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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222화 (221/556)

난 할 수 있어 222화

식당은 흡사 교도소를 방불케 했다.

창살로 된 철문이 끼이익 열리더니, 무장한 경비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살짝 당황한 대찬과 민승기에게 제이콥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치안이 안정된 나라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세계적으로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라서요.”

“하하…….”

아무렇지 않게 자국을 소재로 씁쓸한 우스개를 하는 제이콥에게 대찬과 민승기는 어설픈 미소밖에 보여줄 게 없었다.

“분위기는 이래도 맛은 나쁘지 않습니다. 들어가시죠.”

식사는 한국 돈으로 10만 원이 넘었다.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라서 비싼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식사의 질이 한국의 2, 3만 원 하는 식당과 비슷하거나 조금 못했다.

제이콥이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파푸아에서는 훌륭한 정찬에 속하니 즐겨주십시오. 여기 공산품이나 수입식품의 물가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게 현실이라서요.”

“아, 아닙니다.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맛있게 드셔주시니 고맙군요.”

제이콥은 씩 웃고는 민승기에게 물었다.

“마라와카의 커피를 수입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파푸아뉴기니의 서부지역은 이미 대기업의 플랜테이션 대농장이 세워져 포화상태입니다.”

제이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 유기농인증을 받을 수 없고, 상대적으로 저품질이죠.”

“네. 그래서 이스턴 하이랜드(Eastern Highlands)의 고산지대의 커피농장과 접선하고 싶습니다.”

제이콥이 말한 마라와카는 이스턴 하이랜드, 그러니까 동부고원지대에 있는 촌락이었다.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프라가 열악하고 소규모 농장들밖에는 없지만, 그만큼 기회의 땅이라는 증거니까요.”

“네. 모쪼록 제이콥도 많이 도와주세요.”

제이콥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저도 힘닿는 데까지는 도와드리겠지만, 결국 미스터 민과 미스터 초가 그쪽 원톡에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내일 바로 출발하시죠.”

대찬은 그저 그런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민승기가 말한 동부 하이랜드의 마라와카에 도착하면, 이 그저 그런 음식이 미치도록 그리워질 테니까.

다음 날.

대찬 일행은 일찌감치 마라와카로 떠났다.

대찬이 민승기에게 물었다.

“마라와카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나요?”

“뭐?”

민승기는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되물었다.

“왜요? 지도로 보니까 차로 못 갈 정도는 아니던데.”

“네가 아직 이 나라를 잘 모르는구나.”

“네?”

“도로가 전국적으로 다 이어질 만큼 인프라가 확충돼 있지도 않고, 중앙정부에서 도로를 놓으려고 해도 거부하는 부족들도 종종 있어.”

“인프라가 확충 안 된 건 이해하겠는데, 거부할 것까진 없잖아요?”

민승기는 웃으면서 말했다.

“일부 난폭한 부족들이 있거든. 그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어. 이 사람들은 가던 차들이 수렁에 빠지면 구해주고 거액을 뜯어가는데, 도로가 확충되면 그럴 일이 없으니까.”

“…이유가 괴팍하네요. 그럼 마라와카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는데요?”

“경비행기.”

“도로는 없는데 비행장은 있대요?”

“응. 먼저 동부 거점도시 고로카로 가서 그다음 마라와카로 가는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돼.”

“그건 그것대로 고역이네요.”

“진흙탕 빠져서 돈 뜯기는 것보단 낫지.”

민승기의 말대로 대찬 일행은 경비행기를 타고 동부 고원지대의 중심지, 고로카에 내려 다시 경비행기로 갈아탔다.

경비행기로 날아 마라와카로 가는 과정.

그 아래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원시의 자연이었다.

저기에 공룡 몇 마리만 풀어놓으면 그대로 쥬라기 공원이 될 정도였다.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요란했다.

대찬은 바로 옆의 민승기에게 목이 칼칼할 정도로 큰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이런 환경에서 재배한 커피면 질이 좋을 수밖에 없겠네요.”

“당연하지! 게다가 블루마운틴 커피 원조인 자메이카보다 생두 가격이 10분의 1에 불과해.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결과가 좋을 거야.”

“기대가 되네요.”

그때 경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하듯 아래로 훅 꺼졌다.

대찬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내장이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경비행기는 고로카 비행장에 머물다가 다시 마라와카 비행장에 착륙했다.

비행기는 산을 넘어 활강했다.

마라와카 비행장은 활주로도 변변하지 않았다.

잡초가 무성한 초원에 그대로 착륙했다.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 자주 비행을 해봐서 그런지 파일럿의 솜씨는 준수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파일럿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파일럿은 별거 아니라는 듯 피식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신선한 공기가 대찬의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신선한 공기였다.

미세먼지에 찌들 대로 찌든 서울 공기는 댈 것도 아니었다.

“공기 한번 기가 막히네요.”

“이 근처에는 온통 빽빽한 밀림에다가 사람 손을 거의 안 탔으니까.”

“고산지대라 그런지 수도보다 훨씬 시원하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마라와카에 도착한 소감을 주고받는 사이, 이 마을 아이들이 온통 쏟아져 나와 대찬과 민승기를 둘러쌌다.

그들은 이방인의 시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헬로.”

대찬이 상냥하게 손을 흔들자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수줍게 뒤로 물러섰다.

아이들에 이어 마라와카의 어른들이 비행장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은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근원적인 호기심은 같았지만 부끄러운 호의는 없었다.

도리어 경계와 약한 적대심이 엿보였다.

대찬은 그 눈빛을 보고 긴장했다.

마라와카의 사람들은 영어가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사용했던 언어, 히프마어(Yipma)를 구사했다.

그러니 대찬이 알아들을 만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중 한 사람인 듯, 빼빼마른 중년 남성 하나가 성큼 앞으로 나왔다.

“Who are you.”

물음표가 아니라 온점으로 끝내는 게 적당할 정도로 빼빼마른 중년 남성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이에 제이콥이 나서서 두 한국인을 대변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대찬은 그를 부드럽게 제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내내 제이콥에게 저들과의 소통을 맡길 수 없다.

그래버리면 대찬과 민승기는 이들에게 내내 신뢰할 수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대찬은 최대한 정제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한국에서 온 대찬 초라고 합니다.”

“피터 누무라고 하오.”

“그래요, 피터.”

“미스터 누무라고 부르시오.”

피터는 대찬과의 거리를 엄격하게 유지했다.

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스터 누무. 만나서 반갑습니다.”

“용건이 뭐요.”

피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불친절했다.

대찬은 개의치 않게 용건을 말했다.

“우리는 마라와카 지역의 커피를 수입하기 위해 왔습니다. 얘기를 좀 나눴으면 합니다.”

“이 지역의 커피는 호주의 비즈니스맨에게 판매하고 있소.”

“저희도 그들만큼 좋은 조건으로 대금을 지불할 의사가 있습니다.”

“동양인은 유대인 다음으로 돈을 밝힌다던데, 당신들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하겠소?”

대찬은 그 말을 따갑게 받아쳤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식인풍습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럼 저희가 미스터 누무와 당신의 가족을 식인종으로 여겨도 아무렇지 않으시겠습니까?”

“뭐요? 무례도 정도껏……!”

“미스터 누무, 당신이 무례하다고 얘기하기 위해 말을 꺼낸 겁니다.”

덤덤하던 피터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그럼 한국에서 예의 바른 사람이나 만날 것이지, 여기까지 뭐 하러 왔소!”

“말씀드렸잖습니까, 커피 사러 왔다고. 한국에서는 커피가 안 나거든요.”

“당신한테 팔 커피는 없소!”

감정이 점점 격해졌다.

그러자 영어를 제대로 못 알아듣는 주민들의 경계심도 더 깊어졌다.

아차 싶은 민승기가 대찬의 팔을 살짝 잡았다.

“야, 뭐 해! 초장부터 망치려고 이래?”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죠. 이런 거 일일이 참아주면서 비즈니스 못해요.”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피터를 바라봤다.

“미스터 누무, 마라와카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얘기를 들어라도 주십시오. 그게 손해는 아니잖습니까.”

“당신네 이야기를 안 들어도 우리한텐 손해는 아니지.”

“아뇨, 손햅니다.”

“어째서 손해요?”

대찬은 지참한 물건들을 펼쳐보였다.

갖은 옷가지와 파푸아뉴기니에서 구하기 힘든 공산품들이 한 가득이었다.

그걸 본 주민들은 관심을 가졌다.

대찬은 피터에게 말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한국에서부터 힘들게 가져왔습니다.”

“으음…….”

“이야기를 나누는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나요?”

“억지로 뺏는 방법도 있지.”

대찬은 슬며시 웃었다.

지금까지 숱한 사람들을 봐오면서 익힌 경험적인 지식이 있다.

대찬은 피터의 눈을 보고 그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두렵지 않았다.

“억지로 뺏는다고요? 그런 소문이 나면 기존의 호주 바이어들도 마라와카로의 방문을 꺼리지 않을까요?”

“소문이 나지 않게 죽여버리면 되지.”

대찬은 그 말엔 대답도 안 하고 피터의 곁에 있던 아이를 바라봤다.

그 아이는 피하지 않고 대찬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대찬은 웃으면서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휴대용 미니 선풍기의 전원을 탁, 켰다.

작은 팬이 돌아가며 바람이 아이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찬에게 다가왔다.

대찬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미니 선풍기를 선물했다.

아이는 그야말로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대찬은 다시 일어나 피터를 바라봤다.

“이런 해맑은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을 죽인다고요? 에이, 농담도 심하십니다.”

“…배짱 한번 좋군.”

“피터와 마라와카 사람들의 선량함을 믿으니까요.”

“따라오시오. 하지만 착각은 마시오. 우리는 단지 얘기만 듣겠다는 거니까.”

“네. 반드시 마라와카 주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다.”

피터가 앞장서고, 대찬이 뒤를 따랐다.

민승기와 제이콥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이콥은 머쓱하게 웃으면서 민승기에게 말했다.

“제가 괜히 따라왔나요?”

“아, 아닙니다.”

민승기는 겸연쩍게 웃으며 역시 대찬의 뒤를 따랐다.

민승기가 대찬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너 똥배짱은 여기 와서도 여전하구나. 그러다 진짜 호되게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 여기 사람들 M16 들고 다닌다니까.”

“이 사람들 유일한 수입원이 경비행기로 판매하는 커피뿐이잖아요.”

“응.”

“근데 제가 몇 마디 좀 쏘아붙였다고 날 쏴 죽여요? 그런 손해 보는 짓은 안 하죠.”

민승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괜히 저 사람들 성질 건드려서 좋을 게 뭐 있다고.”

“나라 법보다 마을 법이 우선하는 곳이라면서요.”

“근데?”

“이런 데서 물렁하게 보이면 눈 깜짝할 사이에 팬티까지 벗겨간다니까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은 분명히 심어줘야죠.”

“어이구, 특급협상가 납셨네.”

“결과가 증명해줄 거예요.”

대찬은 씩 웃었다.

대찬과 민승기, 제이콥이 테이블 한쪽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피터와 마라와카의 촌장 역할을 하는 노인이 앉았다.

테이블 사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대찬은 한국에서 여러 번 협상테이블에 앉은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상대방의 외모도 한몫했다.

대찬은 일단 구체적인 협의에서는 한발 뒤로 물러났다.

커피에 대해서는 지식이 일천했다.

그러니 현지사정에 밝은 정부 관료인 제이콥과, 대찬보다 커피를 20배는 넘게 마셔본 민승기에게 일임했다.

하지만 협상은 쉽지 않았다.

쳇바퀴 돌듯 지지부진한 1차 협상은 별 결실 없이 종료되었다.

친절한 마라와카 사람들은 이방인을 경계하면서도 당분간 지낼 거처는 마련해주었다.

한 젊은 부부가 3명의 딸과 지내는 집이었다.

그 3명의 딸 중 막내가 대찬에게 미니 선풍기를 선물로 받았던 아이였다.

“Name?”

“줄리아.”

“줄리아, Cute.”

대찬은 줄리아와 한 단어만으로 대화했다.

그 이상의 의사소통은 어려웠다.

그 한 단어 대화법이 어린 줄리아에게는 또 재밌는 놀이였다.

신기하게 생긴 이방인이 한 단어로만 질문을 하는 게 즐거워 줄리아는 깔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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