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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42화 (342/556)

난 할 수 있어 342화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송 과장님! 아예 저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하셨군요!”

대찬이었다.

그의 등장에 옥문영 상무를 포함한 사람들은 재림예수라도 목격한 듯 감격했다.

옥문영 상무는 그를 격하게 맞이했다.

“조대찬! 나이스 타이밍!”

“저한테는 최악의 타이밍이에요.”

오다혜가 반가움을 감추지 못한 표정으로 대찬에게 물었다.

“팀장님, 아직 돌아오시려면 며칠 남은 거 아니셨어요?”

“일정상은 그런데, 얼른 해치워버렸죠.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아, 다행이다.”

대찬은 송희근 과장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지은 죄가 있는 송희근 과장은 흠칫 놀랐다.

“제가 걱정한 보람을 아주 흠뻑 느끼게 해주시네요, 과장님. 아니, 이제 과장님이 아니지. 희근이 형!”

“…죄송합니다.”

“왜 그러세요. 이제 제2의 인생을 사실 텐데. 말 까요, 희근이 형.”

“…….”

대찬은 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여러 가지 의미가 복잡하게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송희근 과장이 원망스러운 동시에 대견했다.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건 원망스러웠지만, 또 이렇게 대책 없이 안 저질렀으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송희근 과장은 회사생활의 마지막을 아주 화려하게 장식해주었다.

그건 대찬이 송희근 과장에게 팀장 대리를 맡기면서 원하던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송희근 과장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대찬은 애초에 자신이 없는 상황에서의 팀원들이 무엇이 문제인지 실마리조차 잡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했었다.

‘내가 내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지.’

그런데 그들은 대찬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만들었다.

대찬의 팩스 조언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그것 이상으로 자신들의 직분을 해내주었다.

거기에 송희근 과장의 퍼포먼스란 잘했고 못 했고를 떠나서 그야말로 화려했다.

도진석 전무에게 정면으로 항거하는 것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필래마트의 잠재적 고객들인 전 국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렸다.

좋게 말해주자면 이른바 창조적 파괴였다.

송희근 과장이 떨어뜨린 원자폭탄 때문에 필래 비바체는 그야말로 완전한 공황상태에 빠졌다.

필래유통에서 필래마트가 떨어져 나오고, 택배사업과 면세점사업까지 흡수하면서 필래 비바체가 탄생했다.

그렇게 이제 몇 년이 흘렀다.

필래 비바체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핵폭탄급 이슈는 미증유의 영역이었다.

직원들 앞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는 대찬의 속내도 실은 복잡했다.

송희근 과장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자신이 어떻게 나서야 할지 갈피가 대번에 잡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마저 흔들리면 직원들의 불안감은 몇 배로 증폭된다.

최후의 순간에도 자신만큼은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대찬은 부러 더 큰 목소리를 냈다.

그는 송희근 과장의 가슴을 더듬었다.

송희근 과장은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이러세요?”

“여기쯤 있지 않나요?”

“뭐가… 말입니까?”

대찬은 대답하지 않고 송희근 과장의 외투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는 이제 안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 시국에 하필 난데없는 사내 성추행.

직원들은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해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아, 찾았다.”

대찬은 송희근 과장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는 웃으면서 송희근 과장한테 말했다.

“이거, 사표죠?”

“아, 네…….”

“부서장인 제가 접수했으니까 윗선에 올려서 수리되도록 할게요.”

“아…….”

“자, 송 과장님은 이만 조퇴하시죠.”

대찬의 말에 송희근 과장은 살짝 놀랐다.

“팀장님.”

“말 놓으시라니까요. 대찬아, 해보세요. 대찬아.”

“…수리되기 전까지는 팀장님이라고 할게요. 일단 제가 저지른 일이니 제가 남아서 해결을…….”

대찬은 피식 웃었다.

“해결이요? 송 과장님이 무슨 수로 해결할 건데요. 방법 있어요?”

“…….”

“없으시잖아요. 괜히 남아서 걸리적거리지 마시고, 형수님 모시고 근사한 데서 식사나 하세요.”

“…….”

“왜 대답이 없어요? 아셨어요?”

송희근 과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죄송…….”

“죄송하단 말씀도 이젠 벌써 물려요. 아무 말씀 마시고 일단 가세요.”

“아, ……알겠습니다.”

“송별회는 일 좀 정리되면 정식으로 할게요.”

다른 직원들에게 일일이 사과의 말을 전하려는 송희근 과장의 등을 대찬이 억지로 떠밀었다.

송희근 과장은 어정쩡한 자세로 계속 이쪽을 돌아보다가 이내 회사를 떠났다.

대찬은 얕은 한숨을 쉬면서 송희근 과장의 사표를 자신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옥문영 상무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대찬에게 말했다.

“이제 어떡할 거야?”

대찬은 간절한 눈빛으로 옥문영 상무를 바라봤다.

“상무님.”

“왜.”

“오늘은 종일 제 옆에 꼭 붙어 있어 주셔야 합니다?”

그 말에 옥문영 상무는 질색했다.

“뭐? 내가 왜?”

“저 무서워요.”

“지랄.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말 해라.”

“아, 진짜 무섭다니까요. 스케일이 다르잖아요.”

“사실 나도 무섭긴 해. 똘똘 뭉쳐있자고.”

임원급 대우를 받는 사람들 중에서는 옥문영 상무에게 대찬이, 그리고 대찬에게는 옥문영 상무가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그러니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옥문영 상무의 경영지원부문 소속 직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상무님.”

“어, 무슨 일이야.”

“지금 대표님께서 긴급 임원회의 소집하셨습니다.”

그 말에 옥문영 상무의 관자놀이가 꿈틀했다.

“임원회의? 확대임원회의가 아니고?”

“네, 전달은 임원회의로 받았습니다.”

임원회의와 확대임원회의의 차이는 딱 하나다.

확대임원회의에는 임원은 아니지만 임원급인 대찬이 참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임원회의에는 참석할 수 없었다.

옥문영 상무는 찜찜한 얼굴로 잠깐 고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올라가지.”

“예, 상무님.”

직원이 물러가고, 옥문영 상무가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내가 올라가서 확대임원회의로 변경하자고 제의할 거야. 연락 오면 바로 올라올 채비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러죠.”

옥문영 상무는 우선 대찬을 놔두고 임원회의에 참석했다.

임원회의의 공기는 혁신경영팀보다 무거우면 무거웠지, 가볍지는 않았다.

좌장인 서원웅의 표정 역시 착 가라앉아 있었다.

모두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옥문영 상무가 침묵을 깼다.

“대표님.”

서원웅의 생각 많은 눈빛이 옥문영 상무에게로 향했다.

“네.”

“확대임원회의로 변경하시죠.”

“조 부장 아직 파푸아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묻는 질문은 옥문영 상무에게가 아니라 도진석 전무에게 했다.

옥문영 상무는 눈빛을 벼렸다.

아마 도진석 전무가 임원회의로 하자고 먼저 제안했을 것이다.

옥문영 상무는 도진석 전무 들으라는 듯 크게 대답했다.

“주어진 업무 마치고 오늘 아침에 급거 귀국했습니다. 지금 혁신경영팀 사무실에 있습니다.”

“아, 몰랐네요.”

도진석 전무가 옥문영 상무에게 딴죽을 걸었다.

“지금 혁신경영팀은 죄인이야.”

“…예?”

옥문영 상무는 제 귀를 의심했다.

“그쪽 직원이 말썽을 부려도 단단히 부려서 이 사달이 난 거 아니야.”

옥문영 상무는 기가 막혔다.

하지만 벌써부터 난장판을 쳐놓을 생각은 없었다.

옥문영 상무는 그녀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서원웅에게 말했다.

“도 전무님 말씀대로라면 더 불러야 합니다. 책임당사자가 회의에 나와야 질책을 하든 해결책을 강구하든 할 테니까요.”

“옥 상무님 말씀이 맞네요. 이 시간부로 임원회의를 확대임원회의로 변경합니다.”

서원웅이 결정하자 옥문영 상무는 바로 대찬을 회의실로 불렀다.

준비하고 있던 대찬은 바로 회의실로 들어갔다.

대찬은 꾸벅 서원웅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서원웅은 가볍게 목례했다.

그 순간, 대찬은 서원웅이 한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알고 지낸 세월이 십 년을 훌쩍 넘었다.

단순한 십 년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난관을 함께 돌파해온 십 년이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날보다 지금이 더 낯설었다.

대찬은 도진석 전무에게 눈빛을 한번 쏘고, 말석에 엉덩이를 주저앉혔다.

인원이 모두 참석하자 오윤 전무가 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회의는 다들 아시다시피 어제 발생한 이슈에 대한 대책과 사후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되었습니다.”

오윤 전무는 잠깐 말을 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야말로 긴급회의입니다. 딱딱한 절차와 규칙을 생략하고 자유롭게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도진석 전무가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오프라인에서는 그토록 한심하던 작자가 온라인에서는 그토록 영향력을 지닌 존재였을 줄이야.

그도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주변 사람들이 걱정과 우려를 가장해 탐색을 위한 전화를 했다.

심지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대뜸 쌍욕을 하고 뚝 끊어버리는 일까지 있었다.

이미 그는 출근하기 전부터 송희근 과장의 폭로로 인해 한 차례 정신이 와르르 무너진 터였다.

그는 이 사태의 귀책사유가 철저히 송희근 과장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송희근 과장을 충동한 장본인이 대찬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충동하진 않더라도 간접적인 영향력은 분명히 행사했으리라 확신했다.

그가 생각하는 송희근 과장은 태생적으로 한심한 자였다.

그런데 근자의 태도를 보자면 대범한 걸 넘어서 세뇌당한 가미카제처럼 달려드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 세뇌, 정신교육의 주체가 대찬이 아니면 누구이겠는가.

즉, 1차적인 책임은 송희근 과장에게 있고 2차적인 책임은 대찬에게 있다.

도진석 전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대찬을 보는 시선이 고울 리 만무했다.

나오는 말도 적개심이 다분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해결에 앞서 책임소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일단 해결이 먼저이지 않겠습니까.”

오윤 전무가 점잖게 제지했지만 도진석 전무는 완강했다.

“책임소재를 밝혀야 해결을 할 수 있습니다.”

“…….”

“억지 쓰는 게 아닙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대외적으로 유감 표명을 하든, 사과를 하든 해야 할 겁니다. 그럼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 분명히 밝혀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도진석 전무가 말을 맺자마자 옥문영 상무가 나서려고 했다.

기실 그녀와 그녀의 경영지원부문은 이 사태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건 대찬을 위한 마음에서였다.

아무래도 대찬이 완전히 떳떳하지는 못하리라는 판단이었다.

어쨌거나 송희근 과장이 이 일의 원인제공자였다.

그리고 그의 직속상사가 대찬이었다.

그러나 대찬은 옥문영 상무에게 자신의 짐을 떠넘길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건 이기적이고 이타적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찬은 도진석 전무의 행태에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

대찬은 언짢음이 노골적으로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발언했다.

“도 전무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어이가 없네요.”

“…뭐?”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하셨죠? 분명히 하죠. 도 전무님께 책임이 있습니다. 부정하시는 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도진석 전무가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태 평정심을 지키던 그는 대찬의 말에 마치 스위치가 눌린 듯 발광했다.

“이게 지금 누구한테 뒤집어씌우고 있어! 나한테 책임이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조 부장한테 책임이 있겠지!”

“저는 2주 간 파푸아뉴기니로 출장 가 있었습니다. 저한테 책임을 물으시는 건 너무 파렴치하신 거 아닙니까?”

도진석 전무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뭐, 파렴치?”

“염치가 없어도 웬만큼 없으셔야죠.”

“뭐, …뭐라고?”

“송 과장 아니었어도 이거 공론화되는 거 시간문제였습니다. 이걸 소비자들이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습니까?”

“조 부장, 말을 좀 가려서 하지?”

“대역죄인 앞에 두고 어떻게 가려서 합니까. 존댓말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세요.”

대찬의 말은 유례없이 높은 수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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