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376화
대찬이 임의로 정한 그 절대우호지분에 쵸 후쿠히로의 지분과 필래의 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동화가 있다.
늑대와 양이 어쩌다 친구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영원토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늑대는 양에게 끊임없는 욕구를 느낀다.
잡아먹고 싶은 욕구.
‘폭풍우 치는 밤에’에서는 용케 늑대가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여 그 욕구를 극복해내고 양과 끝까지 우정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화.
성인판, 혹은 현실판의 ‘폭풍우 치는 밤에’는 어떨까.
늑대는 친구를 잡아먹을 순 없어 배고픔을 감내했습니다.
배고픔을 잊으려 소주를 마시던 늑대가 술에 취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늑대는 주사가 심했습니다.
술이 들어가면 원래도 개과지만 개가 됩니다.
늑대는 참지 못하고 술김에, 홧김에 양을 안주거리로 잡아먹어버렸습니다, 끝.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대찬은 최후의 최후까지 늑대를 의심하고 경계하고자 했다.
한창 투자자들을 상대하고 잠깐 한숨 돌리는 휴식시간.
민승기는 대찬과 나란히 담배를 물면서 대찬을 바라봤다.
“반응이 괜찮아. 딱 예상 만큼이지?”
“선배는 배포도 크시네요. 제 예상은 훨씬 웃도는 수치인데.”
“내숭은.”
“내숭 아니에요.”
민승기는 피식 웃었다.
피식 웃는 박자에 맞춰 담배연기가 간헐적으로 피어올랐다.
그는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절대우호지분의 마지노선은 얼마야? 몇 퍼센트는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 하는.”
“절대우호지분은 51퍼센트가 아니라면 얼마가 되든 불안하죠.”
“그래도 정도가 있을 거 아니야. 마지노선이라고 물었어.”
“25퍼센트요.”
“많은 듯하면서도 적고.”
“한 줌 지분으로 그룹 좌지우지하는 재벌총수들보다는 확실히 많죠.”
“만약 우리가 그 정도 급수까지 올라가면 이 25퍼센트를 지키는 일도 요원해지겠지?”
민승기의 말에 대찬의 눈이 커졌다.
“이 회사를 재벌급으로 키울 자신이 있으세요?”
“뭘 그렇게 놀라냐. 못할 것도 없지.”
“필래만 해도 대를 이어 야금야금 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그렇게 돼요? 아무리 목표는 높게 잡는 것이 맞다고 하지만.”
“높게 잡은 게 아니야. 툭 까놓고 말해보자. 우리가 하는 비도축육, 이거 위너 테이크 올이야. 승자독식이라고. 모 아니면 도.”
“그렇죠.”
“우리가 그 급까지 못 올라갔다? 그럼 쫄딱 망했단 뜻이지.”
“그건 그런데…….”
민승기는 팔짱을 끼며 끌끌 혀를 찼다.
“유니콘 등허리에 올라타겠다는 양반이 이렇게 배포가 작아서야.”
“아유, 배포 커서 좋으시겠어요.”
대찬은 피식 웃었다.
“그 정도는 돼야 바짝 배 깔고 조대찬이 밑으로 기어들어간 보람이 있지.”
“재벌 못 되면 선배한테 찔려서 인생 종치겠네요.”
“어차피 그러면 내 인생도 종쳤는데, 뭐. 이왕 종치는 김에 네 인생도 끌어안고 종 치는 게 속 시원하지.”
“…잘할게요.”
“뭘 그렇게 쫄아. 잘하고 있어, 너.”
민승기는 담배를 비벼 끄고 대찬의 팔을 툭 쳤다.
“자, 다시 돈 걷으러 가자고.”
투자의 계절은 오래갔다.
끊임없이 상담을 하고, 악수를 하고, 도장을 찍어도 돈 싸들고 온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찬은 여전히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끝날 것만 같던 투자의 계절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환란이 들이닥친 건, 이제 막 친분이 두텁지 않거나 전혀 없는 투자자들을 상대하려던 때였다.
컴퓨터로 업무를 보던 맹윤주가 대찬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상한 기사가 하나 떴는데요.”
“이상한 기사?”
맹윤주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찬은 대답을 기다릴 여유도 없이 바로 그녀의 자리를 찾아갔다.
허리를 잡고 삐딱하게 서서 모니터를 바라보니, 맹윤주가 기사 제목을 드래그해서 대찬에게 보여주었다.
-너만 배양육 만드니?…신생 스타트업, 막대한 자본으로 업계 1위 ‘가시권’
대찬의 미간이 절로 좁혀졌다.
“지금 너만 배양육 만드니, 여기서 ‘너’가 우리 말하는 거지?”
“네, 그런 거 같은데요.”
“신생 스타트업? 막대한 자본? 뭔데 얘네.”
“MFG그룹이라는 회사인데요.”
“MFG?”
“…네.”
대찬의 심사가 뒤틀렸다.
소식을 전한 맹윤주도 찜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는 매일충남.
충청 지역의 한 지방일간지였다.
아무리 작은 언론이지만 수상한 불씨가 움텄다는 것부터가 불안한 일이었다.
“그 기사 링크 좀 보내줘요.”
대찬은 아예 자기 자리로 가서 기사를 정독하기 시작했다.
기사에 따르면, MFG그룹은 대전에 뿌리를 둔 향토기업이었다.
고범수라는 수완 좋은 사업가에 의해 세워졌다고 했다.
제목에 쓰인 ‘막대한 자본력’은 본문에서 약 천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이라고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그 숫자를 보자마자 대찬은 뒤통수가 가려워져 긁적였다.
‘막대한 자본력이긴 하네.’
대찬의 미간은 더 찌그러졌다.
기사에 따르면, MFG그룹은 카이스트와 연계하여 생산단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개발해냈다고 전했다.
기사에는 대찬의 신경을 직격으로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MFG그룹의 한 핵심관계자는 최근 배양육 개발로 각광을 받고 있는 한 회사를 겨냥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드는 일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이라고 선을 그으며, “자금만 있으면 어느 대학의 어떤 교수도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도발적인 자신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우리 MFG그룹은 천억 원에 달하는 자본과 카이스트라는 국내 최고의 상아탑과 손을 잡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일개 지방사립대보다는 카이스트가 훨씬 높은 연구능력을 보장하는 것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혜성처럼 등장했던 젊고 혁신적인 기업인은 별똥별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젊고 혁신적인 기업인은 별똥별처럼 사라질 것.
그 말이 대찬의 심장을 사정없이 후벼댔다.
대찬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탕!
그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면모에 직원들은 놀란 얼굴로 대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찬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기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MFG그룹은 조만간 국내 경쟁업체는 물론, 해외의 어느 기업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발표하겠다고 호언했다.
미래먹거리로 불리는 배양육 산업에 또 다른 강자가 등장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핵심 관계자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리는 조용히 우리 갈 길을 묵묵히 가겠다”고 뼈 있는 말을 남겼다.
속에서 불쾌감이 몰칵 올랐다.
대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맹윤주를 불렀다.
“윤주 씨, MFG라는 회사 이름 들어본 적 있어요?”
“…아뇨. 저도 오늘 처음 들어봤어요.”
대찬은 다른 직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MFG라는 회사 들어본 적 있으신 분.”
입을 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까 문자 그대로 시쳇말로 ‘갑툭튀’였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갑자기 로튼 프룻츠의 상투를 잡겠다고 나섰다.
정말 MFG라는 회사가 정말 로튼 프룻츠의 대항마일까.
기사에 나온 내용이 모조리 사실이라면.
대항마 정도가 아니다.
로튼 프룻츠를 아득히 뛰어넘는 회사가 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분노할 일이다.
사실이라면, 대찬은 스스로에게 분노해야 마땅했다.
그린블러드 미트를 향해 이죽이던 게 얼마나 됐다고.
그린블러드가 자신의 레이스에만 집중하여 경쟁자가 자신의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은 걸, 혹은 어떤 분야에서는 아득히 추월했던 걸 몰랐다는 사실은 대찬을 아프게 꼬집었다.
그런데 MFG의 약진이 사실이라면 자신 역시 그린블러드 미트와 다를 게 없었다.
이죽이던 것의 곱절로 비웃음을 살 일이고, 스스로는 부끄러워하는 동시에 분노해야 했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알맹이도 없으면서 자신을 향해 나불대는 저 얼치기의 아가리를 찢어놓을 일이다.
대찬은 바로 맹윤주를 향해 말했다.
“윤주 씨가 맡아서 진위 여부 좀 파악해주세요. 가급적 빨리.”
“알겠습니다.”
대찬은 MFG그룹의 회장이라는 고범수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MFG그룹 회장… MFG나눔복지재단 이사장, 대전시민사회이사회 이사장, 전국봉사자연맹 대표…….”
여러 개의 직함을 겸임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제법 저명한 인물이어야 한다.
저명한 인물은 대개 그에 걸맞은 이력을 갖추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고범수라는 작자는 지금은 화려한 이름들을 갖고 있지만 그 전까지의 이력이 전무했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사짜인데.’
대찬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놓았다.
그가 ‘사짜’임을 방증하는 정황들은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속속 나왔다.
그가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대전시민사회이사회.
이름만 그럴 듯했다.
그냥 고범수 개인이 소유한 법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국봉사자연맹이란 것도 마찬가지였다.
시민사회나 봉사에 순수한 뜻이 있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밖에 내보이는 이미지나, 저런 단체 활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맥을 노렸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정황이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움직일 순 없었다.
어렴풋한 짐작이 고범수, 그리고 MFG그룹에 대한 실체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맹윤주가 진위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충남매일의 기사를 시작으로 주로 충청권 지방지에서 MFG그룹에 관한 기사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비판의 논지는 전혀 없었다.
언론이 로튼 프룻츠를 띄워주었듯, 아니 그 이상으로 MFG그룹을 띄워주기 시작했다.
충청권 지방지에서 변죽을 울리던 MFG의 기사가 점점 수도권으로 북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극동일보가 이걸 받았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구본진.
그는 간만의 건수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MFG라는 이름 뒤에 숨어 실컷 로튼 프룻츠를 조롱했다.
그 철저한 악의가 얌전한 문체를 뒤집어쓰고 얄밉게 대찬의 옆구리를 쿡쿡 들쑤셨다.
충청권 지방지에 오르내리는 것과 극동이 한번 언급해주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언론의 힘이 예전만 못하다지만, 극동일보가 국민의 절반 이상에게 욕을 먹는다지만, 일정한 파괴력은 보장되었다.
극동일보가 보도하니, 다른 중앙일간지들도 스멀스멀 하나씩 기사를 냈다.
이 일은 로튼 프룻츠에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MFG그룹이 슬슬 수면 위로 떠오르자 로튼 프룻츠로의 투자문의가 뜸해졌다.
당장 필요한 자금을 수급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미지근하게 식어서야 곤란했다.
지금처럼 폭발적인 투자열기가 계속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구들장을 뜨뜻하게 데울 정도의 열기는 유지되어야만 했다.
로튼 프룻츠의 임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개중 박 이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MFG인지 MSG인지 같잖은 것들이 설치는 거랑, 우리한테 투자를 하는 거랑 무슨 관계라고 갑자기 숯불 위의 조개껍데기마냥 확 벌어지던 인간들 지갑이 왜 슬그머니 닫히냔 말입니다.”
“왜 관계가 없겠어요.”
대찬이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박 이사가 그쪽을 바라봤다.
“그놈들은 그놈들, 우리는 우린데 무슨 상관이냔 말이죠, 제 말이.”
“박 이사님 대만 가보셨어요?”
“뜬금없이 대만이요?”
“거기 고궁박물원이라고, 장제스가 본토에서 갖가지 보물들 털어서 만든 박물관이 있어요.”
박 이사는 쩝 입맛을 다셨다.
“가본 적은 없어도 들어봐서 압니다마는. 세계 4대 박물관인가 뭔가 그러는 곳 아닙니까.”
“네, 명성에 걸맞게 갖가지 유물이 즐비하죠. 거기에 솥이 잔뜩 있거든요. 세 발 달린 솥.”
그 말에 민승기가 첨언했다.
“정(鼎)이라고 하는 거지. 왜, 삼국지에서도 삼국이 천하를 솥발처럼 삼등분하여 어쩌고 할 때 나오는 세발솥이 정이지. 그래서 삼국정(鼎)립이라고 하는 거고.”
“네, 그 정이라는 세발솥이 사실 굉장히 귀한 거거든요. 주나라 때부터 내려오는 천자의 상징 같은.”
뜬금없는 고고학 강론에 박 이사는 하품을 참으며 시큰둥하게 되물었다.
“그런데요?”
“근데 거기 가니까 무슨 시골 외할머니 아궁이 위에 있는 솥처럼 헐하게 널린 거예요.”
“음.”
“그러니까 오히려 하나도 안 귀해 보이는 거죠. 차라리 하나만 있었으면 우와, 탄성 내지르면서 하나하나 뜯어봤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 MFG그룹이 생겨나면서 우리 희소성이 훅 떨어졌다는 거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