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341화 (341/556)

난 할 수 있어 341화

송희근 과장과 안면이 있던 경비가 꾸벅 인사를 했다.

“송 과장님, 아까 퇴근하시더니.”

“아, 잠깐 일이 있어서요.”

“그러십니까. 참, 넥타이 부대들도 고생 많습니다.”

“하하, 넥타이.”

송희근 과장은 웃으며 인사하고는 사옥 안으로 다시 들어서면서 넥타이를 풀었다.

가방 깊숙한 곳에 넥타이를 처박았다.

다시 돌아온 혁신경영팀 사무실은 깜깜했다.

혁신경영팀 직원들은 도진석 전무의 수법을 알아챘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있어 봤자 답이 안 나오는 상황.

때문에 직원들은 6시 땡 치자마자 퇴근했다.

송희근 과장은 자기 자리 위의 형광등을 켰다.

그리고는 은은한 조명이 쏟아지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러니까 연극배우라도 된 것 같네.”

송희근 과장은 잠깐 히죽 웃었다.

그는 휴대폰으로 방송을 켰다.

보통 화면에 턱 아래부터 나오도록 하기 때문에 항상 각도는 아래를 향해 있었다.

송희근 과장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각도를 위로 올렸다.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입사했을 땐 이목구비가 볼품없어도 피부는 탱탱했는데, 이제는 거무튀튀, 거칠거칠, 너도 많이 늙었다.’

송희근 과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방송을 켠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청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방송 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시청자 대부분이 월 이백, 삼백을 받는 넥타이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일터에 모였다가 버스에, 혹은 지하철에 실려 저마다의 잠자리로 흩어지는 길이었다.

-쏭과장님이 이 시간에 라이브를?

-저 아저씨 누구예요? 설마 쏭과장?

-와, 목소리 듣고 딱 예상한 대로 생겼네. 친근합니다.

-대박. 쏭과장 드디어 얼굴 공개하는 거임?

-얼굴 뭐 하러 공개하냐 존나 못생겼네.

송희근 과장은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쏭과장입니다.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들은 평소 방송과는 사뭇 다른 배경을 보고 또 한 마디씩 보탰다.

-회사에서 라이브 켠 거임?

-회사에서 얼공(얼굴공개)? 쏭과장이 드디어 미쳤나 봅니다.

“네, 일단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뭐, 죄송할 일인가? 내 얼굴이 여러분 얼굴인데 그렇죠?”

-아 솔직히 인정.

-거울 보는 줄 알았음.

-우리 과장이랑 똑같이 생겼음. 꼭 저렇게 생긴 애들이 일 더럽게 못하던데.

“오늘 못생긴 얼굴을, 그것도 회사에서 보여드리는 건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폭탄선언 할 겁니다. 구독자분들 더 모이면 빵 터트릴랍니다.”

썸네일에 떡하니 아저씨 사진이 올라가 있으니 원래 라이브 방송을 잘 시청하지 않던 시청자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시청자는 2천 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송희근 과장이 쏭과장으로서 해왔던 생방송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화면의 채팅창도 시청자 수에 비례해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때가 무르익자 송희근 과장이 칼을 빼들었다.

“오늘 폭로를 좀 하나 하려고 하는데요.”

지금까지 시시한 회사 얘기나 꿍얼거릴 때는 능숙하던 송희근 과장의 입담이, 막상 큰 건을 입에 담으려니 잘 풀리지 않았다.

송희근 과장은 찬물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일단 제 신원부터 밝히겠습니다. 저는 필래 비바체 혁신경영팀에 근무하고 있는 송희근 과장이라고 합니다.”

-미쳤다. 아예 이름하고 회사를 까버리네.

-설마 오늘 막방은 아니죠?

-형 왜 그래. 나 무서워.

-비바체 혁신경영팀? 거기 윤이영 남친 일하는 곳 아닌가? 커피남?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이러세요?

“뒷감당할 일 없어요. 왜냐하면, 내일 사표 낼 거거든요.”

그러자 채팅창이 폭주했다.

2천 명의 시청자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는 감상에, 글씨를 다 읽을 새도 없이 위로 밀려나버렸다.

송희근 과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제가 뭘 폭로하려고 그러냐면…….”

송희근 과장은 필래마트 전국 매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비밀스런 거래를 폭로했다.

고객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보험사에 팔아넘기는 일련의 과정을 제 딴에는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광분했다.

알음알음 소식을 들은 사람들, 본래 쏭과장TV의 구독자도 아니었던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이제는 3천 명을 헤아렸다.

“이건 우리 회사에서 마트사업을 전담하는 전무의 손에서 자행되었거든요.”

송희근 과장은 수상한 기안서를 반려한 일부터, 당장 오늘 있었던 도진석 전무와의 한 판까지 고해바쳤다.

그러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반으로 갈렸다.

반절은 송희근 과장의 폭로에 공감하면서 격하게 분노를 토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머지 반절은 다소 회의적이고 비우호적인 반응이었다.

저게 뭐 하는 짓이냐.

저 말을 어떻게 다 믿느냐.

증거는 갖고 하는 말이냐.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은 지점을 공격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벌써 2년 차의 인터넷 방송인.

송희근 과장은 어떻게 트집을 잡는 부류가 등장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증거요? 증거 있습니다. 영상도 있고 녹음도 있어요. 재밌을 거예요. 쌍욕도 나오고, 영상 중간에는 제가 처맞기도 하거든요. 즐감하세요.”

송희근 과장은 덤덤히 지금껏 몰래 촬영한 영상과 녹음한 음성파일을 재생했다.

도진석 전무의 폭언과 망나니 칼춤이 고스란히, 노골적으로 전달되었다.

그러자 의심을 품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송희근 과장에게 공감은 못할망정 없는 일이라고 따지지는 못했다.

폭언과 폭행도 그렇거니와, 당장 오늘 녹음된 파일에는 도진석 전무가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장감이 넘쳤다.

자극적이었다.

공익적 폭로가 아니라 한편의 오락으로서도 손색없었다.

송희근 과장의 폭로에 쩍쩍 하품을 내뱉던 철없는 치들도 이 영상과 녹음에는 반응했다.

-와, 대박. 싸다구 스냅 한번 찰지다. 한두 번 때려본 게 아닌 거 같은데?

-미친, 지 입으로 줄줄 다 말하네. 필래마트 좋게 봤는데 못 쓰겠네.

-이따위로 내 개인정보 퍼가서 뒷구멍으로 돈 받아먹었다는 거야? 어이가 없다, 진짜.

“감히 공익을 위해 이 한 몸 희생하려고 폭로했다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나, 한심한 인간이거든요.”

송희근 과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코너에 몰릴 대로 몰려서 살려고 까는 겁니다. 입바른 소리 한번 했다가 죽을 거 같아서, 살려고.”

송희근 과장은 덜덜 떨리는 두 손을 꽉 부여잡았다.

“이 영상, 마음껏 퍼 날라주세요. 퍼뜨려주세요. 그래서 한 전무의 전횡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송희근 과장은 전횡의 당사자를 필래 비바체가 아니라 도진석 전무로 규정지었다.

만일 필래 비바체를 타깃으로 삼는다면 여러 가지 의미로 일이 곤란해졌다.

특히 자신에게 일을 맡겼던 대찬부터가 그랬다.

물론 도진석 전무로 과녁을 한정했다 하더라도 정도만 덜할 뿐이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회사 일을 바깥으로 발설한 이상 대찬에게 모종의 영향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딴에는 대찬에게, 그리고 혁신경영팀 직원들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극적인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이 폭로는 공익제보가 아니었다.

이 곤란한 상황, 그리고 몰릴 대로 몰린 처지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역시나 그의 배려는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었고,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이었다.

“저는 오늘부로 송희근 과장이 아니라, 전문 스트리머 쏭과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자라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송희근 과장은 그렇게 말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그리고는 후다닥 도망치듯 필래그룹의 사옥을 떠났다.

그렇게 선언하고 나니 아늑하던 회사가 다르게 느껴졌다.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저녁을 준비하던 그의 아내는 그런 남편의 얼굴을 보고도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차리던 밥상을 마저 차리며 말했다.

말은 길지 않았다.

“잘했어. 밥 먹어.”

“…뭔 줄 알고 잘했대.”

“방송 봤어.”

아내는 짧게 대답하고 더 말하지 않았다.

송희근 과장은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식탁에 앉아 밥술을 떴다.

그야말로 폭탄이 떨어졌다.

송희근 과장의 폭로를 실시간으로 감상했던 3천 명의 시청자는 이 사실을 열심히 퍼뜨렸다.

송희근 과장이 편집해서 올린 영상도 조회 수가 폭주했다.

순식간에 10만, 20만, 30만, 하루 만에 40만 조회를 돌파했다.

송희근 과장의 휴대폰은 끝도 없이 울리는 알람 때문에 진동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그를 알아본 사람들, 그리고 냄새를 맡은 기자들의 연락이 빗발쳤다.

송희근 과장은 아예 휴대폰을 꺼버렸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알아.”

“당신이 컨트롤 못하는 거까지 떠안으려고 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그래도 마무리를 확실히 해야겠지. 내가 해야 되는 일은 끝까지 해야겠지.”

“잘 아네.”

아내는 두툼한 생선살을 발라 송희근 과장의 밥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다음날.

항상 출근하기 싫었지만 이날만큼은 죽기보다 싫었다.

송희근 과장은 무심결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

출근하는 길에서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그를 괴물 보듯 했다.

놀랄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건 혁신경영팀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도진석 전무 다음으로 직격탄을 맞은 당사자들이었다.

도진석 전무야 지은 죄가 있다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예감은 하고 있던 허운은 이마를 탁 짚으며 괴로워했다.

한태윤 차장 이하 다른 직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어리둥절한 와중에 대책 없이 일을 저지른 송희근 과장에 대한 원망이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누구도 그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선뜻 뭐라 말하지 못했다.

송희근 과장이 먼저 그들에게 푹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다들.”

오다혜는 얼굴이 잔뜩 부어 있었다.

그녀의 불만도 타당했다.

대찬에서 서원웅으로 이어지는 안전한 라인을 타고 우여곡절은 많지만 항상 승승장구하던 차였다.

그런데 송희근 과장이 난데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공익이야 좋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익보다는 사익을 우선시한다.

그녀는 마음 같아서는 도대체 왜 그랬냐고 쏘아대고 싶었다.

하지만 간신히 그 욕구를 참았다.

그녀도 송희근 과장이 감내했던 일련의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선택을 마냥 비난만 할 수는 없는 탓이었다.

개중 가장 대범한 한태윤 차장이 먼저 입을 뗐다.

“과장님, 과장님 행동에 잘했다 못했다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잘 모르겠어서요.”

“…미안.”

“일단 그건 미뤄두고, 해결책을 먼저 강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잔뜩 주눅 든 송희근 과장을 보고 한태윤 차장은 피식 웃었다.

“저지를 거 다 저질러놓으시고 이제 와서 소심한 척 하세요, 왜.”

허운도 흐흐 웃으면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그러게요. 우리 쏭과장님, 나중에 후원금 팍팍 쏘면 저한테 재롱도 떨어주시고 그러실 거예요?”

“…….”

그렇게 어색함 반, 어수선함 반,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인 와중에 옥문영 상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야! 송희근!”

“사, 상무님!”

“네가 돌아도 아주 단단히 돌았구나.”

“죄송합니다.”

“이야, 대단해. 아마 필래그룹 역사상 가장 또라이 같은 과장으로 기록될 거다.”

그 말에 허운이 소심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가장 또라이 같은 건 과장 시절 조대찬 부장이고 아마 두 번째…….”

“칵! 분위기 파악 못해!”

“죄송합니다.”

옥문영 상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허운은 깨갱 꼬리를 내렸다.

옥문영 상무는 두피 각질이 떨어질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이를 어쩐다.”

한태윤 차장이 깊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저도 답을 잘 모르겠습니다.”

“나도 돌대가리라 뭐 어떻게 해라 말을 못하겠다.”

옥문영 상무와 한태윤 차장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데 그 아랫것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똑 부러지는 홍은주도 이번만큼은 시원한 묘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은 급한데 계속 침묵으로 시간만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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