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373화
“고달프시다니요?”
“구 기자가 속 쓰리면 곧잘 가는 껍데기집이 있어요. 거기서 아주 술이 떡이 돼갖고 뻗어버리기 일쑤거든요.”
최재한이 성대우의 말에 첨언했다.
“조 대표도 구 기자 성질머리 봐서 짐작하겠지만, 인간이 술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더 가관이란 말이야.”
“하기야 술 안 먹고도 저 정돈데 취해서 고삐 풀리면 안 봐도 비디오지.”
대찬은 충분히 알 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대우가 팔짱을 끼며 웃었다.
“그 인심 좋은 아줌마가 유일하게 꺼리는 손님이 아마 그 양반일 겁니다.”
“아니, 근데 왜 속 쓰릴 때만 갑니까? 기분 좋을 때도 가서 팔아주지.”
성대우는 팔짱을 풀고 대찬의 귓전에 속닥거렸다.
“좋은 일 있으면 누가 됐든 그 양반 입에 로얄샬루트를 들이부어 줄 텐데 껍데기가 눈에나 들어오겠어요?”
“아, 하긴 그렇네요.”
어째 구본진의 스타일이란 한결같은 듯하여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성대우는 대찬의 팔을 얌전히 잡아끌었다.
“자, 밥맛 떨어지는 인간 얘기는 그만하시고요. 술이나 드시러 가시죠.”
그렇게 걸음을 옮기려다가, 대찬은 성대우의 등을 살짝 건드렸다.
“기자님, 아무래도 기자님들 모인 자리에 끼는 건 별로 적절치 않을 것 같습니다.”
“왜요? 까마귀 디디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그런 건가요?”
“저도 백로라고 하기에는 때가 많이 탔는데요.”
“저희가 까마귀인 건 부정 안 하시는군요.”
대찬은 하하 웃었다.
“백로인 기자들이 있을까요. 정의감에 불타는 수습이면 모를까. 우리 모두 치기 어린 시절은 지났잖습니까.”
“하기야 그렇긴 하죠. 그래도 그냥 같이 가시죠. 조 대표님하고 한잔 하고 싶어 하는 기자들 많습니다.”
“그래서 더 불편해요. 취해서 실언이라도 하면 이거 보통 큰일입니까.”
성대우는 흐흐 웃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아, 그런데 구본진 기자님 계신다는 껍데기집 상호가……?”
“서울껍닥인데요, 왜요?”
“다음에 가보려고요. 허구한 날 가서 드신다니 얼마나 맛있을까 싶어서. 자, 그럼 맛있게들 드십시오. 저희도 정성껏 자리 마련했으니까.”
“기대하겠습니다.”
성대우는 미련 없이 대찬을 놓아주고 최재한과 함께 기자 무리의 꽁무니에 열심히 따라붙었다.
그는 잠깐 걷다가 흘끗 뒤를 돌아 대찬을 바라봤다.
최재한이 성대우에게 물었다.
“왜?”
“너, 조 대표가 어디 가는 거 같아?”
“집에 가겠지.”
성대우는 쯧 혀를 찼다.
“절친이라는 게 그렇게 사람을 몰라.”
“뭔 소리야.”
성대우는 대찬을 한 번 더 흘끗 보면서 웃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우리랑 같이 갈 태세였잖아. 그런데 갑자기 슬그머니 빠지거든. 내가 구 선배 껍데기집에 있다고 하자마자.”
“그럼 구 선배 보러 껍데기집 간다는 거야?”
성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엥? 왜? 뭐 예쁘다고 굳이 거기까지 보러 가?”
성대우는 피식 웃었다.
“내가 봤을 때 조 대표는 좀 변태야.”
“…응?”
“일부러 구 선배 긁으러 가는 걸 거야.”
“긁어? 왜?”
성대우는 앞선 동료들이 정해진 장소로 우르르 들어가는 걸 보고 걸음을 멈췄다.
삐딱하게 서서 칙칙, 담뱃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 한 모금을 훅 빨아들인 후, 날숨과 함께 말했다.
“구 선배는 조 대표하고 게임이 안 돼.”
“그런데?”
“조 대표도 그걸 알 거야. 구 선배 솜씨란 게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걸. 대충 견적 나왔겠지. 아, 얘는 완전히 내 밥이구나.”
최재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대우는 담배의 두 번째 모금을 빨아들였다.
“조 대표도 슬슬 체급이 커지면서 마크맨이 붙을 텐데.”
“일거수일투족 따라붙진 않아도 일 생기면 도맡는 사람이 있겠지.”
성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 대표는 구 선배가 자기 마크맨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봐.”
“만만하니까?”
“만만하니까.”
“하기사 그렇다. 이미 극동일보하고의 관계는 요단강 건넜으니까 좋아질 리 만무하고 극동에서는 작정하고 조 대표 쪼아댈 텐데.”
“기왕지사 자기 마크맨으로 만만한 사람이 붙는 게 좋지. 생각해봐. 장발장한테 자베르 경감 대신에, 김두한한테 미와 경부 대신에 다루기 쉽고 모자란 녀석이 붙으면 쫓기는 입장에서야 얼마나 좋겠냐고.”
최재한은 옅은 웃음기를 머금었다.
“좋긴 하겠지. 그럼 뭐해. 마크맨을 자기가 선택하는 경우가 어디 있다고.”
“그러려고 굳이 껍데기집으로 행차하신 거 아냐, 그 양반.”
“무슨 뜻이야?”
“구 선배 정도면 이제 부장급도 쉽게 터치 못할 짬밥이야, 그렇지? 가뜩이나 성질도 더러운 양반이 이제 짬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최재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자기는 아주 고상하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체 하지만, 가장 저급하고 비합리적이고 감성적인 인간이야.”
“그래도 명색이 업계 선배인데 너무 까대는 거 아니야?”
“선배니까 이쯤 하는 거야. 아니었으면 진작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구본진의 성질머리는 타사 기자들에게도 소문이 자자했다.
최재한은 팔짱을 낀 채 질문했다.
“구 선배가 고참에 저질인 거랑 대찬이가 마크맨을 자기가 선택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
“물가에 데려가 줬으면 됐지, 아예 물 먹여 달라네. 그래 갖고 기자노릇 어떻게 할래?”
“그렇게 구시렁거릴 시간에 알려주고 말겠네.”
“자베르가, 미와가 숙적을 쫓을 때 단순한 월급쟁이 마인드로 그랬을 거 같아? 가슴 속에서 사무치는 적개심이나 라이벌 의식이 있어야 하는 짓이거든, 그것도.”
“그렇지.”
“지금까지 구 선배한테 조 대표가 유효타를 많이 적립하긴 했지만 구 기자를 미와로 만들기에는 2퍼센트 부족하지. 그걸 채우러 가는 거야, 저 양반.”
최재한은 성대우의 가설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그럴 듯한데. 너는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아냐.”
“나도 아는 걸 너는 어떻게 모르냐?”
성대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지청구를 늘어놓고는 최재한의 팔을 이끌었다.
“술이나 먹자고.”
성대우의 가설은 옳았다.
대찬은 구태여 꾸역꾸역 껍데기집을 찾아갔다.
잔뜩 찌그러져 홀로 소주에 껍데기를 먹는 구본진을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도 고약한 악취미에 속했다.
그런데 대찬은 또 구태여 꾸역꾸역 껍데기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모자라 꾸역꾸역 구본진의 옆자리를 찾아갔다.
“여기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찬은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를 옆 테이블에서 끌어와 구본진의 옆에 착석했다.
지금 이 순간, 구본진이 가장 보기 싫은 얼굴이 대찬이었다.
그런 대찬이 예기치 않게 얼굴을 쑥 들이밀며 말을 걸어온다.
안 그래도 잡친 마음이 옆채기에 들배지기까지 당한다.
구본진은 대찬 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탕, 들고 있던 소주잔을 내려놨다.
“뭡니까.”
“저도 일 마치고 혼자 소주 한 잔 하려고 들어왔는데 마침 계셔서요. 모른 척 할 수도 없으니까요.”
“사람 놀리는 것도 정도껏 하시죠.”
“저도 구 기자님 하나도 안 달가워요. 께름칙한 기분 안고 기껏 인사했더니 놀리는 것도 정도껏 하라니,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내가 께름칙하면 그냥 아는 척 말고 멀찍이 떨어져서 먹던 술이나 먹어요. 나도 그쪽이랑 말 섞을수록 술맛 떨어지니까.”
대찬은 웃으면서 구본진의 소주가 반쯤 든 잔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래도 이렇게 인연이 닿았는데 같이 한잔 하시죠.”
자꾸 대찬이 달라붙는 건 호의가 아니라 악의에서 기인했다는 걸 구본진은 알았다.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대찬에게 형형한 눈빛을 뿌렸다.
후배 여럿을 제압해온 그 눈빛이 대찬에게는 조금의 효험도 없었다.
대찬은 단단한 태도 그대로 그 눈빛을 받으며 웃었다.
구본진은 이를 악물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거 아닙니다. 더러워서 피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노를 꾹꾹 억누른 목소리로 껍데기집 주인에게 말했다.
“아줌마, 여기 계산!”
대찬은 앉은 채로 구본진을 올려다봤다.
“거 참 너무하시네. 소주 한잔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 술도 이렇게 많이 남겨놓고 왜 벌써 일어나요. 음식 남기면 벌 받아요.”
구본진은 대찬을 무시하고 주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유, 1인분 안 되는 거 단골이라고 내줬더니 카드야? 현금으로 하지. 지갑도 두껍구만.”
가뜩이나 성질이 뻗치는데 주인까지 거들고 나서니 구본진의 눈에 힘이 팍 들어갔다.
“아줌마, 내가 공짜로 먹었어? 술도 두 병이나 팔아줬음 됐지 현금타령이야.”
“삼촌 술 먹고 패악 부리는 거 한두 번 받아줬어? 이런 거 갖고 바락바락 성질이야.”
“아, 진짜 오늘 일진 한번 더럽네. 카드결제 거부한다고 기사 한번 내줄까?”
주인은 얼른 구본진의 손에서 카드를 낚아챘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하면서 꿍얼거렸다.
“말 한 마디 한 거 같고 성질은. 거부는 누가 언제 거부했다고 그래. 두 마디 하면 쇠고랑 채우겠네.”
“못 채울 것도 없지!”
“으이구! 그나마도 법인카드구만!”
사장은 남편 바가지 긁듯 진절머리를 내면서 카드를 긁었다.
대찬은 시트콤을 보듯 그들의 신경질 공방전을 지켜보며 구본진이 남기고 간 술을 쭉 들이켰다.
그는 구본진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무슨 법카로 껍데기를 사먹어요? 구질구질하게. 좀 더 비싼 거 잡수시지.”
“…….”
구본진은 대찬을 목소리까지 투명한 투명인간으로 취급했다.
일언반구 반응하지 않았다.
대찬은 한 마디 더 보탰다.
“그러지 말고 다른 곳 가서 저랑 한잔 할래요? 제가 살게요. 김영란법 때문에 1인 3만 원 이상은 못 사지만.”
“댁처럼 호가호위하는 인간하고는 상종도 하기 싫어.”
구본진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껍데기집 주인의 손에서 도로 카드를 낚아챘다.
대찬과는 더 말을 섞지 않겠다는 듯, 저벅저벅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대찬은 다리를 꼬며 그런 그를 향해 피식 웃었다.
“호가호위 끝판왕한테 호가호위한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아주 기분이 쳐 더럽네요.”
“…뭐?”
가시가 바짝 곤두선 말에 구본진이 반응했다.
그는 휙 몸을 돌리며 대찬을 쏘아봤다.
당장에라도 대찬의 하악골에 주먹을 박아 넣을 태세였다.
대찬은 구본진을 보며 이죽거렸다.
“사람들이 그쪽 앞에서 설설 기는 게 그쪽이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알아요? 극동일보가 무서워서 그러는 거지. 호가호위야말로 그쪽의 아이덴티틴데 왜 나한테 그러냐구.”
반말과 존댓말을 섞는 소위 반존대는 연하의 연인이 연상의 연인에게 하면 더 없이 달콤하다.
하지만 그 한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의 경우에는 달콤하기는커녕 속이 쓰릴 정도로 맵다.
상대의 속을 긁는 것도 모자라 아예 헐어버리게 만드는 대단한 마력을 지니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누굴 만나면 나이부터 따지고 보는 구본진이다.
그런 그에게는 더욱 효험이 대단했다.
대찬의 도발에 최대한으로 발휘되던 인내심이 동나고 말았다.
구본진은 주먹을 콱 움켜쥐며 대찬에게 악을 썼다.
“이 새끼가 여기까지 찾아와서 사람 속을 뒤집고 있어! 너 진짜 오늘 죽어볼래!”
대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대찬은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그대로 거리가 좁혀지도록 두었다.
“구 기자님, 너무 인내심이 얕은 거 아니에요? 제 성질 박박 긁던 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데. 호가호위 받고 내로남불까지 덤으로 탑재하셨네.”
“너,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한테 이 따위 행패를 부리냐?”
“억하심정 없었어요. 근데 구 기자님이 저한테 하시는 말과 행동이 없던 억하심정도 생기게 하니까.”
“내가 분명히 경고하는데 이 이상으로 선 넘으면 그땐 국물도 없다.”
“국물이나 줘놓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선이야 구 기자님이 옛날에 넘었지.”
“이 새끼가……!”
“손님들 많은 데서 자꾸 언성 높이실 거예요? 저처럼 얌전히 말해도 다 들려요.”
“너 진짜!”
데시벨이 확 올라갔다.
구본진의 얼굴은 마치 음량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도 되는 듯했다.
높아진 음량만큼 얼굴이 새빨갛게 확 달아올랐다.
보다 못한 껍데기집 주인까지 참전했다.
그녀는 족히 돼지 한 개 사단만큼의 껍데기를 손질했을 우악스런 손바닥으로 구본진의 등을 내리쳤다.
“이눔아!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배구선수의 스파이크만큼이나 차진 스냅이 짝!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