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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46화 (346/556)

난 할 수 있어 346화

“맞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인력이 좀 많이 필요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혁신경영팀 소속 직원을 제외한 모든 인력을 이 일에 투입해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방팔방 뛰어다니느라 고생 좀 하실 텐데 제가 감사하죠.”

대찬은 웃음을 내비쳤다.

대찬은 자신이 수족처럼 부리는 인력을 제외한 모든 인력을 감사팀 소속 직원들의 통제 하에 두었다.

수족처럼 부린다는 건 그만큼 막 다룬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호흡이 잘 맞는다는 뜻이었다.

관건은 도진석 전무와 보험사 간의 커넥션이었다.

대찬은 도진석 전무가 보험사로부터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금전적 이익을 담보 받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이 일을 밀어붙였을 리가 없었다.

도진석 전무와 보험사 사이 모종의 거래를 밝혀내면 그걸로 게임은 끝난다.

하지만 무슨 의혹이든 입증하는 쪽에 책임이 있었다.

심증에는 백 퍼센트가 없다.

입증되지 못한 의혹은 유언비어, 날조, 선전 선동의 딱지가 붙어 역공을 허용하고 만다.

그렇기에 그 주변을 탐문해 둘 사이의 관계를 파헤치겠다고 한 감사팀의 전술에 대찬은 상당한 인력을 붙여 지원했던 것이었다.

비록 고리타분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고전적이었지만 그게 정공법이었다.

하지만 정공법으로 일관하는 건 현명한 전술은 아니었다.

정공법에 허를 찔리는 건 하수뿐이다.

도진석 전무가 하수였다면 이런 매머드급 TF팀을 꾸리기 전에 알아서 와르르 무너졌을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데.’

대찬은 팔짱을 낀 채 고심했다.

그때 그가 직접 TF팀에 섭외했던 상품기획부 장 과장이 찾아왔다.

장 과장은 타 부서 직원들 중에서 대찬과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이런저런 일로 교분이 두터워지다가, 지난날 극동일보에 의해 대찬이 코너에 몰렸을 때 부쩍 더 가까워졌다.

직원들 사이에서 대찬의 옹호여론을 환기시킨 장 과장의 행동은 대찬에게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던 것이니 장 과장이 더 미덥게 느껴졌다.

덕분에 둘 사이는 한 층 더 가까워져 있었다.

“부장님.”

“아, 장 과장님.”

장 과장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답답하시죠.”

“안 그렇다면 거짓말이죠.”

장 과장은 잠깐 머뭇거리다 말했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판단은 부장님이 하시는 거니까 일단 말씀이나 드려보려고요.”

“제보는 언제든 환영이에요.”

“저희 상품기획부 부장님 지내셨던 최 부장님 있잖습니까.”

“네.”

“도 전무랑 앙숙이었던 거 아시죠?”

대찬은 햇병아리 시절 도진석 전무의 밑에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장 과장은 대찬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이번에 도 전무가 코너에 몰리니까 옳다구나 하면서 제게 귀띔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요?”

“네.”

“빨리 얘기해주세요. 급합니다.”

“그러니까…….”

장 과장은 누가 들을세라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 말을 들을수록 근심 가득했던 대찬의 얼굴이 조금씩 맑아졌다.

장 과장과 한바탕 대화를 나눈 뒤, 대찬은 한태윤 차장과 옥상으로 올라갔다.

둘은 동시에 담배를 물었다.

한태윤 차장은 대찬 쪽으로 살짝 몸을 틀었다.

“팀장님, 감사팀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요?”

“글쎄요. 낚시 같은 거라. 고기가 물면 성공이고 안 물면 시간 낭비죠. 그래도 이쪽 방면으로는 프로니까, 믿고 기다려야죠?”

“마냥 감사팀만 믿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였으면 감사팀한테 맡기고 발 안 담갔죠.”

“네, 그랬으면 최소한 실패해도 우리 쪽에 문책이 오진 않았을 테니까. 이렇게 된 이상, 감사팀과는 별개로 우리도 손을 써야 합니다.”

대찬은 씩 웃었다.

“그래야죠.”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좋은 방법인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습니다.”

“한번 들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근데 그 전에 한 가지가 걸리네요.”

“어떤 게 말씀이십니까?”

대찬은 한태윤 차장을 슬그머니 바라봤다.

“한 차장님이요.”

“예? 제가 왜…….”

“지나치게 올곧고 고지식하시잖아요.”

한태윤 차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혹시 옛날에 천사소녀 네티 보신 적 있으세요?”

뚱딴지같은 질문에 한태윤 차장의 얼굴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예?”

“아, 저랑 세대가 안 맞으시나.”

졸지에 늙은이 취급을 받자 한태윤 차장이 서둘러 대답했다.

“본 적 있습니다.”

“그래요? 거기서 주인공이 그러잖아요. 주여,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

“…그런데요?”

“차장님, 제가 정의로운 개새끼가 되는 걸 허락해주실래요? 왠지 한 차장님께 허락을 받아야 될 것 같단 말이죠.”

그러자 한태윤 차장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지금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닌데 제가 뭐라고 팀장님 결정에 훈수를 두겠습니까.”

“그럼 허락해주시는 거죠?”

“애초에 허락할 권한이 저에게 없습니다.”

대찬은 웃으면서 담배를 비벼 껐다.

한태윤 차장의 재가 아닌 재가까지 얻어낸 대찬은 바로 움직였다.

감사팀의 지휘 하에 이뤄진 탐문수사가 이렇다 할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대찬은 한태윤 차장, 유채경, 홍은주만을 앞에 두고 얘기했다.

“큰 틀의 움직임은 감사팀에게 위임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겁니다.”

“우리의 일이라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네?”

“도진석 전무가 구사했던 방법을 똑같이 돌려줄 겁니다.”

“…그게 뭡니까?”

“도진석 전무가 송희근 과장을 어떻게 괴롭혔죠?”

홍은주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송 과장님 개인보다는 주변을 못살게 굴어서 나가떨어지게 했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똑같이 돌려줄 생각입니다.”

“…도 전무 동기라도 괴롭히실 생각이신가요? 그런 사람은 없는데.”

한태윤 차장의 말에 대찬은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한 차장님은 고지식하세요.”

TF팀의 대대적인 자료제출 요구가 있던 날로부터 닷새가 지났다.

TF팀은 어떤 보고서도 서원웅에게 올리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말은, 지금의 도진석 전무가 신봉하는 말이었다.

그는 측근들을 모아놓은 자리에서 비식비식 웃었다.

“조대찬이가 생각 외로 빈 깡통인데?”

그러자 측근들이 도진석 전무의 말에 동조했다.

“거 보십시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제깟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죠.”

“검찰 출신도 아니고, 체질에도 안 맞는 감사팀 노릇 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겠죠.”

“통화내역하고 입출금 거래내역 정도만 털면 알아서 우수수 나올 줄 알았나 본데, 이거 빼도 박도 못하는 완전한 외통수에 걸렸습니다.”

내심 불안하던 마음 한구석이 개운해진 도진석 전무는 그들의 낙관론을 기분 좋게 들었다.

“우리도 슬슬 반격 준비해야지.”

“물론입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내정치를 위해 발호(跋扈)한 조대찬 부장을 강력히 규탄한다. 사내 게시판에 저희 포함해서 임직원 일동 명의로 글을 올릴 겁니다.”

“붓질만으로는 안 돼. 칼질을 해야지. 놈들을 예의주시해. 헛발질 한 번씩 할 때마다 차곡차곡 쌓아둬. 임원회의에서 한 큐에 쏟아내서 쓸어버릴 테니까.”

“하하, 얼른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속이 아주 그냥 뻥 뚫릴 것 같습니다.”

“음.”

도진석 전무는 흡족하게 웃었다.

그때 한 직원이 이들이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전무님.”

“무슨 일이야.”

“TF팀에서 자료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도진석 전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짜증을 냈다.

“아, 어디 그게 하루 이틀이야? 어차피 거래내역하고 통화내역 이상 가는 자료는 없어. 뭘 그렇게 설레발을 치고 있어.”

“필래마트와 거래하는 하청업체 목록을 요구했는데, 조건이 달려있습니다. 이게 석연치 않아서요.”

“석연치 않다니, 무슨 말이야.”

“월드몰 때부터 거래를 해온 업체, 그것도 필래마트로 합병되면서 선정에서 탈락한 업체들 명단까지 요구하고 있어요.”

그러자 도진석 전무의 미간에 주름이 단단히 잡혔다.

“…뭐?”

“이번 이슈하고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요.”

그러자 측근들이 입을 열었다.

“전무님,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지만 거절하십시오.”

“자료가 없다고 잡아떼면 됩니다.”

그러자 직원이 그들의 말에 먼저 반응했다.

“이미 대표님 지시까지 떨어져서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대찬은 자료제출요구와 동시에 마트사업부문 사무실에 출몰했다.

어떤 수작도 부리지 못하게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혹여 수상한 시도를 자신이 감지하지 못할까, 여차하면 자료 복구를 하도록 전산팀에도 언질을 넣어놓은 참이었다.

결국 대찬은 원하던 자료를 손에 넣었다.

대찬은 자료를 바로 TF팀 사람들과 공유했다.

유채경이 대찬에게 물었다.

“팀장님, 이걸로 어쩌시게요? 이번 이슈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응, 이번 이슈하고는 관계없지만 도진석 전무하고는 관계있으니까.”

“그럼 인신공격으로 흘러가는 거 아닌가요?”

“맞아. 그래서 한 차장님한테 미리 허락 구해놓은 거야. 한 차장님, 차장님도 동의하신 겁니다.”

“예? 저야 어떻든 좋지만 이걸로 어떻게…….”

대찬은 웃으며 자료를 탁탁, 탁자에 두드리면서 가지런히 정리했다.

“우리 TF팀의 목표는 뭡니까?”

“어… 이번 개인정보 수집을 통한 금전적 이익 편취의 책임소재를 가리고 잘못을 시정하는 것 아닙니까.”

“네, 표면적으론 그렇죠.”

“그럼 실질적으론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실질적으로는 도진석 죽이기.”

“…….”

“도진석의 상투만 잡으면 보험사와의 커넥션을 시시콜콜 팔 것도 없습니다. 도진석은 나름의 방책을 세워놨을 거예요. 계속 거기만 두드리다가는 시간만 버리고 소득이 없을 확률이 높아요.”

“그럼 도진석 전무의 다른 비리를 캐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의 견고한 마지노선을 어떻게 뚫었는지 아세요?”

“뚫지 않고 우회해서 돌아갔죠.”

“네, 저희도 그 악랄한 파시스트들 흉내를 내봅시다.”

그 말에 유채경이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다른 비리를 새로 캐는 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건데…….”

“네, 그래도 깜깜이 상태에서 시작하는 건 아녜요.”

대찬은 씩 웃었다.

필래마트가 월드몰을 인수합병한 건, 작은 쪽이 터무니없이 큰 쪽을 잡아먹은 것이었다.

보아뱀이 코끼리를 집어삼킨 것보다도 더 그랬다.

당시 월드몰은 수십 곳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 월드몰을 먹어치운 필래마트는 폐업 위기의 흥읍점 1곳뿐이었다.

그렇기에 매장에 물건을 납품하는 하청업체들은 대개 월드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벌써 필래마트가 대대적으로 출범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니 여러 업체가 교체되긴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월드몰 때부터 관계를 이어온 터줏대감들이 많았다.

대찬은 대뜸 그들을 겨냥하고 나섰다.

하인리히의 법칙.

한 번의 대형사고는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사소한 소동을 거쳐 일어난다.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킨 자가 그 전에 숱한 음주운전을 벌였을 거라고 단정하는 게 대부분 맞아떨어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예시였다.

그 법칙을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 이랬다.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기려던 지금의 대형사고가 일어나기까지 자잘한 부정과 부패가 숱하게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대담한 사고는 보통 담력이 아니고서는 벌이지 못한다.

그리고 담력은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단련되기 마련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린아이의 양심은 삼각형이지만 점점 마모되어 어른이 되면 원형이 된다고 했다.

삼각형의 양심은 가슴 속에서 회전한다.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면 이 삼각형의 모서리에 찔려 아프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 원형의 양심이 아무리 회전해도 아프지 않다는 것.

그만큼 양심이 무뎌져 거리낌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이걸 담력으로 치환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작은 사고만 쳐도 조바심이 나고 콩닥콩닥 뛰던 가슴이었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덧 백억 단위의 사고를 쳐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대찬은 도진석 전무의 저런 터무니없는 담력이 숱한 경험으로 단련되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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