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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65화 (264/556)

난 할 수 있어 265화

2013년, 배양육으로 햄버거 패티 하나를 만드는 데 3억 5천여 만 원이 투입된다.

첫 번째 삶의 대찬이 경험했지만 지금의 은오영 교수는 겪지 못한 2018년에 이르러 배양육은 100g당 8달러 정도까지 내려왔다.

5년 만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삶의 2014년 현재, 그 결과를 명백히 알고 있는 건 대찬뿐이었다.

은영오 교수도 그런 정확한 계산까지는 해내지 못하고 있을 것이었다.

“네, 그래서 외부의 투자가 절실했습니다.”

“그랬겠죠.”

“우리는 비슷한 연구를 하는 업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순항했어요.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어요.”

“왜죠?”

“말씀드렸던 것처럼 외부의 투자가 신통치 않았거든요.”

대찬은 은오영 교수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경쟁업체에 별로 뒤처지지도 않았는데요?”

“실리콘밸리의 투자는 80퍼센트가 인맥입니다.”

“그 동네도 별반 다른 건 없군요.”

“기왕이면 다홍치마죠. 비슷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가 여럿 중에 나은 연줄을 가진 쪽이 투자를 독식하는 겁니다.”

“저런.”

“그래서 우린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망했습니다. 우리 케이스가 딱히 불운한 것도 아니었죠.”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히 잘못하지도 않았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라 망하니까.”

“네.”

“그쪽 업계에 종사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말씀은 어느 정도 동감합니다.”

“그렇게 망하고 나니, 똘똘 하나로 뭉치던 단합은 온 데 간 데 없어졌습니다. 실패의 이유를 두고 무의미한 남 탓만 해댔죠.”

“보통 그렇죠.”

“그 결과 사업이 망한 원흉으로 누가 지목됐는지 아십니까?”

대찬은 정답을 충분히 예측하고 씁쓸하게 말했다.

“은 교수님이었겠죠.”

“예, 나였습니다. 나는 기술의 진척에 있어 저들보다 훨씬 기여를 많이 했습니다. 근데 왜 내가 원흉으로 몰렸는지 알아요?”

“왜죠?”

“한국에서 연구윤리를 어겼으니 그게 투자자들 귀에 들어가서 이렇게 됐다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알 리가.”

“없죠. 다만 제 과거는 잘 보이는 상처였고, 그 사람들은 옳다구나 물어뜯은 겁니다.”

대찬은 이제 완전히 식어버린 설렁탕 그릇을 살짝 밀며 말했다.

“그래서 사기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군요.”

“네, 제 잘못 맞습니다. 아주 더러운 잘못이죠. 하지만 그걸로 인생 자체가 침몰해버리니까, 반성보단 원망을 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오히려 그때 책임 있는 위치에 있던 분들은 여전히 교수노릇을 하고 계시던데요.”

“네, 아주 잘 나가죠. 이력에서 노태진 교수와 줄기세포를 연구했다는 역사는 쏙 빼버린 채로.”

“그분들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시지 않으시던가요?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은오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인간들은 자기들의 추악한 과오를 저한테 가능한 한 최대로 뒤집어씌웠습니다.”

“음.”

“똥 묻은 휴지가 다시 자기 곁으로 돌아온다는데 누가 반기겠어요?”

“하긴…….”

“여기 중림대 교수 자리도 진짜 천신만고 끝에 겨우 얻었다고요. 이것까지 없으면 진짜 죽어요, 저.”

은오영 교수는 읍소했다.

묵묵히 듣던 대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알겠다뇨?”

“그냥 알겠다고요.”

은오영 교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그럼 저 고소는…….”

“아직 결정 못했어요.”

그 말에 은오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체 무슨 말을 더 해야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겁니까?”

“은 교수님은 무슨 말 더 안 해도 됩니다. 판단은 우리가 할 테니까요.”

“하아…….”

대찬은 은오영 교수를 흘끗 보고 말했다.

“근데 우리가 합의금 달라고 하면 주실 여력은 됩니까?”

“…다달이 월급 쪼개서라도 드려야지 별 수 있습니까.”

대찬은 질문의 결을 달리했다.

“근데 왜 한국에서 굳이 교수를 하시는 겁니까?”

“그럼 뭐 먹고 삽니까. 배운 게 이건데.”

“연구실에서는 계속 배양육을 연구하고 계시는 건가요.”

은오영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이 학교가 그런 장기 프로젝트를 밀어줄 리가 없잖아요. 학교는 돈 되는 사업을 원해요.”

“그렇기야 하지만 그래서는 은 교수님을 기껏 모셔온 보람이 없잖아요?”

“학교에서는 제 연구성과가 아니라 서울대 석사, 퍼듀대 박사라는 간판을 보고 데려온 겁니다.”

“으음.”

“그 간판을 순진한 고딩들 낚는 미끼로 쓰고 있죠.”

대찬과 은오영 교수는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대찬은 화제를 전환했다.

“배양육 연구로 제법 진척도 있었는데, 그걸 한국에서도 하면 되잖습니까.”

은오영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실리콘밸리에서도 망한 걸 한국에서 한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업체가 없으니까, 투자를 기대해볼 만하지 않습니까?”

대찬의 거듭된 말에 은오영 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선 어림도 없습니다. 한국 대기업을 몰라서 이런 말씀 하시는 건 아니잖습니까?”

“물론 저도 그 일원이긴 합니다만…….”

“기껏 고사리 손으로 조물조물 모래성 지어놓으면 뭐 합니까. 덩치 이만 한 대기업들이 와서 내놓으라고 깽판 치잖아요.”

“안 내놓겠다고 하면 모래성 허물어버리고 자기가 똑같이 흉내 내서 짓고요.”

“네, 그걸 뻔히 아는데 미국에서 몸과 마음 탈탈 털리고 온 제가 사업할 엄두나 냈겠습니까?”

“그렇죠.”

“게다가 저는 마빡에 낙인이 떡하니 찍힌 인간이라고요. 논문조작범. 그 낙인이 아직까지 선명합니다.”

“게다가 노태진을 비롯한 다른 어른들이 외면하니 고립무원이시고…….”

“네, 제가 무슨 수로 사업을 하겠습니까.”

대찬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일 외부 투자가 이뤄진다면 소기의 성과를 낼 자신이 있으십니까.”

“네? 당연하죠. 투자가 없으니 공염불이지만요.”

그렇게 대답하는 은오영 교수의 목소리는 일전과 달랐다.

목소리는 확신에 차있었다.

일견 기백마저 느껴졌다.

대찬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세요?”

“제 손으로 기술을 만들어냈으니까요. 그리고 그 기술이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으니까요.”

대찬은 손을 모으고 깍지를 낀 채로 은오영 교수를 한참 바라봤다.

은오영 교수는 대찬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왜, 왜 그렇게 봐요?”

“나는 아직 대범한 사업가가 못 되나 봐요.”

“네?”

“세계적인 기업가는 딱 상대의 눈을 몇 분만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잖아요.”

“…….”

대찬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저도 그걸 흉내 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

“주저하게 되고, 망설이게 된단 말이죠.”

“저, 저에게 투자하시는 일을 말씀이에요?”

“네, 멋지게 딱,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이렇게 주저하고 있단 말입니다.”

대찬은 은오영 교수의 말에 구미가 당겼다.

배양육 사업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배양육 산업에 유의미한 투자를 하는 기업은 없었다.

사람들이 안 하는 데는 안 하는 이유가 있다.

위험요인이 다분했다.

획기적인 기술발전을 위해 투입할 거액의 자금이 수중에 없다.

실패의 경우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고 일어날 만한 자금도 없다.

이 사업은 단기간에 수익을 창출할 수 없다.

최소 5년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최대로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자칫 이 사업에 발목이 잡히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가능성도 농후했다.

배양육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유망한 산업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찬이 살았던 첫 번째 삶의 2019년까지,

배양육 산업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네덜란드, 이스라엘 정도에서만 활발히 연구되었다.

한국은 불모지 그 자체였다.

오히려 그걸 가지고 투자자를 끌어 모아 사기를 친 사업가가 구속되는 추태만 보였다.

그러니 두 번째 삶이 첫 번째 삶의 재판이 아니라는 걸 배제하더라도 섣불리 성공을 자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은오영 교수였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것들이 허세 섞인 무용담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심안을 지닌 이라면 그걸 간파해낼 수도 있겠지만, 대찬은 그렇지 않았다.

대찬은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이건 단순한 가정입니다. 만일 충분한 투자금이 주어진다면, 이 연구를 진행할 용의가 있으세요?”

“당연하죠.”

은오영 교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대찬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저는 은 교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을 못 믿겠어요.”

“뭐, 제가 조 대표님이라도 저 못 믿어요.”

“그래서 갈등을 하는 겁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분을 믿어도 되는지.”

은오영 교수는 쓰게 웃었다.

“그럼 PT를 한번 할까요.”

“가능하세요?”

“당연합니다.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PT가 뭡니까. PT체조라도 하라면 하죠.”

은오영 교수의 말에는 강단이 있었다.

대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희도 교수님이 옥인지 석인지 가릴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겠습니다.”

“최대한 철저하게 해주세요. 거뜬히 통과해낼 자신이 있으니까.”

최소한 이 때만큼은 은오영 교수는 명석한 과학자의 표본 같았다.

둘은 반쯤 먹다 남긴 설렁탕을 두고 헤어졌다.

대찬은 바로 민승기를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민승기는 빙긋 웃었다.

“은오영 교수가 물건은 물건인가 보네, 천하의 조대찬을 다 구워삶고.”

“아직 결정한 건 아니에요. 수틀리면 합의금이나 왕창 뜯고 빠이빠이 할 거라고요.”

“글쎄, 그러진 않을 거 같은데.”

“오늘 은 교수 만나서 얘기한 건 순전히 저 혼자만의 생각이에요. 회사 차원에서의 논의는 별도로 이뤄져야겠죠.”

“네 판단이 곧 회사의 판단이야.”

대찬은 고개를 저었다.

“선배의 의견도 중요해요. 다른 직원들에게도 최소한의 동의는 구해야 하고요.”

“너는 역지사지 좀 해라.”

“…네?”

“내가 파푸아뉴기니에서 원두 들여오겠다고 했을 때 군말 없이 오케이 했잖아? 근데 나는 왜 그렇게 못하게 해.”

대찬은 겸연쩍게 웃었다.

“군말 없이 오케이 안 했는데요. 꼬치꼬치 캐물었지.”

“아, 거 더럽게 깐깐하네. 그럼 요식행위로 꼬치꼬치 캐물어줘?”

“진정하세요. 상처 벌어져요.”

대찬은 웃으면서 민승기를 제지했다.

민승기는 병상에 반듯이 몸을 누이며 말했다.

“난 어차피 이런 몸이라 PT에도 참석 못해. 네가 알아서 잘 골라내.”

“알았어요. 나중에 녹화 떠서 보여드릴 테니까 그래도 한번 보시긴 하세요.”

“알았어. 암튼 귀찮아 죽겠다, 진짜.”

“다음에 올 때 게살죽 한 번 더 사다드려요?”

“닭죽.”

“알았어요. 푹 쉬세요.”

민승기는 돌아 누우면서 귀찮은 듯한 손짓으로 대찬을 전송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병원을 떠났다.

대찬은 은오영 교수의 PT가 예정되기 전까지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서원웅과 만났다.

만일 본격적인 기술개발에 착수하면, 자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닐 것이다.

로튼 프룻츠가 단독으로 감당할 체급의 사업이 아니었다.

‘필래가 필요해.’

필래 비바체를 끌어오면 최소한 돈이 없어서 실패했다는 변명은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성과 없는 빈손으로 투자금을 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건 사업성을 내세운 투자 유치가 아니라, 인맥을 내세운 구걸이 된다.

서원웅이 거액의 투자를 결정한다 해도 대찬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건 필래가 아니라 로튼 프룻츠의 사업이야’

그걸 내세우려면 뭐라도 손에 쥔 게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애써 지은 밥을 그대로 필래에 헌납해야 하는 수가 있었다.

다만 대찬이 서원웅을 만나는 건, 은근한 귀띔만 해주기 위해서였다.

대찬의 얘기를 듣고 서원웅은 빙긋 웃었다.

“네 말대로라면 그 사업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도 있겠네.”

“네, 잘 된다면요.”

“당장 로튼 프룻츠 몫을 가로챌 생각은 없어. 아무것도 없는 곳에 돈을 붓는 리크스를 감수하고 싶지도 않고.”

대찬은 웃었다.

“이미 여러 가지 사업이 잘 굴러가고 있는 와중에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죠. 방 잘 닦아놓으면 그때 헛기침 하면서 들어오시면 됩니다.”

“그런데 정말 로튼 프룻츠 자금만으로 가능하겠어? 지금 사업자금 충당하는 것만으로도 팍팍하잖아.”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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