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178화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 폐점?”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은 위마트 미아점과 함께 필래마트 수유점과 각축전을 벌이는 점포였다.
대찬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목표야, 내년까지.”
“무슨 수로? 농담…….”
…이죠?
허운은 대찬에게 그렇게 물으려다가 의도한 말을 온전히 마치지 못했다.
대찬의 눈빛이 진지했다.
그는 진심이었다.
대찬은 옅은 웃음기를 머금었다.
“농담 아니야.”
“차라리 작정하고 우리 매장 폐점시키려면 할 수는 있겠는데, 경쟁사 점포를 어떻게 폐점시켜요?”
“될 것도 같아서.”
“저쯤 되면 신의 영역이라고 봐야지 싶은데.”
“저 매장 폐점되면 형을 대찬교 12사도 중에 말석으로 껴줄게.”
“이왕이면 첫 빠따로 해줘. 베드로 돼서 세 번 부정이라도 하게.”
“아니야. 당신은 가룟 유다가 딱이야.”
“…….”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은 업하우스 지점 중에서도 매출이 최하위권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형마트 3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지역은 전국에서도 흔치 않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1위로 올라서겠다고 아등바등하는 판이었다.
이런 상황만으로도 다른 점포만큼의 매출을 올리기 어려웠다.
그런 데다 지속적인 적자행진을 보이던 필래마트 수유점이 대찬의 부임 이후로 흑자로 전환하고 매출이 상승세에 올라있었다.
근방의 상권을 셋이 갈라먹고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제로섬 게임이었다.
한쪽이 오르면 한쪽은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위마트 미아점과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매출은 감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찬은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이 차재원 대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확신까지는 닿지 않았다.
어쨌거나 3사가 맞붙은 전장에서 철수한다는 건 회사의 이미지를 깎는 일임과 동시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버거칸의 전례가 있어서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매출하락을 유도하면 차재원 대표가 폐점시킬 것이라는 확증도 없었다.
하지만 대찬은 자신이 있었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이 확실히 미끄러진다면 차재원 대표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이 차재원 대표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폐점된다면, 수유점의 매출은 수직상승할 것이다.
셋이 나눠먹던 걸 둘이 나눠먹는 셈이니까.
대찬은 관리자 직원들과의 회의에서 천명했다.
“오늘부터 우리 매장의 가격표는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과 연동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표성재 부점장이 당황한 듯 물었다.
“가격이 고정된 제품을 제외한 전 제품, 특히 신선식품은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보다 무조건 싸게 파세요. 당장 마진율이 줄어들어도 괜찮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됩니까?”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려고요, 업하우스를.”
그러자 관리자 직원들은 저들끼리 웅성거렸다.
표성재 부점장이 대찬에게 말했다.
“제 살 파먹기 싸움으로 가면 안 됩니다. 업하우스하고 전면전을 벌이면 위마트만 어부지리를 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격을 선도적으로 인하하면 업하우스뿐만 아니라 위마트 매출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마냥 배짱만 튕기진 못할 겁니다.”
“자칫 엉키면 빠져나오고 싶어도 못 빠져나오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 왜, 원미동 사람들에서도 형제슈퍼랑 김포슈퍼 있잖습니까. 그것처럼 서로 손해만 보는 치킨게임이 벌어질까 걱정됩니다.”
“부점장의 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부점장과 생각이 같은 분들이 이 자리에 많을 겁니다. 하지만 업하우스 신임 대표이사의 그간 행보를 보면 이 싸움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믿어주세요. 책임은 온전히 제가 집니다.”
대찬은 직원들을 가만히 응시했다.
잠시 침묵하던 직원들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점장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직원들이 대찬의 위험천만한 주장에 동의한 건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일 갓 부임한 새파란 점장이었던 때에 주장했더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유점 점장으로 부임한 이후 몇 달간, 대찬은 충분한 능력을 그들 앞에 증명했다.
그 능력을 믿고 직원들 역시 위험을 감수할 용기를 얻었다.
대찬의 계획은 직원들의 손을 거쳐 구체화되었다.
“이 계획은 극비입니다. 보안을 지켜주세요.”
대찬은 직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특정업체를 과녁으로 삼아 저격하는 계획이다.
대외적으로 공개되면 상당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일개 지점이 일개 지점을 공략하려다가 본사 차원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양사 간의 치킨게임으로 비화된다면, 이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필래마트의 내상이 깊을 것이다.
당연히 싸움을 시작한 대찬에게 추궁이 따를 터였다.
파격적인 지침을 내린 대찬에게 허운이 따로 찾아와 물었다.
“어차피 업하우스도 곧 알게 되지 않을까요? 자기 노리고 이런다는 거.”
“곧 알게 되긴 하겠지. 나도 격일로 업하우스랑 위마트 매장 방문하잖아. 매일 경쟁매장 가격도 체크하고 마케팅 전략도 숙지하는데 그쪽 점장들도 마찬가질 테니까.”
“그러니까요.”
“그래도 심증과 확증은 다른 거지. 그 심증이 아무리 확증에 가깝다고 해도.”
“그렇긴 하네요.”
“이 방침에 흔들리는 직원이 있으면 형이 잘 매조져줘. 혹시 주변에 유출하려는 기미가 보이거든 나한테 즉각 알려주고.”
허운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점장님 게슈타포가 되는 겁니까?”
“아니, 그럼 내가 히틀러야? 비유를 해도 참 나.”
“말이 그렇단 거지.”
“암튼 이 건은 신경 좀 확실하게 써줘요. 내 모가지가 걸렸어.”
“점장님 모가지지 제 모가집니까?”
대찬은 허운에게 레이저를 쐈다.
“내 모가지 날아가면 허 과장 모가지는 자동으로 뎅겅이야. 알아요?”
“그럼 열심히 해야지.”
허운은 기어코 커피 한 잔까지 얻어 마시고는 점장실을 나섰다.
필래마트 수유점은 대찬의 지시가 내려지자마자 가능한 모든 제품의 가격을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과 연동시켰다.
특히 축산, 농산, 수산 신선식품은 무조건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보다 5~1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내놨다.
수급 사정에 따라 몇몇 제품은 마이너스 이익이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찬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런 전략이 가능한 건 대찬이 특수한 신분을 갖췄기 때문이었다.
대개의 점장은 어느 정도의 재량은 허락받지만, 매장 운영에 대한 전권을 부여받지는 않는다.
시시콜콜 본사의 간섭이 따랐다.
재량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달마다 본사로 불려가 열등생 취급을 받기 십상이었다.
이런 형편에 대찬과 같은 과감한 결단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본사의 신뢰를 얻고 있고, 사장으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대찬은 자신의 의지를 거리낌 없이 밀어붙였다.
공격적인 할인은 유통업계의 전통적인 전술이었다.
그만큼 효과는 보장돼 있었다.
필래마트 수유점이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가격과 연동하여 일제히 가격을 인하하자, 냄새를 맡은 손님들이 금방 몰렸다.
일시적인 매출상승이 있었다.
표성재 부점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대찬에게 보고했다.
“이번 달 매출이 껑충 뛰었습니다. 방문한 고객 수도 급증했고, 매출은 전월 대비 12퍼센트 상승했습니다. 아마 다음 달은 더 비약적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잘됐군요.”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 상태로만 가면 올해의 우수점포는 따놓은 당상입니다.”
“하지만 마냥 낙관할 순 없습니다.”
“네?”
“업하우스라고 손 놓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위마트도 그렇고.”
공격적인 할인이 고전적인 전술이라는 건, 효과가 보증된 방법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반대로 그것에 대한 방어책이 충분히 마련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필래마트 수유점의 기습공격에 위마트 미아점과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은 잠시 당혹했다.
대찬은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을 노리고 공격적인 할인을 개시했지만, 위마트 미아점 역시 유탄을 맞았다.
두 점포의 매출이 일시적으로 하락했다.
그들도 자구책을 마련하는 모양새였다.
두 점포 역시 대대적인 할인에 돌입했다.
대찬의 대응은 이미 준비돼 있었다.
“업하우스가 할인한 만큼 우리도 더 값을 내리세요.”
대찬은 매일 아침 표성재 부점장을 필래마트 수유점이 아니라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으로 출근시켰다.
표성재 부점장은 아침마다 업하우스 매장의 가격을 체크해서 즉시 대찬에게 보고했다.
그 보고를 토대로 필래마트 수유점의 가격이 결정되었다.
세 점포의 치킨게임이 시작되었다.
지속적인 가격 인하는 이제 필래마트 수유점의 매출에도 적신호를 켰다.
허운이 대찬에게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가격을 더 내리면 마트 매출이 급감할 겁니다.”
“상관없어. 더 내려.”
“진짜 어쩌려고 이러세요?”
허운은 입이 바싹 말랐다.
이미 그 역시 좋건 싫건 대찬의 출세에 따라 자신의 출세가 결정되는 구조가 돼버렸다.
그러니 마트의 매출 악화에 조바심이 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대찬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가 들어갔지만 대찬이 내놓는 대답은 같았다.
“더 내려.”
결국 그다음 달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83개 점포 중 78위로 떨어졌다.
그 달 지점장회의에서 대찬은 목이 잘려 장대에 걸린 패장 신세가 됐다.
김태준 사장은 대찬이라고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수유점장.”
“네, 사장님.”
김태준 사장이 자신을 부르자 대찬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수유점 매출이 땅바닥에 처박혔냐는 말이야. 이 정도 매출하락은 작정하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가 없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인 할인전술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자네 생각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됐군. 할인을 왜 하나? 돈 벌려고 할인하는 거야. 근데 자네는 돈을 잃어가면서까지 할인을 하고 있어.”
“이미 근방의 상권은 포화상태입니다. 세 점포 중 한 군데가 없어져야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대찬의 말에 김태준 사장은 쾅, 책상을 내리쳤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점포를 망하게 하려는 심산인가!”
“지속적인 할인전략을 구사하면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질 겁니다. 그때까지는 매출감소를 감내해야 합니다.”
“지금 업하우스 차재원이가 점포 줄이기에 나설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건가?”
“예, 맞습니다.”
김태준 사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전술에 당할 성싶어?”
“차재원 대표는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매출감소를 눈 뜨고 보고만 있지 겁니다.”
“이런 머저리 같은! 네가 차재원을 알아? 서류 몇 장에서 얻은 어설픈 정보로 매장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려고 하지 말게!”
“하지만…….”
대찬은 차분히 대응하려고 했지만, 이미 김태준 사장의 역린을 건드린 뒤였다.
김태준 사장은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당장 가격을 원상복구시켜놓지 않으면 조 점장 모가지부터 날아갈 줄 알아!”
“…….”
이 상황에서는 어떤 논리를 들이대도 김태준 사장은 듣지 않을 것이다.
대찬은 다시 얌전히 착석했다.
하지만 그게 김태준 사장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점장회의가 끝나고, 김태준 사장은 대찬을 따로 불렀다.
“기분 나쁜가?”
“사장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김태준 사장은 훅,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회의에서 내가 필요 이상으로 화낸 건 이해하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러실 필요가 있으니까요.”
“내 의중을 알고 있나?”
대찬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수유점의 매출이 급전직하한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화를 내지 않으면 다른 점장님들이 오해하지 않겠습니까. 사장님이 저를 편애한다고.”
“자네를 편애하는 게 사실이긴 해. 하지만 나는 점장들한테 공정한 보스로 보여야 할 필요가 있어. 그게 아니면 신뢰가 깨져. 그럼 조직이 흔들리는 거고.”
“백번 옳으신 말씀입니다.”
“알고 있었다니, 구구절절 더 해명하지 않아도 되겠군.”
“제가 모르고 있었어도 사장님이 해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한 대 피우지.”
김태준 사장은 대찬에게 담배를 권했다.
불필요한 사양은 그를 귀찮게 할 뿐이라는 걸 대찬도 잘 알았다.
그래서 넙죽 담배를 받아 사장실에서 맞담배를 피웠다.
김태준 사장은 담배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조 점장 생각이 아주 틀린 건 아니야. 차재원이의 패턴을 생각하면 업하우스 미아사거리점의 매출이 떨어지면 폐점시킬 확률이 높아. 하지만 그걸 덜컥 믿을 순 없단 말이야.”
“반례가 있기 때문이겠죠, 버거칸에서의.”
김태준 사장은 미간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