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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54화 (354/556)

난 할 수 있어 354화

“위마트에 있을 때부터 조 부장 행보 눈여겨봤어요. 볼 때마다 앞서나가면 앞서나갔지, 남의 발자국을 이렇게까지 철저히 밟은 적은 없었던 거 같거든요.”

대찬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만큼 급하다는 거죠. 그리고 남이 잘하는 게 있으면 본받는 게 맞잖아요.”

“맞지, 그럼.”

대찬의 지시로 필래 비바체는 클로빌이 잘하는 모든 걸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한다고 남이 따라하면 은근히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하는 법이다.

내가 잘하고 있구나, 자신감도 얻기 마련이다.

근데 사사건건 일거수일투족을 따라하면 짜증도 이런 짜증이 없다.

대찬의 미투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였다.

클로빌 쪽에서는 완전히 자신들만 겨눈 채로 움직이는 필래 비바체가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클로빌의 전략담당인 김 이사는 머리가 빠질 지경이었다.

클로빌의 대표는 물주인 쵸 후쿠히로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호된 질책을 받고 있었다.

본디 스트레스는 중력의 법칙에 충실해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었다.

쵸 후쿠히로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대표는 김 이사에게 풀었다.

필래 비바체가 클로빌을 저격한 이후, 정확히 말하면 그 일로 대표에게 매번 닦달을 당한 이후로 그는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 덕에 눈이 항상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놈들은 자기들 회사나 잘 돌볼 것이지 왜 계속 우리 의식하는 거야?”

그는 황당한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눈치 없는 부하는, 잔뜩 열 받아있는 상태의 김 이사의 아궁이에 장작을 더 밀어 넣었다.

“필래에서 이번에 온라인 마켓 초저가 선언을 했다고 합니다. 마케팅에 우리 회사를 이용하고 있어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가격비교의 기준을 ‘C사’라고 규정해놨어요. 그 C사가 우리인 건 당연하고요.”

김 이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병신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자기네 유일한 라이벌이라고 인정하는 셈이지. 우리 이름값만 더 커진다는 걸 몰라.”

김 이사는 그렇게 말하면서 일축했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그의 가라앉은 표정을 보고도 부하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개시한 유료회원제 클로버클럽을 모방해서 비바클럽이라는 것도 만들어냈습니다. 곧 적용한다는 소식입니다.”

클로빌의 클로버클럽은 정액제로 운영하며, 일정액수 이상 상품을 구매하면 비회원이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배송해주는 시스템이었다.

김 이사의 표정이 더 굳었다.

“…….”

“배송 시간도 우리랑 똑같게 설정했는데, 월마다 납부하는 액수도 훨씬 적게 설정한다고 합니다.”

“알았어.”

김 이사는 부하의 보고를 듣는 시간을 뒤로 미루고 싶었다.

대표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가라앉힐 여유가 필요했다.

다소 불편한 목소리로 알았다고 하면 부하가 눈치껏 관둘 줄 알았다.

그러나 부하는 한번 연 입을 쉽게 닫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약점을 정확히 찌르고 왔습니다. 기존에 오프라인에서 쥐고 있던 인프라를 십분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육류랑 수산물을…….”

“알았다고 하잖아.”

“이를 대비할 특단의 대책을…….”

“알았다고!”

김 이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부하는 상황을 인지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김 이사는 그에게 눈을 흘겼다.

“인마, 그걸 꼭 지금 말해야 직성이 풀리겠냐? 어디 불났어? 그게 그렇게 급해?”

“아, 아닙니다.”

“다음에 듣겠다고, 다음에. 이 새끼는 입만 뚫리고 듣는 귀가 없어, 쯧.”

“…다음에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부하는 도망치듯 후다닥 김 이사의 방을 나섰다.

“에휴, 발전 없는 새끼…….”

김 이사는 급히 몰려오는 피로에 눈과 눈 사이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스르르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런 그의 스트레스가 풀릴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필래 비바체는 하루가 멀다 하고 클로빌을 압박했다.

클로빌이 배송거점으로 이용하기 위해 점찍어놓은 부지를 굳이 웃돈을 들여 매입한다든지 하는 행태는 클로빌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하지 않을 일들이었다.

게다가 필래 비바체 소속의 택배원들의 괜찮은 대우가 클로빌에 간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대찬의 청탁이 흘러 들어간 종편에서 촌스럽게 클로빌과 필래 비바체를 직접적으로 비교한 게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모기 물린 줄도 모르다가 벌겋게 부어오른 자국을 보면 그때부터 막 가렵기 시작하는 법이다.

클로빌 소속의 택배원, 클로버들은 언론에 드러난 자신들과 필래 비바체 택배원들의 처우를 보고 불만을 가졌다.

원래 크기가 같아도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그런데 진짜 큰 남의 떡은 얼마나 커 보이겠는가.

보도 이후 일부는 아예 필래 비바체로 이직을 해버렸다.

남은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또 공공연히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클로빌이 클로버를 모집할 때, 업계 최고의 조건으로 정규직을 약속하겠다고 했지만 구상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었다.

클로빌에는 노사갈등을 감당할 여유도 없었다.

갈 길이 구만 리요, 필래와의 전면전에도 골머리를 썩을 판이었다.

게다가 클로빌의 경영진은 30대 중반이 주류였다.

40대도 드물었다.

때문에 그들은 아직 경험이 여물지 않은 상태.

그러다보니 클로빌의 경영진은 노사 간의 입장을 조율할 노하우가 없었다.

기하급수적으로 적자가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클로버들을 달래려 당근을 던져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아무 당근 없이 맨입으로 클로버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클로빌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필래 비바체도 마냥 맘 편히 미사일 발사 버튼만 누르는 건 아니었다.

필래 비바체 역시 회사의 명운을 걸고 클로빌과 총력전을 벌이고 있었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쵸 후쿠히로가 조 단위의 현금폭탄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그렇기에 당장의 가용자원을 모두 투입해 클로빌을 압박했다.

대찬은 자질구레한 혁신경영팀의 업무는 허운에게 모두 몰아주었다.

평소 같으면 왜 자기한테 일을 몰아주냐며 볼멘소리를 했을 허운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아무 소리 없이 자신의 짐을 짊어졌다.

대찬은 그런 허운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괜히 한 마디 툭 던졌다.

“허 과장이 웬일이야? 입이 댓발 나올 줄 알았는데?”

“저도 짬밥 하루 이틀 먹은 거 아니거든요? 지금 상황에 회사의 명운이 얼마나 경각에 달려있는지 안다고요.”

“올, 우리 허운 과장님 득도하셨네.”

허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팀장님도 제가 믿을 만하니까 이렇게 일을 마구잡이로 맡기는 거 아닙니까? 이제 저도 이 팀의 필수적인 인재가 됐다는 증거죠.”

“글쎄…….”

대찬이 쉽게 동의해주지 않자 허운이 불쑥 화를 냈다.

“글쎄는 뭐가 글쎄예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이건 마치 망해가던 해태 타이거즈의 김응룡 감독이랑 일맥상통 한달까.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한 차장도 없고, 송 과장도 없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허 과장한테 맡기는 거 아니야.”

그러자 허운은 밥맛 떨어졌다는 듯이 대찬이 잔뜩 넘겨준 서류더미를 책상 위에 도로 뱉어 놨다.

“아, 진짜. 그냥 그러면 그렇다고 립서비스 한번을 못해줘요? 한 차장님은 그렇다 치고 솔직히 쏭 과장보다는 내가 낫지.”

“과연 그럴까.”

“아우, 진짜! 자꾸 이러면 나 확 파업해버립니다?”

“파업도 누가 동조해줘야 파업이지. 노조가 허 과장 말을 들을까, 내 말을 들을까.”

허운은 뚱한 얼굴로 대찬의 책상 위에 뱉어놓은 서류를 도로 품에 안았다.

“암튼 언젠가 내가 복수 제대로 할 거야.”

“제발 그래주세요. 어디 허 과장이 내 뒤통수 후릴 위치까지 올라가나 보자.”

“한 번을 안 져. 질려, 완전 질려.”

대찬은 더 이상 허운과 말을 섞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허운은 자신을 외면하는 대찬에게 눈을 흘기고 일부러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홍은주가 미간을 좁히며 허운에게 퉁바리를 놨다.

“허 과장님, 조용히 좀 다니세요. 집중이 안 되잖아요.”

“은주야, 너까지 이럴 거냐? 내 상사처럼 자꾸 그렇게 날 괴롭힐 거냐?”

“제가 허 과장님 상사는 아니어도 이제 과장 돼서 동급이에요. 이 정도 말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내 신세야.”

허운은 하늘을 향해 깊은 한숨을 뿜었다.

그에게 잡무를 몰아준 대찬은 김풍호 전무와 머리를 맞대고 클로빌과의 전쟁에 전념했다.

대찬과 김풍호 전무는 이제 따로 회의를 위한 약속을 잡지 않았다.

수시로 통화하고, 수시로 만나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비바클럽 출시 이후로, 클로버클럽에 몰리던 고객들이 확 줄었다는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어요.”

김풍호 전무의 말에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공격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바클럽은 클로빌과의 경쟁을 제쳐두더라도 반드시 많은 회원을 확보해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까요.”

한 명의 회원을 위해 빠른 배송을 하는 건 단가가 안 맞는다.

십만 명, 백만 명이 이용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까 말까 한다.

비바클럽은 클로빌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도리어 클로버클럽으로 고객을 싹쓸이해가는 클로빌에 대한 대항차원의 성격이 더 강했다.

정액제 회원으로 묶어둔 고객은 회사의 고정수요층이 된다.

집토끼를 많이 잡아두면 산토끼를 잡으러 이 산 저 산 뛰어다닐 수고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김풍호 전무가 대찬에게 말했다.

“고객 확보전에서 승리하려면, 확실한 미끼상품이 있어야 합니다.”

“원가에 팔아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클로빌에 비해 확실히 구미가 당기도록 해야 합니다.”

김풍호 전무는 안경을 치켜 올리며 대찬에게 물었다.

“낙점해둔 물목이 있으십니까?”

“삼겹살, 기저귀, 생수. 이 세 가지에 집중하는 게 좋겠습니다.”

김풍호 전무는 대찬의 의견에 공감했다.

“삼겹살은 아마 점장으로 계시면서 느끼신 바가 있어서 그러시겠죠?”

“네, 신선식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죠, 삼겹살은. 게다가 우리는 일찌감치 새벽배송에 공을 들여와서 정육가공센터까지 확보한 상태입니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육류는 단기간에 클로빌이 우릴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기저귀는 온라인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30대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겠고요. 기저귀랑 분유가 제일 많이 팔리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중에 분유는 먹는 것이라 싸다고 무턱대고 사지는 않죠. 기저귀는 그것보다는 가격이 가장 큰 구매요인이니까.”

“생수는 무게가 나가니까 온라인으로 가장 많이 구입하고, 생수 하나만 사면 뭣하니 사는 김에 이것저것 끼워서 사니까 다른 상품들 구매 유도에 효과적일 겁니다.”

“특히 생수는 필래푸드에서 직접 수원지를 확보해 자사 브랜드로 출시된 제품이 있습니다. 다른 데서 받아오는 클로빌보다 확실히 가격 경쟁력이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이 정도면 저쪽도 타격이 클 겁니다.”

“아울러 가성비 좋은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식 대체식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밥 해먹을 시간도 없고 해 먹을 솜씨도 아무래도 장년층보다는 떨어지거든요.”

김풍호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에는 일부러 직접 해먹는다는 사람도 많지만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니까.”

“그 부분은 필래푸드와 합작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대표님께 확실히 보고를 해두겠습니다.”

김풍호 전무는 얼굴에 웃음기를 띠었다.

“하긴, 계열사 간 합의는 대표님 내세우는 게 직빵이겠지.”

“네. 아무튼 이번에는 클로빌이 한바탕 뒤집어질 거예요. 한창 고객확보에 열 올리는 와중에 우리가 미끼를 큰 덩어리로 투척했으니까.”

“클로빌이 뒤집히는 수준 갖고는 안 돼요. 우리가 출혈을 감수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보람이 있어야 하니까.”

“잘될 겁니다.”

* * *

둘의 말대로 필래 비바체의 연속된 공격에 대응책을 마련하던 클로빌은 ‘큰 거 한 방’에 기우뚱거렸다.

필래 비바체가 초특가 삼겹살, 기저귀, 생수를 연타로 출시하자 클로빌은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다.

삼겹살을 조달하려면 중간업자를 통해야 했다.

기저귀, 생수도 마찬가지니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특히 오프라인 시장에서 막대한 물량을 사들이는 필래 비바체는 재고를 쌓아둘 이유도 없었다.

재고를 수용할 창고가 충분하지 않고, 또 그 재고를 수용하느라 들여야 하는 비용마저 부담스러운 클로빌로서는 당혹스러웠다.

“대응책을 마련하라고, 대응책을! 회의만 하루 24시간 하면 뭐해. 결실이 없잖아!”

대표는 전략담당 김 이사를 심하게 나무랐다.

김 이사는 얼굴만 벌게진 채로 뭐라 말을 못했다.

대표와 김 이사는 미국 예일대를 같이 나온 동문이었다.

형, 동생 하던 막역한 사이가 대표님, 김 이사로 발전해왔다.

그런 만큼 저렇게 왁왁대는 형이 동생은 더 불만이었다.

알 만한 사람이 자기만 나무랐다.

이건 개인의 역량으로 돌파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구조적인 문제인데 자기만 나무라니 김 이사는 김 이사대로 분이 쌓였다.

상대가 대표이니 화는 분출되지 못했다.

그래서 안에서 곪아 터져 화병이 도질 판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죄송합니다’ 다섯 글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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