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248화
대찬은 그의 목을 더욱 꽉 조이며 물었다.
“너 뭐야.”
“너, 너는 뭐야, 이 새끼야! 뭔데 갑자기 이 지랄이야!”
대찬은 놈의 목을 조인 채로 휙, 아래쪽으로 힘을 주었다.
놈은 그 힘에 그대로 이끌려 바닥에 눕혀졌다.
그 와중에 힘이 더 들어가 놈은 자신의 목을 조이는 대찬의 팔을 마구 내려치며 호소했다.
“이거… 이거 놔……!”
“대답해. 너 뭐하는 놈인데 윤이영 뒤를 밟아?”
“크윽……!”
대찬은 그를 바닥에 눕혀 무기력하게 만들고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억눌렀다.
대찬은 그를 아래로 직시하며 형형한 눈빛을 뿌렸다.
“대답하라고.”
“큭, 내, 내가 왜……!”
대찬은 순간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보았다.
카메라였다.
대찬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기자질 하는 놈이구나. 아니, 기자질도 못해서 파파라치 노릇하는 새낀가.”
“…….”
놈은 사자에게 모가지를 물린 영양처럼 가쁘게 호흡하며 가슴만 벌렁거렸다.
대찬은 그의 셔츠 앞주머니에 살짝 삐져나온 물건을 포착했다.
대찬은 한쪽 팔로는 그를 계속 제압하고 나머지 한쪽으로는 그것을 꺼내 쥐었다.
목에 걸어 패용하도록 만든 플라스틱 재질의 직사각형 물체였다.
사원증.
신원이 바로 확인되었다.
대찬은 사원증에 적힌 글자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스포츠극동 연예부 민동철. 기자님이셨구나.”
“으…….”
“내가 그쪽 낌새를 눈치 챈 건 청계천부터였는데, 짬밥 좀 자신 기자님이니까 쫓아온 건 훨씬 전이겠죠?”
민동철은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대찬은 시선을 살짝 위로 향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윤이영 씨, 아직 거기 있죠.”
“네? 아, 네…….”
“이 양반 손에 카메라 들려 있거든요. 무슨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는지 직접 확인 좀 해주세요.”
그러자 민동철은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발악했다.
“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래! 이거 강도죄야, 알아?”
“합법 불법 경계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이라 법에는 빠삭하시네요. 그럼 고소하시든가.”
대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윤이영에게 말했다.
“윤이영 씨! 저 힘 빠져요. 빨리 카메라 좀.”
“네!”
윤이영은 다다다 계단을 내려와 민동철이 꽉 쥐고 놓지 않으려는 카메라를 억지로 가로챘다.
“끄아악!”
그녀는 와중에 손가락을 하나하나 열며 뒤로 확 젖히는 잔혹함을 보여주었다.
윤이영은 민동철의 카메라를 들고 뭘 찍었는지 확인했다.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단단히 잡혔다.
“많이도 찍으셨네요. 우리가 아까 파티에 있을 때부터 찍었어요.”
“나름 감각이 있으신 분이네. 블루오션을 공략할 줄도 알고. 우릴 주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내, 내놔……!”
민동철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대찬의 몸은 차돌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대찬이 윤이영에게 말했다.
“그거, 다 지워버려요.”
“다 지우려면 1박2일은 걸릴 거 같은데요. 사진이 너무 많아.”
“그래요? 그럼 메모리카드 빼서 챙기세요.”
“그럴게요.”
윤이영은 야무지게 메모리카드를 빼서 자신의 핸드백에 넣었다.
그러자 민동철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야! 너 진짜 법원 가고 싶어서 이래!”
대찬은 민동철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거 안 잃어버리게 조심하시고요. 얼른 들어가세요.”
“조 차장님은 어쩌시게요?”
윤이영은 이 상황에서 대찬을 조 차장이라고 불렀다.
대찬 씨, 친근한 호칭이 괜히 기자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없다는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대찬은 그녀의 차분함에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우리 민 기자님하고 얘기 좀 하고 돌아가려고요.”
“얘기 오래 걸려요?”
“아뇨, 그다지.”
“그럼 잠깐 저 위에서 기다릴게요.”
“굳이?”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드리고 택시는 태워서 보내드리는 게 예의죠.”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민동철을 바라봤다.
“어이, 민동철 씨. 엄청 감 좋은 척 하는데 이거 실수하는 거예요, 알아요?”
“뭐, 뭐라고요?”
“당신 스포츠극동이잖아. 오늘 행사에서 당신네 홍 사장하고 우리네 서 회장님하고 사돈 문턱까지 간 거 못 봤어?”
그러자 민동철은 쌕쌕 가쁜 숨을 뱉으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멋있는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뭔 개소리를 그렇게 정성껏 지껄여? 순진한 새끼.”
“뭐?”
“야, 우리 사장 대통령 만나서 사근사근 웃어. 그래놓고 다음날 사설로 대통령 나라 망치지 말라고 조진다고.”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근데?”
“근데는 무슨 근데야, 새끼야. 그런 사장이 뭐, 아직 화촉도 안 올린 예비사위도 아닌 예비예비사위 홍보모델이 안중에나 있을 거 같아?”
“그건 까보면 알겠지. 극동일보 제 식구 감싸기야 나도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도 그럴까?”
대찬에게 확실한 무기가 없다는 걸 기자의 직감으로 간파한 민동철은 기세가 올랐다.
그는 헛웃음을 터트리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야, 너 딱 보니까 필래에서 월급 타먹는 놈 같은데, 그러니까 네가 뭐라도 된 거 같냐? 네가 뭐 서씨라도 된 기분이야?”
대찬은 말없이 웃음만 흘렸다.
그게 민동철의 눈에는 할 말 없으니 웃기나 하는 것으로 비쳤다.
기세는 더욱 타올랐다.
“너 인마, 새 된 거야. 당장 내일 필래 직원이 윤이영하고 붙어먹었다고 기사 낼 거야. 필래 직원이 기자 폭행까지 했다고 쓸 거라고, 알아?”
“미친놈.”
“할 말 없으니 욕밖에 안 나오지? 기사 나가면 어떻게 될까? 너, 바로 모가지야. 오늘 집 들어가서 잡코리아나 열심히 뒤져라.”
“잡코리아 뒤지는 게 누군지 한번 두고 보자고.”
“두고 보자는 말 식상하지도 않아? 퇴치된 악당의 전형적인 멘트, 엉?”
“암튼 혓바닥은 잘 놀려대네. 잘해봐. 내일 출근길에 거지발싸개 같은 너희 신문 사줄 테니까 꼭 기사 실어라.”
민동철은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렸다.
“이게 어디서 허세야.”
“허세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라니까.”
대찬은 꽉 붙들고 있던 민동철의 멱살을 풀어주었다.
그의 압박에서 벗어난 민동철은 벌떡 일어나 최대한 대찬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대찬은 민동철에게 덤덤히 말했다.
“가 봐.”
“지금 쿨내 풍길 수 있을 때 풀풀 풍겨놔. 내일 내 바짓가랑이 붙들고 질질 짜게 될 테니까.”
“누구 바짓가랑이가 젖는지 보자고요.”
민동철은 대찬에게 보란 듯이 침을 탁 뱉고는 씩씩거리며 떠났다.
그가 가자마자 윤이영이 대찬에게 뛰어내려왔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셔츠 단추 나갔어요.”
대찬은 셔츠의 뜯어진 맨 위 단추를 매만지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 전무님한테 혼나겠네.”
“근데 정말 괜찮을까요? 기자 괜히 건드려서 좋을 게 없는데…….”
윤이영의 낯빛이 흐려졌다.
대찬은 웃으면서 그녀의 등을 얌전히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야 눈 꼭 감고 시간 지나면 잠잠해지겠지만, 대찬 씨는 아니잖아요. 이 일로 회사에서 문책이 들어올 수도 있어요. 정말 저 사람 말대로 해고까지…….”
대찬은 걱정 어린 말을 쏟아내는 윤이영의 말을 가로막았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정말 문제 있으면 제가 이렇게 태연하겠어요?”
“그렇긴 하지만요.”
“기사를 내느냐, 막느냐는 명분싸움이 아니라 실력싸움이에요. 으레 이런 일의 실력은 끗발로 결정되고요. 조대찬 끗발이 센지 민동철 끗발이 센지 한번 보자고요.”
대찬이 윤이영과 대화하는 사이, 누군가는 속에서 잔뜩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그들을 청계천에서 성수동까지 모시고 왔던 택시기사였다.
잠깐 기다려 달라더니 한세월이었다.
참다못한 기사가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아, 안 가요?”
기사의 성마른 목소리에 대찬이 멋쩍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가야죠.”
그때 윤이영이 대찬의 옷깃을 살짝 잡았다.
대찬은 윤이영을 돌아봤다.
윤이영은 말없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대찬은 웃으면서 윤이영을 바라봤다.
그는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기사에게 다가갔다.
“시간 허비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빈차로 가셔야겠는데요.”
대찬은 그러면서 기사에게 돈을 내밀었다.
기사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의 짜증이 오만 원짜리 한 장에 봄눈 녹듯 녹았다.
그는 금세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대찬에게 소곤거렸다.
“잘해요.”
“아유, 무슨. 조심히 가십시오.”
대찬은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기사를 얼른 돌려보냈다.
그리고 다시 윤이영에게로 돌아왔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사방은 고요했고 시야는 흐릿했고 공기는 묵직했다.
윤이영은 꼴깍, 침을 삼켰다.
“그, 그럼 올라가실까요?”
“네, 그러시죠.”
대찬은 웃으면서 윤이영을 뒤따랐다.
윤이영은 대찬을 보고 한 번 더 꼴깍, 침을 삼키고 종종걸음으로 앞서 올라갔다.
“청소 안 한 지 좀 돼서 집이 더러워요.”
“괜찮아요. 바쁘게 살면 청소할 시간이 없죠. 저도 그래요.”
윤이영은 천천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간 대찬을 맨 처음 반긴 건 은은한 디퓨저 향기였다.
대찬은 거실을 대충 둘러봤다.
이런저런 옷가지가 소파에 걸려 있었다.
흡사 성황당 나무에 형형색색 천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대찬은 웃으면서 장난스럽게 말했다.
“야, 청소를 안 하긴 안 하셨네요?”
“괘, 괜찮다면서요!”
윤이영은 황급히 옷가지를 수습하면서 항변했다.
“누가 안 괜찮대요? 그냥 그렇다는 거지.”
“커, 커피 마실래요?”
“아까 잠 안 온다고 커피 대신 바나나우유 마셨잖아요.”
“아… 그랬지, 참. 하하……. 그럼 뭘 드려야 하나…….”
윤이영은 멋쩍게 웃으면서 허둥거렸다.
대찬은 그게 귀여워서 웃었다.
“뭐 안 주셔도 돼요. 자기 집이면서 왜 이렇게 불편해 해요?”
“손님이 불편할까봐…….”
“그렇게 허둥대는 게 더 불편해요. 그냥 편하게 계세요.”
“…네.”
대찬은 황급히 옷가지가 치워진 소파에 엉덩이를 걸쳤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며 윤이영에게 말했다.
“일단 시간이 더 늦게 전에 처리해야 될 게 있어서 전화만 잠깐 할게요. 그동안 씻고 계세요.”
“씨, 씻어요?”
“그럼 안 씻고 그냥 주무시려고 그랬어요?”
“아뇨… 씻어야죠.”
윤이영은 평소답지 않게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대찬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면서 피식 웃었다.
‘호기롭게 붙잡을 땐 언제고…….’
다이얼이 잠깐 울리더니 서원웅이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로 사라졌던 거야? 찾았는데 없더라.”
“찾지도 않았으면서 거짓말 마시죠, 대표님. 극동일보 따님이랑 좋은 시간 보내느라 제 생각이나 나셨겠어요?”
“아, 아니야. 좋은 시간은 무슨…….”
“어, 좋은 시간 안 보냈으면 안 되는데. 그럼 나 좀 곤란해져.”
“무슨 말이야, 그게?”
“극동 쪽 기자랑 드잡이 한 판 했거든.”
그 말에 서원웅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뭐? 설마 때리기라도 했어?”
“때린 건 아니고.”
“어쩌다 기자랑 얽혔는데?”
대찬은 거리낌 없이 말하려다가 윤이영이 들어있는 욕실의 닫힌 문을 바라봤다.
가볍게 떠들어대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암튼 일이 있었어. 근데 그쪽에서 기사 쓰겠다고 난리브루스를 추거든.”
“당연히 그러겠지. 그쪽이 가진 유일한 무기니까. 그래서, 나한테 그것 좀 막아달라고 전화한 거야?”
대찬은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묻으면서 대답했다.
“쇤네가 믿을 사람이 서 대표님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요. 극동왕국의 부마도위가 될 사람이니 기자 한 명 입막음 정도야 쉽잖아요?”
“이제 겨우 안면 텄어. 부마는 무슨. 아직 그런 얘기 할 때 아니야.”
대찬은 흐흐 웃었다.
“아직? 그럼 곧 그렇게 된다는 뜻이네. 느낌이 나쁘지 않았나봐?”
“꼬투리 잡지 마.”
“대표님 연애사업이 번영번창하시길 바라고요. 빨리 내 민원이나 해결해줘요.”
서원웅은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부당하게 권력 휘두르는 거에 맛 들였어?”
“뭐가 부당해. 먼저 살금살금 뒤 밟아서 도둑놈처럼 사진 찍은 게 누군데.”
“뒤를 밟아? 아하, 너 윤이영 씨랑 같이 사랑의 도피 했구나.”
서원웅이 정곡을 찌르자 대찬의 귀가 살짝 붉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