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215화 (214/556)

난 할 수 있어 215화

대찬은 그쪽으로 걸어가 명단을 확인했다.

‘사내이사는 4명, 사외이사는 3명.’

사내이사 중 1명은 당연히 서청규 사장이었다.

‘강대길 대표이사 부사장, 석문주 전무. 이 둘은 명백히 서청규 라인이고.’

나머지 1명의 사내이사, 김민수 전무는 서청수 회장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3명의 사외이사가 전부 사업부 분리에 동의해야 하는데.’

사외이사 3인의 신상은 이랬다.

전몽우 前 국회의원.

김창호 고원대 경영대학원장.

장문진 前 대원인터내셔널 미국지사장.

사외이사는 보통 단순한 거수기에 불과하다.

그들이 서청규 사장을 배신하고 서청수 회장의 편을 들 확률이 낮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대찬 역시 서청수 회장의 속내를 쉽게 짐작하지 못했다.

그때 자리의 전화가 울렸다.

대찬은 전화를 받았다.

“혁신경영팀 조대찬 차장입니다.”

“어, 우리 꾀돌이.”

대찬은 목소리를 바로 알아차렸다.

“회장님.”

“자네한테 부탁 하나만 함세.”

“네, 말씀하시죠.”

“장문진.”

서청수 회장이 세 글자만 말해도 대찬은 바로 알아차렸다.

“사외이사 장문진을 포섭하면 되는 겁니까?”

“맞아.”

“전몽우와 김창호는 이미 우리 쪽에 찬성표를 던진다고 했습니까?”

“전몽우가 운영하는 재단에 기탁금 확실하게 밀어준다고 하니 그쪽은 넘어왔어.”

“김창호는 어떻게 됐습니까?”

“김창호는 이름값을 하더군. 벽창호야. 절대 안 넘어올 거 같아. 쩨쩨한 놈, 같은 동문끼리 품앗이 좀 해주면 좀 좋아?”

그 말에 대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창호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사회를 소집해봤자 사업부 분리가 가결될 수 없잖습니까.”

“아니야. 가능해. 자네가 장문진만 끌어들이면.”

대찬은 그 이유를 캐묻고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서청수 회장이 원하는 건 장문진이었다.

대찬은 궁금증 해소를 포기하고 장문진에 집중했다.

“회장님께서 이미 장문진을 포섭하려고 시도하셨을 겁니다. 쉽지 않아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

“그래, 쉽지 않더군.”

“회장님도 설득하지 못한 사람을 제가 무슨 수로 설득하겠습니까?”

서청수 회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 장문진은 꼭 우리 쪽에 붙어야 돼.”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과가 좋아야 해, 결과가.”

서청수 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찬은 화이트보드에 붙은 장문진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노조의 저항은 거세지고.

필래유통의 주가는 점점 떨어지고.

필래유통은 강경기조를 바꾸지 않던 시점.

대찬은 혁신경영팀의 전 인력을 장문진을 위해 총동원했다.

“장문진에 관한 정보를 있는 대로 긁어모아주세요. 아래로는 아들, 손자부터 위로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부. 합법적인 한도 내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세요.”

“알겠습니다, 차장님.”

직원들은 대찬의 뜻에 따라 장문진에 대한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대찬의 책상 위에 정보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송희근 과장부터 홍은주 주임까지.

일곱 명의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뽑아내는 정보들을 대찬은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그렇게 정보를 뒤지던 대찬은 어떤 인터넷 기사를 보고 잠깐 멈췄다.

작은 언론사에서 장문진과 인터뷰를 했던 기사였다.

대찬은 형광펜을 꺼내 글자를 따라 죽 그었다.

그리고 그걸 소리 내어 읽었다.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한 장문진 이사의 대답이었다.

“고민? 고민이라면 딱 하나 있죠. 장부로서 커리어는 무사히 마쳤으니 남은 건 자식농사뿐이죠.”

대찬이 발음하니 직원들이 모두 그쪽을 바라봤다.

대찬은 계속 읽었다.

“사실 제가 미국지사에 있을 때 딸애를 낳았습니다. 애지중지 키우긴 했는데, 미국사회 주류에 편입해 활약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많더군요.”

대찬은 거기까지 읽고 직원들에게 말했다.

“장문진 딸을 집중적으로 알아봐주세요. 지금 몇 살이고, 학교는 어디 다니고, 성적은 어떤지 최대한 힘이 닿는 데까지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은 대찬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홍은주는 어딘가에 전화를 몇 번 돌리더니, 종이 1장을 프린트해서 대찬에게 갖다주었다.

“장문진 이사의 인사기록카드예요. 좀 된 거지만.”

“이걸 어디서 뚝딱 구해냈어요?”

대찬이 놀라서 물었지만 홍은주는 덤덤히 대꾸했다.

“장문진 이사가 필래유통 사외이사 되기 전에 ONB 경영본부 고문을 지냈거든요. 그래서 차장님과 친분 있는 최재한 기자님 통해서 받았어요.”

“부끄럽네. 이런 건 내가 한발 빨리 캐치했어야 하는데.”

“차장님은 지금 수집된 정보 분석하시는 것만으로도 벅차신 거 알아요.”

홍은주는 그렇게 얘기하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장문진의 인사기록카드에는 가족관계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찬은 형광펜 뚜껑을 문 채로 웅얼거렸다.

“딸, 이름 장성채, 생년월일이 92년… 92년이면 몇 살이지?”

대찬이 묻자 홍은주가 바로 대답했다.

“한국 나이로 23살이에요.”

“아까 인터뷰 기사가 올해 나온 거니까 대학은 슬슬 졸업할 시점이고…….”

홍은주가 덧붙였다.

“인사기록카드에 동거여부도 적혀 있는데요, 아들하고는 같이 살고 있는데, 아내와 딸은 아니라고 기입돼 있어요.”

“그렇네. 그렇다면 기러기 되시겠다. 그럼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확률이 거의 100프론데…….”

그걸 듣고 뭔가를 계속 뒤지던 오다혜가 대찬을 보고 말했다.

“장문진 이사가 근무하던 대원인터내셔널 미국지사는 시카고에 있었대요. 그래서 거기서 쭉 자랐고, 학교도 시카고에 있는 드폴대학교 다닌다네요.”

“드폴대학교, 오케이.”

그걸 들은 김산호가 장성채의 SNS를 찾아냈다.

“아, 찾았어요. 장성채, 영어이름은 미셸 창. 언론학 전공하고 있네요.”

“나한테도 링크 줘봐.”

대찬은 김산호로부터 넘겨받은 장성채의 SNS를 확인했다.

미국에서 쭉 자라 게시물도 모두 영어로 작성되었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터라 하루가 멀다 하고 게시물이 올라왔다.

개중 눈에 띄는 게시물이 있었다.

-너무 힘들다. 가고 싶었는데……. :(

그렇게 쓰인 글 아래로 사진 한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캐피톨(Capitol).”

캐피톨은 미국 국회의사당의 별칭이었다.

‘가고 싶었는데, 쩜쩜쩜. 이건 못 간 거라고 봐야지. 단순히 견학 때문만은 아닐 테고, 벌써 의원 선거에 나갔을 리도 없고.’

대찬은 펜으로 탁자를 톡톡 건드리다가 웃었다.

“대충 실마리를 찾았네.”

대찬은 장문진과 접촉했다.

장문진은 처음에 대찬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잠깐 뵙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요. 장 이사님에게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이 갈지도 모르잖습니까.”

대찬의 끈질긴 요구에 장문진은 일단 만남은 수락했다.

어지간히 서청규 사장의 눈치를 보는지, 밖에서는 눈에 띄니 자택에서 보자는 제안을 했다.

대찬은 카페든 자택이든 지옥불구덩이든 어디에서나 장문진을 만날 용의가 있었다.

장문진의 자택에 도착하니, 현관문에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휴, 기러기 냄새. 이래서 책상물림들은…….’

대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전단지를 싹 수거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장문진이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은 채로 문을 열어주었다.

“…오셨군.”

“안녕하십니까.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장문진이 길을 터주자 대찬은 안으로 들어갔다.

미약한 짜장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 있었다.

장문진은 방석도 없는 찬 바닥에 자리를 권했다.

대찬은 아무 거리낌 없이 철퍼덕 주저앉았다.

대찬과 마주앉자마자 장문진은 딱 잘라 말했다.

“오늘 일은 결코 외부에 새어나가는 일이 없어야 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대찬은 그 한마디로 장문진의 속성을 파악했다.

저 사람은 서청규 사장에 대한 대단한 의리로 여태 버티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배신에 뒤따를 대가가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이런 사람을 다루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배신에 뒤따르는 대가보다 더 큰 위협으로 협박하는 것.

둘째, 배신의 대가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 달콤한 제안을 건네는 것.

대찬의 방법은 후자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회장님께서는 서청규 사장에 대한 반란표를 이사님께 원합니다.”

“그 얘기라면 아주 신물이 나요.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겁니까? 나는 내 한 몸이나 보신하면 그만인 사람이라고요. 내가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리자고 사외이사를 한 줄 아십니까?”

대찬은 그의 항의를 이해했다.

사외이사는 대개의 경우 오너의 거수기에 불과하다.

그저 인맥을 통해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충분한 식견으로 오너에게 조언을 하는 정도.

그 정도면 사외이사의 임무는 충족되었다.

조 단위를 주무르는 형제 싸움, 그 태풍의 눈에 자신이 들어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찬은 차분하게 말했다.

“이사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사님의 선택이 주목받을 겁니다.”

“주목받는 선택이라면, 나는 최대한 주목받지 않는 쪽을 고를 겁니다. 서청규 사장님 쪽으로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서청수 회장님과 함께하십시오.”

“나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지금 네 번째 말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십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

“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조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결정은 장문진 이사님이 하십시오.”

“…….”

“조건 하나, 필래유통 이사회에서 해임될 경우 필래지주 전문위원직을 보장한다.”

전문위원 자리는 사외외사보다는 아무래도 체급이 낮다.

하지만 필래유통은 아무리 공룡이라 해도 일개 계열사에 불과하고, 필래지주는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지주회사다.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제안.

장문진이 묵묵부답이자 대찬은 말을 이었다.

“조건 둘, 따님의 영문이름이 미셸 창, 맞죠?”

“그, 그걸 어떻게…….”

“한국이름은 장성채. 따님이 언론학 전공하셨죠?”

장문진은 스토커에 필적하는 대찬의 정보력에 살짝 몸을 떨었다.

“맞아요.”

“캐피톨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거 같으시던데요.”

그 말에 장문진의 동공이 커졌다.

이 미친놈은 어디까지 캐낸 건가.

대찬은 그의 커진 동공으로 대답을 들은 셈 쳤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돕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일개 차장 주제에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말인가.

대찬은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말했다.

“따님이 태미 더크워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의 사무실에서 인턴십을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뭐, 뭐라고요?”

“태미 더크워스 상원의원은 태국계 여성이라, 한국인 여성인 장성채 씨에게 우호적인 근무환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지역구도 장성채 씨가 나고 자랐던 일리노이고요.”

“아니, 되면 당연히 좋지만…….”

장문진은 여전히 대찬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깟 게 무슨 수로 미국 상원의원한테 다리를 놔주겠냐는 의심이 팽배했다.

대찬은 미네소타주 상원의원인 마이크 햇치의 친필서명이 쓰인 문서의 스캔본을 보여주었다.

유진 깁슨을 통해 햇치에게 얻어낸 것이었다.

마이크 햇치는 대찬의 비즈니스를 위해 기꺼이 추천서 1장을 써주었다.

“제가 햇치 상원의원하고 안면이 좀 있습니다. 그쪽에 부탁하니 흔쾌히 더크워스 상원의원의 사무실에 알선을 해주시더군요.”

“저, 정말이에요?”

“네. 물론 격무는 각오하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과 노력을 보여야만 하니까요. 그래도 따님이 원하시던 자리이니 열심히는 하시겠죠.”

“물론입니다.”

장문진은 그렇게 말해놓고 아차, 싶어 말을 바꾸었다.

“그렇다고 그 제안을 넙죽 받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도 대원인터 미국지사장까지 한 사람이에요. 상원의원 인맥 하나쯤 없을 거 같습니까?”

“없으신 거 같은데요. 아까 너무 진심으로 좋아하시던데.”

“…….”

“그래요. 뭐, 이런 정도 가지고 서청규 회장의 뒤통수를 후리라고 하는 게 무리긴 합니다.”

대찬의 말에 장문진은 무슨 또 선물꾸러미를 풀어놓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대찬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호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예?”

“회장님이 이사님과의 협상을 위해 저를 보낸 건 최후통첩을 하기 위해섭니다.”

그 말에 장문진은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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