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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75화 (375/556)

난 할 수 있어 375화

조사 대상은 각 도시에 거주하며 구매력이 있는 20대부터 50대까지의 남녀를 대상으로 했다.

그들이 로튼 프룻츠의 주 고객층이 될 테니까.

질문 1. 당신은 배양육, 비도축육 등 세포배양을 통해 제조하는 육류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인지하고 계십니까?

발표회 이전의 자료, 그렇다 43% 아니다 54% 무응답 3%.

발표회 이후의 자료, 그렇다 52% 아니다 43% 무응답 5%.

질문 2. 당신은 비도축육 제품이 시중의 육류보다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면 구입할 의향이 있습니까?

발표회 이전의 자료, 그렇다 55%, 아니다 38%, 무응답 7%.

발표회 이후의 자료, 그렇다 62%, 아니다 34%, 무응답 4%.

질문 3. 당신은 비도축육 제품을 무료로 시식할 기회를 얻는다면, 응하시겠습니까?

발표회 이전의 자료, 그렇다 57%, 아니다 36%, 무응답 7%

발표회 이후의 자료, 그렇다 70%, 아니다 24%, 무응답 6%.

질문 4. 당신은 비도축육이 시중에 판매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발표회 이전의 자료, 그렇다 66%, 아니다 28, 무응답 6%.

발표회 이후의 자료, 그렇다 80%, 아니다 15%, 무응답 5%.

“확실히 지표가 가시적으로 개선되었어요.”

맹윤주가 대찬에게 보고하자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 안목이 있지 않아도 그렇다는 건 누구나 알 정도였다.

대찬은 다리를 꼰 채로, 별로 숫자가 많지도 않은 자료를 계속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발표회를 하고 나서도 잠재고객들의 40퍼센트 이상이 비도축육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어.”

“어떻게 첫술에 배부르나요. 너무 욕심 부리지 마세요.”

대찬은 맹윤주를 흘끗 올려다보며 웃었다.

“욕심인가?”

“네, 욕심이죠, 당연히. 세상이 발표회 한 번으로 훅 뒤집히면 그게 어떻게 세상이겠어요.”

“맹윤주 씨 말이 맞네.”

“이 정도 개선된 것만 해도 큰 성과라구요. 저는 자료 받자마자 엄청 놀랐거든요. 대표님은 확실히 저희보다 스케일이 크시네요. 오히려 실망하실 줄은 몰랐는데.”

“실망은 아니고. 그래, 맹윤주 씨 말대로 욕심이지, 뭐.”

대찬은 웃으면서 자료를 서류철에 보관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고무적인 일들도 많다구요. 발표회 이후로 안 그래도 많았던 투자문의가 배로 늘었다니까요.”

“그 말인즉슨, 우리가 사짜가 아니라 진짜 뭔가 있는 회사로 인정받았다는 뜻이겠지?”

맹윤주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래, 지나친 낙관도 병이지만 지나친 비관도 병이지.”

“낙관보다 비관이 더 큰 병이에요. 낙관은 용기라도 주죠.”

“맞아, 맞아.”

대찬과 맹윤주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발표회 이후, 로튼 프룻츠는 신규 투자를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지금까지 닫았던 투자의 문을 활짝 열어젖힐 요량이었다.

로튼 프룻츠가 쏟아지는 투자를 계속 튕겨내는 마당.

여자가 거푸 튕기면 남자는 안달이 나듯, 마찬가지로 로튼 프룻츠의 문이 굳게 닫힐수록 투자의 용의가 있는 사람들의 욕구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기어코 한 짐 안겨주겠다는 돈다발을 마다하는 품이 더 믿음직했다.

거기에 쵸 후쿠히로와 서청수가 투자를 결정하고, 미국 상원의원이 응원하는 회사다.

설마하니 껍데기만 그럴 듯한 쭉정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려운 뒤를 한참 참은 사람이 닫힌 화장실 문을 두드리듯 그들은 안달을 냈다.

대찬은 민승기, 박 이사, 다르샨 싱 전무와 둘러앉았다.

이 네 사람이 경영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요인들이었다.

파푸아뉴기니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잔씩 홀짝이는 와중, 대찬이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투자를 좀 받아야겠습니다.”

그 말에 다르샨 싱 전무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정말 탁월한 결단이십니다!”

“어지간히 급하셨군요.”

과한 호응에 대찬은 흠칫 놀랐다.

다르샨 싱 전무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무리 본사에서 편의를 봐주신다지만 현장에서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많이 힘드셨겠죠.”

“예.”

다르샨 싱 전무는 대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긍정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본사 측에서는 중림대 연구실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인원은 다르샨 싱 전무와 은오영 교수 둘뿐이었다.

인력이 모자라면 돈이라도 넘치도록 흘러야 조금 수월했을 터.

필래에서의 투자가 적지 않았고 쵸 후쿠히로 발 70억도 적지는 않았다.

그래도 앞뒤 사정 안 보고 막 쓸 정도는 아니었다.

다르샨 싱 전무는 대찬에게 추가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냥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애처럼 조르지 못하고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차였다.

불감청고소원.

그러던 차에 대찬이 먼저 투자를 받겠다고 얘기했으니 그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대찬이 투자 얘기를 꺼내자 민승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대찬의 투자유치 용의를 은근히 환영했다.

투자를 받으면 낮한잔, 밤한잔의 자금을 비도축육 쪽에 투입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래도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받는 게 좋겠지.”

“펀드처럼 큰 덩어리로 움직이는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발표회 때 서 회장님이나 만몽 선생님이 애써 모시고 와주신 노고도 생각해야 하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개인투자자만 받겠다고 하면 큰손들을 영영 놓칠 염려가 있어요. 그리고 개인투자자들이 어디 좀 조심스럽나요. 평생 딸딸 모은 여윳돈을 남의 손에 맡기는 일이니까.”

“그래, 큰손들이 먼저 움직여야 안심하고들 따라오시겠지.”

“네, 그러니 큰손들 투자를 안 받을 순 없어요. 그리고 확실히 큰손답게 도움도 많이 될 테니까.”

“그래도 리미트는 걸어야겠지.”

“네, 분명하게 걸고.”

“이제부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러 발품 열심히 팔아야겠네.”

“선배하고 이사님, 그리고 싱 전무님도 수고를 좀 해주셔야겠어요.”

그 말에 박 이사가 대찬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비도축육 분야는 비도축육 사업부 직원들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지식은 필요 없어요.”

“예?”

“천 원짜리 토토를 해도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집어넣는 게 당연하잖아요. 투자금은 적게는 천만 원부터 해서 대개 억은 우습게 넘길 거예요. 그분들이 아무 정보 없이 무턱대고 찾아오겠어요?”

“아.”

박 이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연구하고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왔을 사람들한테 주입식 교육은 더 필요하지 않다.

“급이 맞아야죠. 기껏 쌈짓돈 들고 왔는데 대리, 과장이 녹차나 틱 던져주면 저 같아도 도로 짐 싸서 일어나겠어요.”

박 이사는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렇겠네요.”

“최소한 제 앞에 계신 이사님 정도는 돼야 믿고 돈을 맡기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찬은 다르샨 싱 전무를 바라보며 웃었다.

“간혹 영어 쓰는 분들이 오실 거예요. 그분들은 싱 전무님이 맡아주셨으면 하는데.”

“투자를 유치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의욕 좋습니다.”

로튼 프룻츠의 임원들은 발표회 이후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문호가 개방되자 큰손이든 작은 손이든 로튼 프룻츠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구한말 이권을 침탈하려는 서양 열강들처럼 눈이 벌게져서 앞 다투어 투자 의지를 불태웠다.

앞 다투어 로튼 프룻츠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순서를 정해줄 의무가 대찬에게 있었다.

어차피 돈은 다 같은 돈이다.

서청수 회장의 만 원과 옆집 아저씨의 만 원은 가치가 똑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준으로 순서를 정할 것인가.

대찬은 더 친한 사람을 앞에 세우고 덜 친한 사람을 뒤에 세웠다.

대찬은 자신이 잘 아는 사람 혹은 단체부터 투자를 받았다.

단순히 인간적인 친분만을 고려한 선택이 아니었다.

대찬이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쪽도 대찬을 잘 알 것이다.

물론 대찬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마냥 그를 높이 평가하진 않을 것이다.

그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알고 보니 별 것 없는 녀석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한 이들은 애초에 로튼 프룻츠에 투자할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

그러니 그들의 존재는 적어도 투자유치의 상황에서는 배제해도 좋았다.

대찬을 잘 알면서 투자를 결심했다는 건, 그만큼 경영능력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단순히 신문이나 언론, 혹은 주변의 말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돈을 밀어 넣으려는 얼치기 투자자들은 믿음이 얄팍하다.

그들보다는 대찬에 대한 지지 의사가 강력한 사람들이었다.

얼치기들은 조금만 회사가 휘청거려도 바로 대찬을 비롯한 경영진을 압박할 것이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감내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대찬을 신뢰하는 사람은 한국인의 미덕인 삼세판을 존중해줄 것이다.

다소 대찬이 헤매더라도 한 번, 두 번까지는 참아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 대찬에게는 안전하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투자자들이 만나는 로튼 프룻츠 임원들의 높낮이는, 그들이 투자하고자 하는 돈의 높낮이를 따랐다.

3억 미만의 투자자들은 대찬이나 민승기 대신 박 이사와 대면했다.

대찬은 자신과 면식이 깊은 이들과 상대했고, 그렇지 않은 대상은 그만큼의 위상이 보장된 이들이었다.

쵸 후쿠히로 회장은 아시아·태평양 투자담당 소속의 직원을 보내 20억 원의 추가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서청수 회장 역시 이에 질세라 필래벤처캐피탈 측의 인사를 보내 30억 원의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사주를 보아하니 슬슬 대운이 들어오고 있어. 이거 무조건 된다. 이참에 내 돈 좀 불리자.”

만몽거사, 10억 원 투자.

“설마 내 땅 갖고 대박 터트린 놈이 내 돈 갖고 쫄딱 망하진 않겠지. 불려라, 꼭 불려라.”

하남 땅부자 심형수, 7억 원 투자.

“나는 미래의 특수관계인이니까 설마 내 돈을 꺼리진 않겠지……?”

윤이영, 4억 원 투자.

“조 선생, 못 돼도 좋으니까 받아둬. 나야 이 돈 옴팡 말아먹는다 해도 조 선생 원망도 안 하고 흔들 생각도 없으니까, 부담 없이 받으란 말이야.”

주식회사 황금루 노근기 대표, 사재 5억 원, 회사자금 10억 원 투자.

“우리가 비영리재단이라지만 이런 확실한 기회는 잡아야죠. 많은 돈은 아니지만 꼭 좀 투자하게 해줘요.”

도진애 조합장 외 한마음양파영농조합원 일동, 1억 원 투자.

“선배님, 저희 돈은 그냥 선배님 돈이나 마찬가지인 거 아시죠? 코 묻은 돈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것도 저희 수익추구의 일환이니까.”

로튼 프룻츠 재학생 일동, 960만 원 투자.

“이 돈이 모처럼 우리 마을하고 조 대표하고 끈끈한 신뢰의 상징이 되았으면 하는 바람이라예.”

떡골마을 어촌계, 2천만 원 투자.

“대표님, 꼭 성공하시고 저희 대학과의 관계도 발전적으로 유지해나가기를…….”

학교법인 중림학원, 7억 원 투자.

“퇴사하고 나니까 슬슬 콘텐츠도 오링나고 요즘 나 불안해. 나 재테크 좀 하자.”

인터넷방송인 쏭과장, 9천만 원 투자.

그밖에 필래 비바체 사우회, 고원대학교 총동문회 등등 작은 사조직에서 투자를 빙자한 용돈이 주어졌다.

대찬은 그들의 돈과 마음을 내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면식 있는 사람들에 더하여, 대찬은 큰손들의 투자도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이 역시 친분우선의 대원칙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마이크 햇치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미네소타 연기금부터 해서, 서청수 회장이나 만몽거사가 안면을 터준 은행과 펀드와 차례대로 접촉했다.

이렇게 차츰차츰 투자를 받기 시작하자, 대찬의 지분은 급속도로 희석되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무식하게 51%의 지분을 보유하여 물리적으로 회사를 지배할 생각은 없었다.

대찬이 처음 회사를 차릴 때 돈을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입했지만 그래봤자 10억이 채 되지 않았다.

이후로도 여윳돈이 생기는 대로 회사에 집어넣었지만 가진 자본금이 몇 배로 뻥튀기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51%의 지분을 유지하려면 민승기의 지분을 포함한다 해도 투자받을 수 있는 자금이 태부족이었다.

그렇게 꾸려나가다가는 꽉 막힌 수챗구멍으로 물을 내려 보내듯 자금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자금수급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대찬은 늘어나는 회사의 실탄보다는 줄어드는 자신의 지분에 집중했다.

세상에 ‘절대’란 없다지만 자신의 절대 우호지분이라고 믿고 싶은 지분을 꼼꼼히 따졌다.

가뜩이나 숫자에 밝지 않은 대찬은 셈하고, 검산하고, 다시 셈하고 검산하고를 반복하여 자신의 경영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하한선을 철저히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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