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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73화 (272/556)

난 할 수 있어 273화

척 보기에도 잘 놀게 생긴 젊은 남자 하나가 방방 뛰었다.

“완전 좋아! 사랑해요!”

그걸 보자마자 대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저 미친 새끼.”

“갑자기 웬 욕을 그렇게 하니?”

어머니의 말에 대찬은 멋쩍게 웃었다.

“제가 욕을 했어요?”

“몰랐는데 너 윤이영 팬이구나.”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이긴 해요.”

대찬은 헛기침을 하고 다시 TV 화면에 집중했다.

그 잘 노는 남자를 리포터가 끌고 앞으로 데려왔다.

그는 윤이영에게 가까이 가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더 야단법석을 떨었다.

대찬의 눈에 그 야단법석은 지랄발광이었다.

저도 모르게 눈빛이 이글이글 타는 대찬을 보고, 어머니는 별 일 다 보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리포터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

“윤이영 씨가 그렇게 좋으세요?”

“아, 진짜 이 영화 전부터 좋아했어요. 누나, 너무 예뻐요!”

“고맙습니다.”

남자의 칭찬에 윤이영은 수줍게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리포터는 남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댔다.

“윤이영 씨의 가장 큰 매력 하나만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요?”

“꼭 하나만이에요?”

남자의 간절한 목소리에 리포터와 윤이영은 물론, 주변의 인파도 한바탕 웃었다.

“두 개까지 봐줄게요.”

“아, 꼭 두 개만 뽑아야 되면요, 청순한 외모랑 미친 연기력 이렇게 할래요.”

“청순한 외모와 미친 연기력! 딱 윤이영 씨를 잘 요약해줬네요. 역시 윤이영 씨의 팬답습니다.”

대찬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친놈이 보는 눈은 있네.’

리포터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자, 그럼 윤이영으로 삼행시 한번 가볼까요? 윤!”

“윤기 나는 머릿결!”

“이!”

“이지적인 눈빛!”

“영!”

“영원히 변치 말아주세요! 사랑해요! 누나아아아!”

리포터는 흡족한 얼굴로 짝짝 박수를 쳤다.

남자는 안달이 난 얼굴로 말했다.

“누나, 저 소원 하나만 들어주시면 안 돼요?”

“네, 무슨 소원이요?”

“진짜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돼요? 한 번만!”

“하하, 어려울 거 없죠.”

윤이영은 시원하게 웃으면서 팔을 벌렸다.

그러자 남자는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윤이영의 품에 와락 뛰어들었다.

대찬은 소파의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미쳤나, 진짜!”

그 목소리에 곤히 잠들었던 아버지마저 깨버렸다.

“뭐, 뭐야?”

“너 왜 그래, 진짜?”

자신에게 쏠리는 부모님의 표정에 대찬이 힘겹게 웃었다.

“아, 아니에요…….”

대찬은 분출할 수 없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배우는 보통 만인의 연인이라고 하니 저런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하는데, 대찬은 이런 쪽으로 아직 내공이 부족했다.

남자는 윤이영을 꽉 껴안고 방방 뛰었다.

“아, 누나, 진짜 사랑해요!”

“하하…….”

“누나, 저 나중에 진짜 잘 되면 누나랑 연애할 수 있을까요.”

남자의 말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대답 잘 해라, 윤이영.’

대찬은 꽁한 얼굴로 생각했다.

그런데 윤이영의 대답은 대찬의 기대에 차고 넘쳤다.

넘치는 것도 너무 과하게 넘쳤다.

“그건 안 돼요!”

“아아!”

윤이영의 친절하지만 단호한 거절, 남자의 과장 섞인 좌절.

그렇게 끝내는 게 가장 무난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윤이영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전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 말에 남자는 물론 리포터의 얼굴에도 당혹감이 번졌다.

이런 가벼운 자리에서 터트릴 소식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 막 유명세를 얻고 탄탄대로를 달리려는 때였다.

굳이 이 타이밍에 열애사실을 밝힐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윤이영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연인의 존재를 말했다.

사전 조율이 안 된 듯, 리포터는 당황하면서 물었다.

“노, 농담이시죠?”

“아뇨, 진짠데요.”

그 장면을 바라보는 대찬은 머리에 피가 확 쏠렸다.

아마 입 안에 오렌지 주스를 머금고 있었다면 그대로 주르륵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리포터는 넋 나간 얼굴로 물었다.

“이거 나가도 괜찮으시겠어요?”

윤이영은 웃으면서 카메라를 정면으로 내보냈다.

“네, 이거 편집하지 말고 그대로 내보내주세요.”

“이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빅 이슈가 터졌네요. 상대는 연예인인가요?”

“아녜요. 일반인이에요. 착실하게 회사 잘 다니고 있는.”

“사귄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년은 안 됐어요.”

“놀랍습니다. 성격이 시원시원하다고 해야 할지…….”

윤이영은 수줍게 웃었다.

“멍청하다고 해도 괜찮아요. 근데 자신이 없어서요. 끝까지 숨길 자신이.”

정말 솔직한 윤이영!

발랄한 글자체의 자막이 윤이영을 도와주었다.

“남자친구 분도 오늘 열애사실을 밝힌다는 걸 알고 계시나요?”

“아뇨, 아마 짐작도 못하고 있을 걸요? 아까 저 학생 분이 포옹했을 때 바득바득 이나 갈았겠죠.”

“그럼 지금 TV를 보시는 남자친구 분은 엄청 놀라셨겠습니다.”

윤이영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끝나고 전화해서 막 기관총처럼 쏴댈 걸요? 전 이미 각오돼있어요.”

“자, 그럼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남자친구 분에게 영상편지 띄우시죠.”

윤이영은 흐흐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오빠, 엄청 놀랐지? 미리 얘기했어야 했는데, 미안. 복수하고 싶었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큼털털하게 고백해서 나만 두근두근했던 것에 대한 복수야! 이따 연락하자, 사랑해.”

리포터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용감하게 열애사실을 밝혀주신 윤이영 씨를 모두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화면이 스튜디오로 넘어가고, 대찬은 멍하고 초점 흐린 눈으로 TV를 응시했다.

“아…….”

건전지 빠진 시계처럼 꼼짝도 안 하는 대찬을 보고 어머니가 물었다.

대찬의 어머니는 촉이 좋았다.

“윤이영이 사귄다는 착실한 회사원이 혹시 너냐……?”

“…네?”

“맞네, 아이고, 이를 어째.”

“…어떻게 아셨어요?”

어머니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별 사고를 다 치고 다니니까 내 상상력 스케일도 엄청 커졌거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설마 했는데.”

“유, 윤이영이 네 애인이라고?”

아버지도 화들짝 놀라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대찬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망할 톱스타께서 말한 그대로예요.”

“너는 애인한테 망할이 뭐니, 망할이.”

“아, 근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얼른 가서 전화나 해줘라. 끝나고 나서 기관총처럼 쏴댈 거 같다잖아. 기대를 채워줘야지.”

“전화 좀 하고 올게요.”

대찬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비식비식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대찬이 방으로 들어가자, 어머니는 휴대폰을 꺼내 검색했다.

-윤이영 재산.

다이얼이 얼마 울리지 않아 윤이영이 전화를 받았다.

준비가 돼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

“아니, 나한테 미안할 건 없는데, 너 정말 괜찮겠어?”

“내가 안 괜찮을 건 뭐야?”

대찬은 이마를 탁 짚으며 말했다.

“이제 막 뜨는데 내가 걸림돌이 될 게 뻔하니까.”

“전혀. 누구랑 연애한다는 게 내 배우 커리어에 지장될 정도면, 내 능력이 그거밖에 안 된다는 뜻이야.”

“말이야 쉽게 할 수 있어도 현실적으로…….”

“오빠.”

윤이영은 대찬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굳이 오늘 터트린 건 다 이유가 있어. 오빠가, 그리고 내가 쓸데없는 오해 안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쓸데없는 오해라니?”

“언젠가는 사람들한테 오빠랑 사귄다는 걸 알려야겠지?”

“그렇긴 하지.”

“사람들 말을 쉽게 하잖아. 내가 정말 탄탄대로를 달려서 잘 나가는 여배우가 됐다고 치자.”

“…응.”

“그렇게 된 다음에 열애사실을 알리면? 사람들은 공연한 상상을 한단 말이야.”

대찬은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며 물었다.

“공연한 상상이라니?”

“돈 많은 사업가가 돈으로 여배우를 꼬셨다느니, 혹은 그 반대로 잘 나가는 여배우의 돈이나 인기를 탐내서 나를 꼬셨네 하는 헛소문이 돈다구.”

“그런 소문이 돈다고 해도 그저 미미한 루머에 그칠 거야.”

“다른 사람은 미미한 루머라고 할지 몰라도 나는 그런 뒷말 나오는 거 절대 용납 못해.”

“이영아.”

“그래서 지금밖에 없었어.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지고지순해도 남들은 지고지순하게 안 봐.”

“우리끼리 좋으면 그만이지.”

“그렇지 않아. 바깥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이게 우리 관계를 흔들 수도 있어. 내 인기나 위신이 상한다 하더라도, 차라리 상하는 쪽을 감수할래.”

대찬은 안쓰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대찬 복 받았다. 이런 사람하고 연애를 다 하고.”

“그래도 미안해. 많이 놀랐을 거야.”

“놀라긴 했지. 부모님한테 들켰어. 표정관리 못해서.”

“아, 정말? 조만간에 찾아뵙겠다고 전해드려. 저 여자 입 가볍다고 초장부터 점수 팍 깎인 건 아닌가 걱정되네.”

“그런 걱정은 말고. 왈라비에서 뭐라고 하지 않겠어? 너희 소속사.”

윤이영은 짓궂게 웃었다.

“안 그래도 지금 전화하는 중에도 부재중 전화 계속 오고 있어.”

“내가 왈라비 사장에게 전화할게. 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결자해지해야지. 걱정 마. 소풍 가는 날 확 떠서 이제는 내가 갑이니까.”

“혹시라도 험한 소리 하면 나한테 바로 연락해줘. 쇠파이프라도 들고 다 때려 부수려니까.”

“나 조폭마누라 되긴 싫거든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얌전히 계시면 됩니다.”

“아, 주말 저녁에 폭탄 큰 거 하나 맞으니까 정신이 아직도 아찔해.”

윤이영은 웃으면서 말했다.

“사랑해.”

“…그래, 나도 사랑해.”

둘은 싱겁게 웃으면서 전화를 끊었다.

여파는 분명히 있었다.

윤이영이 생각하지 못한 여파도 있었다.

그녀는 대찬의 신원을 극구 밝히지 않았지만, 요즘 세상에 그런 것쯤이야 비밀 축에도 못 들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물이 올라왔다.

제목은, ‘와, 나 윤이영 남친 누군지 알 거 같음ㅋㅋㅋㅋㅋㅋㅋ’이었다.

-나 스튜어디스 일 하는데, 윤이영이 홍콩 가는 비행기에서 어떤 남자랑 같이 비즈니스 탔거든.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닌데 파푸아뉴기니에서 CF 촬영 한다고 했어.

근데 둘이 막 조잘조잘 엄청 시끄러운 거야.

손님들이 조용히 좀 시키라고 할 정도로 그래서 조용히 해달라고까지 했음. ㅇㅇ

그래도 둘이 소곤소곤 잘 놀더라. 그러다 잠이 들었는데, 막 이마를 맞대고 자는 거야.

여기까진 그럴 순 있는데, 남자가 잠에서 깨고 나서도 계속 윤이영이 어깨에서 자도록 놔두더라.

윤이영도 깨고 나서 막 부끄러워하고, 썸 타는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 뭔가가 있었음.

확실하진 않은데 일반인이라고 하니까 아마 윤이영 남친 맞는 듯.

그 게시물은 순식간에 조회 수가 확 늘어났다.

댓글도 몇 초 간격으로 우르르 달렸다.

-그래서 잘생김? 키 큼?

└일반인 치고는 잘생김ㅇㅇ 키는 엄청 크진 않은데 그 정도면 적당한 듯

-와, 대박! 나이는 몇 살 정도 돼 보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누구는 돈 많은 사장이 꼬신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런 거 같진 않던데.

-소속사 직원은 아님?

└그건 아닌 거 같던데? 나 지나갈 때 뒷줄에 앉은 소속사 직원하고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같은 회사 같진 않았음.

-금수저겠지. 어떻게 평범한 회사원이 윤이영이랑 사귀어?

└그래도 그때는 윤이영 뜨기 전이었으니까. 남자도 나름 능력 있어 보이던데. 소속사 직원이 차장이라고 부르더라. 그 나이에 차장이면 잘 나가는 거 아님?

└아니;; 평범한 회사원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인데 어떻게 차장이야. 다른 회사 봐봐. 그런 케이스가 있나.

└그래? 그래도 엄청 잘하면 30대에 차장 달 수도 있지.

└ㄴㄴ 불가능.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 없던데.

└주변에 없다고 다 없는 건 아니지. 어느 회사 다니는데?

└나 회사 안 다녀!

└아.. 답변 고마워.

설왕설래하니 대찬의 신원은 금방 들통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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