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256화
대찬은 의문을 표했다.
“대표님은 벌써 사모펀드와 투자은행 등의 자금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천억 단위는 예사로 넘고 있어요.”
“그렇지.”
“여러 사업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으면서 주가도 꽤 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해봤자 잘해야 천억은커녕 백억 단위에서 허덕일 겁니다. 그게 경영에 큰 도움이 될까요?”
서원웅은 대찬을 바라보며 웃었다.
“조대찬 배포 많이 커졌다. 이제 백억 단위는 돈도 아니라 이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는 푼돈이라는 거죠.”
“그래도 경영에는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하면 부수입이 쏠쏠하잖아?”
“부수입이라면… 아.”
대찬은 그제야 서원웅의 의도를 짐작했다.
우리사주조합의 장점은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직원들이 회사 지분을 보유하면서 내 회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업무에 임할 수 있다.
또, 근로자의 복지향상과 노사협력 강화 등, 기실 경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시시콜콜한 것들이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서원웅의 의도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니었다.
서원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사주조합의 가장 큰 속성은, 새로운 유의미한 주주가 탄생한다는 거야.”
“그리고 조합은 대표님의 경영이 안정적인 이상, 대표님의 지지세력이 되겠죠.”
“물론 내 경영능력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 전에 조합장이 확실한 내 지지자라면 더 확실한 아군으로 둘 수 있지.”
“확실한 지지자라고 하시면.”
서원웅은 자신의 손으로 대찬의 손을 덮었다.
“우리 조대찬 차장.”
“제가 조합장에 당선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네가 출마만 하면 누가 대적하겠어.”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를 과대평가하고 계시네요.”
“본인이 본인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거겠지.”
“우리사주조합장의 선출은 직선제가 원칙이라지만 오너가 마음대로 꽂아 넣는 회사들이 다수입니다.”
서원웅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그렇게 하라고? 그렇게 안 할 거야. 첫째, 윤리경영에 위배. 둘째, 어차피 직선제로 해도 조대찬이 될 텐데 왜?”
“이러고 제가 똑 떨어져봐야 정신 차리시겠네.”
“선거 당일에 회사 로비에 똥 지리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걸.”
대표의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 지저분한 얘기에 대찬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화제를 전환했다.
“꼭 지금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할 필요가 있습니까?”
“왜?”
“우리가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성장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응.”
“그렇게 치면 우리 회사 주가는 저평가된 거죠. 차라리 모든 이프(if)가 반영된 다음 조합을 설립하는 게, 경영진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잖습니까.”
“또 그렇게 정 없는 소리를.”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회사가 정으로 굴러가는 건 아니니까요. 더더욱 자금조달이 목적이라면.”
“지금 우리사주조합에 청약하는 분들은 우리 회사를 생각하는 분들일 거 아니야.”
“아니면 우리 회사의 미래를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거나.”
서원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들한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면 좋잖아? 네 말마따나 푼돈인데. 이렇게 사람이 야박해.”
“하하, 대표님이야 오너니까 선심 쓰실 수 있지만 제가 오너는 아니잖습니까.”
“내가 무슨 오너야. 나 이 회사 지분 0.1프로도 안 되거든요.”
“그게 우리사주조합을 설립하려는 이유 중 하나니까요.”
서원웅은 대찬과 손잡고 키워낸 이 회사를 자신의 기반으로 삼고 싶었다.
그런데 서원웅은 엄밀히 따지면 월급사장이었다.
필래 비바체의 최대주주는 어디까지나 서청수 회장이 주무르는 필래지주였다.
그만큼의 지분을 확보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사주조합을 키워 유의미한 세력을 구축하면 서청수 회장의 도움이 없이도 이 회사에 독립적인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서승학은 어머니 백양옥 여사를 등에 업고 이미 그룹 내에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서청규 사장이 연이어 열세에 몰리면서도 굳건한 건, 보유하고 있는 압도적인 필래유통의 지분 덕택이었다.
서원웅은 이들에 맞서야만 했다.
잘 벼린 일본도로 짓뭉개려는 저들을 향해 하다못해 죽창 한 자루라도 쥐고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비바체 내부에 우호적인 지분을 확보해놓으면, 향후 후계싸움에서 벌어질 갖가지 변수를 제어할 수 있었다.
물론 설립하자마자 그러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지금 그 씨앗을 뿌리겠다는 게 서원웅의 계산이었다.
대찬은 그 생각에 십분 동의했다.
우리사주조합이 서원웅에게 우호적이려면 서원웅이 비바체를 훌륭하게 이끌어야 한다.
이끌지 못하면 우리사주조합은 도리어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는 서원웅의 계산에도, 대찬의 계산에도 없었다.
어차피 경영에 실패한 서원웅은 후계구도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에.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우리사주조합장에 출마하겠습니다.”
“조대찬이 출사표를 던진 마당에 누가 대항마로 나설지도 기대되는데.”
서원웅은 빙긋 웃었다.
우리사주조합은 회사가 경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지고 이용되기도 했다.
때문에 일부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우리사주조합주의 청약을 강요하기도 했다.
하지만 필래 비바체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자율적으로 우리사주조합주를 공모했다.
대찬은 자신이 보유한 2억 원 어치의 주식에 더해 사비 얼마를 털어 우리사주조합주를 매수했다.
우리사주조합의 설립이 확정되자, 대찬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였다.
송희근 과장이 쭈뼛거리며 대찬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네?”
“살까요, 말까요.”
대찬은 웃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조 차장님이 대표님께 건의해서 조합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이미 회사에 파다합니다.”
“그게 무슨 헛소문이에요. 이건 전적으로 대표님의 단독결정이에요.”
대찬의 부정에도 송희근 과장은 흐흐 웃으며 믿지 않았다.
“그걸 저더러 믿으라고요? 직원들이 조합 설립해서 경영에 참여하는 걸 대표님이 좋아하실 리가 없는데요?”
“왜 없어요? 송 과장님은 어지간히 대표님에 대한 불신이 깊으시네요. 일러야겠다.”
“차장님!”
“아무튼 이 결정에 나는 좋은 생각이라고 고개만 끄덕였지, 부추기는 말 한 마디 얹지도 않았어요. 그러니 오해 마시죠, 송 과장님.”
송희근 과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이것만 말해주세요. 재테크 관점에서 청약을 넣는 게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과장님이 대표님의 경영능력을 신뢰하면 넣으시고, 불신하면 넣지 마세요. 간단하잖아요?”
“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청약 안 넣은 사람이 역적 되는 거잖습니까!”
대찬은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흐흐 웃었다.
“나는 역적의 이응 자도 꺼낸 적 없습니다만.”
여기에 허운이 참견했다.
“저는 한 오백 땡겨서 넣으려고요.”
송희근 과장이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오백씩이나?”
“네, 지금까지 우리 회사 주가 오른 거 보세요. 더 오를 거예요.”
“이미 너무 많이 오르지 않았어? 모름지기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잖아. 이미 어깨일지도 몰라.”
“와, 송 과장님은 역적이 확실합니다. 경영진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르네요, 하늘을.”
“야, 허운!”
이에 한태윤 과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쯤 되면 송 과장님의 애사심을 의심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과장까지 이럴래, 진짜?”
“저는 애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서 여유자금이 많이 없습니다. 이백만 넣겠습니다.”
여기에 오다혜가 소심하게 말했다.
“저는 오십만 원 어치만…….”
김산호, 유채경, 홍은주가 이어서 말했다.
“저는 백…….”
“저는 허 과장 몫에 백만 원 더 보태서 넣을게요.”
“저는 삼백 넣겠습니다.”
송희근 과장의 눈이 커졌다.
“호, 홍 주임! 삼백이나?”
“전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이에요.”
대찬은 느물거리며 웃었다.
“우리 팀원은 다 청약 넣기로 한 거네요? 우리 송, 희, 근 과장님만 빼고.”
“제, 제가 언제 안 넣는다고 했습니까! 사백, 사백 넣겠습니다!”
우리조합사주 공모는 생각보다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직원들이 바라보는 회사의 내부사정이 좋았다.
옥문영 상무는 무려 2천만 원 어치를 매수하겠다고 했고, 알음알음 듣자하니 천만 단위의 거금을 투입하겠다는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했다.
택배사업부의 직원들의 참여가 특히 두드러졌다.
그들은 사업부를 인수해 자신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회사에 보은하는 차원도 있었다.
하지만 필래유통을 겪어보니 비바체가 훨씬 유망하다는 경험적인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5천여 명의 필래 비바체 직원이 총액 100억 원어치의 주식을 매수하기로 결정했다.
한 사람 당 평균 2백만 원 어치의 주식을 매수하는 꼴이었다.
물론 이는 회사의 전망을 높게 평가하거나 차기 필래그룹 후계구도에서 서원웅에게 배팅한 비바체 임원들과 부·차장들이 거액을 투입한 결과였다.
100억 원에 달하는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은 시가총액이 4조 원에 달하는 비바체 전체의 0.25%에 달했다.
파괴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주주총회에서 이사해임건의안을 제출할 자격을 얻을 만큼 유의미한 지분임에는 분명했다.
게다가 이건 첫 걸음에 불과했다.
0.25퍼센트가 2.5퍼센트가 될 가능성을, 더 훗날에 25퍼센트가 될 가능성 자체를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0.25퍼센트의 지분을 휘두를 조합장이 누가 될 것인가.
이건 화기애애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필래 비바체 내부에서 훌륭한 가십거리가 되었다.
애초에 도진석 전무 역시 여기에 군침을 흘렸다.
출사표를 낼 작정이었다.
주변의 측근들이 부추기기도 했다.
“기존의 임원들이 줄줄이 갈려나간 마당에, 도 전무님이 아니면 누가 나서겠습니까?”
“어흠, 그, 그런가?”
도진석 전무도 그 건의를 일축하지 않았다.
“아무렴요. 기껏해야 옥문영 상무 정도인데 손에 기름때나 묻히던 고졸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어흠…….”
“서원웅 대표의 행보를 보아하니 우리사주조합의 입김은 점점 더 세질 겁니다. 조합장이 되시면, 차후 서 대표가 전무님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물론이야.”
도진석 전무가 우리사주조합장 선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굳히는 사이.
대찬 역시 출마의지를 숨기지 않고 도리어 공개적으로 밝혔다.
왕차장님 납시었으니 잡것들은 괜한 군침 흘리지 말고 물러나라는 경고의 신호였다.
도진석 전무는 그 소식을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일개 차장 새끼가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
“전무님,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나!”
“아무리 조 차장이 서 대표를 등에 업었다고는 해도 직선젭니다.”
“직선제니까 더 문제야. 사내에서 조대찬이 인망이 두텁다고.”
측근은 흐흐 웃었다.
“사람 마음 겉 다르고 속 다른 거 하루 이틀 보십니까. 지금까지 조 차장의 인망이 두터웠던 건, 차장의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사주조합장은 일개 차장 체급으로 덤빌 자리가 아닙니다. 방종이라구요. 모난 돌이 정 맞는 건 만고의 진리거든요.”
“그래, 조대찬이는 내 밑에서 굴러먹던 녀석이야! 그런 놈이 내 머리 꼭대기에 서겠다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측근의 격려에 도진석 전무는 전의를 불태웠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보자고.”
“필승입니다, 필승. 너무 진지하게 임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도진석 전무는 입술을 깨물었다.
선거는 대찬과 도진석 전무의 2파전으로 결정되었다.
일개 차장이 나섰다고 우습게보며 출마하기에는 전무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도진석 같은 좁쌀영감이 나섰다고 우습게보며 출마하기에는 판타지스타라는 말이 낯간지럽지 않은 대찬이 버티고 있었다.
그 둘이 출마하겠다고 한 이상, 기타 임직원이 나설 틈은 없었다.
우리사주조합의 조합장을 선출하는 선거는 대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되었다.
조합원들이 직접투표로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조합장을 직접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대의원들은 대찬과 도진석 전무의 일장연설을 듣고 그 자리에서 누구를 뽑을지 결정해야만 했다.
도진석 전무는 연단에 올라서서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조합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연륜입니다! 연륜이 없는 풋내기는 우리 5천 조합원을 단합시킬 수 없습니다! 저는 월드몰 입사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유통업에서 잔뼈를 키운 연륜 있는 후보입니다!”
도진석 전무는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연륜 다음으로 중요한 건 카리스마입니다! 카리스마 없는 무골호인은 우리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힘 있게 대변할 수 없습니다! 저는 별명이 불도저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도진석 전무의 피를 토하는 연설에 비하면 박수소리는 만족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