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357화
은오영 교수의 말은 그만큼 대찬을 위하는 까닭이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이유가 저변에 깔려 있었다.
“대표님이 드시고 만족하셔야, 그 다음 개발비용이 두둑하게 꽂히죠.”
“아.”
“그게 첫 번째 고기라 의미가 있는 거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듭니다.”
“감동 받을 뻔했네요.”
대찬은 시큰둥한 얼굴로 은오영 교수를 바라봤다.
은오영 교수는 흐흐 웃었다.
“잡숴보세요.”
“알았어요.”
대찬은 단골의 특권으로 식당에 양해를 구해 육회로 먹기 좋게 채 썰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잠시 후, 고르게 채 썰린 날고기가 다시 식탁으로 전해졌다.
대찬은 아무 양념도 찍지 않았고, 다른 음식을 곁들이지도 않았다.
고기의 순전한 맛을 느꼈다.
젓가락으로 여러 가닥을 집어 입 안에 넣고, 온 신경을 혓바닥에 집중한 다음 천천히 씹었다.
은오영 교수는 미소를 띤 채로 대찬을 바라봤다.
“맛이 어떠세요?”
“음,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럼요.”
“맛은 별론데요.”
은오영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석푸석하죠?”
“푸석푸석하고 약간 부서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먹던 육회랑은 좀 거리가 있네요. 식감에서도 그렇고 맛에서도 그렇고.”
“네, 그럴 겁니다. 아직은 그게 한계예요.”
대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어떻게 첫 술에 배가 부르겠나.
벌써 도축한 ‘진짜’ 고기랑 똑같다면 은오영 교수는 사람이 아닌 수준일 게다.
거의 귀신에 근접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연구비 지원도 미진했고, 물리적인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은 있어도 벌써 고기다운 고기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대찬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훑으며 씩 웃었다.
“어쨌든 제가 죽이지 않은 고기를 맛본 첫 번째 한국인이겠죠?”
“네, 자랑스러워하셔도 됩니다.”
“자랑스럽네요.”
대찬은 웃으면서 은오영 교수가 가져온 100g을 모두 먹어 치웠다.
은오영 교수는 그걸 보고 말했다.
“조 대표님이 방금 150만 원어치를 드셨습니다.”
“100g 생산하는 데 원가가 150만 원 들어갔습니까?”
은오영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격이 획기적으로 줄었네요. 처음 은 교수님 영입할 때만 해도 족히 수천만 원은 호가했는데.”
“아마 이 분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실리콘밸리, 네덜란드, 이스라엘 회사들도 아마 이 가격대에는 생산을 못해낼 겁니다.”
대찬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일단 우리도 이 산업에서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처럼 은 교수님이 멋져 보인 적은 없어요. 반했습니다.”
은오영 교수의 얼굴에 자신감이 어렸다.
“벌써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몇 년 있으면 저한테 청혼하시게 생겼네요.”
“원하세요?”
“이러지 마세요.”
대찬은 흐흐 웃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중림대 쪽에서는 모자람 없게 지원해주고 있습니까? 솔직히 이 정도면 서울대나 카이스트에서도 모셔가겠는데요.”
“뭐, 총장도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낯짝 두꺼운 인간이 얼마 전에는 저한테 찾아와서 막대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더라니까요.”
“그래요?”
“네. 제가 이 대학에서 일한 이래로 총장이 사과한 건 이번이 두 번쨉니다. 첫 번째는 학교 돈 빼돌려서 자기 애인 똥구멍에 몇 억 꽂아줬을 때고.”
“그래도 제대로 대접을 받고 계시니까 다행입니다.”
“다 조 대표 덕이죠.”
“아이고, 공치사도 할 줄 아시고.”
대찬은 웃으면서 은오영 교수와 잔을 부딪쳤다.
이번에 넘기는 잔은 각별하게 달콤했다.
은오영 교수는 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지금까지 믿었던 것처럼 이후에도 교수님을 믿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찬의 목소리는 묵직했다.
대찬은 은오영 교수를 빤히 바라봤다.
은오영 교수 팀의 손에서 만들어진 배양육은 기존에 세워진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쾌거였다.
대찬은 당연히 그 사실에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마냥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성과는 조직의 성과라기보다는 개인의 성과였다.
딸린 연구원들이 있다지만 그들은 수족에 불과했다.
결국 은오영 교수와 다르샨 싱 전무, 두 사람이 만들어낸 성과.
대찬은 조직이 아닌 개인의 성과가 불안했다.
중국음식점에는 유독 직접 음식을 하는 주인들이 많다.
이유가 뭘까.
그건 주인과 주방장이 따로 있으면 주방장이 소위 ‘을질’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집의 평판이 결정되는 건 대개 맛 때문이다.
그리고 맛을 만들어내는 건 주방장이다.
주인이 바뀐다고 하면 사람들은 잘 눈치채지 못하지만, 주방장이 바뀌면 바로 눈치챈다.
그런 까닭에 실력 있고 까탈스러운 주방장은 주인을 향해 갖은 요구를 해댄다.
월급을 올려 달라, 이번에 보너스를 달라, 근무시간을 어떻게 해 달라 하는 식이다.
당연히 주인은 난색부터 표하고 본다.
주인이 들어주지 않으면 주방장은 미련 없이 직장을 떠난다.
실력만 있다면 받아줄 중국집이야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흔하니까 재취직은 헐하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주방장에게 끌려가는 주인들이 많았다.
그러다 그 꼴이 잦아지면, 차라리 앓느니 죽는다고 직접 웍을 잡는 주인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대찬과 은오영 교수의 관계가 꼭 그랬다.
대찬은 중국집 주인이고 은오영 교수는 실력 있는 주방장이었다.
차라리 중국집 주인은 하다못해 직접 요리에 뛰어들 수라도 있지.
대찬이 아무리 은오영 교수에게 시달린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를 대신해 실험실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찬은 ‘본 투 비’ 문과였다.
지금이야 은오영 교수도 로튼 프룻츠를 떠날 생각을 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사람구실 하도록 만들어준 대찬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고, 당장의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태평성대가 천년만년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안일하기 짝이 없다.
나중에 지분을 달라 요구할 수도 있다.
심해지면 아예 자기가 오너 노릇을 하려고 들지도 몰랐다.
‘당장 좋은 일 두고 나쁜 일부터 생각하지 말자.’
대찬은 그렇게 생각을 떨치려 했지만 떨쳐지지 않았다.
은오영 교수를 어떻게 다루느냐.
대찬의 기업가로서의 자질은 어쩌면 거기에 달려있는지도 몰랐다.
그는 은오영 교수를 빤히 바라보며 했던 말을 반복했다.
“교수님, 믿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대찬의 목소리가 어딘지 미묘해서, 은오영 교수는 잠깐 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으십시오.”
둘은 제법 얼큰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다 마신 뒤에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대찬의 집으로 가 멋대로 엉켜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은오영 교수는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중림대로 내려갔다.
대찬 역시 부스스 일어나 비몽사몽한 채로 출근준비를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중국집 주인인데.
나중에 대체 불가능한 주방장을 다뤄야 하는데.
내가 낮에는 다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뛰고 밤에만 중국집을 돌보는 이 상황에서, 주방장이 제대로 다뤄질까.
그 전에 회사 자체가 다뤄질까.
물론 공동대표인 민승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앞으로 경영의 형태는 커다란 변혁을 맞을 것이다.
커피를 사고팔고, 와인을 사고 파는 지금까지의 일들은 애들 장난 수준처럼 될 터다.
지금도 필래와 로튼 프룻츠 사이에 양다리를 걸쳐놓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배양육 사업이 로튼 프룻츠의 주무기가 된다면.
몇 곱절은 더 버거워질 것이다.
대찬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본거지’를 어디로 삼을 것이냐.
본거지를 결정한다면, 남은 하나의 곁가지는 버려야 한다.
대찬의 어렴풋한 판단은 이미 이뤄져 있었다.
그런 어렴풋한 판단을 분명한 판단으로 만드는 사건이 그 바로 다음 날 발생했다.
대찬은 쵸 후쿠히로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조 부장, 아니 조 대표, 간단히 밥 한 끼 하고 싶은데.”
그는 대찬을 먼저 조 부장이라고 불러놓고 굳이 대표로 정정했다.
그 말인즉, 필래와 관련된 일은 아니란 뜻이었다.
대찬은 그 제안을 바로 받았다.
“어디서 뵙는 게 좋겠습니까.”
“격식 있는 자리에서 칼질 해가면서 시간을 오래 허비할 생각은 없어요. 조 대표도 바쁘고,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제가 회장님만 하겠습니까. 편하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대찬이 쵸 후쿠히로 회장을 만난 곳은 서울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식당이었다.
대교를 타고 영종도에 바로 진입하자마자 있는 낡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대찬이 도착했을 때는 쵸 후쿠히로는 두 명의 수행원만 대동한 채 식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돈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런 식당에 앉아있으니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회장님, 기다리시게 했습니다.”
“어서 와요. 이런 식당, 안 불편하죠?”
“불편하긴요. 오히려 친근해서 더 마음이 편합니다.”
쵸 후쿠히로는 미리 음식을 주문해놓은 상태였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코를 찔렀다.
쵸 후쿠히로는 숟가락으로 청국장을 뒤졌다.
그러자 냄새는 더욱 강렬해졌다.
“우리 엄마는 청국장을 많이 해줬어요.”
“그렇습니까.”
“난 청국장이 참 싫었어. 동네에 이 냄새가 퍼지니까 친구들이 조센징 똥냄새라고 놀렸거든.”
그 말에 대찬이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일본 사람들도 낫토를 먹잖습니까.”
“내가 자란 간사이에서는 낫토를 잘 안 먹었어요. 지금도 오사카, 교토 사는 사람들은 낫토 못 먹는 사람 많아요.”
“…그렇군요.”
쵸 후쿠히로는 청국장을 국자로 크게 떠서 대찬의 그릇에 덜어주었다.
“자, 먹으면서 얘기합시다.”
“예.”
쵸 후쿠히로는 콩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청국장을 크게 떠서 먹었다.
허흐허흐, 그는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면서도 청국장을 잘 먹었다.
“그래서 청국장이 아주 저주스러웠지, 어렸을 땐. 그래서 미국으로 유학을 간 다음으로는 쳐다도 안 봤어요.”
“그래도 지금은 잘 드십니다.”
쵸 후쿠히로는 씩 웃었다.
“실은, 맛 자체는 지금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십니까?”
쵸 후쿠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 일정의 맨 마지막에는 청국장을 먹습니다. 그때를 생각나게 하거든. 치가 떨리도록 밉고 싫었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 이 한 숟가락이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
“그러면 안주하려던 마음도 다시 급해지고, 붕 뜨던 생각도 착 가라앉아. 나로 하여금 다시 도전하게 하는 음식이에요. 그러니까 나한테는 일종의 묘약인 셈이지.”
대찬은 자신의 앞에 놓인 청국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술 떠서 먹었다.
그러나 묘약의 효과는 없었다.
‘조센징 똥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입맛 당기는 한 끼일 뿐이었다.
쵸 후쿠히로는 밥그릇을 뒤지면서 말했다.
“조 대표하고는 꼭 함께 청국장을 먹고 싶었어요.”
“저하고 말씀이십니까?”
쵸 후쿠히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절치부심하고 첫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거든. 아, 물론 이목구비는 조 대표처럼 잘생기진 않았었지. 다만 눈빛만큼은 내 것과 조 대표 것이 비슷하다고, 아니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대찬은 어정쩡한 미소를 지었다.
“과찬이십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100퍼센트가 아니라 70퍼센트에 거는 사람이니까. 30퍼센트의 확률로 당신은 쭉정이겠지요.”
“물론 저는 아니라고 항변하겠습니다만, 그럴지도 모르죠. 세상에 절대 아닌 건 없으니까.”
쵸 후쿠히로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지난번의 70퍼센트가 빗나갔으니 이번의 70퍼센트는 맞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의 70퍼센트라뇨?”
“클로빌.”
“아.”
쵸 후쿠히로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의 내 직감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실은 필래가 없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잘 되고 있었을 테니까.”
“저희도 그렇습니다. 클로빌이 없었다면 저희가 이미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평정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역시 패기가 있다니까.”
“하하, 현실적인 판단이죠.”
쵸 후쿠히로는 흡족한 듯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영영 필래가 우위를 가져갈 것이라곤 생각하지 말아요.”
“물론 그렇습니다.”
“내가 이번에 새로 한국 돈으로 4천억에 해당하는 거액을 더 투자했다는 거, 조 대표도 알 겁니다.”
그 말을 듣고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쵸 후쿠히로가 난 사람이라지만 그 역시 현재를 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