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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31화 (331/556)

난 할 수 있어 331화

대찬은 떡 하나를 우물거리면서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는 소리는 세기말부터 쭉 들어왔다.

바다에는 무수한 정보들이 둥둥 떠다닌다.

그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송 과장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그리고 송희근 과장이 미쳤다고 제 본명으로 버젓이 활동하고 있을 리도 만무하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대찬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에게는 단서가 있었다.

송희근, 이름 세 글자는 쉽게 감춘다.

하지만 감추지 못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감추지 않는 정보들이 있다.

송희근 과장은 요새 히죽히죽 항상 웃는 낯이다.

삭막한 일상 속에서 그를 웃게 하는 건 인터넷방송일 터다.

단순히 방송이 재밌어서 그렇게 웃음을 주체하지 못할까.

아니다.

돈이 되니까 웃을 것이다.

인터넷방송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개중 하나가 외부의 협찬이나 광고 제의를 통해 버는 것이다.

외부가 그와 접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으레 업무용 이메일을 하나 만들어놓는다.

“회사 메일을 방송용 메일로 쓰지는 않겠지만 말이지.”

대찬은 비상 연락망에 기재된 송희근 과장의 이메일 주소를 마우스로 긁었다.

[email protected]

송희근 과장의 이메일에서 필래의 도메인을 지웠다.

그리고 구골의 도메인을 입력했다.

[email protected]

보통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업무용 이메일로 구골의 도메인을 사용했다.

그걸 인터넷에 검색하니 온갖 결과가 좍 떴다.

그것들을 공통으로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었으니, 바로 쏭과장TV였다.

“이름 한번 직관적이고 좋네.”

대찬은 쏭과장TV의 채널에 접속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한 지 꼬박 2년이 다 되어갔다.

제법 공을 들여왔다는 것이었다.

잠깐 채널을 둘러보던 대찬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루 종일 웃고 다닐 만하시네.”

구독자가 15만 명이나 되었다.

감도 없어 보이는 40대 과장이 뛰어든 거 치고는 굉장한 성과였다.

그리고 이어 가장 최근에 업로드 된 영상에 시선이 갔다.

“회사 근처에서 떡볶이 먹다가 부장한테 딱 걸림……. 나잖아.”

대찬은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은 어둑어둑해진 하늘의 퇴근길 풍경으로 시작했다.

송희근 과장은 절대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기야 들키는 순간 회사생활을 더 하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아예 전업으로 인터넷방송만 하기에는 구독자 15만은 불안했다.

특히 홀몸도 아니고 처자식 딸린 그에게는 어떻게든 직장에 붙어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는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혼잣말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쏭과장입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퇴근하고 있습니다.”

송희근 과장이 걷는 박자에 맞춰 화면은 위아래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아, 다른 일 때문에 바쁘던 부장이 이제 회사 일에 전념하겠다고 해서 일이 졸라 빡세졌습니다. 개빡칩니다.”

송희근 과장은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 언어로 대찬을 무자비하게 잘근잘근 씹어댔다.

대찬의 얼굴이 일순 흙빛으로 변했다.

“기분도 꿀꿀하고, 저녁시간도 됐고 해서 이 근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랑 어묵 좀 먹고 갈 겁니다. 여기 진짜 맛있거든요?”

송희근 과장, 아니 쏭과장은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 떡볶이를 시키고 어묵을 먹기 시작했다.

“여기 떡볶이 밀떡으로 만들어서 진짜 맛있고. 양념이 입에 착 달라붙고. 이거 어묵은 무조건 부산어묵이다. 사장님, 이거 부산어묵 맞죠.”

“부산어묵 아닌 데도 있나?”

그렇게 떡볶이가 나오고 참 복스럽게도 음식을 해치우고 있을 때.

대찬의 귀에 익숙하고도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과장님, 여기서 뭐해요?”

자신의 목소리였다.

대찬은 가볍게 진저리치며 영상을 중지했다.

‘이런 데 나오는 내 목소리는 너무 소름 끼친다니까.’

후두둑, 급히 카메라를 집어넣는 소리로 끝난 영상은 대찬이 사라진 이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송희근 과장은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와 씨… 방금 부장 왔다 갔어요. 이거 실화냐 진짜. 간 떨어질 뻔했네. 이거 조작 아니고요, 진짭니다. 부장 뒷담화 까고 있었으면 진짜 나 사표 낼 뻔했다.”

이후로도 송희근 과장은 떡볶이를 집어 먹으며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댔다.

대찬을 향해서는 욕인 듯 아닌 듯한 뒷공론을 쑥덕거렸다.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하는 말 치고는 그래도 마냥 날 선 내용만은 아니었다.

듣는 대찬의 기분이 썩 나빠지거나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최소한의 존중은 받고 있구나 싶어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대찬은 다른 영상들을 죽 둘러봤다.

쏭과장TV의 주요한 콘텐츠는 채널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회사생활이었다.

보통 대중에게 회사생활을 설파하는 경우에는 좋은 얘기보단 안 좋은 얘기 위주로 할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라며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방송을 누가 좋다고 보겠는가.

이런 방송의 주요한 시청자는 대개 같은 신세의 직장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회사 칭찬만 늘어놔봤자 듣는 사람 배알만 꼴릴 뿐이다.

상사가 갑질의 대가에 꼰대 대마왕이라느니.

부하직원이 형편없는 ‘폐급’이라느니.

회사 시스템이 불합리하고 거지같아서 못 해먹겠다느니.

그런 속 터지는 얘기를 해야 공감도 얻고 호응도 얻는 것이었다.

그게 설령 사실일지언정 안주거리가 되는 회사, 동료들 입장에서는 유쾌할 리 만무하다.

그리고 이런 방송에는 재미를 위해 거짓마저 서슴지 않고 동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의 직속상사인 대찬의 입장에서는 영 껄끄러운 일이었다.

대찬은 자못 심각해진 얼굴로 송희근 과장이 올린 동영상들을 꼼꼼히 감상했다.

“오늘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푹 쉬려고 했더니만.”

또 일이야, 또!

대찬은 속 터지는 뒷말은 속으로 삭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보다 보니 안심이 되는 지점이 있었다.

“다행히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구나, 송 과장이.”

천방지축 좌충우돌 되는 대로 지껄여대는 녀석들과는 달랐다.

최소한의 선은 지켰다.

대찬은 우선 송희근 과장의 말에 거짓이 없다는 점에 안심했다.

나쁜 얘기를 하더라도 최소한 아예 없는 말을 꾸며내지는 않았다.

도리어 대찬을 미안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송희근 과장의 영상목록 중 ‘한잔 하면서 푸는 진급누락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던 중이었다.

신세도 처량하게 감자칩 한 봉지에 깡소주를 들이켜면서 하는 얘기였다.

-내가 능력 없는 편인 거, 인정하지.

뭐 누굴 탓하자는 건 아니고.

와삭, 와삭하는 과자 먹는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냥 서러웠다고.

나보다 어린 부장이 와서 나보다 어린, 연차도 한참 낮은 과장을 먼저 차장으로 올린다고 했을 때.

송희근 과장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소주병을 잡는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었다.

-나는 그냥 가늘고 길게 살 거라고,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무리에서 뒤처진다는 게, 가끔 애물단지 취급받고 내 스스로도 내가 조직에 걸림돌은 아닌가 생각이 됐을 때, 비참하더라.

가늘고 길게 살자고 생각했는데 마음은 생각만으로 편하지가 않더라.

송희근 과장은 잔을 들어 카메라 렌즈에 가볍게 부딪쳤다.

-솔직히 내가 부장이었어도 나 대신 후배를 진급시켜줬을 거 같더라고.

반론의 여지가 없어서 더 비참하더라.

암튼 그랬다는 거지.

나처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우리 에쎄들, 가늘고 길게라도 가자.

대찬도 입안에 씁쓸한 맛이 감돌아 맥주를 들이켰다.

송희근 과장의 말마따나 대찬 역시 그때의 결정이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송희근 과장이 저런 비참한 심정을 느끼는 건 어디까지나 그 자신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건 당사자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 때문인데 어쩌라고, 하면서 저만치 치워버리기에는 대찬의 마음이 거북했다.

그렇게 냉정하고 무관용적인 태도는 대찬이 혐오하는 바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슨 선심을 베풀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건 그것대로 살찐 비둘기에게 던져주는 과자만큼이나 무의미했다.

그저 마음에 돌멩이 하나 얹는 것으로 마음의 부채를 탕감했다.

대찬은 송희근 과장의 영상을 보느라 꼬박 밤을 지새웠다.

떡볶이와 순대는 사 온 보람도 없이 차갑게 식었다.

네 캔 묶어 만 원 하던 맥주들 중에 세 캔은 다시 고스란히 냉장고에 틀어박혔다.

송희근 과장의 영상들은 뒷담화보다는 평범한 아저씨의 신세 한탄에 가까웠다.

대찬의 뇌리에 가장 짙게 머무는 것은 송희근 과장의 영상이 아니라 거기에 딸린 댓글이었다.

-우리나 쏭과장님이나 가늘고 길게 사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그래도 남의 눈치 안 보고 미친 척 몸부림치는 날도 오겠죠.

저한테도 넥타이 매고 있을 때 그런 기회가 한 번은 왔으면 좋겠어요.

진짜 앞뒤 안 재고 시원하게 몸부림 한번 쳐볼랍니다.

짧지 않은 댓글은 많은 공감을 받았다.

댓글의 옆에는 영상을 올린 사람이 공감했다는 빨간 하트 모양도 달려 있었다.

송희근 과장도 저 댓글처럼 하겠다는 각오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대찬은 그 부분이 안쓰러우면서도 찜찜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끗 봤다.

벌써 출근 준비를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었다.

대찬은 주저앉는 눈꺼풀에 찬물을 끼얹고 넥타이를 맸다.

출근하자마자 대찬은 송희근 과장 대신 허운을 따로 불러냈다.

대찬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여러 해가 된 까닭으로 그의 눈치도 이제는 발군이었다.

허운은 대찬을 뒤따르면서 속닥거렸다.

“송 과장님 인터넷방송 하시는 거 맞죠?”

쉿, 대찬은 점잖게 입에 검지를 갖다 대고는 빈 회의실로 허운을 들였다.

대찬은 밖을 흘끔 봐서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편하게 말했다.

“우리 허 과장님 짐작이 맞았어요.”

“역시! 내 이름은 허운, 탐정이죠.”

“그렇게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

허운은 어깨를 으쓱했다.

“뭘 그러세요. 죽어라 우리 회사 까댄 거 아니면 괜찮지 않아요?”

“괜찮기는. 당신 욕도 있었는데?”

그 말에 허운은 뜨끔했다.

“내, 내 욕할 게 뭐가 있다고?”

“회사에 칠렐레팔렐레 하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부장 라인 잘 물어서 자기랑 같은 과장이라고 아주 입에 거품을 무시더라구.”

구구절절 맞는 소리에 허운은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차, 참나, 어이가 없어!”

“아니라고는 못하시네요, 허 과장님.”

“와, 송 과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뒤에서 호박씨를 그렇게! 팀장님, 아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찬은 웃음을 흘렸다.

“방금 건 내가 좀 과장한 거고.”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송 과장님 생각이 아니라 팀장님 생각인 거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인터넷방송으로 돈을 버는 거 자체가 겸직금지 위반이야.”

허운도 진지함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게다가 아예 회사랑 관계없는 주제로 썰을 풀면 모르겠는데 회사 얘기를 하니까.”

“윗선에서 알면 단순히 겸직금지 위반 정도가 아니라 더 심각한 구실을 들어서 조지려고 하겠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수위 정도라면 솔직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한데.”

“팀장님, 자낳괴라고 들어보셨어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네, 돈맛을 보면 사람이 돌아요. 진짜 문자 그대로 괴물이 된다니까요.”

“나중에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말이지?”

허운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쥐꼬리만 한 월급 받다가 방송하면서 턱턱 달마다도 아니고 매주 목돈 꽂혀 봐요. 무슨 말인들 못하겠어요.”

“그러다 나중에 진짜 큰코다치지. 회사가 헐렁한 회사도 아니고. 명예훼손으로 걸면 골치 아파져.”

“유무죄 여부를 떠나 회사 상대로 일개 직원이 소송전 벌이는 거부터가 엄청난 부담이니까요.”

대찬은 회의실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허 과장이 슬쩍 송 과장님한테 언질을 좀 줘.”

“팀장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게 약발이 좋지 않을까요?”

대찬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방송하는 걸 내가 알고 있다고 하면 얼마나 가시방석이겠어. 차라리 같은 과장이 얘기하는 게 속이 덜 불편하지.”

“말하면서 이제 그만하시는 게 좋겠다고 할까요?”

대찬은 그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그만하라면 그만할까?”

“글쎄요. 요즘 웃고 다니는 거 보세요. 거의 뽕 맞은 사람이라니까.”

“뽕에 맛들이면 웬만한 건수로는 끊기 힘들지.”

“그래도 말은 해볼게요.”

“잘 구슬려 봐.”

허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론을 얻은 둘은 회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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