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226화
대찬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렇다고 죽일 것까지는 없잖아요?’
‘이미 손에 피를 많이 묻혀본 놈들이오. 여럿 죽였으니 오늘 죽어도 장사 수지맞았지.’
‘메냐 사람들이 저자들의 복수를 하러 오지 않겠습니까?’
‘메냐 사람들도 이미 내친 놈들이오. 천박하고 저열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들이라.’
‘그럼 법적인 책임은…….’
‘이보시오, 초.’
‘네?’
‘여기, 파푸아뉴기니요.’
‘…그래도 살인을 범할 수는 없죠.’
그들을 위해 살인을 참는 게 아니다.
대찬은 자신을 위해 살인을 범하지 않았다.
법적인 문제를 차치해도 심리의 문제였다.
사람을 하나도 아니고 넷을 죽여야 한다.
아무리 대범한 대찬이라지만, 그 트라우마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
저런 나부랭이들 때문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떠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인을 하지 않는 대가로 대찬은 적잖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대찬은 놈들의 사이를 잽싸게 파고들었다.
피터에게 어쭙잖은 협상을 시도했던 녀석의 목을 뒤에서 확 졸랐다.
“커, 커억!”
기습적인 질식감에 놈은 자신의 목을 조이는 대찬의 팔을 떼어내려고 발작했다.
하지만 대찬은 더욱 이두에 힘을 주었다.
대찬의 근육이 놈의 호흡을 막았다.
대찬은 그와 동시에 놈이 인질로 잡고 있던 줄리아의 등을 무릎으로 툭 밀쳤다.
연약한 줄리아가 앞으로 쓰러졌다.
대찬은 줄리아에게 말했다.
“줄리아, 그대로 엎드려 있어. 위험해.”
영리한 줄리아는 두려운 와중에도 대찬의 말을 착실히 따랐다.
양쪽 귀를 틀어막고 잡초가 자란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작은 풀벌레가 얼굴을 기어가도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기특했다.
대찬은 놈의 목을 꽉 억누른 채로 나머지 셋에게 말했다.
“총 내려놔. 안 그러면 이 새끼 목숨은 없어.”
그 말에 나머지 셋은 주춤했다.
하지만 목이 졸리는 놈은 사정이 급했다.
그는 컥컥거리며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내려놔! 내려놔!”
두목의 명령이 있고 나서야 그들은 총을 내려놨다.
그러자 기회만 보고 있던 피터의 일행들이 왁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거친 양아치들을 상대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량한 시민들이었지만, 물량 앞에 장사 없는 법.
메냐 놈들은 순식간에 일망타진되었다.
대찬이 목을 조르고 있던 놈에게도 늙은 촌장을 비롯, 서넛이 달려들어 사지를 꽁꽁 붙들었다.
“제, 젠장…….”
완전히 결박된 그는 숨을 쌕쌕거리며 울분을 삼켰다.
대찬은 비로소 졸랐던 목을 풀어주었다.
어찌나 세게 조였는지 대찬의 팔 근육도 팽팽히 당겼다.
그렇게 한숨 돌리려는 찰나.
모든 사고는 긴장이 풀릴 때 발생한다.
한 녀석에게 감시가 느슨해진 사이, 그 녀석이 좋지 않은 선택을 했다.
몸을 꿈틀거리며 은밀히 총을 들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피터를 겨눴다.
그게 팔을 빙빙 돌리며 근육을 풀던 대찬의 시선이 포착되었다.
대찬은 큰 소리로 외쳤다.
“피터! 옆으로 피해요!”
그렇게 외치는 동시에 대찬은 M16을 그에게 겨눴다.
살인을 할 수는 없다.
대찬은 총을 들고 있는 그의 팔을 봤다.
그리고 시선을 옮겨 그 팔과 이어진 어깻죽지를 봤다.
대찬의 시선을 따라 M16의 총부리도 움직였다.
총부리가 놈의 어깻죽지를 겨눴다.
놈은 정말 피터를 쏠 작정이었다.
사람을 겨냥해 총을 쏘는 건 처음이라 대찬도 주저했다.
하지만 이 주저함이 피터의 목숨을 앗을 수도 있단 걸 알았다.
탕!
대찬은 녀석보다 방아쇠를 먼저 당겼다.
“큭!”
총탄은 녀석의 어깻죽지를 정확히 관통했다.
총탄이 나선형으로 뚫고 나간 그의 어깻죽지에서 피가 뿜어졌다.
탕!
녀석은 쓰러지면서 거의 끝까지 당겼던 방아쇠를 마저 당겼다.
다행히 그건 허공으로 날아가 나뭇잎 몇 장을 가지에서 떨어뜨리는 데 그쳤다.
녀석은 어깻죽지의 불타는 듯한 고통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흡사 죽을 때가 다 되어 바닥에서 뱅뱅 도는 풍뎅이 같았다.
녀석은 바로 달려온 장정들에게 제압되었다.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대찬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태가 끝나자 대찬은 총을 버려두고 줄리아부터 찾았다.
아이를 향해 다급히 달려갔다.
“줄리아!”
줄리아는 너무나도 충격이 큰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대찬은 줄리아에게 달려가 와락 끌어안았다.
“괜찮아. 줄리아,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대찬은 줄리아의 눈을 가리고 번쩍 안아 대열에 합류했다.
줄리아는 대찬의 품에 안겨 그의 팔을 꼭 잡았다.
약한 악력이 대찬에게 한없이 무거운 미안함으로 다가왔다.
그걸 보고 피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줄리아가 당신을 많이 따르긴 하는 모양이오.”
“…….”
대찬은 그 말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줄리아를 얌전히 피터의 품으로 넘겼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을 쐈네요.”
“무고한 사람을 살리려고 죄인을 쏜 거지. 뭐, 죽지는 않았잖소?”
바닥에는 녀석의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처참한 현장에 대찬의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사격은 무수히 많이 해봤다.
하지만 총으로 사람을 쏜 건 물론 처음이었다.
전장의 한복판이었던 이라크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
게다가 어쨌거나 불법.
어떤 구실을 갖다 댄들 죄책감을 덜기에는 무리였다.
대찬은 씁쓸한 시선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 대찬의 팔을 피터가 잡아당겼다.
“오래 봐서 뭐하겠소. 신경 끄시오.”
“…….”
대찬은 피터를 바라봤다.
피터 역시 대찬을 응시했다.
둘의 눈빛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피터는 대찬의 등을 툭툭 두드리고 다른 남자들에게 말했다.
“저놈들, 대충 지혈이나 해서 갖다버려.”
그렇게 툭 던지듯 말했다.
대찬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지갑에서 키나 화 몇 장을 꺼냈다.
그러고는 녀석들을 향해 휙 던진 후 또박또박한 마라와카의 말로 말했다.
“줄리아를 맡아준 값이야. 그걸로 붕대나 사서 감아.”
피터는 그런 대찬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감싸고 그쪽에서 시선을 돌리게 했다.
“놈들이 뭐 예쁘다고 돈까지 던져 주시오?”
“예뻐서 준 게 아닙니다. 제 속이나 편하자고 그런 거예요.”
“깐깐한 동양인한테 그런 도덕심이 있을 줄이야.”
대찬은 피식 웃었다.
“한국이 옛날에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불렸던 걸 알면 깜짝 놀라시겠군요.”
“오, 정말 깜짝 놀랐소.”
피터는 정말 깜짝 안 놀란 목소리로 대꾸하곤 대찬을 마라와카 마을로 향하는 길로 이끌었다.
피터는 대찬보다 두 발짝쯤 앞서서 걸었다.
한동안 그는 침묵했다.
침묵한 채 계속 입술을 우물거리던 그는, 마침내 결심한 듯 대찬을 뒤돌아봤다.
대찬과 시선이 맞닿았다.
피터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이제 원톡이오.”
“…….”
대찬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일행은 마을로 돌아왔다.
줄리아의 부모는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와락 껴안았다.
이곳의 환경이 얼마나 척박한지 아는 만큼 그들의 걱정은 깊고 깊었다.
대찬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
줄리아의 부모가 대찬에게 품은 마음은 복잡했다.
따지고 들자면 대찬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우기도 뭐했다.
결국 줄리아를 구해낸 것도 대찬이었다.
하지만 대찬 본인이 말했듯, 대찬이 오지 않았으면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
부모는 자식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대의명분도 소용없다.
절대로 반박할 수 없는 논변을 들이대도 소용없다.
동기야 어떻든 자식을 위험에 빠뜨린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다.
줄리아의 아버지는 대찬에게 증오의 눈빛을 쏘았다.
“당신… 당신 때문에 줄리아가 죽을 뻔했어.”
“정말 죄…….”
…송합니다.
빠르게 고개를 숙이려던 대찬의 앞을 줄리아가 가로막았다.
“아니야! 초는 잘못 없어!”
“줄리아!”
아버지의 눈이 커졌다.
줄리아는 태어나 7살 인생을 누리는 동안 가장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잘못은 내가 했어! 초는 잘못 안 했어!”
“…….”
“내가 바깥 얘기 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초는 친절하게 얘기해준 것뿐이야. 마을 밖으로 함부로 나간 건 나야!”
줄리아는 대찬을 올려다보며 손을 최대한으로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줄리아가 대찬을 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초가 나를 구해줬어. 나쁜 아저씨들한테서 구해줬어. 고마운 사람이야.”
그러다 다시 아버지를 보는 눈빛에는 결의가 어렸다.
“잘못은 내가 했어. 나를 혼내. 초는 혼내면 안 돼.”
“하아…….”
아버지는 이마를 탁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찬을 둘러싼 마라와카 주민 중 한 사람이 나섰다.
대찬에게 검은 드레스를 선물 받은 펑퍼짐한 아줌마였다.
“다 잘됐으니 좋은 거 아니에요? 돼지나 1마리 잡아서 우리 줄리아 잡아간 나쁜 놈들 명복이나 빌어주자구요! 술 마시면서 춤추고!”
일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우악스러운 목소리였다.
그 말에 마을 주민들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돼지 잡자!”
“먹자! 춤추자!”
검은 드레스 아줌마는 박수를 치며 흥겹게 웃다가 말했다.
“아, 그리고 우리 원톡이 된 초와 민을 위해서 술을 마시자고요!”
“좋아! 좋아!”
갑자기 축제처럼 돌변한 분위기에 대찬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했다.
돼지를 잡는 동안, 대찬은 민승기와 함께 한숨을 돌렸다.
민승기는 대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고생했어. 사람도 쏘고.”
“기분이 이상하네요.”
“그래. 아무리 나쁜 놈이라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
대찬은 거푸 주먹을 쥐었다 폈다.
피가 통하지 않는 손가락은 창백했다.
“초.”
그때 줄리아가 대찬을 찾아왔다.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걸어와 대찬에게 폭 안겼다.
그건 위로받으려는 포옹이 아니라 위로해주려는 포옹이었다.
대찬은 줄리아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다음으로 줄리아의 아버지가 대찬을 찾아왔다.
대찬은 여전히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대찬이 못 미더운 눈빛이었다.
목소리도 그랬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말했다.
“헤이, 컴 아웃. 드링크 알콜 앤 댄스 위드 아워 네이버. 유 아 얼소 마이 네이버. 유 아 아워 원톡.”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어김없이 약속된 시간에 경비행기가 착륙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우르르 비행장으로 몰려갔다.
경비행기의 프로펠러가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뿌리가 약한 풀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조나단 테일러가 비행기에서 내려 가볍게 허리를 스트레칭 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 나온 피터에게 물었다.
“미스터 초는 어디 있습니까?”
“저기 있소.”
피터가 가리키는 곳으로 조나단은 웃음을 띠며 걸어갔다.
대찬 역시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조나단은 악수를 건넸고, 대찬은 흔쾌히 악수에 응했다.
“초, 표정이 밝군요.”
“그래 보입니까?”
기실 사람을 쐈다는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대찬의 뇌리에 계속 머물던 참이었다.
그래서 부러 표정을 더 밝게 하고 다녔다.
잊으려고.
영문을 모르는 조나단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어떻게, 성과는 있었습니까?”
“네, 감사하게도.”
조나단은 놀란 듯 살짝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