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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98화 (297/556)

난 할 수 있어 298화

송희근 과장이 대찬을 닦달했다.

“팀장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회장님 괜찮으세요?”

“하하, 제 걱정은 안 하셨어요?”

“회장님이 건재하셔야 팀장님도 건재하죠.”

“그리고 송 과장님도 건재하고요.”

“말해 뭐 합니까.”

“회장님의 상태에 대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왔어요. 저도 함부로 나불거릴 수 없는 입장입니다.”

“하, 이것 참.”

“그거 알아서 뭐 합니까. 주어진 업무에만 최선을 다해주세요.”

“신경이 쓰여서 할 수가 있어야죠.”

“하하, 일 안 되시면 내일 소집되는 우리사주조합 대의원회에 참석하세요. 송 과장님도 대의원이잖아요.”

“이 와중에 우리조합 챙길 여유가 있으세요?”

대찬은 미소만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일정을 위해 바로 사무실을 떠났다.

대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팀원들의 표정에는 먹구름이 끼어있었다.

오다혜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팀원들에게 물었다.

“진짜 괜찮을까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무실에 없었다.

대찬은 우리사주조합의 대의원들을 소집했다.

대의원들의 참석률은 높았다.

서청수 회장의 용태를 알고 있는 대찬에게서 무슨 말이라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탓이었다.

그러나 대찬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저는 우리 조합이 비바체의 주식을 추가로 보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 청약을 실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추가로 단행하고자 합니다. 경영진의 동의도 얻은 사안입니다.”

대찬의 말에 대의원 하나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회장님의 용태가 미궁 속에 빠진 이때에 꼭 추가 청약을 해야 하겠습니까?”

“회장님의 상황에 대해 언론의 추측이 난무하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그것과 우리사주 청약은 별개의 일입니다. 제가 입에 담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조합원들이 주식 살 마음이 들겠어요?”

대찬은 미소를 지었다.

“사고 안사고는 조합원들의 자유입니다. 저는 다만 건의만 드렸을 뿐입니다.”

대찬은 일방적인 통보로 우리사주조합 대의원회를 산회했다.

이렇게 되자 서청수 회장 사망설에 더 힘이 실렸다.

필래지주를 지키기 어렵게 됐으니, 어떻게든 비바체라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니냐는 예측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좋지 않은 시국에 우리사주의 청약을 실시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참여율은 저조했다.

대찬은 그런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을 모두 우리사주 청약에 밀어 넣었다.

서청수 회장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면 필래 비바체 주가는 다시 치솟을 것이다.

이건 천재지변에 준하는 변수가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명제였다.

이런 대찬의 움직임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심지어 같은 혁신경영팀의 직원들 중에서도 이번에는 청약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찬은 굳이 그들에게 돈을 집어넣으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비바체의 우리사주조합장으로서 추가 청약을 실시하는 건, 그들에게 금전적 이익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비바체 내 서원웅의 우호지분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발버둥 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와중의 돈놀이는 어디까지나 부수입에 불과했다.

결국 필래 비바체의 3차 우리사주 청약은 뜨거웠던 2차 청약의 반에 반도 못 미치는 호응만 얻고 끝났다.

‘믿는 자에게 복이 따를지어니.’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우리사주조합 대의원회만 한 번 소집하고, 바로 다시 완도로 내려갔다.

서원웅은 물론 윤이영의 얼굴도 한번 보지 않았다.

괜히 윤이영을 만나 웃으면서 수다 떠는 모습이 언론에 찍히기라도 한다면.

회장 상중에 저렇게 웃고 떠들진 않을 것이니 실은 살아있는 게 분명하다고 아우성들을 칠 것이다.

공들인 일을 잠깐의 충동 때문에 망칠 수는 없었다.

대찬은 완도로 내려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윤이영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안해. 일 마무리되면 너부터 보러 갈게.

-내가 중딩이야? 하루 이틀 못 본다고 안 칭얼거리니까 미안해 할 거 없어.

-고마워.

-고마워할 것도 없어. 완도는 뭐가 유명하지? 특산물이나 한 박스 사와.

-김 유명하대.

-완도하면 전복부터 나와야지. 지금 돈 아끼려고 김부터 꺼내는 거야?

-그건 아닌데.

-전복 제일 큰 걸로 한 박스 사와.

-알았어.

대찬은 흐뭇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한번 기지개를 쭉 켠 다음 다시 완도로 향했다.

완도 별장으로 들어가는 데는 다시 기자들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별장 외곽을 경계하는 경호인력들이 도와준 덕택에 한결 수월하게 별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장기를 두던 서청수 회장이 웃으면서 그를 반겼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고생이 많군.”

“내내 답답한 곳에만 계시는 회장님만큼이야 하겠습니까.”

“허허, 내가 왜? 난 좋아. 이렇게 유유자적했던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고.”

“편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편하고말고. 이참에 아예 왕 사장한테 회장 넘기고 은퇴해버릴까?”

대찬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저 이번에 비바체 주식 잔뜩 밀어 넣고 왔습니다. 깡통 차기 싫어요.”

“아, 그 말은 왕윤수 경영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뜻이군?”

“아무리 왕윤수 사장이 발군이라고 해도 어떻게 회장님만큼 하겠습니까.”

“백주가 저런 걸 배워야 돼. 아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잖아.”

“하하, 감사합니다.”

서청수 회장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장백주 실장이 두툼한 보고서를 들고 서청수 회장에게 다가왔다.

그걸 서청수 회장에게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대신 말로 했다.

“백주야, 주가 얼마나 빠졌니.”

“20% 빠졌습니다.”

“더 빠질까?”

“왕윤수 사장은 아마 이쯤에서 횡보할 거라고 합니다.”

“지분은 얼마나 더 확보했지?”

“어떤 세력이 와도 어렵지 않게 방어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음, 그래……. 백양옥 쪽은?”

“처분할 수 있는 부동산은 모두 처분한 것 같습니다.”

“그래? 음…….”

서청수 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 박사와 두던 장기 수를 마저 두었다.

우 박사는 차를 궁까지 쭉 밀고 들어왔다.

“장입니다, 회장님.”

“옳지, 멍군일세.”

우 박사는 다시 장을 불렀다.

“장입니다.”

“이 양반도 3박4일 동안 장기만 두니까 밑천이 다 드러나는구만.”

서청수 회장은 흐흐 웃으면서 수를 두었다.

“장이야! 자네, 외통수에 걸렸어.”

“허허, 그렇군요. 졌습니다.”

서청수 회장은 빙긋 웃으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쯤 하면 됐다! 이만 서울로 올라가자!”

그가 큰 보폭으로 걸어 나가자, 장백주 실장은 먼저 나가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자 서청수 회장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주야! 너는 완도에 남아라.”

“네? 그게 무슨…….”

“박 선장 저거 쓸데없는 짓 못하도록 감시해야 돼. 너 아니면 믿을 사람 없다.”

“그럼 회장님은 누가 모십니까.”

“조대찬이 있잖아. 조대찬, 네가 서울까지 수고 좀 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장백주 실장은 멍한 눈으로 멀어져 가는 서청수 회장과 대찬을 바라봤다.

‘이런, 젠장할…….’

장백주 실장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서청수 회장의 곁에 바짝 다가서서 걷는 대찬을 향해 눈빛이 타올랐다.

서청수 회장은 나갈 채비를 했다.

며칠째 별장에 구겨져 있느라 외모를 가꿀 새가 없었다.

오랜만에 푹 몸을 불려 때도 밀고, 머리를 빗어 넘겼다.

그 사이에 서청수 회장이 오래 입었던 양복이 잘 다려지고 향수가 대령되었다.

대찬은 발코니로 나갔다.

아무런 기별이 없는 별장에 기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찬은 다시 커튼을 닫고 최재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수 줄게. 지금 바로 올려.”

“뭔데.”

“회장님 곧 밖으로 나갈 거야.”

“저, 정말? 살아 있었어?”

“응, 그리고 간단히 기자들하고 문답 나눌 건데.”

“응.”

“지금까지 별장에서 칩거한 건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 커서야.”

“정신적인 충격이라니, 뭐 때문에.”

“백양옥 여사가 서청수 회장을 죽이려고 했거든.”

“백 여사가 서 회장을… 뭐?”

최재한은 귀를 의심했다.

“제대로 들었어. 올려. 네가 일 번이야.”

“오보 가능성 없지.”

“없어. 20분 후면 낙종이다. 빨리 올려.”

“오케이, 고맙다.”

“고맙긴. 받은 신세 조금이나마 갚는 거지.”

대찬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옷을 갈아입은 서청수 회장이 대찬을 바라봤다.

“대찬아, 가자.”

“네, 회장님.”

대찬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를 따랐다.

서청수 회장은 마당으로 나왔다.

서청수 회장은 누가 봐도 건강한 걸음으로 대문을 향해 걸었다.

대찬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열겠습니다, 문.”

“음.”

서청수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찬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기약 없는 오랜 대기, 기자들이 속되게 쓰는 말로 ‘뻗치기’에 카메라들은 지쳐 있었다.

서청수 회장은 그들이 기다린 보람을 안겨주었다.

그가 대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기자들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플래시 세례가 따랐다.

이런 플래시 세례에 익숙한 서청수 회장은 눈을 찡그리지도 않고 빙긋 웃음을 머금었다.

“아, 여러분들 애 많이 먹었습니다.”

“그간 사망설이 돌았는데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서청수 회장은 외투를 탁탁 털며 웃었다.

“보시다시피 일단 살아는 있잖아요?”

“지금껏 별장에서 칩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 몸이 좀 안 좋기는 했어요. 그래서 푹 쉬었습니다. 요양 차 온 건데 다들 이렇게 관심을 많이 가져주실 줄이야.”

“필래지주를 비롯한 필래그룹 계열사의 주식이 일제히 폭락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사실에는 많이 놀랐습니다. 이 참, 이 늙은 몸을 그렇게 귀히 생각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 시각, 증권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연일 녹색으로 점철돼있었던 필래그룹 계열사들의 숫자들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했다.

차트는 기괴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주가 추이를 보고 있던 김 실장이 급히 백양옥 여사에게 보고했다.

“여사님! 지금 필래지주 주가가……!”

그는 뒷말을 마저 말하지 못했다.

백양옥 여사는 TV를 보고 있었다.

뉴스 생중계.

자막에는 속보가 이어졌다.

-서청수 회장, 별장에서 등장 “사망설 일축”

-서 회장, “별장에는 요양 차 방문했던 것”

-사망설 따른 주가 폭락에 ‘송구’

“뭐, 뭐야…….”

백양옥 여사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죽었다고 했다.

분명히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왜 저 망할 영감이 카메라 앞에 서서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가.

계획은 완벽했다.

서청수 회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찾아냈다.

박 선장은 서청수 회장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당장의 이익에 배신을 할 만큼 상황이 급했다.

그에게 내건 조건은 합리적이었다.

채무의 80%를 우선 탕감하고, 그가 계획에 성공하면 나머지 20%를 벌충하는 것과 더불어 그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 박 선장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서청수 회장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백양옥 여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이 터져 루주보다 진한 피가 맺혔다.

화면 속 서청수 회장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사실 몸도 몸이지만, 마음의 병이 더 컸습니다.”

“마음의 병이라니요.”

“말씀드리려니 가슴이 아픕니다만 어쩔 수 없군요.”

기자들의 눈에 긴장감이 깃들었다.

서청수 회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며칠 전, 아내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 했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믿기 힘들었다.

아무리 막장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남편을, 그것도 재계 5위의 재벌 회장을 죽일 생각을 했단 말인가.

기자들이 얼떨떨해서 질문을 던지는 못하는 사이, 서청수 회장이 주도적으로 말했다.

“그 때문에 큰 심적 타격을 입어 좀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그런 탓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대체 어떤 방법으로 회장님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겁니까!”

개중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기자가 서청수 회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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