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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64화 (364/556)

난 할 수 있어 364화

밭 매던 할아버지가 호미를 들고 왔다.

거동 불편한 구순 할머니가 유모차에 의지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이제 자비로 풍어제 돼지머리를 사게 생긴 어촌계 누구누구들이 씩씩거리며 왔다.

그렇게 패나 쥐던 노인들만 있어 한산하던 오후 시간에 마을회관이 꽉 들어찼다.

그들은 트럭 남자를 가운데 세워두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야, 이 개쉐이야. 니 땜에 우리 돈 못 받게 됐다 하데? 니가 뭔데 우리 돈줄을 끊고 지랄이고, 지랄이. 어잉?”

“서울서 온 사람들 얌저히 잘 지내고 있는데 왜 괜히 가가 들쑤셔 놔서 이런 사달을 내냔 말이다, 어이?”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어. 심통 부리지 말라고 어른들이 몇 번을 일러댔노. 그거 싸그리 무시하고 일 치르더니 참, 나.”

“이번 풍어제 때 니 사비 털어가 도야지머리 삶아온나, 알았나!”

“화상아, 화상아, 나이 오십 넘었으모 이제 사람 구실 좀 해라. 꼴에 청년회 간부라고 완장 차고 으르렁대는 거 쪽도 안 팔리나.”

“문디 자슥. 개 자슥. 니 땜에 회비 더 걷게 생깄다!”

마을 어른들의 한바탕 대거리에 트럭 남자는 혼이 쏙 빠져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마구 흔들렸다.

그는 이완승에게 매달렸다.

“햄요, 이거 어떻게 해야 좋겠어예. 네?”

“그걸 왜 나한테 묻네. 니가 싼 똥은 니가 치워라. 내가 와 치우노. 더럽구로.”

이완승은 트럭 남자를 뿌리쳤다.

청년회장인 그마저 트럭 남자를 저버리자 마을 사람들은 더 대놓고 트럭 남자를 핍박했다.

뒤통수까지 몇 대 얻어맞고 나서야 당장의 환란은 끝났다.

그러나 당장은 비를 피했지만 그건 당장에 불과했다.

정말 필래가 농촌지원사업에서 이 마을을 배제한다면 그때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지금껏 지역 일꾼이네 뭐네 떠받들어주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백안시할 것이다.

내심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군의원이 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꾸던 그이기에 더 두려웠다.

그는 한달음에 대찬의 부모가 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대찬의 부모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읍소하기 시작했다.

“아들내미한테 전화 한 통만 넣어주면 안 되겠어예?”

“에?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의 얼굴이 황당한 빛이 가득 번졌다.

트럭 남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어머나, 그런 일이 다 있었어요?”

“예, 이러다 사람 잡겠어예. 전화 좀 넣어주이소.”

“전화 넣어달라 말하기 전에 사과 먼저 하시는 게 순서 아니에요?”

“사, 사과요. 예, 사과하께요. 잘못했심더. 내가 괜한 짓을 했어예.”

“뭐야, 그게 사과예요?”

“무, 무릎이라도 꿇을까예. 꿇으라면 꿇으께요.”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성의가 너무 없네요. 누가 무릎 꿇으래요? 진심 담긴 말 한 마디면 되는데. 알았어요. 성의 없는 사과만큼만 저희도 아량을 베풀게요.”

어머니는 쪽지 한 장에 숫자 몇 개를 휘갈겨 적고는 트럭 남자에게 건넸다.

“이, 이기 뭡니까?”

“우리 아들 전화번호예요. 당사자끼리 해결하세요. 그쪽하고 우리 문제는 사과 받은 거로 끝낼 테니까.”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쾅, 일부러 큰 소리로 문을 닫는 건 어머니가 트럭 남자에게 하는 유일한 항의의 표시였다.

트럭 남자는 쪽지에 무성의하게 적힌 열한 자리 숫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나… 낸데.”

“내가 누군데요?”

대찬은 목소리만 듣고 알았지만 구태여 신원을 확인했다.

“그, 부모님 사시는 마을 청년회에…….”

“아, 형님이시구나. 근데 왜 그렇게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으세요? 시종 당당하시던 분이.”

“사람 놀리지 말고. 이유 모르진 않을 거 아이가.”

“제가 지금 놀리는 걸로 보이세요?”

“…….”

대찬은 그와 오래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완승의 귀띔을 듣고, 대찬은 적당히 상황을 종료시킬 요량이었다.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의 철저한 약속을 받은 뒤에 적당히 무마해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완승은 그런 대찬의 생각에 반대했다.

그는 트럭 남자를 끝까지 괴롭히라고 조언했다.

대찬은 종잡을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사적으로도 많이 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가혹하게 할 이유가 있을까요?”

“회초리를 내리칠 때 세게 내리쳐야지. 못된 놈을 살살 때리면 아, 이놈 힘아리가 없네, 하면서 정신을 못 차린다꼬. 전력을 다해서 후려쳐뿌라.”

“…괜찮을까요?”

“하모, 안 괜찮을 기 머 있어예. 어차피 칼자루 쥔 건 조대찬 씬데.”

“그럼 알겠습니다. 모질게 할게요.”

“아, 좋아요.”

대찬은 이완승의 당부를 떠올리고 트럭 남자를 세게 조였다.

“더 할 말 없습니다. 걱정 마세요, 재심사의 발단은 형님 때문이지만, 재심사 과정에 사심이 개입하지는 않을 겁니다. 결과가 나오면 대외협력팀에서 통보할 겁니다.”

트럭 남자는 본능적으로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직감했다.

고분고분 고개를 숙여도 소용이 없다면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

온건해서 실패했다면 강경해지는 수밖에 없다.

트럭 남자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이, 이미 재심사에 들어가겠다고 한기 사심이 개입한 거 아이가? 니가 세상을 너무 물로 보는 거 같은데, 이거 언론 타면 니네 회사 직격탄이다, 직격탄.”

“언론이요.”

그렇게 말하는 대찬의 입에서는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언론을 아무리 몰라도 너보다는 잘 알 것이다.

대찬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과연 누구한테 직격탄이 떨어질까요? 이 사달이 난 원인을 따져보면 누구한테 책임이 더 크다고 할까요?”

“다, 당연히 니하고 필래한테 책임이 더 크다 아이가!”

“상상 외로 뻔뻔하시네, 진짜.”

대찬의 목소리에도 어느덧 짜증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재벌은 강자고, 내는 그냥 촌놈이니 약자고. 언론이 약자 편 들지, 어데 강자 편 드는 걸 본 적이 있나?”

“발단을 따지면 반대죠. 절대다수인 마을 청년회 사람들이 귀농한 부부한테 린치를 놨잖아요.”

“이기랑 그기랑 어떻게 같은데!”

“누가 같대요? 당연히 다르죠. 형님 쪽이 죄질이 더 더럽지. 우리는 그저 형님께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드리는 것뿐인데.”

“이,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꼬……!”

대찬은 얕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언론에 찌르든 뭘 하든 맘대로 하세요. 각자 갈 길 가자고요.”

뚝, 대찬은 전화를 끊었다.

이후로 몇 번씩이나 트럭 남자에게서 전화가 걸렸지만 대찬은 받지 않았다.

그 다음날.

로튼프룻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대찬은 사외이사실의 오다혜로부터 급히 연락을 받았다.

“이사님!”

“오 대리, 왜요?”

“지금 누가 사외이사실 와서 이사님 뵙고 싶다고 막 난동을 피우시는데요.”

대찬은 그 누구가 누군지 짐작했다.

“볼살 퉁퉁하고 코 납작하신 아저씨 맞죠?”

“예! 맞아요.”

“로튼프룻츠 주소 알려드리세요. 애먼 곳 가서 난동 피우지 말고 여기로 오라고 해요.”

“아, 알겠습니다.”

한 시간 후.

바깥에서 부르르, 하는 오래된 트럭의 시동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찬은 이 일로 로튼프룻츠 직원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았다.

그는 트럭 남자가 올라와 왕왕 우는 소리를 내기 전에, 먼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딱 사무실 안으로 쇄도하려던 그와 마주쳤다.

트럭 남자는 대찬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야야, 대찬아!”

“근성 한번 대단하시네요. 서울까지 올라오셨어요?”

“나 진짜 죽을 것 같다. 내 한 번만 살리도.”

“엄살 떨지 마세요. 어제만 해도 위풍당당하시더니.”

“내 진짜 잘못했다. 평생 참회하면서 사께.”

대찬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일단 일어나세요. 이러면 더 보기 안 좋으니까.”

“그래, 일난다. 일난다.”

트럭 남자는 대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툭툭 자리를 털고 꿇은 무릎을 다시 폈다.

그는 뒤 마려운 강아지처럼 처량한 눈빛으로 낑낑거렸다.

그걸 또 보고 있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확 풀어주면 지금까지 완고하게 군 보람이 없다.

대찬은 단호한 시선으로 트럭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심사 결정은 비바체 대외협력팀에서 할 겁니다. 비바체는 회사입니다. 회사는 애먼 데 돈을 쓰지 않습니다.”

“…….”

“농촌지원사업의 목적은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회사 이미지 제고입니다. 텃세나 부리는 마을을 지원해줘봤자 회사 이미지 제고에는 아무런 효용이 없겠죠.”

“…….”

트럭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고분고분 대찬의 말을 경청했다.

“떡골마을의 소식은 제가 일부러 챙겨 들을 겁니다. 형님께서 하시던 대로 계속 하시면 사측에서 그 부분을 심대하게 고려할 겁니다, 아시겠어요?”

“알았다. 내 아주 뼈저리게 알았스…….”

“네, 저는 일이 바빠서요. 식사도 같이 못하겠네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대찬은 시종 쌀쌀맞은 목소리로 그를 대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트럭 남자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닫힌 문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씨팔새끼…….”

대찬은 그가 트럭에 올라타기 전, 사무실 앞에 가래침을 뱉는 걸 창문을 통해 바라봤다.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걸 보고 대찬은 관용을 베풀지 않기를 잘했다고 여겼다.

만일 서울까지 올라온 정성을 봐서 관용을 베풀겠다고 했다면.

그는 고마워했을까.

안도는 했겠지만 고마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마워하지 않는 인간이다.

자기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더욱 기대하기 힘들었다.

아마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면 동네사람들한테 멋대로 떠벌리고 다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큰일이 날 뻔한 위기를 자기가 기가 막힌 말솜씨로 극복해냈다고.

대찬은 그랬을 공산이 매우 다분하다고 생각했다.

트럭 남자의 오래 보지 않아도 충분히 간파하고도 남을 성향을 고려하면 그러고도 남았다.

트럭 남자의 마음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상황은 퍽 많이 달라졌다.

며칠 후, 어머니는 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아주 그 녀석 멱살을 단단히 쥐고 흔든 모양이다?”

“요즘은 해코지 안 하던가요?”

“해코지는 당연하고, 너무 싹싹하게 굴어서 부담스러울 정도다, 얘.”

“다행이에요.”

어머니는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행이긴 하다만 꼭 이렇게 해야 순리대로 돌아간다니 어째 좀 슬프기도 하고 그래.”

“슬플 것까지야 있나요.”

“슬픈 일이지. 우리가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었어 봐라. 이런 아들 없는 부모였어 봐라. 우리는 지금도 낑낑거리면서 살았을 걸. 복장이 터져서 짐 싸들고 서울로 올라왔을 걸. 우리야 아들 잘 둬서 이렇다지만 그렇지 않은 집이 훨씬 많을 거 아니니.”

대찬과 어머니는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며칠 후.

로튼프룻츠에 퀵서비스 기사가 방문했다.

한 박스, 두 박스, 가져온 물건들을 옮기던 그는 다섯 박스째가 되어서야 숨찬 목소리로 대찬에게 단말기를 내밀었다.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아, 네…….”

대찬은 휘갈기듯 서명을 해주고 전달 받은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자마자 건어물의 비린내가 훅 끼쳤다.

겉면에는 ‘남해 특산물 죽방렴멸치’라고 쓰여 있었고, 내용물 역시 상표와 동일했다.

상자에는 한 통의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글씨였다.

‘앞으로도 우리 마을을 사랑해주세요. -이완승 배상’

대찬은 웃으면서 그 쪽지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는,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멸치 필요하신 분……?”

* * *

배양육, 대찬의 표현대로라면 비도축육 개발은 나날이 진척을 보였다.

대찬은 알음알음 관련 분야의 서적과 논문을 탐독해서, 문외한은 아니고 최소한 헛똑똑이 수준까지는 올라와있었다.

그 지식을 가지고 대찬은 어렴풋하게나마 공유된 자료를 매일 같이 파악하고 있었다.

‘과학은 진짜 살아있는 학문이구나.’

대찬이 대학 강의실에서 배우던 경영학도 제법 역동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과학에 들이댈 건 아니라는 생각 역시 들었다.

경영학이 달마다 달라진다면 이 분야는 초마다 달라졌다.

초마다 달라지는 분야의 선두에 서있는 기분은 외줄타기를 하는 듯했다.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했다.

그리고 말 그대로 행군 행렬의 선두에 선 느낌이었다.

길을 바로 들어야 한다는 무한한 긴장감.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뒤에 무수한 인원이 꽁무니를 따르고 있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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