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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93화 (192/556)

난 할 수 있어 193화

“아, 진짜 너무들 하시네.”

“뭐, 뭐야? 조 차장, 지금 뭐라고 했어?”

대찬은 얼굴을 뻣뻣이 굳혔다.

“골프, 단합하려고 치는 거 아닙니까? 근데 말씀을 왜 그따위로 하십니까?”

“뭐……?”

당사자인 상무도 가만히 있는데 그 밑의 차장이 기어오른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 차장이.

일순 이동수 부사장 이하 임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대찬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적당히들 하십시오. 사람 그렇게 놀려먹으면 기분 좋습니까?”

“야, 조대찬!”

이동수 부사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찬은 이동수 부사장에게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하지만 이왕 입 열었으니 마저 말하게 해주십시오.”

이동수 부사장은 다른 임원들과 질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동수 부사장에게까지 날을 세우면 출구가 없었다.

그는 존중하되, 그 아래의 임원들은 존중하지 않았다.

“권 이사님, 자꾸 캐디 끼고 주물럭거리실 겁니까? 주물럭거리기까지 해야 아랫도리가 좀 꿈틀거립니까?”

“야!”

“박 전무님, 자꾸 공장 들먹이시는데, 박 전무님도 월드몰 재직하실 때 창고에서 일하셨다면서요. 공장이나 창고나 뭐 다릅니까?”

“너… 말 다 했어!”

“다 안 했어요. 최 상무님, 고졸이라고 자꾸 깔아뭉개시는데, 최 상무님 대학 어디 나오셨습니까?”

“야, 대졸이면 됐지,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통동대 나오셨죠. 제가 고대 나왔다고 통동대 나온 최 상무님 깔아뭉개면 가만히 계실 겁니까.”

“너 진짜 말 이따위로 할 거야! 회사생활 종 치고 싶어!”

“왜요, 선배님들이 사람 놀려먹으면서 재밌다고 하시니 저도 한번 따라해 봤습니다. 아, 해보니까 재밌네요?”

임원들은 당장이라도 대찬을 잡아먹을 듯 광분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 차장이, 어디 차장이 감히 임원진을 욕보인단 말인가!

회사의 기강이 무너져도 이렇게 무너질 수가 있는가.

고졸 생산직이 상무를 다는 것도 우스운데, 이제는 중간관리자가 임원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옥문영 상무에게만 역린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무기인 중간관리자에서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용이 된 임원들에게도 역린은 있었다.

나이도, 직급도 어린 것이, 건방지게!

임원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대찬을 쏘아봤다.

옥문영 상무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저놈이 도대체 왜?’

당사자가 가만히 있는데 왜 나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는가.

더군다나 자신과는 원수와 가까운 사이였다.

옥문영 상무가 어리둥절해하는 와중에도 대찬은 사나운 기세를 거두지 않았다.

그러는 동시에 서원웅에게 슬쩍 눈짓을 보냈다.

대찬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11년이었다.

척하면 삼천리였다.

이 상황을 매조질 수 있는 건 서원웅이 유일했다.

“잠깐만요. 너무 흥분들 하지 마시고요.”

서원웅이 개입하자 임원들은 사자 앞의 하이에나처럼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대찬에게 눈을 흘겼다.

‘아차, 저놈이 저렇게 지랄맞은 이유가 있었구나.’

서원웅이 라이온킹 심바라면, 대찬은 티몬이었다.

저 망할 미어캣이 사자꼬리 뒤에 숨어서 약을 올리는데 하이에나들은 도리가 없었다.

서원웅은 부드럽게 임원들에게 말했다.

“진정들 하세요. 좋은 날 왜 얼굴을 붉히고들 그래요.”

“하, 하지만 전무님…….”

“골프나 마저 치자고요.”

하지만 모두가 고분고분 사자의 말을 듣지는 않았다.

옥문영 상무와 입사연도가 비슷하면서 대찬에게 대학까지 들먹여지는 치욕을 당한 최 상무는 여전히 흥분상태였다.

“아니, 서 전무님, 우리한테 뭐라고 하실 게 아니죠.”

“최 상무님.”

“말 끊지 마시고요. 지금 저 새파란 놈 귀여워서 임원 노는 자리에 껴줬더니 분수도 모르고 되레 날뛰잖습니까? 저걸 가만둡니까? 회사기강을 이렇게 무너뜨려도 되는 겁니까?”

최 상무가 언성을 높이자 임원들은 이제 슬금슬금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옥 상무에게도, 그들에게도 역린이 있듯 서원웅에게도 역린이 있었다.

서원웅의 역린은 조대찬이었다.

“최 상무.”

서원웅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 준엄한 반말조의 부름에 최 상무는 우두망찰했다.

서원웅은 그에게 눈빛을 쏘았다.

“그 새파란 놈에 나도 해당되는 거 알아요?”

“아, 아뇨, 전무님. 전무님을 말한 게 아니고…….”

“말 끊지 마시고요.”

“넵.”

서원웅의 손이 슬그머니 허리춤으로 갔다.

“지금 조 차장이 지적한 것 중에 하나라도 틀린 게 있습니까?”

“그 내용이 틀렸다기보다는 자세, 태도가…….”

“아, 그럼 최 상무 태도는 제대로 배워먹은 태도고요.”

“배, 배워먹은…….”

“도대체 최 상무한테는 염치라는 게 있습니까?”

최 상무는 안 풀린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그게 아니라잖습니까, 전무님.”

서원웅은 더 이상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이동수 부사장을 바라봤다.

“대표님.”

“예, 전무님. 아, 아니, 서 전무.”

“대표님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가장 상급자이시니 대표님이 서둘러 상황을 정리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그럴까.”

이동수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보무도 당당히 최 상무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야, 최진갑!”

“대, 대표님…….”

직급보다 본명으로 부르는 것이 더 위압적이었다.

이동수 부사장은 찌릿 눈총을 쐈다.

“너 인마, 잘못을 저질렀으면 가만히나 있을 것이지, 이게 무슨 추태야, 추태가!”

“대표님!”

“조 차장한테 당장 사과해! 조 차장이 올바른 지적을 해줬으면 알아서 찌그러질 것이지, 뭘 잘했다고 빽빽 소리를 질러대나!”

하이에나 대장의 으름장에 졸개 하이에나는 위축되었다.

결국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 미안해, 조 차장. 내가 과했네.”

“돌이켜보니 저도 많이 건방지게 굴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티몬의 목소리에서는 일말의 뉘우침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원웅으로 이동수를 잡고, 이동수로 최 상무를 잡은 대찬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본의 아니게 분위기를 흐려서 죄송합니다. 마저 라운드 도실까요?”

이동수 부사장도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래그래. 하던 거 마저 하자고. 아, 근데 옥 상무 공이 곤란한 곳으로 가서 어쩌나.”

“한 타만 봐주시죠. 그래야 게임이 재밌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해.”

대찬의 제안에 이동수 부사장이 선선히 응낙했다.

한 타를 봐주든, 두 타를 봐주든 이미 옥 상무는 가망이 없었다.

대찬은 한마디 덧붙였다.

“이거 내기 계속 유효한 거 맞죠?”

“어? 어, 그렇지.”

이동수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러면 그렇지!’

그 말에 다시 옥문영 상무의 속이 뒤집어졌다.

꼴찌가 뒤풀이 비용을 다 책임진다.

옥문영 상무는 누가 봐도 확실한 꼴찌였다.

은근히 위해주는 척하면서 다시 이렇게 칼을 꽂는구나!

옥문영 상무는 대찬이 증오스러웠다.

대찬은 웃으면서 옥문영 상무에게 말했다.

“자, 마저 치러 가시죠.”

“…….”

옥문영 상무는 기분이 잡쳤다는 얼굴로 뚜벅뚜벅 수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른 일행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거리까지 걸어가자 대찬이 말했다.

“상무님, 걱정 마세요. 꼴찌는 안 합니다.”

“뭐?”

“외람되지만 제가 한 번만 치게 해주세요.”

“조 차장이 치겠다고?”

대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답사를 죽 해봤는데, 앞에 수풀만 잘 피하면 그린 위에도 올릴 수 있어요.”

“…조 차장, 골프 좀 쳐?”

“나쁘지 않게요.”

대찬이 웃으며 대답하자 옥문영 상무는 미심쩍어하면서도 순순히 응했다.

누가 와도 본인보다 낫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대찬은 능숙한 솜씨로 7번 아이언을 잡았다.

노리는 자세를 보니 예사가 아니란 걸 옥문영 상무도 금방 알았다.

대찬은 차분하게 스윙을 했다.

탁.

7번 아이언에 맞은 골프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튀었다.

골프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수풀 사이를 껑충 뛰어넘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점점 작아지는 포물선을 몇 번 그리더니 데구루루 굴러갔다.

대찬은 그걸 보고 옥문영 상무에게 말했다.

“가시죠, 상무님.”

“어? 어…….”

둘이 수풀 사이를 비집고 나왔을 때, 골프공은 홀 근처의 그린 위에 예쁜 구도로 안착해 있었다.

임원들은 모두 넋 나간 얼굴이었다.

“오, 옥 상무, 어떻게 된 거야?”

“이야, 기가 막힌 샷이었어.”

“허허…….”

임원들의 머쓱한 반응에 옥문영 상무는 당황했다.

“아, 그게 제가 친 게 아니고…….”

옥문영 상무가 엉겁결에 이실직고하려는 걸 대찬이 싹둑 잘라버렸다.

“옥 상무님이 드라이버는 좀 약하신데 아이언은 기가 막히신 거 같습니다. 제가 봤는데 자세며 각도며 완벽했다니까요.”

“그, 그래?”

이동수 부사장이 옥문영 상무를 보며 묻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떠먹여주는데 에퉤퉤 뱉을 정도로 꼬장꼬장하지는 않았다.

“아, 예, 뭐…….”

“이야, 대단한 걸. 다시 봤어, 옥 상무?”

“하하, 네…….”

대찬이 끼어들어서 다시 첨언했다.

“연못이 수풀로 바뀐 것만 빼고는 박세리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네. 샷이 기가 막혔다니까.”

대찬은 옥문영 상무의 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 들어가면 꼴찌탈출은 물론이고 상위권이시겠는데요.”

대찬은 옥문영 상무에게 퍼터를 꺼내주었다.

“숨 좀 고르시고요. 차분하게만 하시면 돼요, 차분하게.”

“알았어.”

언제부턴가 둘은 한 팀으로서 소통했다.

옥문영 상무는 가장 진지한 표정으로 퍼트했다.

톡.

분유 먹인 아기를 트림시키듯 부드럽게 친 골프공이 그린 위를 얌전하게 굴렀다.

또르륵.

골프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무님, 최곱니다.”

대찬은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이제껏 내내 찌그러져 있던 옥문영 상무의 표정이 단박에 환해졌다.

대찬은 하이파이브를 요청했다.

짝!

옥문영 상무는 엄청난 힘으로 그 요청에 응했다.

손바닥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얼얼해졌다.

“에잇, 젠장!”

풀리는 사람이 있으면 안 풀리는 사람도 있는 법.

조금 전의 일로 감정이 주체가 안 되던 최진갑 상무의 공은 홀 근처에서 몇 번씩이나 허탕을 쳤다.

신이 바람으로 핀볼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세 번째 허탕을 치자 최진갑 상무는 신경질적으로 퍼터를 내동댕이쳤다.

이동수 부사장이 그걸 보고 조소했다.

“아무리 그래도 군인이 총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쓰나.”

“아, 이거 진짜 열 받네요.”

“이렇게 되면 최 상무가 꼴찌인가?”

“…….”

고졸이라 좀 느리잖아, 머리가.

그렇게 이죽거리던 말이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자기를 흘끗흘끗 보는 대찬의 얼굴을 보니 환청이 들렸다.

‘통동대라 좀 느리잖아, 머리가.’

‘통동대라 좀 느리잖아, 머리가.’

최 상무의 귓전에서 환청이 웅웅거렸다.

그는 짜증이 정수리까지 차올라 머리를 쥐어뜯었다.

최 상무는 결국 사비를 털어 참석한 모든 이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돈푼 좀 아껴보겠다고 인색했다가는 평판이 떨어진다.

최 상무는 그날 300만 원 어치의 식사를 대접했다.

대찬은 그가 보기에 얄미워 죽이고 싶을 정도로 복스럽게 먹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옥문영 상무는 그런 대찬을 보고 자연스레 웃고 있는 자신을 인식했다.

누가 볼까 서둘러 낯빛을 단속했다.

이미 그걸 목격한 서원웅은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식사를 하던 대찬이 말했다.

“저, 부사장님, 한 말씀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봐.”

“부사장님 축구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축구? 축구 미치지, 내가.”

그 말에 이동수 부사장의 귀가 쫑긋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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