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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74화 (374/556)

난 할 수 있어 374화

구본진은 살벌한 눈초리로 그녀를 돌아봤다.

“아, 진짜! 뭐야, 아줌마!”

“와, 싸가지.”

대찬이 점잖게 거들자 구본진은 다시 대찬을 쏘아봤다.

그러나 다시 불벼락처럼 쏘아대는 주인의 목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봤다.

“뭐긴 뭐야! 여기 주인이다! 남의 장사 방해하지 말고 썩 꺼져!”

“나 여기 돈 내고 들어왔어! 어디서 손님한테 언성을 높여!”

“와, 천민자본주의.”

목청이라면 구본진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 주인이 꽥 소리를 질렀다.

“손님이 손님다워야 손님이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 같은 것도 손님이랍시고 설쳐!”

“돼지껍데기나 파는 주제에 감히 극동일보 기자 보고, 뭐? 개뼉다구!”

대찬은 경멸하는 눈으로 구본진을 바라봤다.

“와, 요식업 비하발언. 와, 되도 않는 선민의식.”

구본진은 이를 악물며 대찬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자꾸 추임새 넣을래!”

“얼쑤.”

구본진의 이성이 이제 임계점을 돌파했다.

그는 대찬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내가 오늘 너 북망산천으로 보내줄게, 이 개새끼야.”

대찬은 주변을 흘끔 바라봤다.

바야흐로 뉴미디어의 시대.

카메라 없는 휴대폰은 유물 취급을 받는 시대.

누구나 불특정다수에게 동영상을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만들어진 시대.

뉴미디어의 시대는 허름한 식당 한구석에서 돼지껍데기를 구워먹는 남녀노소들에게도 기자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그들은 점점 고조되는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풍경.

가족이나 친구에게, 혹은 모든 사람과 이 재미를 공유하고 싶은 아가페적인 마음으로 그들은 이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대찬은 그들을 흘끔 보고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북망산에는 잘나가는 사람들만 묻히는 거 알지? 그래도 눈깔은 제대로 돼있는 모양이다. 귀인은 잘 알아보네. 너 같은 놈 시체는 북망산천은커녕 길거리에 널어놔도 개도 안 물어갈 텐데, 그치.”

“이 개 같은 새끼……!”

구본진은 마침내 오래 참았던 주먹을 대찬을 향해 휘두르려고 했다.

그 순간, 대찬은 동영상에 잘 담길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구 기자님, 이러지 마세요. 점잖지 못하게… 윽!”

대찬의 말이 채 맺어지기도 전에 구본진의 주먹이 반원을 그리며 대찬의 하악골에 도달했다.

펜대만 굴려대던 구본진의 주먹은 둔하고 느렸다.

대찬은 가뿐하게 피했다.

그러자 목표물을 잃은 구본진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구본진의 몸은 잔뜩 들어간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기우뚱거렸다.

대찬은 등받이 없는 의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살짝 발을 걸었다.

한번 균형을 잃은 구본진의 몸이 잘못 다룬 젠가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구본진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어머, 어머, 어떡해!”

껍데기를 먹던 손님들은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카메라 렌즈를 우당탕 넘어지는 구본진의 몸을 따라 움직였다.

“구 기자님! 괜찮으세요?”

대찬은 급히 구본진의 어깨를 붙들었다.

분노로 붉었던 구본진의 얼굴이 이제 굴욕감으로 붉어졌다.

그건 여자들의 립스틱처럼 구분하기 쉽지 않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색깔이었다.

살짝 붉은 홍당무톤.

구본진은 엎어진 채로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

대찬은 그를 일으키는 시늉을 하다가 반쯤 허공에 들었던 구본진의 몸을 다시 내려놓았다.

철퍽, 구본진은 땅에 두 번째 키스를 했다.

대찬은 손님들을 향해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소란을 일으켜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죄의 의미로 드시고 계시던 술과 음식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대찬의 말에 손님들은 와, 헐, 대박, 저마다의 감탄사로 호응했다.

대찬은 겸연쩍게 웃으면서 껍데기집 주인에게도 말했다.

“손님들께 술하고 음식 푸짐하게 내어주세요. 값은 정확히 지불하겠습니다. 사장님께도 너무 죄송한데 해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요.”

대찬의 가식과 위선을 껍데기집 주인도 도박 레이스 하듯 받고 한 술 더 떴다.

“아유, 무슨 말씀을. 식사하러 오셔서 저 치 때문에 괜히 봉변이나 당하고. 다친 데는 없어요?”

“네, 없어요.”

“다음에 꼭 한번 들러요. 내가 꼭 식사 대접해주고 싶어서 그래.”

“말씀만으로도 감사한데요.”

껍데기집 주인은 엎어진 구본진의 뒷모습을 흘끗 보고는 대찬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진짜 고마워서 그러는 거야. 아주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네.”

“하하, 그럼 염치불고하고 다음번에 얻어먹으러 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대찬은 주인에게 한 번, 손님들에게 한 번 고개를 깊게 숙이고 껍데기집을 떠났다.

그때까지 구본진은 엎어진 자세 그대로였다.

이날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이 뭇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언론인은 본래 동업자의식이 대단해서 웬만한 흠결은 잘 보도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거센 파도에 올라탄 동영상은 언론의 도움 없이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니, 도리어 언론의 관심이 없었기에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껍데기집 판토마임남’, 줄여서 ‘껍판남’.

그게 구본진의 굴욕적인 별명이 되었다.

껍판남 구본진은 유명세를 탔다.

그가 극동일보 소속의 기자라는 사실, 게다가 희대의 사설인 ‘포도주 두 잔’의 저자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더 웃겨주었다.

그리고 대찬의 정체도 머지않아 밝혀졌다.

이 동영상의 최종적인 이름은 ‘커피남 vs 껍판남’이 되었다.

한순간에 격조 높은 언론인에서 일개 껍판남으로 전락한 그는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그는 퇴근하고 나서는 술이 잔뜩 취해서 자기가 일쑤였다.

그게 또 화근이 되었다.

포도주 두 잔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 필력이 어디 가지 않았다.

그의 취중 SNS가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대중은 애꾸눈이다.

한쪽 눈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내가 수십 년 쌓아온 언론인으로서의 업적과 명예를 봐야 할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 보지 않는다.

대신 1분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소동을 벌인 취객으로서의 업보와 불명예, 보지 않아도 될 그것은 선명한 한쪽 눈으로 지겹게 본다.

지겹게 보면서 지겹게 비웃는다.

덤벼라, 애꾸눈들아!

실컷 비웃어라!

나는 떳떳하고 당당하다.

불의한 도발을 참고 넘기지 못한 내 분노는 정의롭다.

한 번도 휘둘러보지 못해 어수룩했던 내 주먹은 비폭력의 상징이다.

애꾸의 나라에선 두 눈 가진 사람이 장애인이다.

비상식의 나라에선 상식을 가진 사람이 장애인이다.

날 비웃어라.

난 장애인이니까.

구본진의 SNS는 결정타가 되었다.

대중은 애꾸눈이다, 그건 대중을 비하하는 말임과 동시에 언론인의 역겨운 선민의식을 드러냈다며 욕을 먹었다.

정의로운 분노와 비폭력의 주먹, 그건 낯 뜨거운 자기합리화라며 더 큰 비웃음을 샀다.

날 비웃어라, 난 장애인이니까, 그건 장애인은 비웃어도 된다는 저열한 인권의식을 드러냈다며 들불 같은 분노를 샀다.

대찬은 그걸 보고 경악하면서도 걱정했다.

‘아씨, 설마 회사 관두거나 잘리는 건 아니겠지.’

그럼 곤란하다.

이 모자란 인간이 자신의 자베르 경감이 되어주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구본진의 낯짝이 상상 이상으로 두껍고, 극동일보의 제 식구 감싸기가 유난스러웠다.

구본진은 절치부심했다.

그의 40년 인생을 관통하도록 대찬만큼의 굴욕을 자신에게 선사한 이는 없었다.

자신을 극동일보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제압되었다.

설령 그 상대가 자기보다 한 수 위, 혹은 몇 수 위의 체면과 위상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랬다.

본래 높이 올라간 사람일수록 볼 꼴 못 볼 꼴 다 보이는 법.

그러니 오히려 더 극동일보를 어려워했다.

대한민국의 모두가 자기를 존중한다.

그런데 딱 하나, 별 시답잖은 녀석 하나만이 그러질 않는다.

게다가 원래 자기한테 살갑게 굴던 이들도 그놈을 비호하고 나서면서 자기에게 냉혹하게 군다.

유소진이 그랬고, 서청수 회장이 그랬다.

하다못해 껍데기집 주인까지 그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대찬을 두둔하고 자기를 힐난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구본진은 자기를 삼척동자도 다 아는 놀림거리로 전락시킨 대찬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넌 반드시 진흙탕에 처박아주마…….’

그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대찬은 어수룩한 헛똑똑이가 자신의 자베르 경감이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더 없이 사랑스러웠다.

발표회는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사람들은 구본진의 웃기는 꼬락서니가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을 원본 그대로 두지 않았다.

한민족은 한의 정서를 타고난 동시에 해학과 풍자의 정서 또한 타고난 민족이다.

원본 동영상을 소스로 삼아 온갖 패러디물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곤 빙그르르 돌아 바닥에 처박히는 부분을 다이빙 경기 장면과 합성하지를 않나.

애꾸눈 운운한 거에 착안하여 한 오래된 사극에 나온, 애꾸눈으로 유명한 역사인물인 궁예와 합성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누가 애꾸 소리를 내었는가, 등등의 패러디물로 재창작되었다.

빠른 RPM의 시끄러운 EDM 음악을 배경으로 괴이한 패러디물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판국이니 구본진이 주장했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게 되었다.

그가 십 수 년 기자로 일하면서 얻은 명성보다, 한번 잘못 휘두른 주먹으로 얻은 명성이 압도적으로 크게 되었다.

오죽하면 웃음은 만병통치약이니, 전 국민의 평균수명이 그 사람 덕분에 5초는 늘어났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는 대찬에게도 반사이익이 되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으로 망가지는 껍판남과는 달랐다.

대찬은 그의 주먹을 가볍게 회피한 덕분으로 재미는 없을지언정 비웃음을 사지는 않았다.

커피남은 껍판남의 철저한 안티테제가 되었다.

그러니 대중의 관심은 도대체 왜 껍판남은 커피남에게 주먹을 휘둘렀는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자연스레 옮겨 붙었다.

포도주 시음회 때의 일이 다시 한 번 회자되었다.

이어 발표회에서의 일화가 후문으로 전해졌다.

와중에 구본진에게 일갈한 서청수 회장도 역시 배포가 있다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 일로 발표회 역시 크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홍보효과를 얻었다.

이미 비도축육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론에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그래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그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게, 모를 만한 사람들은 여전히 모른다는 뜻이었다.

로튼 프룻츠가 열심히 홍보에 열을 올림에도 불구하고, 비도축육이나 배양육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는 건 관심 자체가 없다는 뜻이었다.

세포 배양이 어떻고, 전기자극이 어떻고, GMO랑 어떻게 다르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머리 아픈 설명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았다.

‘내가 이걸 취급 안 했으면 나도 별 달리 관심을 안 뒀을 거야.’

그렇듯 로튼 프룻츠가 열을 올려도 비도축육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짧은 동영상 하나로 비도축육의 이름이나 한번 들어봤다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선거는 정치 무관심층이나 중도파를 포섭해야 이긴다.

그렇듯, 대찬의 사업 역시 비도축육에 관심이 없거나 별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섭해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비도축육은 낯선 식량이다.

식량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낯설면 꺼려지기 마련이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비도축육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 그래서 얼마나 낯익어하냐는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의 명운이 달린 문제였다.

앞으로 비도축육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는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그걸 결정하는 건 정치인들이고,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건 민심의 해류이다.

축산업자들의 반발이 심할 것이고, 대찬 역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기꺼이 혈전을 감수할 것이다.

양측은 이익집단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결국 심판역할을 하는 건 국민들.

그런 이들의 귀에 비도축육이 낯설게 들린다면 대찬의 앞길은 험난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의 귀에 비도축육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면, 그만큼의 승산이 대찬 쪽으로 쏠릴 것이다.

법제화를 넘어 상용화 단계에서도 대중의 인식은 중요했다.

아무 거리낌 없이 도축육과 동격으로, 혹은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식품으로 인식해야만 사업은 성공할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구본진의 한바탕 판토마임 쇼는 대찬의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아주 중요한 기여를 해주었다.

거액을 들인 비도축육 발표회는 당장 눈에 보이는 실익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한 근에 얼마라며 고기를 판매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실익이 없는 건 당연했다.

대찬은 자체적으로 여론조사 업체에 의뢰했다.

그리하여 발표회 이전에 도출된 자료와 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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