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192화 (191/556)

난 할 수 있어 192화

서원웅 못지않게 회사생활에만 열중하며 살아온 대찬이다.

골프를 따로 배웠을 리가 없다.

“강사만큼은 아니지만 대충 폼 잡을 정도까지는 가르쳐줄 수 있어.”

대찬의 첫 번째 삶.

근무부서는 대외협력팀이었다.

접대가 일상인 부서다.

술도 잘 마시고 혓바닥에 꿀도 잘 발라야 하지만, 골프도 잘 쳐야 했다.

접대골프를 잘 치려면 잘 져야 했다.

클라이언트의 기분을 맞춰주어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잘 지는 건 무참히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

아슬아슬, 승부의 긴장을 유지하며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짜릿한 승리에 도취되도록 하는 일이다.

정교한 운용의 묘가 요구되었다.

잘 지는 골프를 연구한 대찬은 일반인치고는 확실한 일가견이 있었다.

다른 업무에는 젬병인데, 몸이 탄탄해서 그런지 골프에는 제법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것이 대찬이 골프에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였다.

어차피 연습일은 주말 하루에 불과하다.

대찬이 가르치나 강사가 가르치나 서원웅의 실력은 껑충 뛰어오르진 못할 것이다.

그저 망신 안 당하는 정도로는 대찬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주말, 대찬은 서원웅과 만나 오랜만에 클럽을 쥐었다.

대찬은 여전히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서원웅을 위해 과시하듯 정확한 자세로 샷을 날렸다.

“어… 골프는 언제 배웠어……?”

“그냥 어쩌다보니. 그래도 너한테 잔소리할 정도는 되지?”

“…사부.”

서원웅은 빠르게 굴복했다.

대찬은 그간 사용하지 못했던 골프 근육을 몇 번의 스윙으로 풀어준 후로는 오로지 서원웅만을 위해 시간을 썼다.

원체 선천적으로 몸이 유약한 서원웅이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으니 진도가 더뎠다.

‘서청수 회장은 그래도 제법 몸이 탄탄하던데 어째……. 아들 맞아?’

대찬은 씩 웃으며 인내심을 발휘해 서원웅의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골프랑 선거는 고개 치켜들면 진다는 말이 있잖아. 고개 들지 말고, 자…….”

대찬은 손으로는 서원웅의 고개를 살짝 내리고 발로는 서원웅의 보폭을 넓혔다.

그렇게 3시간, 대찬은 엄격한 조교로 변신하여 서원웅을 변신시켰다.

그래도 들인 공이 배신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면 망신은 안 당할 거야.”

“고마워. 너는 도대체 못하는 게 뭐냐.”

‘너는 골프 빼고 도대체가 잘하는 게 없어!’

첫 번째 삶에서 상사들에게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은 소리와 서원웅의 지금 말은 완전히 반대였다.

대찬은 빙그레 웃었다.

골프의 구구단 정도는 깨치게 된 서원웅의 얼굴도 환해졌다.

“고마워, 대찬아. 레슨비도 굳고. 오늘 내가 한우 살게.”

“한우는 안 사도 좋으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서원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부탁?”

“옥문영 상무님 잘 아는 직원한테 슬쩍 물어봐줘.”

“뭘?”

“혹시 골프 잘 치시냐고. 그거면 한우는 안 먹어도 돼. 삼겹살이나 먹지.”

서원웅은 피식 웃었다.

“그거 뭐 어려운 거라고 거창하게 부탁씩이나. 그건 그냥 알아봐줄 테니까 한우 먹으러 가자.”

“전무 되시더니 통이 더 커졌습니다?”

“나중에 대표 노릇 하려면 통이 더 커져야지.”

그 말에 대찬이 소리 내어 웃었다.

“이야, 서원웅! 많이 컸다! 야심가 다 됐네!”

“다 우리 조 차장님 덕분입니다. 내가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거 알지?”

“그런 간지러운 말은 소주나 좀 드시고 하시죠, 전무님.”

대찬과 서원웅은 격의 없이 웃으며 소를 잡으러 갔다.

서원웅은 월요일이 되자마자 대찬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사내 메신저로 서원웅에게서 쪽지가 왔다.

-옥 상무님, 골프실력은 완전 꽝이시래.

-그래? 피지컬은 장난 아니신데.

-사실 골프에 크게 신경 쓸 직무에 별로 안 계셨잖아.

대찬은 서원웅의 쪽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옥문영 상무는 고졸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공장에서 대부분의 회사생활을 보냈다.

그 이후로는 말도 안 되는 제약을 이겨내고 임원까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골프를 습득할 정도의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서원웅은 쪽지를 하나 더 보냈다.

-대신 축구는 장난 아니래. 건장한 남자한테도 안 밀린다는 거야. 별명이 제과 공장 있던 가곡리 이름 따서 가곡리 가린샤였대.

-대단한데……. 아무튼 고마워.

대찬은 서원웅이 입수해준 정보에 흡족한 듯 웃었다.

옆자리의 허운은 또 저 인간이 무슨 꿍꿍이를 벌이나 싶어 불안한 눈빛을 보냈다.

그날, 대찬은 퇴근하고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주말에 골프대회가 벌어질 골프장을 찾았다.

골프장 직원은 야간골프를 치시겠냐 물었고, 대찬은 맞다고 했다.

그는 캐디에게 말했다.

“골프는 됐고요. 여기 한 바퀴 죽 둘러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캐디에게 적지 않은 금액을 슬쩍 찔러주었다.

캐디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찬은 골프장을 죽 돌면서 캐디에게 무언가를 계속 물어봤다.

캐디는 받은 돈만큼의 성의를 다하기 위해 미주알고주알 묻는 족족 대답해주었다.

그다음 주말이 돌아왔다.

중년에 접어든 임원들이 탁 트인 초록빛 골프장에 모였다.

날씨도 화창했다.

이동수 부사장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하늘도 이 이동수의 진급을 기뻐하나봅니다.”

“하하하…….”

임원들은 딱 인사치레인 웃음 정도로만 화답했다.

어차피 좀 있으면 서원웅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사를 떠날 인물이다.

지극정성으로 아부할 이유가 없었다.

대찬의 웃음도 그래서 건성이었다.

캐디들이 임원들에게 1명씩 붙었다.

이동수 부사장은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봐봐요. 이 CC(컨트리클럽)는 캐디 언니들 외모도 끝장난다니깐?”

저질스러운 농담에 역시 아하하, 작은 웃음이 따랐다.

이동수 부사장은 개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캐디를 보고 흐뭇하게 웃다가 옥문영 상무를 바라봤다.

“아, 옥 상무는 영 기분이 껄쩍지근하겠군.”

“저요? 왜 껄쩍지근합니까?”

“남자 캐디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옥문영 상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딱히…….”

옥문영 상무가 가볍게 대화를 맺으려는 찰나, 대찬이 나섰다.

“오늘 제가 옥 상무님 일일캐디 하겠습니다.”

“응?”

이동수 부사장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옥문영 상무로서는 더 의외였다.

그녀는 대찬과 조금도, 단 1초라도 함께하기 싫었다.

당연히 대찬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뜸 일일캐디를 자처하다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속을 모르는 이동수 부사장은 그저 대찬이 대견할 뿐이었다.

“허허허, 조 차장도 모처럼 임원들이랑 한 게임 돌고 싶을 텐데, 마음이 갸륵한데?”

“아무렴 예쁘게 봐주셔서 불러주셨다지만, 어떻게 임원분들하고 맞먹겠습니까.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 조 차장하고 한 게임 치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래도 마음이 그렇다니 오늘 조 차장이 수고 좀 해?”

“예, 그러겠습니다.”

“자자, 오늘은 꼴찌가 옴팡 뒤집어쓰는 게임입니다, 아시죠? 꼴찌가 뒤풀이 비용 다 책임지는 걸로!”

이동수 부사장의 외침에 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은 웃으면서 옥문영 상무에게 말했다.

“상무님, 잘 모시겠습니다.”

“…….”

옥문영 상무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히 저 여우 같은 놈이 시커먼 꿍꿍이를 지녀 이러는 것이라 확신했다.

‘흥! 내가 네놈 잔꾀에 넘어갈 줄 알아? 어디 실컷 수작 부려봐.’

옥문영 상무는 신경질적인 손길로 대찬에게 골프백을 건넸다.

대찬은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너끈히 골프백을 받아냈다.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임원들의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스포츠광을 자처하던 이동수 부사장의 골프공도 영 맥이 없었다.

오죽하면 서원웅의 급조된 실력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서원웅의 부족한 기술이 젊은 힘으로 극복될 만큼, 임원들의 체력은 비실비실했고 기술도 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구멍은 있었다.

옥문영 상무였다.

그녀는 귀족 스포츠 대접을 받는 골프가 애초부터 싫었다.

기술이 전무하니 그 우락부락한 근육들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무식하게 힘을 잔뜩 실어서 스윙을 했다.

연습스윙으로는 족히 300야드는 날릴 것처럼 맹렬한 바람소리가 났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골프공도 맞아야 뻗어나가는 법.

처음에는 그 맹렬한 힘으로 공도 맞추지 못하고 잔디만 날렸다.

벌써 2타를 날렸다.

그걸 보고 이동수 부사장이 골프채를 지지대 삼아 몸을 구부정하게 기대며 피식 웃었다.

“야아, 옥 상무,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못해도 이렇게 못하나?”

“…….”

다혈질이기로는, 또 자존심이 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옥문영 상무였다.

가벼운 조롱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대찬은 임원들이 옥문영 상무를 비웃는 와중에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생각하다.

‘아, 못 치긴 더럽게 못 치네. 정보가 사실이었어.’

머리가 까진 전무가 낄낄거렸다.

“아, 거 지금 잃은 타는 빼줄 테니까 다시 제대로 쳐보라고. 아무리 여자라지만 봐주는 건 여기까지야?”

그 말에 옥문영 상무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여자라서.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옥문영 상무의 역린 중 하나였다.

옥문영 상무는 이를 악물고 세게 스윙했다.

가까스로 클럽이 골프공을 스쳤지만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비실비실한 늙다리들의 공보다도 비거리가 짧았다.

게다가 방향도 상당히 어긋난 상태.

옥문영 상무의 공은 페어웨이에도 안착하지 못했다.

옥문영 상무는 더 신경질적으로 대찬에게 클럽을 안겼다.

그는 도끼눈으로 대찬을 흘겼다.

‘저 개새끼, 속으로 비웃고 있겠지? 이빨만 보여 봐. 주먹으로 박살을 내줄 테니까.’

옥문영 상무는 대찬 때문에 더욱 성질이 돋았다.

그의 생각과는 달리 대찬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힘내십쇼, 상무님.”

대찬은 짧은 응원만 곁들였다.

옥문영 상무는 휙 몸을 돌려 씩씩거리며 공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 와중에 서원웅이 친 공은 제법 멀리 날아갔다.

잠재적 권력인 서원웅의 샷에 임원들은 일제히 성의 있는 박수를 쳤다.

“어어, 전무님 나이스 샷. 잘 치시네.”

“오늘 처음 치신다면서요? 역시 핏줄이 남달라 그런가? 이런 고급스포츠에 재능이 확실하십니다! 옥 상무랑 다르게.”

등 뒤에서 낄낄거리는 소리에 옥 상무의 몸이 더 뜨거워졌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옥문영 상무는 뒤처졌다.

결정적인 실책은 세 번째 샷이었다.

이미 우승하고는 동떨어진 옥문영 상무의 공이 세 번째 샷을 맞고는 수풀에 가려진 곳으로 뚝 떨어졌다.

그러자 일동이 탄식했다.

“야하! 이걸 어쩌나!”

“옥 상무, 진짜 게임 재미없게 만들래?”

이동수 부사장이 이제는 정색하고 옥문영 상무를 꾸짖었다.

박 전무라는 인간은 이동수 부사장을 말리며 한술 더 떴다.

“아유, 고만들 하세요. 공장에서 기름때만 묻은 양반이 골프를 어떻게 잘 쳐요.”

박 전무의 말을 최 상무가 받았다.

“하기야. 이 골프란 게 말이야, 몸도 중요하지만 요 통밥을 잘 굴려야 치거든? 고졸이라 좀 느리잖아, 이게.”

최 상무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건드리면서 웃었다.

서원웅을 제외한 임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옥문영 상무를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이제 옥문영 상무의 얼굴은 홍당무가 따로 없었다.

지금까지 참고 있는 건 옥문영 상무로서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들이 이렇듯 옥문영 상무를 비꼬고 욕보이는 건, 그녀가 자신들과 같은 대열에 서있는 게 못마땅한 까닭이었다.

여자, 고졸, 공장 출신 주제에, 어딜 감히!

옥문영 상무가 그들과 동렬에 서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격이 떨어진 듯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니 골프대회를 구실로 옥문영 상무를 실컷 골려주는 것이었다.

옥문영 상무는 입술을 악물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맞받아칠 순 없었다.

어떻게 올라온 임원자리인데.

바득바득 죽을 동 살 동 여기까지 왔다.

아랫것한테는 쉽게 분노했지만, 옥문영 상무는 지금까지 쌓아온 공 든 탑이 무너질까 자신의 윗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대찬이 나섰다.

잔뜩 가시 돋친 목소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