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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51화 (250/556)

난 할 수 있어 251화

그건 모두의 생각이기도 했다.

대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상황이 갑갑하고 억울했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떼쓰는 건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팀원들을 다독이고 서원웅을 만났다.

대찬은 똑똑, 노크를 하고 대표이사실로 들어갔다.

그는 웃으면서 차가운 아메리카노 커피를 탁자에 내려놨다.

“열 받으시죠. 냉커피로 속 좀 식혀요.”

서원웅은 테이크아웃 잔의 뚜껑을 훌러덩 벗기고 빨대도 빼버렸다.

그리고는 잔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대찬은 웃으면서 탁자에 몸을 기대고 섰다.

“어떡하실래요?”

“맘 같아선 이복형 인중에다가 M16 갈기고 싶은데.”

“공익 출신인데 M16도 쏠 줄 아세요?”

이 상황에 농담을 건네는 대찬을 향해 서원웅은 눈을 흘겼다.

“공익도 훈련소에서는 총 쏘거든.”

“그런가요.”

대찬은 웃으면서 소파에 앉았다.

“그래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지. 그게 저쪽에서 원하는 거니까.”

“잘 간파하고 계시네요.”

“대외적인 이미지가 깎이는 것도 그렇지만,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회장님께서 좋지 않게 보실 거야.”

“맞습니다.”

서원웅은 커피를 다 마시고 얼음마저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여린 서원웅을 터프하게 만들 정도로 이번 공세는 터무니없었다.

그는 대찬을 보며 물었다.

“방법 있어?”

“이슈는 이슈로 덮으라고 하잖아요.”

“저쪽에다가 대고 쏠 만한 실탄 가진 거 있어?”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대표님 양손에 쌍권총 들려 있잖아요. 그걸 써먹어야지.”

“쌍권총이라니.”

“왼손에는 만몽, 오른손에는 극동일보.”

서원웅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만몽, 극동일보?”

“만몽 쪽에서 소스를 받아서 극동일보 통해서 터트려요. 극동일보가 이런 쪽에는 국가대표급이잖아요.”

“만몽 쪽의 소스라면…….”

“제가 얻어올게요.”

“확실한 약점을 거사님이라고 알고 계실까.”

“확실할 필요 없어요. 어렴풋하기만 해도 돼요. 어차피 저쪽에서 쏘는 총알은 어렴풋하기는커녕 터무니없는 수준이니까.”

서원웅은 조심스러웠다.

“괜찮을까?”

“네.”

대찬은 만몽에게 술 몇 잔을 사주고 몇 마디 귀띔을 얻어냈다.

만몽은 그게 사실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그건 안 중요해요.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거 같다는 거죠?”

“응, 아니 근데 진짜 확실하지 않다니까? 똥인지 된장인지 긴가 민가 한데 그걸 냅다 집어먹으면 탈이 나요.”

“괜찮아요. 제가 먹을 게 아니라 개가, 똥 묻은 개가 먹을 거라.”

“뭐?”

“똥 묻은 개가 똥 먹었다고 소문내면, 그게 실은 된장일지라도 사람들은 똥 먹었다고 생각하겠죠?”

“뭔 개소리야.”

“아녜요. 술이나 드세요.”

대찬은 만몽에게 소주 몇 잔을 따라주고 돌아왔다.

그 똥인지 된장인지 확실하지 않은 소문은 극동일보에게 전달되었다.

극동일보는 지금까지 서승학이 터트린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서원웅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었다.

사윗감으로 점 찍어둔 녀석이 얼마나 똘똘하게 구는지 알아보려는 태세였다.

그들은 여태 침묵했지만 서원웅 측의 요청이 들어오자,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었다.

만몽이 말하고 대찬이 전달하고 서원웅이 요청한 정보가 기사가 되어 신문에 등장했다.

-“서승학 필래기획 사장, ‘마약·난교’ 파티 벌여”

극동일보는 선수였다.

진실이 아닌 것으로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을 때.

그러면서도 책임은 회피하고 싶을 때.

그들의 전술은 간단했다.

하고 싶은 말을 큰따옴표 안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큰따옴표 안에 넣으면 그건 사실을 보도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발언을 인용한 것일 뿐이니까.

-한 소식통에 따르면, 서승학 필래기획 사장이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지인과 마약을 투약하며 성매매 여성들과 추잡한 난교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한 소식통에 따르면’, ‘한 관계자에 따르면’, ‘측근으로 알려진 모 씨에 따르면’.

그 간단한 몇 어절의 말로 극동일보는 존재 자체도 모호한 취재원을 보호하는 동시에 자신의 책임도 완벽히 벗어던졌다.

-사회적 기업 웜샤인의 폐업의 책임을 서원웅 필래 비바체 대표에게 돌리는 최근의 보도는 서승학 사장의 이런 일탈행위를 선제적으로 무마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사고 있다.

거기에 증거가 없는 예측은 ‘세간의 의혹’으로 퉁 치면 그만.

-이미 여러 차례 부적절한 행태로 구설에 올랐던 서승학 사장의 일탈행위가 다시 제기됨에 따라, 논란이 예상된다.

극동일보가 아니었으면 언급조차 안 됐을 일이었다.

그런 주제에 논란이 예상된다며 얼레리 꼴레리 약을 올렸다.

그렇게 조롱으로 확인사살을 하며 극동일보의 기사는 끝이 났다.

“예술이네. 여기에 누가 안당하고 배기나.”

대찬은 기사 하나로 사람을 요리하는 극동일보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승학은 서원웅에 대한 의혹이 사람들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면, 자신이 전면에 등장해 서원웅을 비호하는 척 공격하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무책임한 아우를 대신해 자신이 새로운 사회적 기업을 만들겠다고 천명하려고 했다.

그게 곽동성 사장이 고안한 전략의 마무리였다.

그런데 그 고도의 전략이 극동일보가 대대적으로 보도한 유언비어에 한낱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서승학은 다시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기자들을 피해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서원웅은 그걸 보고 대찬에게 말했다.

“근데 너무 이 방법은 치사하지 않았어?”

“치사한 사람을 치사하게 조진 거예요. 앞으로 그렇게 살지 말라는 교훈을 줬을 뿐인데, 나쁜 거예요?”

“그래도…….”

“극동일보가 실컷 조질 때는 가만히 계시다가 이제 와서 착한 척 하시는 거, 그게 진짜 치사한 겁니다?”

서원웅은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건 전초전이에요. 이제 본격적으로 악다구니판이 열렸어요.”

“…….”

“저쪽에서 대표님을 적수로 생각하고 포문을 열었다고요. 이제 대표님도 경영만 생각하지 마세요. 정치도 생각하세요.”

“…알았어.”

“이번에는 이이제이(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 전략이 잘 먹혔어요. 하지만 항상 조심하세요.”

서원웅은 대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심하라니?”

“송나라는 자기를 위협하는 금나라를 치기 위해 원나라를 끌어들였다가 원나라한테 망했어요.”

“…….”

“극동일보는 최악의 집단이에요. 놈들이 대표님을 잡아먹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서원웅은 그 말에 약한 질식감을 느꼈다.

대찬은 아무 망설임 없이 극동일보를 최악의 집단이라고 말했다.

그 말인즉 자신은 최악의 집단의 사위가 된다는 뜻이었다.

대찬은 서원웅의 어깨를 살포시 잡았다.

“너는 칼날 위에 서있는 거야.”

서원웅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극동일보가 서승학의 야코를 죽여놓은 사이.

대찬은 빠르게 움직였다.

어차피 극동일보의 기사는 근거가 미약한 뿌리 얕은 나무였다.

서승학을 오래 괴롭히진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 서승학이 결딴내놓은 것들을 돌려놔야만 했다.

대찬은 서원웅에게 말했다.

“일단 웜샤인의 폐업으로 실직자 신세가 된 직원들을 구제하고 사업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을 복구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그래야지.”

“그럼 주총 소집하실 겁니까?”

자회사의 설립은 주주총회의 의결사항이었다.

그렇기에 웜샤인을 대체할 사회적 기업을 필래 비바체의 산하에 두려면 주주총회를 소집해야만 했다.

그러나 서원웅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네? 그렇지 않고서야…….”

서원웅은 웃으며 말했다.

“그쪽에서 거두는 건 어때.”

“그쪽이라뇨.”

“로튼 프룻츠에서.”

대찬은 서원웅의 말을 곧장 받아들이지 못했다.

“로튼 프룻츠가 웜샤인의 고용과 사업을 승계할 그릇이 된다고 보십니까.”

“단독으로는 힘들겠지. 그래도 비바체의 도움이 있으면 가능하잖아.”

“…….”

“떠넘기는 게 아니야. 로튼 프룻츠에서 웜샤인의 고용과 사업을 그대로 인수해. 그러면 우리 쪽에서 기존과 같은 규모의 투자를 계속할 거야.”

대찬은 팔짱을 끼면서 물었다.

“왜 굳이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자회사 설립은 주총 의결사항이지만 투자는 이사회 소관이야. 이사회에서 처리하는 게 훨씬 간편해.”

“주총에서 자회사 설립을 의결하면 애써 무마해놓은 서승학의 장난질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으니까.”

“그렇기도 하고, 우리 주주들이 사회적 기업 설립을 그다지 좋아할 거 같지 않아서.”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시킨다.

이미지란 분명한 자산이지만 형태가 없는 자산이다.

비바체는 광고회사도 아니다.

그런 비바체가 사회적 기업을 단독으로 보유하며 애꿎은 사업예산을 소모한다.

주주들이 바라지 않을 것이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이유였다.

근본적인 이유는 보다 정치적이었다.

대찬도 행간을 짚었다.

“형님이 닫은 회사를 아우가 다시 여는 건, 정면도전으로 비칠 테니까.”

“응, 회사 내부의 기류도 나한테 불리하게 돌아갈 거야. 언젠간 전면전이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중국의 덩샤오핑은 죽으면서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는 말을 남겼다.

시기가 무르익기 전까지 힘을 자랑하지 말라는 뜻.

그건 서원웅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했다.

“필래기획은 우리랑 불편한 관계지만 어쨌든 같은 그룹으로 묶여 있으니, 비슷한 기능을 하는 웜샤인을 우리 밑에 두면 야망을 노출하는 걸로 보일 공산도 있군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그럼 로튼 프룻츠 쪽에서 추진하겠습니다.”

서원웅은 생글생글 웃었다.

“한 가지 이유 더 있는데. 이거 물어봐주면 안 돼?”

“뭡니까?”

“로튼 프룻츠가 쑥쑥 자라라고.”

“제 뒤 밀어주시는 거예요?”

서원웅은 웃으면서 말했다.

“네 뒤를 밀어주는 거기도 하지만 나도 로튼 프룻츠의 일원이니까.”

“비바체에서 확실한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떠넘기기밖에 안 되는 거 아시죠.”

“알지, 그럼.”

“말씀만 그러시면 안 됩니다. 확실하게 해주셔야 합니다.”

대찬은 분명하게 당부를 남겼다.

서원웅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안 그러면 너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단.”

“단?”

“인건비 부분은 로튼 프룻츠에서 해결해야 해.”

“필래만큼의 대우를 약속할 순 없습니다.”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어. 너도 결정을 내리면 돼.”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로튼 프룻츠의 품에 들어오도록 할지, 아니면 죽든 말든 내버려두든지?”

서원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지금껏 웜샤인의 후원자이자 투자자였어. 우리가 웜샤인의 뒷일까지 걱정해줄 의무는 없어.”

“그렇긴 하지만 도의적으로.”

“도의는 지킬 수 있을 땐 지켜야 하지만 지킬 수 없을 땐 지킬 수 없는 거야.”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째 많이 냉철해지셨네요.”

“네가 나한테 계속 주문하던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만.”

대찬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웜샤인의 직원들과 사업을 떠안는 건 양날의 검이었다.

웜샤인은 필래그룹에 속한 무수한 계열사와 그들의 자회사들 중에서는 좁쌀 만한 규모였다.

폐업 당시 스무 명에 불과했다.

웜샤인의 사장과 부사장은 필래기획에서 좌천에 가까운 인사이동으로 물러나 자리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로튼 프룻츠가 러브콜을 보내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장과 부사장을 빼도 인원은 열여덟.

필래에서 좁쌀만 한 규모의 인력은 로튼 프룻츠와 비교하면 일순 개미떼처럼 느껴진다.

단순한 숫자로만 따져도 민승기와 맹윤주, 그리고 0.5인분만 업무에 임하는 대찬과 비교하면 2.5 대 18이었다.

민승기가 회사물을 좀 먹었다지만 10년이 채 안 됐고, 맹윤주는 그야말로 초짜였다.

그런데 웜샤인은 박 부장을 포함해 필래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들이 많았다.

여차하면 경영의 주도권을 애먼 웜샤인 출신들에게 뺏길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서원웅의 제안을 대찬으로서는 아무 고민 없이 덥석 받을 수는 없었다.

서원웅의 확실한 약속을 받고 일단 웜샤인을 떠안기로 했지만 불안감이 가시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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