를 테면 한국 음식 중에 그 떡갈비? 떡갈비 만드는 법이랑 비슷한 겁니다. 버섯 비율 얼마, 소기름 얼마, 기타 등등 얼마 해서 버무리는 거라고요.”
맹윤주는 이어 말했다.
“특허도 그렇고, 전국 각지에 지어놓은 공장, 연구소 같은 부대시설들도 영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자본이 천억 대라는 건 사실이에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대찬은 검지로 아래턱을 톡톡 건드렸다.
“그래도 이것저것 벌려놓은 게 많으니 아예 빈털터리는 아닐 거란 말이죠.”
“예.”
“한번 알아봐야겠네.”
“제가 맡아서 할까요?”
대찬은 맹윤주를 흘끗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건 나한테 맡기세요. 사안이 가벼운 사안이 아니에요.”
대찬은 직접 MFG그룹의 일을 챙기기로 했다.
MFG그룹은 껍데기만 그럴 듯한 쭉정이라는 게 확실시되었다.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하나.
민승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찬에게 말했다.
“그쪽이 별 볼 일 없다는 게 드러났으니, 그냥 가만히 놔두면 되는 거 아니야? 알아서 침몰할 텐데.”
“알아서 침몰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잠깐만 파냈는데도 빈껍데기라는 증거가 우수수 나오잖아. 가봤자 얼마나 가겠어.”
대찬은 민승기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미 지역사회와 깊이 유착돼있고, 언론에까지 손을 써놨어요.”
“으음.”
“잠깐 파냈는데도 우수수 나오긴 하는데, 이래서야 잠깐이라도 파내려는 사람이 없어요. 지금 누구도 MFG를 견제하고 있지 않으니까.”
“오히려 그런 마당이니까 더 신중해야 해. 아무도 견제 안 하는데 우리가 나서서 시비를 걸면, 독박 쓰는 쪽은 우리일지도 몰라.”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중하고 교묘해야죠. 일단 이 건은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인력 지원해줄까?”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런 일까지 챙기기에는 비도축육 쪽 인력이 부족할 텐데.”
대찬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그때 맹윤주가 대찬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MFG그룹 투자설명회가 있다고 하던데요.”
“아, 그래요?”
“근데 대표님은 얼굴이 이미 팔릴 대로 팔려서…….”
“괜찮아요. 쓸 만한 아바타가 있어서.”
“아바타요?”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운은 느닷없이 대찬의 전화를 받았다.
“주말에 뭐해?”
“…친구 만나서 술 마실 건데.”
회사 밖이었으니 허운은 반말로 응대했다.
“지금 3초 머뭇거렸지. 주말에 술 안 마시지. 한가하지.”
“아, 뭘 시키려는지 모르겠지만 주말엔 제발 좀 가만 놔둬!”
“아르바이트 좀 하라구.”
“안 해.”
“내 부탁을 거절하면 큰 호통을 들을 것이야.”
허운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알반데.”
주말.
대찬은 허운의 집 앞에서 그를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허운은 입이 댓 발 튀어나와선 차창에 무료한 시선을 던졌다.
대찬은 웃으면서 곁눈질로 그를 봤다.
“너무 뚱해있지 마. 이왕 하는 거 좀 긍정적으로, 낙천적으로, 응?”
“아유, 이사님, 어련하시겠어요. 네가 주말에 등산 끌고 가는 상사랑 뭐가 달라. 주말에 수석 주우러 가자는 상사랑 뭐가 다르냐고!”
“다르지. 많이 다르지. 그쪽은 순전히 자기 취미 때문에 그러는 거고.”
“그러는 조 이사님은요?”
“나는 대의를 위해서, 응? 헛된 곳에 돈 집어넣는 한 명의 투자자라도 구제하기 위해서. 그런 아가페적인 순수한 자선활동이지.”
“지랄.”
허운은 다시 힘없이 푹 카시트에 몸을 묻으며 심통 난 얼굴로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대찬은 좋은 말로 그를 달랬다.
“정당한 보수 지급할 거고, 끝나면 좋은 술 한 잔 살게. 좋게 좋게 가자고.”
“예, 예, 예.”
계속 삐딱한 허운을 대찬은 더 달래지 않았다.
차는 대전에 멈췄다.
대전의 중심가에 있는 MFG그룹의 사옥.
대찬은 사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그 일대의 교통체증이 유독 심했다.
모두 MFG그룹의 투자설명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대찬은 끌끌 혀를 찼다.
“불쌍한 중생들아. 그 돈을 로튼 프룻츠로 갖고 와야지 왜 이상한 곳에 갖다 바치느냔 말이다.”
대찬은 저린 가슴을 부여잡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허운은 멀찍이 그들을 건너다보며 쩝, 입맛을 다셨다.
“좀 그렇긴 하네. 뭘 제대로 알아보고 나서야 투자를 하든지 할 것이지, 참.”
“자, 형도 이제 사명감 비스무리한 걸 느끼게 됐지? 형 덕분에 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난 저 치들 쌈짓돈 일억, 이억보다 내 꿀 같은 주말이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허운은 대찬을 째려보고는 차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저 순진한 투자자들의 무리 사이에 스며들었다.
대찬은 현장의 화면과 소리를 허운을 통해 들었다.
이를 위해 제법 고가의 몰래카메라 장비를 구입했다.
‘이건 나중에 중고로 최재한한테 팔아먹어야겠네.’
대찬은 홀로 차 안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실황을 전달받았다.
“아아, 잘 들리나?”
“라우드 앤 클리어. 화면은 좀 더 위쪽으로 향해서 무대가 잘 보이게 해주시고요.”
“오케이.”
허운은 다소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대찬의 말대로 해주었다.
화면이 잘 보였다.
대찬이 커피를 반쯤 마셨을 즈음, 투자설명회가 시작되었다.
무대에는 MFG의 회장인 고범수가 올라왔다.
인터넷에서 마르고 닳도록 검색했던 대찬은 그의 얼굴이 부모만큼이나 친숙했다.
고범수는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바쁘신 와중에 우리 MFG그룹의 투자설명회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MFG그룹의 회장, 고범수입니다.”
고범수는 자기소개만 했는데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투자설명회라고 하면, 아직 투자 결정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득하는 자리였다.
그러니 예비 투자자들은 지금처럼 열광하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벼리고 신중하게 경청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벌써부터 박수갈채를 보내며 돈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투자할 의지가 있는 듯 행동했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야.’
고범수는 과장된 손짓을 해가며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대전에서 하는 설명회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이 다음부터는 전국일정이야. 전국일정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느냐.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말이에요. 오늘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고범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은 특별한 기회를 얻은 행운아들이에요. 그런데 오늘 기회를 놓친다? 그럼 진짜 천치들이지, 천치야.”
고범수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했다.
배양육의 전도유망함이나, MFG그룹의 연구가 얼마나 진척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자, 이건 내가 지난달에 교황 성하를 알현하고 찍은 사진이에요.”
허운은 사진을 비춰 대찬에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교황과 고범수 회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대찬은 눈을 가늘게 뜨며 사진을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벌써 노안이 왔나…….’
딴에는 좋은 장비를 구비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작은 렌즈로 화면을 비추려니, 윤곽은 구분되되 또렷하진 않았다.
대찬은 허운에게 말했다.
“거기 경비가 삼엄해? 어떤 거 같아.”
“어… 그냥 어수선한데. 나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화장실도 자유자재로 들락날락거리고.”
“내가 거기 가면 들킬까?”
“솔직히 반반.”
“좋았어.”
대찬은 아예 직접 그 자리에 참석하려고 했다.
일부러 테가 큰 안경을 써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MFG그룹 사옥을 향해 걸어갔다.
다행히 그가 사옥 안에 마련된 투자설명회장까지 향하는 데 막아서는 사람은 없었다.
허운의 말대로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대찬은 허운의 옆에 서지 않았다.
혹여 자신의 정체가 들키면 허운까지 곤란해진다.
애써 준비한 최첨단 장비도 빛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압수되고 말 터.
대찬은 한 구석에서 삐딱하게 서서 고범수 회장의 말을 들었다.
고범수 회장은 교황에 이어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사람들과 찍은 사진을 거푸 보여주었다.
“내가 어디 교황 성하만 알현한 줄 알아요? 지금 정권 실세들하고도 숱하게 만나면서 이 사업에 대해서 어필을 하고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자 이어 화면에는 여당 중진의원들과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찍은 사진들이 쭉 나열되었다.
고범수는 그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말했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 있는 분들이면 이 사람들 다 아실 거야. 최귀원 여당 원내대표, 송일준 3선 의원, 김태홍 청와대 대변인, 이신옥 청와대 민정수석. 이 사람들이 다 우리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니까요.”
대찬은 그 사진을 유심히 봤다.
일단 대충 봤을 때 합성의 기미는 없었다.
그 사진 자체는 진짜였다.
고범수는 그 사진을 띄워놓은 채로 투자자들에게 말했다.
“정부에서도 우리 사업을 역점사업으로 지정하고 힘을 다해 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고범수 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약속이라도 된 듯 열렬한 호응이 따랐다.
그는 이제 로튼 프룻츠를 노골적으로 저격했다.
“저 무슨 대학 동아리 같은 회사에서 자기들이 배양육 개발의 선봉에 있네, 어쩌네 떠드는데, 그거 순 헛소립니다, 헛소리.”
노골적인 말에 투자자들은 헤픈 웃음으로 호응했다.
호응에 힘을 얻은 고범수는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이쪽 분야에는 아무 경험도 없으면서 말이죠. 뭐? 연구실은 또 무슨 학교에 있다고요?”
“중림대랍니다!”
“중림대? 하이고, 웃기지도 않습니다.”
고범수는 흐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 중에 아들딸이 수능 쳐서 중림대 간다고 하면 속 안 뒤집어질 사람 있습니까?”
투자자들은 와르르 웃었다.
“그런 똥통학교하고 손을 잡고 연구를 하니, 뭐 잘 될 턱이 있나.”
면전에서 가해지는 비난에 대찬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열이 올라 쓰고 있던 큰 뿔테안경을 잡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