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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34화 (334/556)

난 할 수 있어 334화

도진석 전무는 잔뜩 부아가 치민 목소리로 꽥꽥 악을 질렀다.

“내가 당신 편의 봐준 거잖아! 근데 이딴 식으로 튕겨?”

“그, 그게 아니고요…….”

“쉽게 가자고! 조대찬이 없을 때 급한 일 얼른 처리해버리잔 말이야.”

“…….”

“당신도 쓸데없이 빡빡한 일처리, 싫어했을 거 아냐!”

송희근 과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까지 그가 도진석 전무와 직접적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없었다.

그간 도진석 전무의 칼 같은 말과 행동을 대찬이 우산처럼 받아냈다.

그런데 지금은 우산이 없다.

송희근 과장은 도진석 전무를 상대로 맨몸으로 육탄방어에 나서야만 했다.

오한이 들 지경이었다.

송희근 과장이 즉답을 내놓지 못하자 도진석 전무의 기세가 더욱 사나워졌다.

“송! 내 말 듣고 있냐고!”

“아, 네, 드, 듣고 있습니다.”

“당신 그 동태눈깔로 원본 봐서 뭐 할 거야. 일하는 척하지 말고 코 파면서 도장이나 찍어, 알았어?”

“…….”

대답이 시원시원하게 나오지 않았다.

도진석 전무는 변비 걸린 것처럼 속이 꽉 막히는 듯했다.

독이 잔뜩 올랐다.

혁신경영팀 사무실의 직원들도 송희근 과장의 전화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감지했다.

그래서 그들도 자리마다 놓인 전화기를 들어 몰래 그 전화를 같이 들었다.

그들의 귀에 맨 처음 들린 건 가시 돋친 도진석 전무의 고함이었다.

“알았냐고!”

“…전무님 말씀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더 할 말 없어.”

“하지만 역시 원본은 봐야겠습니다.”

“이 또라이가 진짜.”

“금방 검토해서 바로 대표님께로 올리겠습니다.”

“돌았구나, 네가.”

“마트사업부문 서류를 우선으로 처리할 테니 야,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도진석 전무의 얼마 안 되는 인내심이 바닥났다.

“야! 네가 조대찬이야? 왜 이래?”

“부탁드립니다.”

도진석 전무는 잠깐 침묵했다.

송희근 과장은 그게 어떻게든 자신을 이해해주려는 도진석 전무의 아량 섞인 노력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건 휘몰아치기 전 잠깐 숨고르기 위한 침묵일 뿐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당장 내 방으로 와!”

그의 외침에 수화기를 들은 송희근 과장 이하 혁신경영팀 직원들은 일제히 어깨를 움츠렸다.

뚝.

도진석 전무는 전화를 끊었다.

송희근 과장은 꼴깍 침을 삼키며 수화기를 내려놨다.

한 번에 제대로 내려놓지 못했다.

두 번, 세 번 아귀를 맞추고 나서야 수화기가 딸깍, 제대로 놓였다.

사무실의 모든 직원이 상황을 파악하고 미어캣처럼 송희근 과장을 바라봤다.

송희근 과장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허운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과장님, 어떡하실 거예요?”

“…오라는데 별 수 있나. 가야지.”

오다혜가 안쓰럽게 말했다.

“그러게 그냥 넘기시지 그러셨어요.”

그때 한태윤 차장이 나섰다.

“저도 처음에는 오 대리랑 같은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다릅니다.”

“왜요, 차장님?”

한태윤 차장은 오다혜를 한번 보고 다시 송희근 과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 전무님 성격이야 사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실 건 아니거든요.”

송희근 과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 요구가 좀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어도 그냥 직원 시켜서 원본 보내주라고 하면 끝인데.”

“그런데 이렇게 호출까지 하는 거 보면 뭔가 있긴 있다는 뜻이죠.”

송희근 과장은 비 맞은 생쥐처럼 처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녀올게.”

“같이 가드려요?”

“어! 아, 아니, 나 혼자 다녀올게.”

송희근 과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자리를 나섰다.

혁신경영팀 사무실을 나서 도진석 전무의 방으로 향하는 길.

그 길이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을 건너는 듯, 송희근 과장에게는 괴롭고 긴장되는 여정이었다.

송희근 과장은 주섬주섬 주머니를 확인했다.

‘녹음기, 오케이. 볼펜 카메라, 오케이.’

송희근 과장은 주머니를 얌전히 쓰다듬었다.

인터넷 방송인으로서의 피가 끓었다.

물론 도진석 전무와의 대화를 외부로 유출할 순 없었다.

그것도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인터넷으로 유출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도 언젠가 진짜 일이 꼬일 대로 꼬여서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뒤집어엎을 상황까지 온다면.

그때가 된다면 못 터트릴 것도 없겠다 싶었다.

똑똑.

송희근 과장이 노크를 하자 들어와, 도진석 전무의 불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희근 과장은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도진석 전무가 독사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는 앉으라는 말도, 마실 것 뭐 마시겠냐는 말도 없었다.

도진석 전무는 송희근 과장을 세워둔 채로,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로 말했다.

“너, 뭐냐?”

“…….”

“조대찬한테 일 개판으로 하는 병 옮았냐? 그 새끼는 서 대표 빽이라도 있지 넌 뭘 믿고 이렇게 설치냐?”

“…….”

“조대찬이가 빽의 빽을 써가지고 널 구원해줄 거 같아?”

“…….”

“내가 너 같은 일개 과장까지 불러갖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상황이 맞다고 보냐?”

“…아닙니다.”

“그러니까 상황을 왜 이따위로 만들어, 감당도 못하면서.”

송희근 과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진석 전무는 8할은 기세가 기울었다고 생각하고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송희근아, 그러니까 쉽게 가자. 나 요즘 고혈압 약 먹는다.”

그러나 송희근 과장의 말은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나왔다.

“죄송합니다, 전무님. 할 일은 해야 합니다.”

“하, 진짜.”

도진석 전무는 송희근 과장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조대찬 부장은 제 직속 상사입니다. 직속 상사에게서 자기가 하던 대로 하라고 지시를 받았으니 따라야죠, 저도.”

“야!”

“원본 안 넘겨주시면 저도 혁신경영팀장 대리로, 의견을 낼 수밖에 없습니다.”

서원웅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서, 제안서 따위는 혁신경영팀장의 소견이 항상 따라붙는다.

소견이 없더라도 ‘소견 없음’이라고 기재해야만 한다.

도진석 전무의 얼굴이 달군 쇳덩이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선은 송희근 과장에게 꽂은 채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도진석 전무의 몸뚱이가 가까워질수록 송희근 과장의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도진석 전무는 씩씩 거친 숨을 내쉬며 송희근 과장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짝!

따귀를 올려붙였다.

송희근 과장의 안경은 그 충격에 저만치 날아가 나뒹굴었다.

송희근 과장의 얄팍한 뺨가죽에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는 충격에 고개가 돌아간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새끼… 너, 내 성깔 몰라?”

“…….”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릴 뻗어야지, 쌍놈의 새끼가. 이러니까 네가 8년째 과장 딱지 못 벗는 거야, 새끼야.”

“…….”

“조대찬이한테 꼬리 살랑거리면 그 새끼가 알아줄 거 같아? 어차피 그 새끼도 서원웅이 사냥개야. 서원웅이한테 꼬리 치느라고 네 꼬리 봐줄 여유 따윈 없어, 알아?”

“…닙니다.”

도진석 전무의 관자놀이의 핏줄이 꿈틀했다.

“뭐?”

“조 부장 보라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도진석 전무는 냉소했다.

“그럼 뭐, 무슨 사명감이라도 되냐? 야, 너한테 진짜 안 어울리는 단어다, 그치? 송희근이한테 사명감?”

“…….”

도진석 전무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로 말했다.

“오냐, 네 원대로 해주지. 원본 보내줄게.”

“…감사합니다.”

도진석 전무는 그를 실컷 비웃었다.

“이게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 거 같냐? 회사생활 조지면서까지 이러면 누가 알아줄 거나 같아?”

“…….”

“너 인마, 오늘부로 끈 떨어진 거야. 내가 올해 안으로 네 책상 빼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꺼져.”

송희근 과장은 처량하게 그 앞에서 물러났다.

도진석 전무는 직원에게 지시해서 그 즉시 모든 서류의 원본을 혁신경영팀 쪽으로 보냈다.

컴퓨터 파일도 아니고 아예 서류뭉치로 보내버렸다.

그 서류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의 짐이 송희근 과장의 가슴을 짓눌렀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거푸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낙지 구멍을 뒤졌더니 손톱에 뻘만 낀 꼴이다.

한숨을 쉬어도 골백번은 쉴 만했다.

혁신경영팀 사무실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송희근 과장의 객기가 불러온 결과라고는 도진석 전무의 분노와 사무실 한가운데 책상 위에 놓인 서류뭉치, 즉 일감뿐이었다.

송희근 과장은 동료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네. 내가 괜히 벌집만 들쑤셔놨어.”

그 말에 누구 하나 시원하게 아니에요, 과장님,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가 봐도 괜히 벌집만 들쑤셔놓은 상황이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한태윤 차장이 그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과장님, 너무 낙심 마세요. 팀장님이 계셨어도 마찬가지 결정을 하셨을 겁니다.”

“내가 주제 모르고 날뛰었어. 차라리 한 차장이 팀장님 대리했으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한태윤 차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왜요, 제가 그렇게 배짱 없어 보입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적어도 주제 파악은 했을 거란 말이지.”

“저희 주제가 뭡니까. 다른 부서들 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밀어주고, 못하면 지적하고 그러는 게 우리 주제 아니에요?”

“…….”

“과장님께서 우리 주제에 맞게 잘하신 겁니다.”

송희근 과장은 한태윤 차장의 말이 고마웠다.

하지만 고맙다고 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말끔히 가시는 건 아니었다.

한태윤 차장은 홍은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홍 대리, 혹시 팀장님 동선이나 일정 파악된 거 있습니까?”

“네, 대략적인 계획이지만요.”

“지금 연락이 닿습니까?”

홍은주는 잠깐 알아보다가 이내 답을 내주었다.

“일정상으로는 아직 수도에 머무르고 계실 겁니다. 연락이 닿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럼 전화 좀 걸어주겠습니까.”

홍은주는 한태윤 차장의 말대로 해주었다.

이내 대찬의 목소리가 혁신경영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세요?”

이 상황만큼은 대찬의 목소리가 그렇게 감미로울 수 없었다.

“팀장님, 한태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태윤 차장은 방금 전의 일을 대찬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그러자 대찬은 잠깐 침묵했다.

그 침묵이 견디기 어려워, 송희근 과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잘해보려고 했는데 출장 가신 분께 이렇게 민폐나 끼치고…….”

송희근 과장의 뒷말에는 울음기마저 맺혀 있었다.

대찬은 하하, 쾌활하게 웃었다.

“출장이 뭐 별건가요. 저 지금 호텔 스위트룸에 혼자 벌러덩 누워있어요. 그런 건 괘념치 마시고요. 잘하셨어요, 과장님.”

“잘하긴 뭘 잘해요…….”

“도 전무 스타일 몰라요?”

“알아요. 이런 자잘한 거에도 득달같이 달려드는 거. 아는데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송희근 과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대찬은 더 크게 웃었다.

별로 좋지 않은 통화품질 때문에 대찬이 크게 웃자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보니까 모르셨던 거 같은데요? 도 전무, 장작 없이 타는 사람 아니에요.”

“…네?”

“송 과장님이 헛발질 했으면 저렇게까지 과민반응 했을 거 같아요? 절대 아니죠. 송 과장님이 정곡을 훅 찌른 거라니까요.”

그 말에 한태윤 차장도 웃으면서 송희근 과장의 어깨를 주물렀다.

“거 보십시오. 저도 그렇게 말씀드렸잖습니까.”

한태윤 차장도 미덥기야 했지만 대찬만큼은 아니었다.

송희근 과장은 대찬의 말 한마디에 기운을 다소 되찾았다.

“그럼…….”

“분명히 준 자료들에 허점이 있을 거예요. 다 주는 척해놓고 자기한테 찔리는 건 숨겨놨을 거야. 티가 안 날 수 없죠.”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떡하긴요. 송 과장님이 직원들을 야근의 세계로 잘 인도해야죠.”

대찬의 말에 직원들은 일제히 장탄식을 쏟아냈다.

대찬은 고소해 죽겠다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무두절이라고 강강술래 추고 계셨죠? 아주 잘됐어요. 저 없어도 야근들 하셔야겠네요? 불쌍해서 어떡해.”

그 말에 허운이 목소리를 높였다.

“팀장님은요!”

“응?”

“팀장님도 좀 거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말에 대찬은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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