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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79화 (178/556)

난 할 수 있어 179화

“자네도 알고 있었나?”

“네. 버거칸에서는 부임 첫해와 그다음 해에 오히려 점포를 늘렸죠.”

“그런데 왜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인 거야? 단순히 세 회사에서는 점포를 줄였고, 버거칸 한 곳에서만 점포를 늘렸기 때문인가?”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뭐야?”

“세 회사의 대표를 역임할 때와 버거칸의 대표를 역임할 때의 차이가 있습니다.”

김태준 사장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

“무슨 차이지?”

“뱅킷레신저를 포함해 세 회사의 대표를 역임할 때 차재원은 임기 2년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런데 버거칸의 대표를 역임할 때는 이례적으로 5년의 임기를 보장받았죠.”

“하지만 버거칸에서도 고작 3년 일했어, 그 사람.”

“네. 4년 차에 접어드는 무렵에 차 대표의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거든요. 그래서 나머지 임기는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중도에 사퇴했습니다.”

“그랬나.”

“네. 버거칸 2009년 4월호 컴퍼니 뉴스레터(company newsletter, 사보)를 확인해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짧은 동정이 실려 있었습니다. 5년 계약을 체결했지만 아들의 사고로 중도에 사퇴하게 됐다는 비보를 전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랬군. 거기까진 몰랐네. 버거칸 사보까지 뒤졌단 말인가.”

“차재원 대표 취임 한 달 전 호부터 2009년 12월호까지 확인했습니다.”

김태준 사장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별 걸 다 뒤져봤군그래.”

“5년 임기로 버거칸코리아 CEO에 취임한 차재원은 임기 첫해 인건비를 대폭 절약해 공격적인 할인전략을 구사했습니다. 그것과 동시에 30개 매장을 추가로 론칭했습니다.”

“음.”

김태준 사장은 이제 대찬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 전까지 그는 차재원과 한때 업무로 얽혀 몇 번 만난 경험으로 자신이 대찬보다 차재원을 더 잘 안다고 자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찬의 판단을 무모하다고 통렬히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자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일단은 성질을 죽이고 대찬의 말을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찬은 말을 이었다.

“그다음 해에는 10개 매장을 늘리는 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3년 차에는 매출이 부진한 하위 25개 매장을 폐점했습니다.”

“음…….”

“4년 차에는 더 많은 수의 매장이 폐점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각종 경제지나 외식경영자협회가 주최한 강연에서 차재원 대표가 그 계획을 직접 말했습니다.”

“결국 4년 차, 그리고 계약 마지막 해인 5년 차에는 대대적인 폐점이 이뤄졌을 거란 말이지.”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극단적인 축소지향 스타일은 결국 일관성 있게 유지된 것입니다.”

“차재원이가 업하우스랑 이번에 몇 년 계약했지?”

“기본 2년에 이사회 의결 거쳐서 1년씩 추가입니다.”

“그럼 결국 이번에도 취임 후 적극적인 점포 축소에 나선다는 게 자네 판단인가?”

“그렇습니다.”

김태준 사장은 잠시 고심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자네 판단을 신뢰하겠네. 하지만 이 판단의 책임은 고스란히 자네한테 있음을 잊지 말게. 여차하면 바로 생각을 바꿀 줄도 알아야 해.”

“알겠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태준 사장의 지지를 얻은 대찬은 더 적극적으로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목을 죄었다.

SNS에서는 수유, 미아 일대가 전국에서 물가가 가장 싼 동네라는 우스개까지 나돌았다.

참다 못한 위마트 미아점 점장이 직통으로 대찬에게 전화를 걸어올 정도였다.

“조 점장님! 대체 뭐 하자는 플레입니까?”

“점장님이 무슨 말씀 하고 싶으신지는 알겠지만, 영업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입니다.”

“그래도 해도 해도 너무하잖습니까. 셋 다 피 보길 원하시는 겁니까? 지금 저 아주 미칠 지경입니다! 본사에서 당장 제 모가지를 칠 판이라고요!”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위마트 쪽에도 이득이 될 겁니다.”

위마트 점장이 듣기에는 해괴한 소리일 뿐이었다.

“그게 왜 우리한테 이득입니까?”

“점장님은 제가 끝 모르고 무차별적으로 폭주하는 걸로만 보이십니까? 어디까지나 목적이 있고 끝이 분명한 마케팅입니다.”

위마트 점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목적이요? 무슨 목적입니까? 끝이 어디 있어요? 분명하게 말씀을 해보십시오.”

“정말 모르시겠습니까?”

위마트 점장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네! 모르겠으니까 답답한 선문답은 그만두고 쉽게 좀 얘기하시라고요!”

대찬은 위마트 점장이 자신의 의중을 쉽게 파악해냈으리라 생각했다.

경쟁매장의 가격을 매일 체크하는 건 점장으로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매일 가격을 체크했다면 필래마트 수유점의 가격이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가격과 연동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필래마트가 업하우스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걸 알면 위마트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든지, 조금 더 영리하다면 필래마트에 가세하여 지원사격을 해야 옳았다.

그게 올바른 비즈니스적 판단이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폐점은 필래마트보다 도리어 위마트에 유리했다.

필래마트 수유점은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위마트 미아점은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과 그야말로 지척이었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이 망하면 기존의 업하우스 고객들은 필래마트보다는 위마트를 더 많이 찾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나한테 바락바락 소리만 지르고…….’

대찬은 입술을 깨물었다.

“점장님, 오늘 저녁이나 간단히 하시죠.”

“이게 따로 만나서 식사까지 해야 하는 얘깁니까?”

“예.”

통화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건 분별없는 짓이었다.

특히 상대는 경쟁점포의 점장이었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업하우스를 저격하니 어쩌니 실컷 떠들어대는 걸 녹음이라도 당한다면, 그래서 그게 업하우스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대찬의 제안에 잠깐 고민하던 위마트 점장은 승낙의 뜻을 표했다.

“피차 마감 시간 늦으니까 간단히 맥주나 한잔하시죠.”

“좋습니다.”

끊긴 수화기에 대고 대찬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다.

“점장이 이 모양이니까 매출이 우리한테 따라잡히지.”

“점장님, 오늘 저랑 한잔하실래요?”

퇴근시간이 임박해오자 김산호가 대찬에게 제안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선약이 있네.”

“누나 만나러 가세요?”

“아니. 위마트 점장하고 만나기로 했어.”

“네? 위마트 점장이요? 그 사람은 왜요?”

대찬은 외투를 걸치며 말했다.

“내 높으신 뜻을 이해 못하시더라고. 그래서 과외 좀 해주려고.”

“오늘 모처럼 다혜도 안 만나고 할 일이 없어서 점장님하고 한잔하고 싶었는데요.”

김산호의 말을 대찬이 농조로 받았다.

“아, 그래? 점장이 할 일 없으면 술 마셔주는 사람이니?”

“에이, 그건 아니죠.”

“할 일 없다니, 잘됐다. 오늘 마감하고 시설관리자들한테 치킨이나 쏠 생각이었거든. 네가 대신 좀 해줘라.”

“에에? 아무리 할 일이 없어도 일면식도 없는 분들하고 치킨 먹고 싶진 않은데요.”

대찬은 눈총을 쐈다.

“여태 한 지붕 쓰는 분들하고 안면도 없단 말이야?”

“시설관리자들까지 알고 지내진 않죠, 보통.”

대찬은 김산호에게 강제로 법인카드를 안겼다.

“그럼 이 기회에 안면 터.”

“그냥 집에 가서 제 돈으로 치킨 시켜먹을래요.”

매몰차게 쏘고 집으로 향하려는 김산호의 목덜미를 대찬이 턱 붙잡았다.

“야근수당 챙겨줄 테니까 잔말 말고 시설관리자들하고 치킨 먹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에요?”

“치킨이 중요한 게 아니고, 같이 치킨 먹으면서 업무 잘되고 있는지 체크를 하란 말이야. 보고서에는 안 나오는 그런 부분들.”

김산호는 그제야 대찬의 의중을 깨우쳤다.

“아, 그것 때문에 그러셨군요.”

“그래. 겸사겸사 밤새 일하는 직원들 사기도 올려주고. 막내 직원들까지 살뜰하게 챙겨줘. 알았지?”

“넵, 알겠습니다.”

김산호를 향해 웃어 보인 대찬은 매장을 나섰다.

대찬은 위마트 점장과 시끌벅적한 호프집에서 만났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나란히 앉아서 노가리를 안주 삼아 맥주잔을 부딪쳤다.

위마트 점장은 노가리를 질겅질겅 씹다가 접시에 내려놓았다.

“이제 말씀해보시죠.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목표가 있다고요, 끝이 있다고요. 그 목표랑 끝이 뭔지 들어나 봅시다.”

“점장님은 생각해보신 적 없습니까? 제가 왜 이러는지.”

“생각을 안 해봤겠습니까? 암만 생각해도 도통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점장님한테까지 전화를 넣었겠냐고요.”

위마트 점장은 정말 복장이 터질 듯한 표정이었다.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점장님과 다를 바 없는 월급쟁이입니다. 다만, 점포 운영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고의로 동네상권 생태계를 망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답답하다고요.”

‘점장님께서 조금이라도 근무에 열의가 있으셨다면 답을 찾으셨을 겁니다.’

대찬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러고는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차재원이 업하우스 신임대표로 취임했더군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분 경영스타일이 워낙 독보적이라 점장님도 들은 바가 있으실 겁니다.”

“어렴풋이는.”

“지금 제 칼춤은 차재원 대표와 관련이 있습니다.”

“뭐라고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대화에 대찬은 답답함을 느꼈다.

맥주가 절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갸거겨 전부를 읊어줄 순 없었다.

“돌아가서 연구를 좀 해보십시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감을 잡으셨으면 그다음엔 저와 손을 잡아주시죠.”

“그쪽이랑 손을 잡으라니.”

“그게 저에게도 점장님께도 이로울 테니까요.”

“그냥 시원하게 얘기하면 되지, 자꾸 선문답을 하려 드십니까?”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잠깐만 고민해주십시오. 제가 오장육부를 죄다 토해내면 너무 궁색해지지 않습니까.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위마트 점주는 혼자 앉아 1,000cc를 더 마셨다.

위마트 점장도 점장을 달 정도로 일머리는 있는 사람이었다.

사흘 후, 위마트 점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점장님, 한 번 더 만나시죠.”

“얼마든지요.”

대찬과 만난 위마트 점장은 전보다는 밝아진 얼굴이었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을 대표가 도려내도록 우리가 부추기자는 얘기죠?”

“맞습니다.”

“퍽 도발적인 계획 아닙니까? 차재원 대표가 이 계획을 알면 괘씸해서라도 미아사거리점을 남겨두지 않을까요?”

위마트 점장의 가설에 대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매출이 감당 못할 정도로 치달으면 차 대표는 주저 없이 폐점을 결정할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합니까?”

“차재원 대표도 결국 우리랑 같은 월급쟁이니까요.”

“네?”

대찬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분명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만을 저격한 공격적인 할인은 도발적입니다. 차 대표가 괘씸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요?”

“하지만 그건 월급쟁이 CEO인 차 대표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지표입니다. 그 사람은 숫자만 챙기기에 급급해요.”

위마트 점장은 턱을 짚었다.

“과연 그럴까요?”

“네, 과연 그럴 겁니다. 아마 저희 회사에 그런 도전장이 날아오면 김태준 사장은 지지 않으려 할 겁니다. 회사의 자존심과 본인의 자존심이 일치하는 분이니까요. 그 분은 뼛속까지 필래맨입니다.”

“우리 대표도 20년째 우리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네. 아마 위마트도 저희와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차 대표는 다릅니다. 저나 점장님의 보스에게 회사는 터전이지만, 차 대표에게 회사는 놀이터에 불과하니까요.”

“그럴지도…….”

“차 대표 자서전에 이런 말이 나와요. 나는 비즈니스가 좋다, 소풍 가는 것처럼. 치열한 비즈니스에서의 흥분은 내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위마트 점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변태 같군요.”

“줄리안 그렌펠이라는 영국 시인의 말을 비튼 거죠. 그렌펠의 말에서 전쟁을 비즈니스로만 바꾼 겁니다.”

“그 말인즉슨, 차 대표는 애사심, 소속감, 이런 게 아니라 오로지 비즈니스 그 자체를 즐긴다는 말이군요.”

“네. 그 비즈니스를 통해서 맡은 회사를 수술하고, 자기 몸값을 올리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는 거죠. 회사는 그뿐인 겁니다, 차 대표한테는.”

위마트 점장은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을 궁지로 몰기 위해 고육계를 쓰고 있다, 그 말이로군요.”

“네.”

“내가 감을 잡으면 손을 잡아달라고 하셨죠. 어떻게 손을 잡자는 말입니까?”

대찬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위마트 점장 쪽으로 상체를 살짝 숙였다.

“일시적으로 제휴하시죠.”

“뭐라고요?”

대찬은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멀쩡한 척하지만 저희도 출혈이 심합니다. 이 싸움은 되도록 빨리 끝내고 싶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본사가 아니라 지점 차원에서 발주를 넣는 상품들이 있지 않습니까.”

“있죠.”

“개중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상품들을 공동구매하시죠. 5개월간 한시적으로.”

위마트 점장은 팔짱을 낀 채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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