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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33화 (232/556)

난 할 수 있어 233화

“그런데 그 권윤지라는 사람이 들어오고 이영 씨한테도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거죠?”

“네. 제가 찍기로 예정돼 있던 광고 건이 그쪽으로 넘어가고, 단독으로 출연하기로 했던 예능도 같이 나가게 됐거든요.”

“슬슬 윤이영 씨의 영역을 침범해오고 있군요.”

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회사 동료니까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서로가 서로를 좀먹는 건 곤란하잖아요.”

“네. 윤이영 씨 말이 맞습니다. 혹시 권윤지라는 분, 사진 갖고 계신 거 있습니까?”

“아, 네. 잠깐만요. 권윤지 씨 전속계약 기념으로 단체사진 찍어둔 게 있거든요.”

윤이영은 휴대폰 갤러리에서 그 사진을 찾았다.

궁금증이 동한 대찬은 슬쩍 몸을 일으켜 넌지시 윤이영의 휴대폰을 건너다봤다.

그걸 본 윤이영이 화들짝 놀라며 휴대폰을 숨겼다.

“왜, 왜 훔쳐봐요!”

“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야한 사진이라도 저장해놓으셨어요?”

“야한 사진은 무슨!”

“갑자기 반말하시는 거 보니까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요.”

“그, 그런 게 아니고요…….”

윤이영이 얼버무리는 사이, 대찬은 잽싸게 윤이영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어디 뭘 숨겨놓으셨나 봅시다.”

“조 차장님!”

대찬은 쥐 잡듯이 윤이영의 휴대폰을 뒤질 생각은 없었다.

장난이었다며 그대로 다시 돌려줄 요량이었다.

그런데 대찬의 시선은 한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

“이건…….”

“이리 주세요!”

윤이영은 황급히 휴대폰을 빼앗았다.

그건 대찬의 사진이었다.

웃으면서 선 채로 윤이영의 기획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대찬.

윤이영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찬은 침을 꼴깍 삼켰다.

왜냐고 물으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아 대찬은 묻지 않았다.

윤이영이 서둘러 둘러댔다.

“이건 그, 그냥 찍힌 거예요.”

“…네.”

“정말이에요.”

“알았다니까요?”

윤이영은 귀가 새빨개진 채로 아래를 바라보다가 다시 대찬에게 물었다.

“…지울까요?”

“지우고 싶으세요?”

“아뇨. 아, 그러니까 제 말은 간직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이왕 찍힌 거 굳이 지울 것까지야 뭐 있냐는…….”

윤이영의 말이 횡설수설 길어졌다.

대찬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길게 말씀 안 하셔도 돼요.”

“네……. 저 원래 똑 부러지는 성격인데, 어째 조 차장님 앞에만 있으면 푼수가 되네요.”

“원래 야무진 사람이 가끔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도리어 인간적이고 매력 있죠.”

“그, 그래요?”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저한테는요.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봅시다.”

“아, 네. 여기 있어요, 권윤지 씨 사진.”

“역시가 역시나네요.”

“네?”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윤이영이 보여준 사진 속 권윤지는 방태열 대표가 보여준 사진과 동일인물이었다.

대찬이 완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자 윤이영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아무래도 방 대표가 윤이영 씨 소속사에 실력을 행사하는 게 분명해요.”

“방 대표란 분이 저희 회사에 그럴 능력이 되시나요?”

“가능한 가설은 한 가지뿐이죠. 돈으로 쥐고 흔드는 것.”

“그렇다면…….”

“기획사 대표님 하나만 구워삶진 않았을 거예요. 아마 윤이영 씨 기획사의 물주 노릇을 하고 있겠죠.”

윤이영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저는 이제 별수 없이 필래 비바체 모델에서도 탈락인가요?”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순 없죠. 윤이영 씨를 모델로 기용해서 얻은 수익이 얼만데.”

“그래도 회사 쪽에서 일방적인 계약해지를 통보하면…….”

“그건 저희 쪽에서 권윤지를 모델로 기용할 가능성이 있을 때의 말이죠. 그래서 방 대표가 굳이 저를 물고 늘어지는 거고.”

“서청수 회장님과도 제법 친분이 돈독하다고 하시던데.”

“돈독까지는 모르겠고, 두 분 사이에 말은 잘 오고가는 편이죠.”

“그럼 오히려 조 차장님이 흔들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경우 많이 봤어요. 논리에서 우위에 있어도 파워에서 압도적으로 밀려서 오히려 당해버리는.”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파워에서 밀릴 거 같아요?”

대찬의 당당함에 윤이영은 살짝 당황했다.

“자신 있으세요?”

“네, 이것보다 더한 상황도 얼마든지 해결해왔어요. 게다가 증거도 확실하잖아요.”

“…그래도 불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대찬은 웃으면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꼭 윤이영 씨 때문이 아니에요. 말씀드렸잖아요. 이건 저희 필래 비바체 수익하고도 직결되는 일이에요.”

“그렇긴 하죠…….”

“이 건에 있어서만큼은 저랑 윤이영 씨는 한 편이에요.”

그렇게 말해주는 대찬이 윤이영은 한없이 고마웠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감이 여전했다.

“감사하지만, 제가 이래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잘 모르겠다니요?”

“이 일 때문에 제가 저희 소속사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해서…….”

대찬은 안쓰러운 웃음을 지었다.

“윤이영 씨는 참 착하시네요.”

“착한 게 아니에요. 회사가 잘 버텨야 저도 잘 되는 거니까. 이기적인 생각이죠. 조 차장님 회사 사정은 생각도 안 하고.”

“윤이영 씨.”

“네?”

대찬의 강단 있는 목소리에 윤이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윤이영 씨 개인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조금도 없을 거예요. 윤이영 씨 소속사는 출혈이 있을 수 있겠죠.”

“…….”

“그걸 동정하시는 건 넌센스예요.”

“그, 그런가요.”

“그럼요 원두표에게 모진 일을 당할 때 회사는 뭘 했나요.”

“…….”

“거기에 윤이영 씨의 몫을 낙하산에게 빼돌리기까지 하는 회사예요. 누가 누굴 동정하고 있습니까.”

“…조 차장님 말씀이 맞아요.”

“윤이영 씨는 배우로서의 일에만 집중하세요. 저도 제 일을 할 테니까.”

윤이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조 차장님.”

“고마워하실 일이 아니라니까요. 자, 오늘은 술이나 마셔요.”

대찬과 윤이영은 잔을 부딪쳤다.

방태열 대표 측에서는 생각보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사무실 대찬의 자리에 있던 유선전화가 울렸다.

“조 차장입니다.”

“차장님, 저 마케팅팀 서 과장입니다.”

“아, 네, 서 과장님, 무슨 일이세요.”

“왈라비 엔터에서 연락 오면 전해달라고 말씀해주셔서요.”

왈라비 엔터테인먼트는 윤이영의 소속사였다.

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그쪽에서 뭐라고 연락 왔습니까?”

“윤이영 씨 일신상의 사유로 내년도 계약은 어렵다고 전해왔습니다.”

“하.”

답답해진 대찬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전에 들으신 정보라도 있습니까? 저희는 아예 예상도 못했는데…….”

대찬은 구구절절 불필요한 말 대신 서 과장에게 말했다.

“왈라비 쪽이랑 미팅 잡아주세요. 저도 참석하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대찬의 얼굴이 자못 심각했다.

왈라비 엔터의 대표가 필래 사옥을 찾아왔다.

대찬은 좌우로 마케팅팀 직원을 앉히고 그를 맞이했다.

소속사 대표는 멋쩍게 대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조 차장님.”

“네, 앉으세요.”

대찬이 자리를 권하자 대표는 쭈뼛거리며 착석했다.

대찬은 왈라비 대표와 불필요한 인사치레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윤이영 씨의 일신상 사유로 부득이 내년도 계약은 없다. 윤이영 씨의 동의를 받으신 겁니까?”

“네, 윤이영 씨의 일신상 사유니까 당연히 그랬죠.”

“그래요? 이상하네요. 저 바로 금요일에 윤이영 씨 만나서 식사도 같이 했는데 주말 사이에 큰일이라도 있었나 보죠?”

대찬의 말에 왈라비 대표는 시선을 애먼 곳으로 돌렸다.

“아, 저… 조 차장님, 사무실 말고 다른 곳으로 가서 말씀 좀 나누시면 안 되겠습니까.”

“여기서 못하실 말씀을 밖에서 은밀하게 듣고 싶지 않습니다.”

대찬은 좌우의 마케팅팀 직원들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분들 업무가 홍보잖아요. 조 차장이 왈라비 대표하고 둘이 비밀얘기 하더라는 소문이 사내에 파다하게 퍼질 걸요.”

“하하, 아닙니다, 조 차장님.”

마케팅팀 직원들은 면구스럽게 웃었다.

왈라비 대표는 시종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비밀얘기까지는 아니고, 이래저래 논의드릴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시간 좀 내주십시오.”

“대표님이 정 이렇게 말씀하시니 그렇게 하시죠. 저희는 입 꾹 다물고 있겠습니다.”

마케팅팀 직원들은 대찬에게 그리 하라 권했다.

이들로서도 이 문제가 대찬과 왈라비 대표의 단독교섭으로 해결된다면 그것으로 만족이었다.

비밀얘기를 하든 뭘 하든 관계할 일은 없었다.

“그럼, 그러시죠.”

대찬은 왈라비 대표를 사옥 바깥의 커피숍으로 데려갔다.

둘만 있는 자리.

대찬은 아무런 미사여구도 보태지 않고 본론으로 직행했다.

“해뜰녘 방태열 대표랑 무슨 관계이십니까?”

“아…….”

왈라비 대표는 초장부터 폐부를 찌르는 말에 즉답하지 못했다.

그가 대답하지 않아도 좋았다.

대찬은 아는 내용을 그대로 쏟아 부었다.

“방태열 대표가 윤이영 씨의 재계약 불발을 원하시는 거 같은데 맞죠?”

“…….”

“그리고 권윤지 씨를 우리가 대타로 기용하기를 원하시는 거 같은데 맞죠?”

“…….”

“방 대표님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도대체 대표님은 왜 이러시는 겁니까?”

“…….”

“지금 이렇게 계약을 이상하게 끌고 가버리면 왈라비 쪽에는 손해잖아요?”

“…그런 건 묻지 말아주십시오.”

자라목처럼 자꾸 안으로 숨기만 하는 사람의 말문을 트게 하는 방법은 딱 하나.

억울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뿐.

“방 대표님한테 약점 잡혔어요? 방 대표 사모님하고 바람이라도 나셨습니까?”

“새, 생사람 잡지 마세요!”

드디어 왈라비 대표가 제대로 된 의사표현을 했다.

대찬은 밖으로 삐져나온 자라목을 잡아당겼다.

“당사자가 침묵하시니까 생사람 잡게 되잖아요. 괜한 오해 사기 싫으시면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왈라비 대표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저도 다 회사를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회사를 위해서.”

“제가 대표님이라면 회사를 위해서 전력으로 윤이영 씨를 밀어줄 거 같은데요.”

“사실 저희 회사 자금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맨주먹으로 일으킨 회사라 기반이 연약하다고요.”

“그래서 방 대표한테서 투자를 받았고요?”

왈라비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 대표님은 지금 우리 회사의 지분 49퍼센트를 보유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더 투자를 늘리겠다고도 하셨고요.”

“태양초 고추장 파시던 분이 갑자기 연예기획사에 투자를 한다? 단순히 수익목적의 투자는 아닌 거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권윤지 씨를 푸시해 주려는 거 같은데.”

대찬은 이제 숫제 형사의 입장이었다.

취조하듯 묻는 말에 왈라비 대표는 고분고분 대꾸했다.

“네, 맞아요.”

“방 대표는 왜 그럴까요? 왜 권윤지 씨를 무리하게 푸시하는 걸까요?”

“그건 제가 대답할 영역이 아닙니다.”

“뭐, 권윤지 씨가 방 대표 딸이에요? 권윤지는 예명인가.”

“…그건 아닙니다.”

대찬은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윤이영 씨를 우리와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건 순전히 대표님 권한입니다. 하지만 계약 당사자로서 굉장히 불쾌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회사를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유망주를 이렇게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게 경영자로서 올바른 판단 같지는 않네요.”

왈라비 대표는 이 상황이 곤혹스럽고 모욕적이었다.

이 젊은 차장이 자신한테 독설과 폭언을 쏟아내는 걸 견디기 힘들었다.

“…그냥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라고요?”

너무나도 황당해서 대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조 차장님한테 손해되는 일은 아니잖습니까.”

“손해되든 안 되든 그건 제가 결정합니다.”

“차장님도 따지고 보면 저랑 입장이 똑같잖아요.”

“뭐라고요?”

“차장님도 로튼 프룻츠인지 뭔지 하는 회사 대표잖습니까. 피차 구멍가게 사장인 건 같잖아요.”

왈라비 대표는 어린애가 투정하듯 대찬에게 툴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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