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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71화 (371/556)

난 할 수 있어 371화

한 사람 당 할당된 난자완스는 겨우 한 조각이었다.

달랑 고기 한 조각만 주면 안 주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비도축육과 관계없는 짜장과 짬뽕도 만들어졌다.

대찬은 그걸 보고 민망하게 웃었다.

‘얼른 대량생산에 성공해야지.’

사람들 앞에 난자완스 ‘단 하나’와 식사로 선택한 짜장면 혹은 짬뽕이 주어졌다.

음식이 서빙되는 그 시간에 대찬이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노근기 셰프님이 아픈 구석을 정확히 찔러주셨습니다.”

대찬은 그렇게 말하면서 노근기를 찌릿 째려봤다.

노근기는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애먼 곳을 바라봤다.

대찬은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은 비록 넉넉한 음식을 제공해드리지 못하지만,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도축육보다 우위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넉넉한 식사를 제공하겠습니다.”

대찬이 떠들거나 말거나 청중은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은 노근기가 만든 음식이 얼마나 기똥찬가 맛이나 보자며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짜장, 짬뽕을 대번에 동 내던 사람들은, 난자완스에 이르러서는 태세를 전환했다.

옛날 못 살던 집 아이가 눈깔사탕 녹여 먹듯 입 안에서 살살 굴려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참새가 낟알 쪼아 먹듯 젓가락으로 고기 파편을 찔끔찔끔 떼어먹는 사람이 있었다.

간혹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 입에 집어넣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이내 후회했다.

옆에서 야금야금 맛있게 난자완스를 쪼아 먹는 걸 보고 아쉬운 입맛만 다셨다.

대찬 역시 은오영 교수, 다르샨 싱 전무와 나란히 앉아서 노근기의 음식을 맛봤다.

과연 노근기의 솜씨는 명불허전.

전혀 녹슬지 않았다.

대찬은 난자완스를 반으로 쪼개 두 입에 해치웠다.

평소 그다지 음식을 음미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했다.

오물오물 씹으면서 치아에 씹히는 느낌과 맛을 최대한 느끼려고 노력했다.

‘확실히 날것으로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

다짐육 형태로 취하는 비도축육은 거의 일반 고기와 차이가 없었다.

다만 아쉬운 건 지방질이 전혀 없이 순수한 근육세포, 즉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보니 기름의 고소한 맛이 부족했고, 씹히는 느낌도 찰기나 부드러움이 부족했다.

메마른 통조림 참치를 뭉쳐놓은 것 같이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노근기는 노련하게 그런 느낌을 상쇄하고자 일부러 소스가 풍부하게 들어가는 난자완스를 선택했다.

노근기는 그렇게 숙달된 프로의 절륜한 기량을 한껏 발휘했지만 아무래도 본질적인 차이는 숨기지 못했다.

그 차이를 대찬은 한참 곱씹었다.

식사가 정리되고, 간단한 대담이 이어졌다.

은오영 교수와 다르샨 싱 전무의 대담은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이번에는 그 둘과 대찬이 나란히 앉아 청중과 소통하는 자리였다.

묵직한 얘기보다는 가벼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청중과 질의응답도 나누는 자리.

셋이 얘기를 주고받고 있으면, 질문이 있는 사람이 손을 번쩍 들어 발언권을 얻고 질문을 하는 형식이었다.

셋이 지금까지 인연을 맺게 된 사연.

함께하기로 결정하게 된 계기 따위를 설명하던 중,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었다.

대찬은 그쪽에 발언권을 주었다.

“아, 말씀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고원대학교에 재학 중인 고수혁이라고 합니다.”

대찬은 미소를 띠며 고수혁을 바라봤다.

“네, 수혁 군.”

“저 역시 그 분야에 관심이 많고 진로도 그쪽으로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제가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따면 들어갈 자리가 생길까요?”

대찬은 고수혁의 말이 고마웠다.

새삼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미 둘 사이에 충분히 교감이 이뤄진 일이었다.

그런데 굳이 손을 들고 말을 해준다는 건 대찬을 위하는 마음에서였다.

혹여 질문하는 사람이 없을까봐.

그래서 애초에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까봐 걱정한 까닭일 게다.

대찬은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물론입니다. 적절한 자격과 실력만 갖추면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오히려 모셔갈 겁니다. 저희 로튼 프룻츠는 앞으로도 이공계 인재를 위한 일자리 창출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미 이공계 인재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시작되고 있긴 하네요.”

“음?”

대찬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수혁은 흐흐 웃으며 말했다.

“조 대표님 옆에 계신 은오영 교수님이요.”

대찬은 은오영 교수를 흘끗 바라봤다.

고수혁은 은오영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고3 때 열심히 학생들 모셔가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셨거든요.”

뜻밖의 유탄을 맞은 은오영 교수의 얼굴이 살짝 찌그러졌다.

고수혁은 씩 웃었다.

“그래도 지금은 좋은 일자리를 찾으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좌중은 고수혁의 맹랑한 말에 피식피식 웃었다.

대찬도 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제 공치사를 좀 하자면 제가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것 아니겠습니까? 수혁 군도 훌륭한 능력만 갖추면 제가 일찍이 알아보고 스카우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수혁이 물꼬를 터준 덕분에 일반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의 종류는 다양했다.

정말 몇 년 안에 비도축육을 일반 고기보다 훨씬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거냐, 맛도 보장할 수 있느냐, 식품학.

법리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법학.

비도축육이 보편화되면 축산업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텐데 여기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가, 경제학.

나중에 투자를 받을 용의가 있느냐, 투자자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자신이 있느냐, 나도 투자해도 되느냐, 경제학2 혹은 경영학.

비도축육은 그다지 잘 만들어진 말은 아니다.

‘도축육’이란 단어도 없거니와 부정의 의미를 담은 접사 ‘비’를 붙인 형태는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차라리 청정육이나 인조육이란 단어가 적절하지 않느냐, 국어학.

안전과 위생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찜찜한 건 떨칠 수 없다.

정말 신체에 아무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 거냐, 의학.

가축을 잡아 고기를 취하는 건 신의 섭리인데 어째서 섭리를 거스르려 하느냐, 신학.

윤이영한테 고백할 때 뭐라고 했느냐, 연애학.

다양하게 쏟아지는 질문에 세 사람은 성심껏 답변했다.

신학에 대한 질문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명쾌한 답을 얻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애학의 질문은 대찬 대신 윤이영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일어나 답변해주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요.”

윤이영은 대찬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밥 먹다가 지나가는 말로 날 좋아하는 거 같대요. 좋아한다도 아니고 좋아하는 거 같대요. 여러분은 절대 저런 재미없는 남자한테 반하지 마세요. 내가 미쳤지.”

“아니, 잠깐. 그게 아니고…….”

윤이영의 선공에 대찬이 얼른 받아치면서 둘 사이에 잠깐의 공방전이 오갔다.

그게 또 청중을 즐겁게 하는 하나의 오락거리가 되었다.

이런 순수한 궁금증을 해소하기만 하면 좋았겠지만, 판을 크게 벌려놓은 만큼 마냥 그럴 수만은 없다는 걸 대찬 역시 알고 있었다.

청중들이 어느 정도 질문을 하고 나자 이제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기사를 쓰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기사를 쓰려면 시시콜콜한 기삿거리로는 어림없다.

부장에게 조인트만 까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날카로웠다.

대찬은 그런 그들의 날 선 질문에도 잘 대응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다.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기자들은 양반이었다.

아예 대찬을 흠집 낼 각오를 하고, 말하자면 악의를 품고 온 기자들이 있었다.

물론 그 대열에 극동일보가 빠지면 섭섭했다.

개중에서도 구본진.

조지아 와인 때 대찬을 저격하는 칼럼까지 실은, 악연으로 점철된 인간이었다.

구본진은 마이크를 쥐고 대찬을 향해 말했다.

“극동일보 구본진 기잡니다. 조 대표님, 오랜만이네요.”

“아, 예.”

대찬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문화부에 있던 인간이 굳이 여기 등장했다.

경제부나 산업부면 모를까, 문화부 소속이 여기에 있다는 건 본인이 자청했다는 뜻이었다.

작정하고 흠집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구본진이 시시껄렁한 인간이라고 이미 결론을 내린 대찬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잘 끌어온 판이 저 인간 하나 때문에 엎어질 수도 있었다.

조금의 말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구본진은 대찬을 노려보며 말했다.

“본인을 굉장히 혁신적인 젊은 기업인으로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퍽 도발적인 말로 구본진은 포문을 열었다.

어차피 피차 예의를 갖출 관계도 아니었다.

구본진은 처음부터 대찬의 성질을 긁어 기삿거리를 뽑으려고 했다.

얼음성처럼 꼬장꼬장한 상황에서는 뭐가 나올 수 없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정신상태가 불안정해져야 쓸 만한 기사가 나온다.

취재 대상을 도발해 기사거리를 마련하는 것.

그것을 역시 기자의 덕목이라고 한다면, 구본진은 그런 쪽에선 일가견이 있는 유능한 기자였다.

“제가 젊은 기업인은 맞는데. 혁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로튼 프룻츠는 혁신적인 기업입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사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 의구심이 뭔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의구심을 없애기 위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모든 정보를 오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구심이 든다면, 어쩔 수 없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인의 자유라고 눙치고 넘어가시는 건 너무 나이브하지 않나요?”

대찬은 피식 웃었다.

“그럼 제가 모든 사람의 생각마저 컨트롤해야 합니까?”

“그런 식으로 호도하지 마십시오.”

대찬은 구본진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저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기자님 마인드부터 컨트롤했을 겁니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못하게 말이죠.”

청중은 대찬에게 절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대찬이 구본진에게 역습을 가하자 그들은 웃음으로 지원사격을 했다.

오히려 도발 당한 쪽은 구본진이었다.

“이건 그렇게 비아냥거리실 만큼 가벼운 주제가 아닙니다.”

“비아냥거리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주제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다만 저한테 건네시는 질문의 수준은 너무나 가볍습니다.”

“뭐, 뭐라고요?”

“의구심이 있다면 어떤 의구심인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셔야 합니다. 기자님 말마따나 의구심 세 글자로 눙치고 넘어가지 마시고요.”

“그러니까 그건!”

“그리고요. 제가 스스로 젊고 혁신적인 기업인이라고 생각한다, 기자님 멋대로 전제를 깔고 들어가시던데요.”

“…….”

“기자님은 저를 잘 아십니까? 저는 기자님을 잘 모릅니다.”

“…….”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생각을 멋대로 재단하셨죠. 그런 기자님께 제가 어떻게 친절할 수 있겠습니까.”

“친절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해주시죠.”

“질문다운 질문을 하십시오.”

구본진은 이를 악물었다.

청중은 둘의 잔뜩 신경질적인 대화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역시 불구경 다음으로 싸움구경이 제일 재밌다.

구본진은 격앙된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무슨 의구심이냐고 물으셨죠. 말씀 드리죠.”

대찬은 틈새가 있으면 바로 찌르고 들어갈 태세로 팔짱을 낀 채 구본진의 말을 들었다.

구본진은 적개심 어린 눈으로 대찬을 응시했다.

“로튼 프룻츠는 본래 커피와 와인을 취급하던 회사였습니다.”

“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사업을 병행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웬만한 자본으로는 어림도 없는, 축적된 기술력이 없으면 안 되는 분야에 말이죠.”

“그런데요?”

대찬의 말투는 굉장히 비협조적이었다.

그게 또 구본진의 속을 살살 긁었다.

구본진의 목소리는 한 층 더 격앙되었다.

“그런데라니. 대학 졸업하고 쭉 회사만 다니던 사람이, 회사 하나를 뚝딱 차려내고, 위험부담이 큰 사업에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든다?”

“한번 제가 짚어드렸을 텐데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재단하지 마시라구요. 제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었는지 기자님이 도대체 어떻게 아십니까?”

구본진은 대찬의 항변을 가뿐히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지금의 조대찬 대표는 촉망받는, 젊은 혁신기업인입니다.”

“구 기자님이 보시기에 그렇다니 감사인사라도 드려야겠군요.”

“그러나 이 분야에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사람들은 알죠.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는 거.”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겉으로는 본인의 역량으로 촉망받는 기업을 일궈냈지만, 실상은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은 소위 금수저가 아니냔 겁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께 건강한 몸을 받고 스무 살까지 의식주를 해결 받았습니다. 물론 큰 은혜이지만 금수저라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회사를 세우고 일구는 데는 조금의 금전적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금수저란 꼭 부모로부터의 지원을 의미하지는 않지요.”

구본진이 얘기하고 싶은 건, 지금까지의 성과는 대찬의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주변의 귀인들, 그러니까 깊은 우정을 나눈 서원웅이나 그의 부친 서청수 회장, 혹은 요행히 줄이 닿은 쵸 후쿠히로를 벗바리 삼아 성공으로 가는 길목을 닦은 것 아니냐.

그랬으면서 이 자리에서는 제 힘으로 해낸 양 유세를 떨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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