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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96화 (295/556)

난 할 수 있어 296화

“네놈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조금만 시간 들이면 다 알게 돼. 그 전에 네 아가리로 순순히 부는 게 좋을 거다, 신상에.”

“회, 회장님…….”

서청수 회장은 구 여사를 바라봤다.

“구 여사, 당신 뭐 아는 거 있어?”

“아뇨… 아무것도…….”

구 여사는 아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숨 막힐 듯 두렵기만 했다.

김태준 사장이 박 선장의 멱살을 콱 움켜쥐었다.

“너 이 새끼, 빨리 안 불어?”

“으, 으어으…….”

대찬은 박 선장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내고 서청수 회장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회장님,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네 덕에 살았다.”

“다행입니다.”

“고맙다.”

서청수 회장은 목과 가슴 주변을 천천히 쓸었다.

오래 살라며 주는 술이 명을 재촉할 뻔했다.

대찬은 서청수 회장을 부축해 천천히 자리에 앉히고는 박 선장을 바라봤다.

“박 선장님, 빨리 말하세요. 침묵이 길어질수록 박 선장님 신상에 좋지 않습니다.”

“그, 그게…….”

박 선장은 눈알을 굴렸다.

둘러댈 구실을 찾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쪽으로 촉이 발달한 장백주 실장이 그의 고민을 차단했다.

“어이, 박 선장. 우리가 자비를 베풀 때 받아. 허튼 수작 부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릴 테니까.”

“흐, 흐읍…….”

“빨리 불어!”

“배, 백 여사님이 그랬습니다!”

그 말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서청수 회장의 눈꺼풀이 마구 경련했다.

“…뭐?”

박 선장은 눈에서 왈콱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배, 백양옥 여사님이…….”

서청수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양옥이가, 뭐.”

“회장님께 독주를 드리라고…….”

독주란 그저 도수가 높은 술이 아니라 말 그대로 독이 든 술.

서청수 회장의 호흡이 가빠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아무리 남보다 못한 철천지원수가 됐다고 해도 그렇지.

아예 죽일 속셈까지 품는단 말인가.

서청수 회장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장백주 실장이 그를 급히 부축하며 말했다.

“회장님, 일단 들어가 잠깐 쉬시죠. 저희가 알아내겠습니다.”

“아니다. 내 귀로 들어야겠다. 박 선장! 그 말, 확실해? 확실히 백양옥이가 날 죽이라고 했어!”

“배, 백 여사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그 밑의…….”

“김 실장.”

“네, 김 실장이 저한테 지시했습니다…….”

“내가 네놈을 얼마나 위해줬는데 나를, 네놈이, 감히……!”

대찬이 서청수 회장에게 차분한 투로 말했다.

“박 선장은 거액의 빚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백 여사 쪽에서 그걸 대납해주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사, 사례도 확실히 한다고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대찬은 박 선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빚이 급해도 그렇지.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르면 감방에서 한두 해 버텨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기, 김 실장이 안전한 시나리오가 있다며…….”

“그게 뭡니까.”

제대로 숨도 못 쉬는 서청수 회장을 대신해 대찬이 그를 심문했다.

“살인죄가 아니라 과실치사죄가 되면 징역도 최대 2년이라고…….”

“2년 살고 나오면서 몇 억을 벌 수 있으니까, 수지맞은 장사다?”

“죄송합니다…….”

“사람을 독살하는데 어떻게 과실치사로 끝납니까. 너무 순진하시군요.”

박 선장은 온몸을 오들오들 떨면서 말했다.

“저, 저 물, 70퍼센트 이상은 영지버섯 추출물 맞습니다.”

“나머지 30은요.”

“부, 붉은사슴뿔버섯이라고…….”

대찬은 미간을 좁혔다.

“독버섯이군요.”

“네… 자생하는 독버섯이에요. 생김새도 영지랑 비슷해서 간혹 오인해서 채취한다고 합니다……. 그걸 섭취해서 사망하는 사례가 있다고…….”

“그렇게 둘러대면 과실치사가 될 것이다?”

“…네.”

왕윤수 사장은 서청수 회장의 주치의에게 그 사이 자문을 구하고 말했다.

“그런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는군요.”

서청수 회장이 그를 바라봤다.

“그걸로 정말 사람이 죽는다더냐?”

“트리코테신이라는 독성물질이 들어 있다는군요.”

“어려운 얘기는 됐고.”

“방사능 피폭에 준하는 피해가 발생한답니다. 저 정도면 확실한 치사량이라고 합니다.”

“…정말 죽을 뻔했군.”

서청수 회장의 뇌리에 만감이 교차했다.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지는 않았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부인.

그리고 자신이 곁을 내줬던 박 선장.

둘이 공모해서 자신의 목숨을 잔인하게 거두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꽉 옥죄었다.

돈의 세계가 비정하다는 건 새삼 말할 것도 없는 엄정한 사실이다.

그리고 서청수 회장 본인도 비정하게 살아왔다.

항상 그 비정함으로 무수히 많은 남들을 찌르고 살아왔다.

그러나 남에게 그 비정의 칼날에 찔린 적은 없다.

그 고통이 얼마나 사무치는 것인지 서청수 회장은 그제야 알았다.

그는 일순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눈을 감고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박 선장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울었다.

김태준 사장은 경멸조로 그를 꾸짖었다.

“당신 울 자격 없어. 입 다물어. 소리 내지 마.”

그러는 사이, 대찬이 구 여사에게 다가갔다.

“여사님, 지금 상황이 괴롭고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일단 잠깐 다른 방에 들어가 계시죠. 그 편이 좋겠습니다.”

구 여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비틀거리는 걸음을 내디뎠다.

대찬이 그녀를 부축해서 방까지 인도했다.

별장의 공기는 차갑게 식었다.

구 여사가 차려낸 음식은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식어갔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박 선장은 이를 악물고 울었고, 서청수 회장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장백주 실장이 부른 경호인력이 별장을 삼중, 사중으로 둘러쌌다.

장백주 실장이 서청수 회장에게 말했다.

“회장님, 경찰을 부를까요.”

“모르겠다.”

“회장님, 모르겠다고 하시면…….”

“모르겠다. 일단 가만히 있자.”

“…네.”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와중에 대찬이 구 여사를 진정시키고 다시 방문 밖으로 나왔다.

서청수 회장의 시선이 대찬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피로감이 짙게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대찬.”

“네, 회장님.”

“어떻게 할까.”

“저보다 다른 분들이 더 현명한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

“네가 나 살렸다. 일단 네 생각 먼저 들어보자.”

대찬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럼, 일단 회장님께서는 돌아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뭣, 그게 무슨……!”

장백주 실장이 또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서청수 회장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제야 서청수 회장의 얼굴에 옅은 웃음기가 번졌다.

“나더러 죽어있으란 말이냐?”

“네.”

“어째서.”

“지금 바로 검경에 손을 뻗으면 백 여사는 손쉽게 꼬리를 자를 겁니다.”

“쇠고랑을 채워도 김 실장이 한계일 거란 말이지.”

“그 김 실장이란 분이 얼마나 충성스러운지, 또 백 여사가 얼마나 교묘한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서청수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대외적으로 내가 죽었다고 하면 놈들이 틈을 보일 것이다.”

“네, 그게 첫 번째 목표였으니 두 번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준동하겠죠. 그럼 필연적으로 마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좋아, 그게 이유의 전부인가? 내가 죽어야 하는.”

“회장님이 죽어계시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기회라면.”

“회장님의 사망은 비자금 때문에 검찰에 불려나가는 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심한 오너 리스크입니다.”

“그렇지.”

“주가가 폭락할 겁니다.”

서청수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저번처럼 경영권 분쟁을 이유로 주가가 폭등할 수도 있잖나?”

“그땐 백양옥 여사가 주축이 돼서 동맹을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지?”

서청수 회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대찬에게 답을 듣고자 했다.

기특한 모범생에게 괜히 자꾸 질문을 던지는 과외선생의 마음이었다.

대찬은 서청수 회장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해주었다.

“회장님이 타계하시고 회장님의 지분이 그쪽으로 쏠리면, 백양옥 여사와 서승학 사장, 아니 전 사장의 지분만으로 경영권 확보가 가능합니다.”

“그렇지.”

“백양옥 회장이든, 서승학 회장이든 회장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죠.”

서청수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주가는 바닥을 칠 거다. 그런데 주가 폭락을 위해서 나더러 죽을 척을 하라는 건가?”

“네, 주식이 급락했을 때, 이삭 줍듯 지분을 사들이면 적은 돈으로 많은 지분을 사들일 수 있습니다.”

“옳거니. 맞다, 네 말이.”

서청수 회장은 빙긋 웃으며 장백주 실장을 바라봤다.

“백주야, 나 당분간 죽어있어야겠다.”

“괘, 괜찮을까요?”

“안 괜찮을 건 뭐냐. 하지만 노골적인 건 촌스럽다.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알겠습니다.”

“백주는 계속 나랑 같이 완도에 남아있고, 윤수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라.”

왕윤수 사장은 서청수 회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윤수 네가 공동대표이사니까, 내가 없는 동안 모든 돌발상황을 네가 컨트롤해. 전권을 허락할 테니까.”

“네, 회장님.”

“경영은 윤수가 맡고, 태준이는 나 없는 동안 밑에 놈들이 쓸데없는 짓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해.”

김태준 사장은 서청수 회장 쪽으로 몸을 틀었다.

“단속을 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싹수가 노란 놈들을 미리 솎아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서청수 회장은 빙긋 웃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렇게 하자. 살생부 작성해서 나한테 올려.”

“네, 회장님.”

서청수 회장은 서청운 사장을 바라봤다.

“청운아, 이 일은 함구해야 한다. 알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너도 인태랑 같이 서울로 올라가라. 올라가서, 내가 죽었다는 소문에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일가친척이 없는지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서청운 사장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서청수, 서청규 두 형님의 암투 속에서도 평화롭게 자기 계열사만 잘 가꿔온 그였다.

돌연 이런 상황을 맞이하니 얼떨떨할 뿐이었다.

서청수 회장은 대찬을 바라봤다.

“원웅이한테는 네가 귀띔을 해주는 게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전달은 전화로 하고, 상황 끝날 때까지 너도 완도에 있어줘야겠다.”

대찬은 잠깐 멈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청수 회장은 순식간에 임무를 하달하고 짧은 숨을 토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흩어졌다.

왕윤수 사장과 김태준 사장은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서청운 사장과 서인태 차장도 따로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 별장에서 서청수 회장을 보좌하는 사람은 대찬과 장백주 실장뿐이었다.

그런데 어째 관계가 역전된 듯했다.

서청수 회장은 온갖 실무적인 일은 장백주 실장에게 다 맡겼다.

말이 좋아 실무였지 기실 허드렛일에 가까웠다.

장백주 실장은 그렇게 소위 뺑뺑이를 쳐놓고 대찬과는 앞으로의 전략에 대해 의논했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업무를 따지자면 아주 틀린 일은 아니었다.

장백주 실장은 서청수 회장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며 사장급의 비서실장까지 올랐으니까.

그런데 평소 하던 일이라지만 어째 배알이 뒤틀렸다.

대찬을 작심하고 부려먹으려고 해도, 서청수 회장이 그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결국 인력 배치며 보안경계, 하다못해 식사까지 장백주 실장이 책임지게 되었다.

‘나 참, 누구는 뭣 빠지게 뺑뺑이 치는데 누구는 팔자 좋게! 아오.’

장백주 실장은 성질이 뻗쳐서 담배를 물었다.

장백주 실장은 경호인력을 동원해 박 선장을 24시간 감시했다.

혹여 백양옥 여사와 몰래 접선해서 얘기를 흘렸다가는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구 여사도 마찬가지로 감금되다시피 했다.

대찬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를 위로했다.

“여사님, 죄송해요. 그래도 이럴 수밖에 없어요.”

“…우리 바깥양반이 사람을, 그것도 회장님을 죽이려고 했으니 내가 무슨 할 말이 더 있어.”

“죄가 있으면 박 선장님께 있죠. 모쪼록 최대한 일이 잘 풀리도록 저도 힘쓰겠습니다.”

구 여사는 황망한 시선을 대찬에게 보내며 그의 손을 꽉 붙들었다.

대찬도 구 여사의 손을 한참 붙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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