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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314화 (314/556)

난 할 수 있어 314화

서청수 회장은 다시 한 번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이것마저 차버리면 극동일보랑 치킨게임을 각오해야 한다. 난 그 정도 리스크까지 감수하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조 부장하고 얘기해보겠습니다.”

“얘기해보는 게 아니라 통보해라.”

“…….”

“극동일보한테 집중사격 받고 네 결혼생활도 요절낼 셈이냐? 말 들어라.”

서원웅은 시름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조대찬이한테는 다른 형태로의 보상이 가능할 거다.”

“…네.”

서원웅은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대찬의 자리로 전화를 걸었다.

대찬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먼저 출근한 허운이 대신 받았다.

“혁신경영팀 허 과장입니다.”

“아, 허 과장, 나 대푠데요.”

“네, 대표님. 조 부장님은 아직 출근 전입니다.”

“…출근하면 바로 연락 좀 해줘요. 그쪽으로 내려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허운은 잠깐 찜찜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한태윤 차장에게 다가갔다.

“차장님.”

“왜요?”

“이상해요.”

“뭐가요.”

“대표님 목소리에 아주 먹구름이 쫙 깔려있던데요.”

허운의 말에 한태윤 차장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이래저래 요즘 힘드시니까 그러겠죠.”

“아녜요. 뭔가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송희근 과장이 끌끌 혀를 찼다.

“허 과장아,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그냥 있어. 봉황의 뜻을 우리 같은 참새 새끼들이 어떻게 넘겨짚냐.”

“우리가 어디 그냥 참새 새끼들이에요? 봉황이랑 똑같은 모이 먹고 큰 참새들이라구요.”

“어이구, 선민의식은.”

“선민의식이 아니라니까.”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있는 사이에 대찬이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허운은 그렇게 인사를 하고 송희근 과장에게 속닥거렸다.

“봐요. 팀장님 얼굴에도 근심, 걱정, 우환, 심려가 가득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백 프로라니까요.”

허운은 그렇게 단정하고 대찬에게 말했다.

“팀장님, 아까 대표님 전화 왔었는데요. 출근하시면 이쪽으로 오신다고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오케이.”

대찬은 대답하고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뭐 하러 내려오세요. 제가 올라갈게요.”

“아니야. 내가 갈게. 바로 옆에 회의실에서 얘기 좀 잠깐 하자고.”

“그러시죠, 그럼. 커피 준비해둘게요.”

대찬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 김산호에게 말했다.

“김 대리, 다과만 간단히 준비해줘.”

“알겠습니다.”

대찬은 한손을 주머니에 찌르고 회의실로 향했다.

대찬이 회의실로 가는 뒷모습을 허운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셨어요.”

대찬이 서원웅에게 알은체를 하자 서원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말을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래요? 극동 쪽하고 관계있는 일인가 보네요.”

“맞아.”

대찬은 의자에 삐딱하게 기댔다.

“암튼 집요하다니까. 뭐래요?”

“필래에서 안 쫓아낼 거면 다시 중징계 때리래.”

“이것마저도 뻥 차버리면 대표님하고 회장님이 좀 곤란하시겠죠?”

“회장님 의중은 네가 따라줬으면 좋겠다는 건데.”

“건데?”

“나는 회의적이야. 이걸 받는다 해도 어떻게든 다시 트집 잡아서 널 고꾸라뜨리려고 할 거 같거든?”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죠. 근데 이걸 안 받아주면 진짜 전면전이라. 받는 편이 좋을 거 같은데요.”

“그래도 어떻게 그래.”

“안 그러면요? 대안 없어요. 저도 이 이상 오너 일가에 민폐 끼칠 생각 없어요. 일단 제가 감수할게요.”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창 대찬과 서원웅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혁신경영팀 직원들도 쑥덕공론을 벌였다.

“무슨 일일까?”

“글쎄요. 단순히 친목 다지러 오신 건 아닐 텐데.”

“극동일보에서 또 무슨 수작 부리는 거 아니야?”

“이슈가 그것밖에 없긴 하죠.”

허운은 어흠,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제가 잠깐 다녀올까요?”

“뭐? 무슨 수로.”

“다과라도 좀 더 챙겨드리면서 슬쩍 엿듣고 올게요.”

“괜히 나서다 피 볼라.”

“설마 주먹으로 패기야 하겠어요.”

허운은 흐흐 웃으며 간식 얼마를 챙겨 살금살금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간식을 들고 살짝 회의실 문을 여니 대찬의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가 징계받는 걸로 매듭지어요. 이 정도면 싸게 막았지, 뭐.”

그 말에 허운의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다.

‘뭐야, 무슨 징계를 또 받아.’

이어 서원웅의 안쓰러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래, 미안해.”

“대표님이 사과할 건 아니고요. 이 일로 대표님도 이래저래 맘고생 심하시잖아요.”

‘징계를 또 받아? 극동일보 때문에?’

허운의 속에서 불쑥 분노가 치솟았다.

대찬의 발걸음이 이쪽으로 향했다.

허운은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대찬은 서원웅과의 대화를 팀원들과 굳이 공유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문 대찬을 보고 허운의 속이 더 부글부글 끓었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상황이야.’

그는 혼자서 부글부글 끓었다.

그런 허운을 대찬이 흘끔 보고 물었다.

“우리 허 과장,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없어요.”

돌아오는 대답이 퉁명스럽자 대찬은 픽 웃었다.

“뭐야. 왜 그러는데?”

“안 좋은 일 없다니까요. 아이구, 팀장님은 진짜 속도 좋아요.”

“내가 뭘?”

“됐어요!”

“참 나.”

허운은 내내 꽁해 있다가 정시에 퇴근했다.

그런 그를 보고 대찬이 송희근 과장에게 물었다.

“허 과장 무슨 일 있대요?”

“그런 거 같지는 않던데요.”

송희근 과장은 굳이 대찬을 걱정해서 저런다는 말을 얹지는 않았다.

대찬은 잔뜩 뿔이 난 허운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운은 퇴근하고 바로 귀가하지 않았다.

마트사업부 내 상품기획부 장 과장.

그는 타 부서 소속이었지만 대리 시절부터 대찬, 그리고 그의 주변사람들과 제법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필래 비바체가 필래마트이던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왔으니 이제 이 관계도 제법 연식이 쌓인 관계였다.

허운은 답답한 마음에 퇴근하는 그를 붙들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같은 혁신경영팀 직원들과 이러쿵저러쿵해봤자 한 얘기 또 했다는 소리만 듣는다.

허운이 굳이 장 과장을 붙든 건 그런 지청구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억지로 허운과 나란히 앉은 장 과장은 웃음을 흘렸다.

“허 과장님이 저랑 단둘이 술을 다 드시자고 하시네요?”

“답답해서요.”

“뭐가 그렇게 답답하세요.”

허운은 장 과장에게 속내가 답답한 이유를 구구절절 설파했다.

그러자 장 과장의 미간에도 단단히 주름이 잡혔다.

“서 대표님 실망인데요. 극동일보 외압에 조 부장님한테 징계를 내리겠다고요? 현실적인 판단이긴 한데.”

“징계사유가 번듯하면 또 몰라. 무슨 근거로 징계를 내릴 건데요?”

“그러게요. 근데 그거 확실한 소스예요? 또 허 과장님 추측 아니에요?”

“아니에요. 현장에서 직접 들었거든. 이른바 본인피셜이라니까요.”

“서 대표님이 조 부장님을 그렇게 대접하면 안 되죠.”

장 과장은 혁신경영팀 직원들만큼이나 대찬에게 우호적이었다.

그런 만큼 돌아가는 상황이 마뜩잖았다.

허운은 쥐포를 질겅거렸다.

달달한 맛보다 찝찔한 맛이 앞섰다.

“우리 같은 말단이 뭐 딱히 할 일은 없겠죠. 이렇게 맥주나 받아놓고 흰소리나 해대는 거지.”

장 과장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허운 쪽으로 잔을 내밀었다.

퉁, 허운은 힘없이 건배하고 맥주를 들이켰다.

제법 거나하게 취한 둘은 눈에 힘이 풀리고 고개가 자꾸 아래로 꾸벅꾸벅 떨어졌다.

허운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장 과장을 봤다.

장 과장은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열심히 두 엄지로 휴대폰 액정을 두드리고 있었다.

허운은 권태로운 눈빛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게임 해요? 엄청 재밌나 보네.”

“이 시국에 게임 하게 생겼어요? 아니거든요.”

“그럼 뭔데요.”

허운은 장 과장의 옆에 바짝 붙었다.

장 과장은 계속 열심히 손가락을 놀렸다.

-술 한 잔 마셨습니다. 술 마신 김에…….

허운은 눈을 깜빡이면서 장 과장에게 재차 물었다.

“뭐예요?”

“잠깐만 있어 봐요.”

-…이런 부당한 처사에 비바체 일원으로서 매우 불쾌한 심정입니다. 당당히 이름 까고 외칠 용기는 없어서 여기에라도 투덜거려 봅니다.

글을 다 쓴 장 과장은 게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허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답해서 글이나 하나 올렸어요.”

“어디에요?”

“어플 있어요. 직장인들끼리 익명으로 소통하는.”

“그러다 색출 당하시면 어쩌려고?”

장 과장은 씩 웃었다.

“요즘 사람들이 어디 그런 거에 들킬 사람들인가요.”

장 과장은 자기 아이디를 보여주었다.

-iliilliilIil.

“바코드식 닉네임이라고 하거든요. 소문자 엘이랑 소문자 아이, 대문자 아이 막 섞어서 만들어요. 누가 누군지 구분도 안 된다고요.”

“아하, 이거 완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치기 딱 좋네.”

“그렇죠?”

장 과장은 주취자의 헐렁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장 과장의 손끝에서 작성된 글은 밤사이 삽시에 필래 비바체 직원들에게 공유되었다.

다음날 출근한 대찬은 자신을 보는 직원들의 시선을 느꼈다.

사옥 출입문에 들어서고 혁신경영팀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대찬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의아하게 받았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다 보니 사내에 아는 얼굴들이 많기는 했다.

평소에도 출근길에 눈인사를 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오늘의 시선은 그런 일상적인 눈짓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뭐야, 또.’

대찬은 찝찝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의 의심은 혁신경영팀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대찬은 아침인사를 하고 눈이 마주친 오다혜에게 물었다.

“오 대리, 혹시 회사에서 나한테 관련된 소문 떠도는 거 있어요?”

오다혜가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드나드는 여직원 휴게실은 여의도 증권가와 근사했다.

온갖 찌라시가 난무했다.

모 부장이 모 과장이랑 바람이 났다는 둥.

모 상무가 골프 치다가 전무에게 대들어서 원산폭격을 당했다는 둥.

모 대리가 작은 비리를 과장한테 걸려서 묻어주는 대가로 벌초를 대신해줬다는 둥.

진위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난무했다.

그렇기에 오다혜에게 물어보는 것이 대찬의 입장에서 가장 효율적이었다.

그녀는 대찬의 기대를 바로 충족해 주었다.

“모르셨어요? 지금 언사이티드 우리 회사 게시판에 팀장님 얘기로 난리예요.”

“언사이티드가 뭐예요?”

그러자 오다혜 대신 김산호가 말했다.

“에이, 팀장님 벌써 시대에 뒤떨어지시면 어떡해요.”

“나도 이제 아저씨 나이 다 돼가거든? 아, 뭔데.”

“직장인들이 익명으로 글 올리는 어플이에요.”

“거기에 내 얘기로 난리라고?”

이번에는 오다혜가 받았다.

“네, 극동일보가 압력 넣어서 팀장님이 억울하게 징계 받게 됐다고, 누가 막 성토하는 글을 올렸거든요?”

“뭐야?”

그 말에 허운은 지레 속으로 찔리는 바가 있어 침을 꼴깍 삼켰다.

오다혜는 자기 휴대폰으로 언사이티드를 켜서 보여주었다.

필래 비바체 게시판은 오다혜의 말 그대로였다.

대찬의 얘기로 난장판이었다.

장 과장이 익명으로 올린 글에 댓글만 300개가 넘게 달렸다.

필래 비바체의 직원 숫자, 그중에서도 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숫자를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였다.

그 글을 시작으로 조 부장 어쩌고 하는 게시물이 대거 올라와 있었다.

대찬은 넋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래.”

“대부분은 극동일보랑 사모님 욕하는 글들이에요. 뭐, 일개 부장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호들갑이냐는 말도 있지만.”

오다혜의 말에 김산호가 첨언했다.

“그런 글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폭격 맞고 알아서 삭제하더라고요. 대부분은 다 팀장님한테 우호적이에요.”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오 대리, 잠깐 폰 줘 봐요.”

오다혜는 순순히 대찬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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