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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49화 (248/556)

난 할 수 있어 249화

‘언제 이렇게 눈치가 빨라졌지.’

“쓸데없는 추리는 관두시고요.”

“아니라고 안 하는 거 보니까 맞네? 알았어. 얘기해둘게. 편집국에서 넘기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겠네.”

“하여튼 극동일보 나부랭이들 맘에 안 들어.”

“이제 너 귀찮게 하는 일 없을 거야. 윤이영 씨도.”

“여기서 윤이영이 왜 나와?”

대찬이 그렇게 항변하며 쏘아대려는 찰나, 욕실의 문이 열리면서 김이 뭉게뭉게 피어 나왔다.

윤이영이 대찬을 보고 말했다.

“저 다 씻었어요.”

그 배우답게 또랑또랑한 발음이 서원웅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찬에게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야, 그게 아니고……!”

대찬이 뭐라 말하려는 찰나 서원웅은 전화를 끊었다.

그걸 보고 윤이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에요.”

대찬은 찝찝했지만 서원웅이 흔쾌히 부탁을 받아준 것에 만족했다.

그 시각, 스포츠극동 편집국장실.

편집국장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혀를 빼물고 기자치고는 느린 속도로 자판을 두들겼다.

‘여… 자… 누… 드…….’

사진.

두 글자만 더 치면 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대찬의 앞에서 물러나오자마자 민동철은 씩씩거리며 바로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장! 저 동철입니다.”

“야, 지금이 몇 신데 난리야. 특종이라도 잡았어?”

“특종까진 아니어도 이목 끌 만해요.”

“얘기해봐.”

“윤이영 있잖습니까.”

그 말에 편집국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야, 무슨 그런 잔챙이 하나 때문에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윤이영 그게 어떤 남자를 자기 집에 들였다니까요.”

“야 이씨, 그럼 한창 나이에 남자 안 만나겠어? 다른 여배우면 몰라도 윤이영이 남자 만난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쏘 왓? 그거밖에 더 있어!”

“제가 윤이영 취재하는 과정에서 남자한테 얻어맞기까지 했다니까요!”

“칠칠치 못해서야, 원. 암튼 그 정도론 약해.”

“국장! 언론의 펜대가 폭력으로 꺾였는데 약하다뇨!”

“짜식아, 황색언론은 펜대도 노란색이라 펜대 취급도 안 해줘. 애기들 크레파스 취급이나 받으면 다행이지.”

“선배, 언론인으로서 자긍심도 없어요? 우리가 스스로 황색언론이라고 하면 어떡해요?”

“인생 솔직하게 살자, 좀.”

“선배! 저 이거 그냥 넘어가면 억울해서 못 참아요.”

민동철은 이제 호칭을 국장에서 선배로 바꿔 인정에 호소했다.

편집국장은 쩝, 입맛을 다셨다.

“알았어, 자식아. 사진 찍어둔 거 있냐?”

“카메라로 찍은 건 메모리카드 뺏겨서 없고요, 대신 빠져나오면서 스마트폰으로 몇 장 찍어둔 건 있어요.”

“쯧, 일단 회사로 들어와.”

“아직 회사에 계셨어요?”

“마누라 계모임에서 사천 간다고 곰탕만 한 솥 해놨어. 집에 기름 쩐내가 진동해서 들어가기도 싫다.”

“그럼 지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냐.”

편집국장은 전화를 끊고 검색창에 나머지 두 글자, 사진을 입력하려고 했다.

그때 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우드득 돋았다.

“아, 또 어떤 새끼야……!”

아랫사람이면 한바탕 쌍욕을 퍼부어줄 작정으로 액정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의 호기로운 결심은 실행되지 않았다.

그는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아, 아이구, 경영본부장님.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다……. 예? 아, 안 미쳤는데요? 갑자기 왜……. 네? 그렇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아이고, 예, 제가 확인을 했어야했는데 아랫사람 관리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예… 들어가십시오, 예.”

전화가 끊긴 걸 확인하자 편집국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때 마침 민동철이 국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보자마자 편집국장은 꽥 사자후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미쳤어!”

“서, 선배, 왜 그러세요.”

“야이 씨……. 우리 사장 필래하고 혼담 오가는 거 몰라? 근데 네 까짓 게 재를 뿌려!”

“선배, 그게 아니고요…….”

“야! 윤이영 만나는 그 남자, 필래쪽 사람이라며!”

“그냥 직원이에요, 직원! 오히려 필래에서 쪽팔려 해야 될 일인데…….”

여전히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민동철에 편집국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는 민동철의 뒤통수를 냅다 후렸다.

“야, 이 쌍놈의 새끼야! 그 그냥 직원이라는 사람이 서원웅이 죽마고우란다, 이 새끼야!”

“서, 서원웅이요? 비바체 대표요?”

편집국장은 다시 뒤통수를 후렸다.

짝! 하는 타격음이 경쾌하게 국장실을 울렸다.

“그래, 이 새끼야! 코찔찔이 서원웅을 비바체 대표에 앉혀놓은 사람이라잖아, 이 새끼야!”

“모, 몰랐습니다.”

“서청수가 직접 챙기는 사람이라잖아, 새끼야! 뭐? 그냥 직원? 이게 그냥 직원이야!”

“아…….”

“이런 미친 새끼! 내가 너 때문에 경영본부장한테 미친놈 소리까지 들어야겠냐, 앙!”

짝! 짝! 짝! 국장은 분이 풀릴 때까지 민동철의 뒤통수를 후렸다.

철딱서니 없는 일로 윗선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죄.

경영본부장한테 욕먹게 한 죄.

여자누드사진을 검색 못하게 한 죄.

민동철은 중죄였다.

그렇게 애꿎은 일로 벌집을 뒤집어 민동철이 봉변을 당하고 있는 사이.

성수동의 또 다른 당사자들은 서로의 일 때문에 민동철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다음날 아침.

대찬은 일찌감치 일어나 출근준비를 했다.

대찬은 그제야 자신이 입고 갈 옷이 저 화려한 파티복장밖에 없다는 사실에 난감해졌다.

대찬이 영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옷을 입고 있는 사이, 윤이영이 눈을 비비며 방 밖으로 나왔다.

대찬은 그녀를 보고 말했다.

“더 주무시지.”

“아녜요. 한번 깨면 다시 잘 못 자요.”

“괜히 신세졌네요.”

윤이영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조용한 집에 복작거리고 좋은걸요.”

“아, 저 웬만하면 아침 챙겨먹는 스타일이라 냉장고 뒤져서 반찬 좀 만들어놨어요. 물어보고 하려고 했는데 너무 곤히 주무셔서.”

“냉장고에 반찬 만들 재료가 있었어요……?”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선도는 많이 떨어지지만 반찬 만들 정도는 됐어요. 더 두면 상할 거 같던데.”

“아침부터 사람 민망하게.”

“암튼 이영 씨 몫도 해놨으니까 끼니 거르지 말구요.”

윤이영은 문간에 몸을 기대며 웃었다.

“고마워요.”

“제가 더 고맙죠. 그래도 오랜만에 여유 있게 출근하네요. 성수에서 잠실까지 2호선으로 한 큐라.”

윤이영은 짓궂게 웃었다.

“그럼 종종 주무시고 가세요.”

“그때마다 민동철 같은 거머리 상대해야 된다면 어휴, 사양이에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요. 아님, 장맛이 별론가?”

대찬은 윤이영을 흘끗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자 윤이영이 발끈했다.

“뭐예요, 그 웃음은?”

“아니, 그렇게 청순한 얼굴로 농익은 농담을 치니까 귀여워서요.”

“어떡해, 너무 싸보였어요?”

“언제부터 귀엽다는 말이 싸보인다는 뜻이 됐데요?”

대찬은 웃으면서 구두를 구겨 신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아침 꼭 챙겨먹어요.”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출근길에 나섰다.

문이 닫히고 윤이영은 머리를 뜯었다.

“아씨, 철부지 같이 안 보이려고 하다가 너무 오버했어.”

그녀는 소파에서 몸을 뒹굴며 한참을 자책했다.

대찬은 출근길에 가판대에서 신문 한 부를 구입했다.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을 통틀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만원지하철에서 4분의 1로 신문을 접어 스포츠극동을 읽었다.

-손홍민, ‘발군의 공격-아쉬운 수비’

-박병훈, 11년 만에 ‘50홈런’ 대기록

-송은지의 무한매력, ‘소녀 댄스’에 빠져봐~

시시콜콜한 기사들 사이에 대찬의 눈에 하나가 띄었다.

-필래면세점 행사의 숨은 포토제닉 ‘윤이영’, 완벽 몸매에 세련된 패션센스 ‘과시’

대찬은 기사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암튼 대단하다, 극동일보.’

대찬은 지하철에서 해방되자마자 기사를 사진으로 찍어 윤이영에게 전송했다.

-완벽 몸매에 세련된 패션센스, 대단해요.

-헐, 이게 뭐예요? 갑자기 웬 립서비스지.

-립서비스라뇨. 보는 눈이 있는 거지.

-어제 그 난리를 쳐놓고 왜 이런 기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암튼 잘 해결됐으니까 더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제가 고맙죠.

대찬은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서원웅과 홍승연의 관계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서원웅은 이따금 퇴근 후에 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땐 어떻게 문자를 보내야 하는지.

답장은 바로 하는 게 좋은지, 아니면 조금 뜸을 들여야 하는지.

좋다고 하는 게 정말 좋은 건지, 싫다고 하는 게 정말 싫은 건지.

시시콜콜한 연애의 애로사항과 문의사항을 말했다.

처음에 적극적으로 대답해주던 대찬의 인내심이 동날 정도였다.

“아, 이럴 거면 연애상담수당 지급하세요. 시도 때도 없이, 진짜!”

“연애상담수당은 이미 스포츠극동 입막음 하는 걸로 지급한 걸로 아는데?”

“그건 애저녁에 동났어요.”

“그러지 말고 나 좀 도와줘라.”

대찬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열과 성을 다하는 거 보니 홍승연 씨가 그래도 맘에 들었나봐?”

“글쎄. 진득하게 만나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맘에 드는 건지 뭔지 모르겠어.”

“몇 명을 만나봤든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극동일보 집안이라 조금 선입견 있긴 했는데, 괜찮나봐?”

“아직까지는.”

“모처럼 회장님이 판 깔아줬으니까 잘해 봐요. 극동일보 좋아하든 싫어하든 처가로 두면 든든한 건 사실이니.”

서원웅은 난감하게 웃었다.

“앞서가지 말라니까. 아직 연애하는 것도 아니야.”

“이제 우리도 30줄인데 애들처럼 꼼지락거리는 것도 징그럽잖아. 속전속결해버려.”

“그걸 그렇게 잘 아는 당신은 윤이영 씨랑 그렇게 꼼지락거려?”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거지, 뭐.”

대찬은 웃으면서 눙쳤다.

서원웅과 홍승연과의 관계는 대찬이 부추기지 않아도 성큼성큼 발전했다.

서청수 필래그룹 회장과 홍구완 극동일보 사장도 계속 아들딸을 들들 볶았다.

그들의 계획으로는 벌써 손주를 하나도 아니고 둘 정도는 보았다.

이런 상황이 마뜩잖은 건 서승학과 그의 친모인 백양옥 여사였다.

그녀는 남편의 검은 속내를 모르고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했다가 거하게 골탕을 먹었다.

그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청수 회장에게 악을 질렀다.

“지금 나랑 사생결단 내고 싶어서 안달 났어?”

“안달 안 났어.”

“그런데 어떻게 극동일보 딸을 그 새끼한테 던져줄 수가 있어.”

서청수 회장은 넥타이를 풀며 덤덤히 대꾸했다.

“내가 던져준 거 아니야. 홍 사장 쪽에서 먼저 제안한 일이야.”

“쿵짝이 맞으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야. 어디서 눈 가리고 아웅이야.”

백양옥 여사의 목소리가 가라앉지 않자 서청수 회장의 언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승학이는 대검 차장검사 딸하고 맺어줬잖아. 내가 원웅이만 편애하냐고. 다 회사를 위해서 혼맥을 넓혀두는 거지.”

“차장검사는 천년만년 검찰에 매달려있대요? 극동일보는 천년만년 극동이야.”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백양옥 여사는 도끼눈을 부릅떴다.

“자꾸 이 따위로 나오면 나도 개인행동 하는 수밖에 없어.”

“허허, 언제는 안 한 것처럼 얘기하는군.”

“지금까지 당신 뜻 존중해서 가만히 있었어. 근데 서자한테 그룹 넘어가는 꼴, 나는 죽어도 못 봐.”

“앞서가지 마. 나는 누가 됐든 회사 키울 수 있는 녀석한테 넘길 요량이니까.”

“이 회사가 당신 혼자 해먹는 회사야? 착각하지 마.”

“…….”

“우리 친정 입김 없으면 당신이 지금 회장 노릇하고 있을 거 같아? 지금 서청규만도 못한 꼬락서닐 걸.”

서청수 회장은 싸늘하게 눈을 흘겼다.

“선 넘지 마.”

“당신은 그렇게 말할 자격 없어.”

“백양옥.”

백양옥 여사는 서청수 회장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가며 눈을 부라렸다.

“분명히 경고해두는데, 이 이상 서자 새끼 역성들어주면 후회하게 될 거야.”

서청수 회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양옥 여사의 엄포에 마음이 불안해지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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