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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49화 (349/556)

난 할 수 있어 349화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에 도리어 대찬이 할 말을 잃었다.

“전무님 인성이 쓰레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최소한 목에 깁스는 좀 푸시죠.”

“내가 자네 앞에서 쩔쩔매야 할 이유는 없어.”

“이런 살찐 기생충이 우리 회사 넘버 투였다니. 이런 기생충을 넘버 투로 두고도 무럭무럭 자란 우리 회사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비웃으려면 실컷 비웃어. 이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이 정도 먼지는 묻기 마련이야.”

“…….”

“자네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나이 먹고 정상에 올라가 봐. 흡연금지 현수막 보고도 담뱃불 붙이고 싶고, 취사금지 팻말 보고도 부르스타에 삼층밥 지어 먹고 싶은 법이야.”

“염병 떨지 마, 도진석.”

“이, 이 새끼가……!”

“네 몸에서 똥내 난다고 남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마.”

도진석 전무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남도 그런 거 맞잖아? 서원웅이를 봐. 벌써부터 발랑 까져갖고 재벌 유전자 티 못 내서 안달 난 거. 이 건, 서 대표가 최종승인했어. 네가 나를 찍어내려면 서원웅에게도 똥물 씌워야 돼, 알아?”

“아니, 너만 날아가고 끝날 거야.”

“무슨 수로 그럴 건데?”

대찬은 도진석 전무의 얼굴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댔다.

“이번 이슈, 네가 다 짊어지고 사라져.”

“싫다면.”

“싫다면 지금까지 싸놓은 똥 온몸에 덕지덕지 두르고 검경에 불려가는 거지.”

“…….”

“증거는 차고도 넘쳐.”

“…사람 하나 감방 집어넣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네가 그 정도 깜냥이 될 거 같아?”

“내 깜냥은 안 되지. 근데 서 대표, 그 위의 서청수 회장은 되지. 네가 멱 따이는 돼지처럼 광분하면 서 회장이 널 가만히 둘까?”

“…….”

“사람 뒤지는 방법이 매한가지가 아니야. 깔끔하게 단두대 아래 모가지 들이밀어. 안 그러면 네 살점 하나하나 포 떠져서 오체분시 될 테니까.”

도진석 전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우리 아름답게 이별하자고.”

대찬은 한 마디를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도진석 전무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가쁜 숨을 내쉬며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비서에게 말했다.

“야, 냉수 한 잔 갖고 와.”

“냉장고에 있어요. 찾아 드세요.”

“뭐, 뭣……!”

“그 정도 운동은 하셔야 건강에 좋으세요. 다 전무님 좋으시라고 드리는 말씀이에요.”

비서는 그렇게 말하고 도진석 전무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도진석 전무는 멍한 시선으로 비서를 바라보다가 끝내 마주쳐주지 않는 눈빛에 힘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 같았던 그의 측근들은 딱 걸음을 끊었다.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자들이었다.

곧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그에게 팔짱을 껴줄 용의가 있는 자는 단 하나도 없었다.

도진석 전무는 이를 악물며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는 텅 비어있었다.

“씨팔…….”

도진석 전무의 몸이 열린 냉장고 문을 부여잡은 채로 무너졌다.

열린 냉장고 문은 빨리 닫으라며 삑삑 기계음으로 성화를 냈다.

도진석 전무는 잔뜩 분노가 뻗쳐 쾅, 냉장고가 부서질 듯 문을 닫았다.

며칠 후.

필래타워 한 공실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몰려든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잠잠하던 그들은, 도진석 전무가 등장하자 마구 플래시를 터뜨렸다.

도진석 전무의 시야가 하얀 플래시로 차단되었다.

그는 손으로 눈앞을 살짝 가리며 마이크가 놓인 연단에 섰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봤다.

무수한 눈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구역질을 할 듯 심한 욕지기를 느꼈다.

이어 서원웅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넥타이를 매고 덤덤한 표정으로 도진석 전무의 옆에 섰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플래시가 터졌다.

그래도 여론의 화살을 간신히 비껴간 그는 도진석 전무보다는 의연했다.

서원웅이 맨 먼저 입을 열었다.

“필래 비바체 대표 서원웅입니다. 우선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고객 여러분과 크게 분노하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서원웅은 깊은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저는 필래 비바체 임직원을 대표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과 더불어 최선을 다해 배상하여 지은 죄과의 만분의 일이라도 갚겠습니다.”

서원웅의 각본대로 정해진 사과문 낭독 이후, 도진석 전무에게 공이 넘어갔다.

도진석 전무는 한참을 울먹이는 표정으로 입술을 떼지 못했다.

대찬은 한 구석에서 몸을 벽에 삐딱하게 기댄 채로 도진석 전무를 노려봤다.

‘입을 열어, 개새끼야. 그리고 짖어.’

도진석 전무는 한참의 침묵을 깨고 말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자마자 무슨 소비자연대의 대표라는 사람이 꽥 소리를 지르며 맞받아쳤다.

“그럼 뒤져! 뒤지라고!”

“…이번 일은 모두 제가 기획하고 실행한 일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드리며, 아울러 크게 명예가 실추된 필래 비바체 임직원 여러분께도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도진석 전무는 울먹거리며 위태롭게 사과문을 읽다가 이내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도진석 전무의 눈물이 샘솟자마자 플래시가 열렬하게 터졌다.

플래시가 눈물에 반사되어 도진석 전무의 눈이 따가웠다.

‘얼씨구. 울기는.’

대찬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도진석 전무의 눈물이 대찬은 한없이 징그러웠다.

도진석 전무는 간신히 준비된 사과문을 다 읽고 울음기 때문에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와 서원웅은 나란히 서서 다시금 고개를 푹 숙여 사과했다.

그걸 바라보는 대찬의 입 안에는 씁쓸한 맛이 감돌았다.

도진석 전무는 사과문 발표 이후 사표를 제출했다.

대찬은 서원웅에게 그 사표를 받지 말라고 진언했다.

서원웅은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고처분을 내리라는 거지?”

“네, 근데 해고처분도 그냥 해고처분이면 안 돼요.”

“음?”

“이 정도 규모의 부정행위는 필래 비바체 창립 이후 최초예요, 그렇죠?”

서원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럼 일벌백계 해야죠. 엄격한 선례를 만들어놔야 간 작은 놈들이 장난칠 엄두를 못 내죠.”

대찬은 씩 웃었다.

도진석 전무의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오윤 전무가 징계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옥문영 상무가 징계위원장을 맡았다.

징계위원장을 동시에 2명 선임한 것이 아니었다.

도진석 전무의 징계위원회는 두 번 열렸다.

큰 덩어리의 사유를 굳이 두 개로 쪼개는 수고를 감수하여 그렇게 했다.

오윤 전무가 맡은 첫 번째 징계위원회.

오윤 전무는 도진석 전무의 작은 과실만을 대상으로 처분을 내렸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도진석 전무를 바라봤다.

“이에 징계혐의자 전무 도진석을 마트사업부문장 보직에서 배제하고, 부문 산하 매입부 팀원으로 전보하는 동시에 직급 역시 전무에서 부장으로 강등조치 하는 것으로 의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오윤 전무는 시종 굳은 얼굴을 유지한 채로 땅땅땅, 의사봉을 3타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옥문영 상무가 맡은 두 번째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거기서 옥문영 상무는 오윤 전무보다 더 상기된 목소리로 선포했다.

“이에 징계혐의자 부장 도진석을 해고하는 것으로 의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도진석 전무, 아니 도진석 부장은 치욕 속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도진석은 월드몰에서 시작하여 필래 비바체로 이어지며 십수 년 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가혹한 조치였다.

일반적인 상황이었으면 도진석이 법적으로 대처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진석은 이런 가혹한 조치에 일언반구 항변조차 하지 못했다.

이미 단단히 대찬에게 불알이 쥐여 있었다.

입만 벙긋해도 팍, 터져버릴 것이었다.

대찬은 도진석 전무에 대한 징계처분이 내려지고도 TF팀을 해체하지 않았다.

서원웅이 그에게 물었다.

“도진석 도려냈으면 TF팀 소임은 끝난 거 아니야? 해단식 거하게 해줄 테니까 그만 수고해도 돼.”

“아닙니다. 아직 일이 남았습니다.”

“…일이 남다니?”

“꼬리 자르고 몸통이 살아남는 것도 안 될 말이지만, 몸통이 갔는데 꼬리가 여태 꿈틀거리는 것도 괴상망측하잖아요?”

“음?”

“도진석이 꼬리가 아홉 개라 여기저기 꿈틀거리는 꼬리들이 많아요. 그놈들 숨통까지 끊어놓은 다음에야 맘 놓고 칼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서원웅은 숨을 살짝 들이마시며 대찬을 가만히 응시했다.

대찬은 그의 말대로 뽑은 칼을 도로 집어넣지 않았다.

도진석의 꼬리들을 모조리 내칠 작정이었다.

대찬이 TF팀의 똬리를 풀지 않고 있자 수군거리는 말들이 많아졌다.

대찬이 뽑은 칼날이 무슨 부장을 겨누고 있네, 차·과장급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네 하는 뜬소문이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뜬소문으로 들리지 않았다.

켕기는 구석이 있는 이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 좁은 필래타워 안에서 말이 한번 돌기 시작하면 얼마나 빨리 돌겠는가.

그간 도진석 전무의 그림자 뒤에 숨어서 궁싯거리던 말들이 대찬의 귀에 응당 들어갔으리라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도진석 전무가 축출된 이후, 마트사업부문은 면세점사업부문장인 오윤 전무가 겸임하고 있었다.

그런 오윤 전무의 앞에 한 떼의 직원들이 도열했다.

오윤 전무는 그들을 흘끗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직원들은 머뭇거리다가, 가장 연차가 높은 부장이 앞으로 나섰다.

“저… 전무님, 저희 사표입니다.”

“사표요?”

“예, 부디 수리해주십시오.”

오윤 전무는 그제야 그들의 얼굴을 죽 둘러보았다.

도진석의 끄나풀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오윤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뭉텅이의 사표들을 들어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께 보고하죠. 짐 정리하고 계세요.”

“…예, 그럼.”

“잘 가세요.”

오윤 전무는 예의상으로라도 붙잡는 시늉 한번 하지 않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이 제출한 사표는 모두 수리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징계위원회를 설치해서 해고통보를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

본디 장수의 목은 쳐도 졸개들까지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는 것이 으레 있는 관용이었다.

실익은 없고 되레 마음의 짐만 늘어나는 일이었다.

퇴로는 열어주어야지, 생계 팍팍한 그들을 가혹하게 대우하면 밤길마다 노심초사하는 일이 다반사가 될 것이었다.

도진석 라인의 직원들은 줄줄이 사탕으로 정리되었다.

특히 도진석이 주무르던 마트사업부문은 황량한 들판처럼 빠진 자리가 허다했다.

그렇게 도진석의 흔적을 회사에서 말끔히 도려내고 나서야 TF팀은 해산했다.

필래 비바체 창사 이래, 필래그룹 계열사 전체를 통틀어 봐도 손꼽히는 대대적인 숙청작업이었다.

필래 비바체는 이 처분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데 힘을 썼다.

개인정보를 팔아넘긴 오명을 씻기 위해 초고강도의 대대적인 징계에 착수한 일이 언론의 윤색을 거쳐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야, 방금 매입부 다녀오는 길인데 빈자리가 많기는 엄청 많더라고요.”

직접 현장을 보고 온 허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다혜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트사업부문 전기료가 전달 대비 절반으로 줄었다는 소문도 있어요. 아마 농담 반, 진담 반이겠죠.”

“덕분에 남은 직원들은 기쁨 반 슬픔 반으로 일한대.”

“일할 사람 싹 사라져서 당분간 매일같이 야근할 테니 슬픔은 알겠는데 기쁨은 왜 또 반이에요?”

그러자 허운은 씩 웃으며 말했다.

“갈려 나간 상사들이 뭣 같기로 유명한 연놈들이었대. 그런 인간들 줄줄이 갈려 나가니 시달렸던 사람들은 환호성 지르는 거지.”

“하긴 도진석이 그 모양인데 그 추종자들이라고 다르진 않겠죠. 그 나물에 그 밥이니까.”

“동감.”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한태윤 차장이 대찬에게 물었다.

“인력 공백이 장기화되면 회사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겁니다.”

“네, 그러겠죠.”

“서둘러 인력충원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경력직 채용도 있을 겁니다. 다른 계열사에서 넘어오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하지만 그것부터 하는 건 순서가 아니죠.”

“그럼…….”

“일단 내부인원으로 빈자리를 채워봐야죠. 아마 조만간에 비정기인사가 있을 겁니다.”

그 말에 혁신경영팀 직원들은 동시에 꼴깍, 침을 삼켰다.

대찬은 허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허 과장님, 설마 이 타이밍에 승진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그럼 진짜 양심 없는 거다.”

“저,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허 과장 침 삼키는 소리가 제일 컸어.”

“…기대 안 해요. 가늘고 길게 갈 거라고요, 저는.”

“잘됐네, 그럼. 난 또 김칫국 사발째 들이켜는 줄 알았지.”

“…안 마셨다면 거짓말이고요.”

“그거 허 과장 김칫국 아니에요. 내려놔.”

“서럽네, 진짜.”

대찬은 흐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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