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370화
대찬은 그들의 아기자기한 말싸움에 조금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겉으로는 당당함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간이 콩알만 하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기분은 좋지만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대찬은 무대 위에 서서 참석한 사람들을 바라봤다.
한때 유행했었던 TV프로그램인 게릴라 콘서트에서 주인공이 안대를 벗어 관객이 얼마나 확인하는 장면이 항상 하이라이트였다.
물론 대찬은 누가 얼마나 왔는지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기에 그 정도로 긴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충분히 짐작은 할 정도로 대찬의 마음 역시 떨리고 설렜다.
대찬은 어흠, 소리 죽여 헛기침을 하고 입술을 뗐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로튼 프룻츠 대표 조대찬입니다.”
짧은 인사말에도 호응이 좋았다.
대찬은 미소를 머금었다.
‘누가 보면 박수부대 동원한 줄 알겠네.’
열렬하게 손뼉을 부딪치는 한마음양파영농조합의 노인과 학생들을 보고, 박수부대를 동원하지 않았다고 전면 부정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이 자리는 지금껏 임원 몇 명을 앞에 놓고 했던 PT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음, 어, 그러니까… 등등 말을 더듬어서도 안 된다.
한 번씩 그럴 때마다 말의 신뢰도는 손상된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눈을 마주치는 여유가 필요했다.
제스처 역시 크고 자신 있게.
그러면서도 말의 맥락을 놓쳐서도 안 되고, 대찬이 등지고 선 화면과 일치된 설명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 자리는 비도축육의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인 동시에, 경영인 조대찬의 대중친화능력을 시험하는 자리이기도 한 것이었다.
“얼마 전에 미국 실리콘밸리를 다녀왔습니다. 이 업계의 선두를 지키고 있다던 회사와 만났습니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기쁘고 설렜습니다. 아, 우리도 이제 이 분야의 일원으로 인정받았구나. 그래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려고 우리를 불렀구나.”
대찬은 입맛을 쩝, 다시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사람은 그 회사의 투자담당자였습니다. 그분은 절 보자마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화면에는 잭 머피의 사진이 코 아랫부분부터 전시되었다.
두툼한 턱살이 보기 좋게 강조되었다.
“당신의 회사를 인수해주겠다. 제가 영어가 짧아서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물어봤지만 잘못 들은 게 아니었습니다. 너희 회사는 도태될 게 뻔하니까 구제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좌중은 안타까움의 탄성과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분노보다는 허탈한 감정이 앞섰습니다. 듣는 순간 힘이 쭉 빠지더군요. 우리가 아직 갈 길이 먼 건지, 아니면 그 회사가 오만에 눈이 멀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대찬은 무대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네 비도축육은 100그램 생산하는 데 얼마가 드느냐. 대답 안 해주더군요. 영업비밀이니 이해했습니다.”
대찬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는 거리낌 없이 공개했습니다. 우리는 100그램에 천 달러다. 그러니까 그분, 눈동자가 흔들리시더군요.”
잔잔한 웃음.
“그걸로 대답이 되었습니다. 우리 수준이 저들한테 무시당할 정도가 아니라는 자신감도 얻었죠.”
역시 잔잔한 웃음.
“저희 갈 길도 물론 멀긴 하지만 우리한테 인수해주겠다고 운운한 것은 그들의 오만 때문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대찬은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늘 기자 분들도 많이 오셨는데, 이 자리에서 분명히 밝혀두겠습니다.”
대찬이 한 박자 침묵하자, 좌중은 집중했다.
“잭, 1년 뒤, 2년 뒤, 당신들 회사와 우리 회사 중에 어느 쪽이 더 인정받을지 내기합시다. 그때가 되면 반대로 제가 당신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하겠습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당돌한 말에 서청수 회장은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 박수는 금세 전염되어 대연회장을 울렸다.
대찬은 얼굴에 와 닿는 박수소리에 온몸이 간지러웠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꼭 성공해야겠습니다. 아니면 공개 프러포즈 했다가 매몰차게 차인 거만큼이나 부끄러워질 테니까요.”
농담 같은 말에 좌중은 과할 정도로 웃어주었다.
대찬은 자신을 노리는 카메라들에 들어온 녹화 중을 의미하는 붉은 빛을 응시했다.
좌중은 농담으로 받아들였지만 대찬에게는 아니었다.
‘진짜 성공해야 돼.’
대찬은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잭과 그린블러드 미트를 언급한 이후, 대찬은 본격적으로 비도축육에 대한 개괄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인공적으로 원하는 닭고기 부위를 생산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일찍이 그렇게 호언했던 윈스턴 처칠을 인용했다.
GMO, 즉 유전자 변형식품이 안고 있는 유해성 문제를 짚고 넘어갔다.
비도축육은 도리어 기존의 육류보다 안전했으면 안전했지, 유해할 리가 없다.
GMO와 비도축육은 그 기본 원리부터 다르다는 걸 짚고 넘어갔다.
대찬이 말하는 건 전문지식보다는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간략한 개괄이었다.
기실 대중의 눈높이가 대찬의 눈높이라 아무리 지식자랑을 늘어놔봤자 오십보백보에 불과했다.
“오늘 드린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저는 자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찬은 마지막까지 힘 있는 목소리를 유지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박수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은오영 교수와 다르샨 싱 전무의 대담형식의 발표였다.
무대 뒤로 돌아온 대찬은 영상을 담당하는 직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어려운 말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청중들이 지루해하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영상 속도를 좀 빨리 재생해주시고요.”
“네, 대표님.”
대찬은 무대 뒤편에 마련된 작은 모니터로 실황을 지켜봤다.
지루한 대담을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동시통역사를 섭외해 다르샨 싱 전무의 옆에 앉혀 놨다.
들리는 후문에 의하면 언변에는 둘 다 자신이 없는 까닭에, 거의 사흘 밤낮을 연구는 제쳐두고 둘 사이의 대담 연습에 집중했다고 했다.
연습의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대담은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은오영 교수는 여유를 얻었는지 중간 중간 농담까지 건넸다.
농담 자체가 재미도 별로 없고 정해진 궤도를 벗어난 말에 다르샨 싱 전무가 잠깐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도 친절한 청중들은 인내심 있게 끝까지 대담을 들었다.
대담은 확실히 유의미했다.
신생기업들이 갑자기 주목을 받고 급성장을 이루는 경우에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사기꾼들이라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세간의 이런 의심의 눈초리는 대개 들어맞기 마련이었다.
겉만 휘황찬란하지 속을 까뒤집어보니 아무것도 없더라는 뉴스.
순진한 투자자들이 돈만 날렸다는 뉴스는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았다.
특히 배양육, 비도축육은 그런 소리를 듣기에 딱 적당한 아이템이었다.
불과 십몇 년 전에 벌어진 사건도 발목을 잡기에 족했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창조주에 버금가는 전지전능한 권능을 보일 것만 같았던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몇 년간 대단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한국을 빛낸 백 명의 위인에 말석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만 같던 그는, 그 조악한 실체가 드러나 허망하게 망해버렸다.
배양육은 그 근본이 그와 비슷했다.
이미 세게 데어본 경험이 있는 한국 사람들은 로튼 프룻츠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쵸 후쿠히로와 필래그룹의 회장이 투자를 했어도.
미국 상원의원이 축하를 해줘도 한계가 있다.
그건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일 뿐이었다.
결국 대중을 납득시킬 수 있는 건 과학적 논증뿐이었다.
좀 지루하긴 해도.
다르샨 싱 전무는 길고 긴 학술적인 진술을 가벼운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습니다. 힌두교는 쇠고기의 섭취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죠.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축되지 않은 쇠고기, 돼지고기를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네.”
한마음학교의 학생들이 순박한 목소리로 솔직하게 대답하자, 잔잔한 웃음이 퍼졌다.
다르샨 싱 전무도 씩 웃으며 그쪽에 눈을 맞추고 말했다.
“힌두교와 이슬람의 교리를 연구하는 신학자들에게 최대의 난제가 느닷없이 날아들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한국에서 말이죠.”
은오영 교수도 그의 말을 받았다.
“그 소임을 저희가 해내겠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청중은 박수로 호응했다.
대담 세션이 끝나자, 사회자는 바로 다음 순서로 옮아갔다.
“두 전문가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가까운 미래에 깨끗하고 윤리적인 식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군요.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사회자가 은오영 교수와 다르샨 싱 전무를 향해 고개를 꾸벅했다.
한국 생활이 제법 무르익은 다르샨 싱 전무도 한국식 묵례로 답했다.
사회자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은 여기 계신 분들이 가장 반길 만한 순서일 것 같은데요. 노근기 셰프가 직접 요리한 음식을 맛볼 기회를 드립니다. 그냥 음식이 아니죠. 로튼 프룻츠에서 생산한 비도축육으로 조리한 음식입니다.”
역시 먹을 것 앞에 장사 없다.
대찬의 말에도 시큰둥, 두 전문가가 주고받는 대담에는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던 소수의 사람들도 노근기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오늘 여러분은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실 겁니다.”
사람들은 전례 없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사회자의 말을 경청했다.
“노근기 셰프가 직접 만든 요리를 드셔본 분은 많이 없겠죠.”
“네.”
“비도축육으로 만든 음식을 드셔본 분은 거의 없겠죠.”
“네.”
“그럼 노근기 셰프가 비도축육으로 만든 음식을 드셔본 분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오늘 여러분이 그 최초의 경험자가 되실 겁니다.”
“와아!!”
“자, 여러분 노근기 셰프를 박수로 맞아주십시오!”
노근기는 자신의 주방 직원들과 함께 유유히 등장했다.
흰색 조리복이 잘 어울렸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중식도와 웍이 놓였다.
익숙한 모습에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어째 대찬이 등장했을 때보다도 반응이 더 좋은 듯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노근기는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윤이영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늘 로튼 프룻츠의 비도축육으로 만들 음식은 무엇인가요?”
사회자는 노근기에게 바짝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댔다.
이제 매스컴에의 노출이 일상이 된 노근기는 자연스레 대답했다.
“오늘은 난자완스를 만들어볼 겁니다.”
“난자완스요! 중국음식점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사실 먹어본 적은 없는데요.”
“고기를 다져서 완자처럼 만들어서 소스에 볶아낸 요립니다.”
“오늘 굳이 그 요리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노근기는 그 질문에 잠깐 뜸을 들였다.
그는 대찬이 있는 무대 뒤편을 흘끗 돌아보더니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다 로튼 프룻츠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럽니다.”
‘아니, 저 양반이 미쳤나.’
무대 뒤에서 노근기의 말을 들은 대찬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사회자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기,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뇨?”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아예 덩어리 고기로 생산을 했다면 훨씬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을 겁니다. 근데 아직은 다짐육 수준밖에 되지 않아서.”
“아, 하하, 셰프님 역시 솔직하시네요.”
“게다가 아직 대량생산할 단계도 아니라, 적은 양으로 이 많은 분들을 대접하려면 별 수 없습니다. 고깃덩이를 뭉쳐서 난자완스로 만들고 채소 왕창 넣어서 양을 불리는 수밖에.”
“그, 그렇군요. 그래도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겠죠?”
노근기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거야 고기가 맛있어야죠. 청중 여러분께서 직접 드셔보시고 판단하시면 되겠습니다.”
사회자는 멋쩍게 웃으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노근기의 솔직한 태도에 대찬은 척추가 찌릿했다.
그러다가 좋게 생각하면 저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억지 합리화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앞으로 로튼 프룻츠를 지켜볼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로튼 프룻츠가 지금 당장 마트에 비도축육을 싼값에 내놓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량생산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무수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짐육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현재진행형인, 미래에 극복될 한계일 뿐이었다.
치명상이 아니라면 치부는 차라리 드러내는 편이 좋다.
당당한 사람은 치부를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낸 치부는 자신감의 발로로 느껴질지도.
‘저 아저씨가 그것까지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야 어떻든 좋았다.
노근기가 짝짝, 두 번 박수를 치자 중림대 연구실에서 올라온 비도축육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연구실 사람들이 밤낮없이 생산에 열중하여 만든 물량 중의 대부분이 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돈으로 환산하면 상당한 금액이 들어간 터였다.
그럼에도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기에는 너무나도 한계가 뚜렷했다.
노근기는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프로의 기량을 발휘했다.
그는 척척 난자완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고기를 뭉쳐서 잘 펴고.
그걸 뜨거운 기름에 튀기듯 볶고.
거기에 굴소스를 기반으로 한 맛깔 나는 양념에 휙휙 볶았다.
휙휙 볶는 박자에 맞춰 불길이 솟았다.
그게 또 간단한 눈요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