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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52화 (251/556)

난 할 수 있어 252화

소식을 들은 민승기는 유쾌하게 웃었다.

“야, 갑자기 회사 규모가 확 커져버렸네.”

“죄송해요. 선배하고 상의 없이 제가 덜컥 결정했어요.”

“대물이 낚싯대에 걸렸는데 언제 다른 사람 허락을 받겠어? 잘 결정했어. 나한테 물어봤어도 똑같은 대답 줬을 테니까.”

“좋은 점도 많지만 불안한 점도 많아요.”

민승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한 수익모델을 갖춘 인력과 사업이 넘어오는 건 쌍수 들고 환영이지만.”

“사회적 기업은 자칫하면 짐 덩어리만 될 수 있으니까요.”

민승기는 의자의 팔걸이를 탁, 탁 규칙적으로 두드렸다.

“필래에서 투자를 유지한다지만 그건 사업에만 국한되겠지.”

“네, 인건비에 대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을 겁니다. 필래에서 인건비까지 지원할 이유도, 명분도 없고요.”

“필래 치마폭에 있었을 때랑 마찬가지의 대우는 불가능해. 자금이 안 돼.”

“이분들까지야 어떻게 쥐어짜면 가능하겠지만.”

“차후 인력을 추가로 선발하게 되면 같은 대우를 해줘야 하니까.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

“맞습니다.”

민승기는 대찬을 바라봤다.

“그 부분은 분명히 통지를 해줘야 해.”

“제가 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개중 해외수출입 관련 업무에 종사했던 분들은 파푸아 쪽 라인으로 돌릴 거야.”

“그 부분 역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민승기는 웃으면서 물었다.

“만일 순응 못하겠다고 하면?”

“저는 설명하러 가는 거지 설득하러 가는 게 아닙니다. 선택은 그분들 몫이죠.”

민승기는 감정이 교차하는 웃음을 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

대찬은 곧바로 박 부장을 비롯한 웜샤인 직원들과 면담했다.

대찬은 실질적인 최고참인 박 부장과 단둘이 만나는 게 어떻냐고 운을 띄웠다.

여러 사람을 앉혀놔 봤자 논의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웜샤인의 직원들은 전원 참석하겠다고 알려왔다.

그만큼 심정이 절박하다는 뜻이었다.

대찬은 한 명.

박 부장을 위시한 웜샤인 직원들은 열여덟 명.

대찬은 대담한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혼자서 저들을 상대하게 되니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박 부장님.”

“그때는 코흘리개 대학생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되셨습니다.”

대찬과 박 부장은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대찬은 나머지 직원들과도 악수를 나누고 착석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대찬은 그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을 덤덤하게 들려주었다.

“필래 비바체는 웜샤인과 같은 사회적 기업을 자회사로 두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라고요?”

“대신,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로튼 프룻츠에 사회공헌사업부문을 설치, 여러분을 채용할 계획입니다.”

박 부장의 동공이 흔들렸다.

“잠깐, 그건 기존의 약속하고 다르잖습니까.”

“제가 뭐라고 약속했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면서요? 그런데 기껏 내놓은 결정이 이겁니까?”

대찬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건 약속이 아니라 덕담일 뿐입니다.”

“덕담? 지금 장난해요!”

박 부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를 지켜보던 직원 하나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찬은 차분하게 말했다.

“저는 어떻게든 웜샤인을 되살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로튼 프룻츠가 여러분을 품는 것으로 약속을 지켰습니다. 비바체에서는 사업에 대한 투자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했습니다.”

“반병신이 돼서 살아나면 죽었다 살아난 보람이 있습니까? 앓느니 죽고 말지.”

“왜 로튼 프룻츠로 들어오는 게 반병신이 되는 겁니까?”

그러자 다른 직원이 목소리를 냈다.

“그걸 설명해야 알아요? 우리 대기업 출신입니다.”

“그런데요?”

“이름도 못 들어본 중소기업으로 소속을 옮기면 반병신 되는 거지, 뭐예요.”

“반병신의 일원으로 좀 불쾌한 말씀이시네요.”

“대기업 다니는 사람 붙들고 얘기해보세요. 중소기업으로 가라고 물어보세요.”

“…….”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미친놈 한둘 빼면 있을 거 같습니까?”

대찬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필래만큼의 처우를 보장해드릴 순 없습니다.”

“그게 알맹입니다. 나머지는 다 껍데기라고요.”

“하지만 제가 있는 한 비바체에서의 투자는 유지될 것이고, 복지 또한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여러분의 불만은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은 여기까지입니다.”

직원이 더 거친 말로 항의하려는 걸 박 부장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리고 그는 대찬을 바라봤다.

“서원웅 대표가 우리를 버리는 겁니까.”

“여기서 서원웅 대표가 왜 언급되는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우리 단물을 잘 빨아먹다가 애매해지니까 로튼 프룻츠로 귀양 보내는 거 아닙니까.”

대찬은 입술을 비틀었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웜샤인은 서원웅 대표가 입사하기 한참 전부터 있던 회사입니다.”

“하지만 계기는 서 대표가 있던 에피니키온의 신사업이었죠.”

“당시 에피니키온의 신사업을 주도한 건 서 대표가 아니라 저였습니다. 박 부장님이 모르지 않으실 텐데. 본질을 호도하지 마십시오.”

박 부장은 슬그머니 말을 돌렸다.

“어쨌든 웜샤인은 비바체와 일심동체로 움직였습니다. 비바체가 우리를 품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비바체는 웜샤인에게 사업을 제안하고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자금을 지원해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미래까지 책임지라고요?”

“우리가 비바체를 위해 일한 게 있으니 그 공을 봐달라는 겁니다.”

대찬은 언성을 높이지 않기 위해 의자의 팔걸이를 꽉 쥐었다.

“비바체를 위해 일하셨습니까? 아니면 월급을 위해 일하셨습니까.”

“그건……!”

“모든 노동자는 회사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죠. 저도 그렇습니다.”

“비바체가 우리와 긴밀한 관계에 있던 건 사실 아닙니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긴밀했죠.”

“지금 우리는 비바체 계열의 회사로 낙인 찍혀 폐업 당했습니다. 비바체 때문에 실직한 거라고요.”

대찬은 한숨을 쉬었다.

“네, 비바체 계열의 회사로 낙인 찍혔죠. 그 덕분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비바체가 물어다준 사업으로 편하게 근무하셨잖아요?”

“조 차장님!”

“웜샤인의 사업 중에서 비바체가 투자한 사업은 전체의 54%, 매출액으로 치면 88%입니다.”

“…….”

“지금 박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낙인이 한창 좋은 시절에는 훈장이었을 거 아닙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는 고맙단 말씀 한 마디도 없으시더니, 이제는 너 때문에 망했다고 삿대질을 하시는 겁니까?”

웜샤인의 직원들은 대찬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그들은 잘잘못을 떠나 매정하게 말하는 대찬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대찬은 부러 혀끝에 단맛보다는 매운맛을 실었다.

어르고 달래서 로튼 프룻츠로 모셔와 봤자 그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투정만 부릴 것이다.

“제가 제시한 조건이 그렇게 못마땅하십니까?”

“못마땅한 게 아니라 기대에 못 미치는 겁니다.”

“약간의 임금이 삭감되고 필래의 이름표를 떼는 것 말고는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근무 자체는 더 편할 겁니다.”

“…….”

“여러분을 실직자로 만든 필래기획에는 아무 말씀도 못하시다가 비바체를 있는 힘껏 성토하는 여러분을, 제가 어디까지 이해해야 하죠.”

대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박 부장을 위시한 직원들을 가만히 응시하고 말을 이었다.

“제가 내민 손을 잡을 분들은 잡으세요. 뿌리칠 분은 뿌리치세요. 오시는 분은 정중히 모시겠습니다. 가시는 분은, 정중히 작별인사를 드리죠.”

대찬은 그들의 대답을 듣지 않고 자리를 떴다.

못 볼 사람은 이후로 영영 못 볼 것이다.

다시 볼 사람은 로튼 프룻츠의 사무실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사흘 후.

대찬은 비바체에 하루 휴가를 내고 로튼 프룻츠의 사무실로 향했다.

민승기와 맹윤주가 맞았다.

맹윤주가 웃으면서 대찬의 앞에 커피 한 잔을 내려놨다.

“고마워요, 맹 과장님.”

“뭘요. 그런데 있잖아요, 대표님.”

“네?”

맹윤주 과장은 대찬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웜샤인 출신 분들이 와주실까요?”

“맹 과장님은 어떤 편이 좋을 거 같아요?”

“당연히 왔으면 좋겠죠. 민 대표님하고 둘이 있으면 농땡이 치기 어렵거든요.”

맹윤주가 얼마나 성실한 성품인지 익히 아는 민승기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다들 경력이 많으셔서 맹 과장님 상사가 수두룩하게 생기는 건데요?”

“아휴, 제가 그런 속 좁은 생각을 할 거 같아요? 지금 여기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예요.”

“지금 대표 앞이라고 너무 모범답안 제출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요!”

대찬은 편하게 웃으면서 소파에 몸을 기댔다.

“맹 과장님이 괜찮으시다면 됐어요. 그럼 편한 마음으로 기다려봅시다. 몇 명이나 오실지.”

“네, 그래요.”

대찬이 이렇게 말한 건 오전 9시 30분이었다.

그냥 기다리기 뭣하니 대찬은 민승기와 맹윤주의 업무를 거들어주었다.

그렇게 한참 업무를 봐주고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찬의 마음이 슬쩍 불안해졌다.

‘아무도 안 오는 거 아니야……?’

순간 대찬의 시선을 따라 시계를 봤던 민승기와 맹윤주도 비슷한 감정이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전 12시 12분.

셋은 거래처로 전화를 하거나 자판을 두드리거나 서류를 검토했다.

셋의 행동은 다 달랐지만 생각은 같았다.

‘점심 먹으러 가야 하나.’

대찬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침이 바싹 말랐다.

갈 사람 가고 올 사람만 오라고 했지만, 아무도 안 오는 사태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 이것대로 곤란했다.

아니, 최악이었다.

로튼 프룻츠의 덩치를 키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이 기회를 이대로 허무하게 날려버린다면, 서원웅에게도 민승기에게도, 그리고 여태 웜샤인의 사업으로 혜택을 받았던 이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면목도 면목이지만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 자체가 너무 아까웠다.

대찬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맹윤주는 그런 대찬을 흘끗 바라봤다.

측면으로 보이는 그의 목젖이 쉼 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목젖의 운동으로 대찬의 불안감이 맹윤주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민승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찬의 어깨를 살짝 쥐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선배.”

“됐어. 밥이나 먹어. 맹윤주 씨, 오랜만에 조 대표도 왔으니까 특식 먹자.”

민승기의 말에 맹윤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아싸, 그럼 감자탕 먹을까요?”

“에이, 감자탕이 무슨 특식이야. 일식 점심코스 쏜다.”

“와, 역시 민 대표님 스케일!”

일부러 씩씩하게 내는 맹윤주의 목소리에 대찬은 더 씁쓸해졌다.

그렇게 민승기의 손에 이끌려 사무실을 나서려는 찰나.

로튼 프룻츠의 임직원 세 명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맨 앞에는 머쓱한 얼굴을 한 박 부장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대찬은 그들을 보고 일순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부러 다리에 힘을 팍 주고 몸을 지탱했다.

그제야 가식적으로 웃던 민승기와 맹윤주의 표정도 확 밝아졌다.

맹윤주는 쾌활하게 웃으며 그들을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맹윤주라고 합니다!”

“아, 네…….”

얼떨떨하게 반응하던 박 부장의 얼굴에 점차 웃음이 번졌다.

기분이 좋아진 민승기도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딱 좋은 시간에 오셨네요. 아직 식전이시죠? 식사하면서 얘기 나누시죠.”

민승기는 호탕하게 웃으며 박 부장을 비롯한 웜샤인, 이제는 로튼 프룻츠의 직원이 될 이들을 이끌고 식당을 향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사무실에 둘러앉았다.

세 명을 위해 만들어진 사무실이었다.

늘어선 사람들의 어깨가 겨우 닿지 않을 정도로 비좁게 느껴졌다.

자리도 부족했다.

대찬은 저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자신은 민승기가 앉은 소파에 몸을 살짝 의지한 채로 서있었다.

대찬은 저들의 얼굴을 슥 훑으며 숫자를 셌다.

열두 명.

여섯 명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박 부장이 그들의 거취를 일러주었다.

“평소 마음 잘 맞던 둘은 자기들끼리 창업하겠다고 하더군요. 하나는 여행 갔고, 하나는 공기업 시험 보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둘은 쉬는 동안에 이력서 넣고 붙어서 그쪽으로 갔고요.”

“그렇군요. 그래도 다수가 제 싸가지 없는 제안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 부장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저희가 투정 좀 부리긴 했지만 너무 매몰차시던데요.”

“반성하겠습니다.”

“저희도 너무 저희 생각만 했죠. 사과드립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그랬습니다.”

대찬은 민승기 쪽을 흘끗 보며 말했다.

“사업예산은 민 대표님이 맡아주시긴 하지만…….”

대찬이 말끝을 흐리자, 민승기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찬이 맘대로 말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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