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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72화 (171/556)

난 할 수 있어 172화

대찬은 마감 후 모든 실무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관리직들은 퇴근하고 없었다.

“오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점장의 말에도 직원들은 시큰둥했다.

빨리 퇴근이나 시켜주지, 사설이 길다는 표정이었다.

대찬은 꿋꿋이 말을 이었다.

“오늘 하루 여러분 일하시는 걸 보니 굉장히 힘겨워 보이시더군요. 다른 점포 직원들도 힘들겠지만 유독 수유점은 더 그래요. 왜 그럴까요?”

대찬의 질문에 직원들은 먼 산만 바라봤다.

협조성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대찬은 독백을 이어갔다.

“괜찮으니까 허심탄회하게 말씀해보세요. 새로 온 점장 아닙니까. 가장 의욕에 불타오를 때죠.”

“…….”

“불만사항이 있으면 지금 얘기해야지, 나중에 게을러질 대로 게을러진 저한테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자 일부 대답을 주저하는 직원들이 생겼다.

대찬은 개중 입술을 가장 열심히 우물거리는 이를 직접 지목했다.

그의 명찰을 보고 이름을 불렀다.

“강훈식 씨, 말씀해보세요.”

“저, 저요?”

“네, 강훈식 씨.”

강훈식은 헛기침을 하며 계속 머뭇거리다가 대찬의 계속된 독촉에 입을 열었다.

“일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시겠어요?”

“저희 지점 매출이 가장 안 좋은 걸 저희도 압니다. 그래서 관리자분들은 저희를 더 혹독하게 다룹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매출이 안 나오든 잘 나오든 저희가 알 게 뭡니까?”

강훈식의 말은 퍽 도발적이었다.

강훈식 본인도 말을 던져놓고 너무 심했나 싶어 당황한 기색이었다.

대찬은 씩 미소를 지었다.

“맞죠. 쥐꼬리만 한 월급 받는 건 매출이 좋으나 나쁘나 마찬가진데 좆같은 관리자들이 들들 볶으니까, 그렇죠?”

“조, 좆같을 거까진 없지만…….”

적나라한 말에 강훈식은 얼굴을 붉혔다.

몇몇 직원들은 킥킥 웃었다.

“관리자들은 매출에 따라 승진에 영향을 받죠.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매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여러분이야 승진은커녕 잘릴까 말까 고민하느라 주름살만 는다는 거 아닙니까.”

“마, 맞아요!”

몇몇 직원이 적극적으로 대찬의 말에 찬성했다.

“게다가 빌어먹을 관리자 놈들은 매출에 따라서 인센티브까지 받아 처먹죠? 그러니까 여러분을 그렇게 갈궈대는 거 아닙니까. 저도 매출이 중요하니까 여러분들한테 이러고 있습니다. 지금 좀 쑤셔 죽겠죠?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직원들은 웃음으로 대찬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대찬의 말에 거부감을 느끼진 않았다.

아침에 표성재 부점장을 혹독하게 핍박할 때만 해도 싸가지 없는 젊은 놈이 점장으로 왔다며 수군덕대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한없이 부드러운 말투였으니 온도차가 컸다.

“결국 손님들이 보는 필래마트는 관리자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일을 잘해주셔야 우리가 인센티브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저희를 먹여 살리는 구조입니다.”

“불공평해요!”

대찬이 조금은 편하게 느껴졌는지 이런 솔직한 투정도 튀어나왔다.

“예, 불공평하고 억울하시죠. 그러니 죽어라 일하기 싫은 거지.”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진을 추가로 여러분한테 떼어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럼 당장 본사에서 제 목을 칠 테니까요.”

“…….”

파격적인 해결책을 기대했던 직원들은 맥이 빠졌다.

그런 직원들의 표정을 본 대찬도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 불공평한 구조는 깨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직원들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대찬을 바라봤다.

“저를 포함한 모든 관리자들의 인센티브를 여러분과 공유하겠습니다. 특히 점장인 저는 제 인센티브 전액을 여러분 몫으로 돌리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추가로 제 본봉에서 월 100만 원을 제해 여러분 중 가장 열성적으로 일한 분께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은 술렁였다.

파격적인 조치였다.

점장인 대찬이 인센티브 전액을 실무자들의 몫으로 돌리고, 본봉에서도 월 100만 원씩을 꼬박꼬박 제하면 그에게 돌아가는 월급은 일개 실무자보다도 적을 터였다.

대찬에게 당장 중요한 건 몇 달, 몇 년 치의 돈이 아니었다.

수유점의 멱살을 끌고 이 수렁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래야 사내에서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급봉사까지도 불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여러분도 열심히 해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관리자가 지주이고 여러분이 소작농인 시스템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영농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버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직원들의 목소리에는 결기마저 깃들었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러니 앞으로 제가 감 놔라, 배 놔라 귀찮게 해도 좀 봐주십시오. 다 같이 잘 살자는 뜻이니까.”

직원들은 가볍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대찬은 표성재 부점장을 점장실로 불렀다.

첫날부터 탈곡기에 들어간 알곡처럼 탈탈 털린 데다, 험악한 욕설을 한 걸 들켜버린 표성재 부점장은 도둑이 제 발 저렸다.

잔뜩 위축돼 있었다.

대찬은 표성재 부점장을 보자마자 웃으며 말했다.

“씨발, 나이도 어린 새끼가.”

“죄, 죄송합니다…….”

표성재 부점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중징계감인 거 알죠?”

“알고 있습니다…….”

“당장 인사고과에 반영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주의하셔야 합니다. 큰일 나요, 그러다.”

“명심, 명심하겠습니다.”

대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표성재 부점장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갈수록 표성재 부점장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제 실무자들 퇴근하기 전에 인센티브 관련해서 제가 공지했습니다.”

“이, 인센티브라뇨?”

“앞으로 저를 포함한 관리자의 인센티브 전액을 실무자들과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표성재 부점장의 동공이 커졌다.

“하지만 그건 본사 방침에 위배됩니다!”

“저는 수유점에 대한 전권을 사장님으로부터 위임받았습니다. 최소한 수유점에서만큼은 제가 김태준 사장님입니다.”

“그, 그래도…….”

일을 이따위로 해놓고도 제 몫을 토해내기 싫다는 건가.

대찬은 미간에 힘을 주었다.

“이봐요, 부점장.”

“예…….”

“올해 들어서 인센티브 받은 적 있어요?”

“…….”

“당연히 없겠죠. 영업이익이 열 달째 마이너슨데 어떻게 인센티브가 나오겠어요?”

“…….”

“우리 지점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데는 부점장의 책임이 적지 않을 겁니다. 순리대로라면 부점장은 마이너스 인센티브를 가져가야 옳습니다.”

“…….”

“차라리 실무자들과 인센티브를 공유하고, 영업이익을 흑자로 전환시켜서 한 줌이나마 인센티브를 타가는 게 부점장 입장에서도 좋을 것 아닙니까?”

“하지만 다른 직원들이 수긍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찬은 표성재 부점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건 부점장의 몫이에요.”

“예?”

“관리자들을 설득하세요. 새로 온 씨발, 나이도 어린 점장보다는 오래 같이 일한 부점장이 설득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그, 그래도…….”

“해내세요. 아니면 난 작정하고 부점장을 이 회사에서 찍어낼 겁니다. 상사 인격모독으로 중징계 받는 게 신호탄이 되겠죠. 해내세요. 더 이상 토 달지 말고.”

“…알겠습니다.”

“모든 직원이 이 방침을 마음으로 인정하게끔 해야 합니다.”

“으음…….”

“윽박질러서 억지동의 얻어내는 걸 설득이라고 하진 않아요. 사내 익명게시판에 계속 모니터할 겁니다. 불만 안 나오게 잘 설득해요.”

“예, 점장님.”

“직원들을 잘 설득해내면 반대로 제가 부점장을 돕겠습니다. 제가 수유점을 떠나는 날, 부점장이 점장이 되도록 본사를 설득해내죠. 그만 나가보세요.”

대찬은 표성재 부점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표성재 부점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대찬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했다.

허운은 이번에도 표성재 부점장과 길이 엇갈렸다.

표성재 부점장은 점장실에서 나오고, 허운은 점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허운은 표성재 부점장을 향해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표성재 부점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서둘러 그를 지나쳐 갔다.

똑똑.

허운은 노크를 하고 점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제 사고 치셨다면서요?”

“무슨 사고?”

“우리들 인센티브를 실무자들하고 나누겠다고.”

“왜, 우리 허운 과장님도 그게 불만입니까?”

허운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점장실이 자기 안방인 양 커피 두 잔을 타서 한 잔은 대찬의 책상 위에 올려놨다.

“잘하신 일이에요. 근데 다른 관리자들이 수긍할지 모르겠네.”

“양심이 있다면 수긍하겠지.”

“원래 이렇게 무대뽀였습니까?”

“그동안 서원웅 밑에만 있느라 잘 몰랐는데, 사람은 보스가 되면 무자비해지기 마련인가 봐.”

“폭군이야, 폭군.”

허운이 실실 웃으면서 말하자 대찬은 얼굴을 찡그렸다.

“점장실엔 왜 왔어?”

“커피 얻어 마시려고요. 막심은 역시 점장실 막심이 제일 맛있더라.”

허운은 커피가 든 종이컵을 대찬에게 들어 보이고는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점장실을 나갔다.

대찬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대찬에게 따끔한 지시를 받은 표성재 부점장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관리자들과 술자리를 갖고, 새로운 인센티브 제도에 대해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이었다.

“예? 왜 저희 몫을 그 사람들한테 떼어줘야 하는데요?”

“점장이 그렇게 하라잖아. 사장님한테서 전권 위임받았대.”

“지가 점장이면 점장이지, 사규로 정해진 임금제도를 어떻게 맘대로 손본다는 건데요? 이거 소송감이에요!”

표성재 부점장은 점장과 관리자들 사이에 껴서 죽을 맛이었다.

“조금만 참아, 응? 어차피 우리 열 달째 인센티브 구경도 못했잖아.”

“구경을 하든 못하든 우리 권리라고요, 부점장님.”

“그럼 어떡하냐? 점장을 들이받을 수도 없고.”

혈기왕성한 관리자 직원 하나가 눈을 빛냈다.

“왜 못 들이받아요?”

“응?”

“우리가 쪽수가 딸려요, 아니면 짬밥이 딸려요? 끽해야 서른 먹은 점장 못 들이받을 것도 없지.”

“그, 그래도…….”

대찬에게 된통 덴 표성재 부점장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는 피부로 느낀 터였다.

“게다가 명분도 우리한테 있죠. 사규 들이밀면 지가 어쩔 건데요?”

“그래도 점장, 척 보니까 서원웅 라인이라던데.”

직원은 픽 웃었다.

“동앗줄 끊어진 거죠. 여태 그쪽 라인이면 갑자기 수유점으로 좌천됐겠어요?”

“으음…….”

“전략기획실에서 수유점이면 귀양도 그냥 귀양이 아니에요. 사장이 전권을 위임했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무슨 뜻인데?”

“전권을 위임했다는 건 양날의 칼이에요. 멋대로 망나니 칼춤 추다가 자멸하라는 신호라고요.”

“그, 그런가?”

부점장의 가벼운 귀가 팔랑거렸다.

“우리들이 든든하게 받쳐줄 테니까 쫄지 말고 붙으세요. 생각해보세요. 회사에서도 점장을 여기로 보낸 건 우리더러 물어뜯으란 뜻 아니겠어요? 합을 맞춰줘야지.”

“그럼…….”

부점장은 침을 꼴깍 삼켰다.

직원들에게 힘을 얻은 부점장은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점장실을 찾았다.

서류를 검토하던 대찬은 앉은 채로 부점장을 올려다봤다.

“무슨 일이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대찬은 서류를 탁 내려놓았다.

“말씀하시죠.”

“그, 그게…….”

부하직원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던 표성재 부점장은 대찬의 앞에서 다시 쪼그라졌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커피 드릴까요?”

“예? 아, 예…….”

별것 아닌 호의에 또 마음이 뭉개지니 여리고 여린 사람이었다.

대찬은 그의 앞에 커피를 내려놓고 다시 말했다.

“말씀하시죠.”

“예. 그게… 관리자 직원들이 점장님의 인센티브 방침에 불만이 많습니다.”

“그 불만 잠재우라고 부점장한테 부탁한 거 아닙니까?”

“생각해보니 저도 점장님의 방침이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급여에 대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대찬은 웃으면서 입술을 뒤틀었다.

“철회하지 않으시면 본사 윤리경영팀에 징계위원회를 열어달라 요구할 겁니다.”

“아, 저를 징계위원회에?”

“예.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노조와 연대할 생각입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하는 반응은 표성재 부점장의 예상범위에 없었다.

화를 내든지 쫄든지.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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