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156화 (155/556)

난 할 수 있어 156화

시선은 바로 경력란으로 움직였다.

-경력사항

2003.3~2005.9 국회의원 박태술 비서(7급)

2005.9~2007.9 국회의원 박태술 비서관(5급)

2007.9~2009.4 국회의원 박태술 보좌관(4급)

“이런 뻔뻔한 새끼.”

양철 부장은 박태술 의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

권영식 보좌관 역시 박태술 의원실 소속.

그가 술자리에서 지껄이던 말은 이제 빼도 박도 못할 거짓이었다.

양철 부장의 사주를 받은 게 분명했다.

대찬은 신경질적으로 파쇄기에 인사기록카드를 넣고 갈아버렸다.

인사기록카드에 환하게 웃고 있는 양철 부장의 사진이 잘게 갈려나갔다.

그때 대찬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장백주 비서실장의 전화였다.

“조 대리, 국회 대관업무에 투입된 지 이틀째 아닌가?”

“맞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왜 감감무소식이지? 입수한 정보는 나한테 즉각 보고하라고 했을 텐데.”

“옥석을 가리는 중입니다. 거짓 소문이 난무하니까요.”

장백주 비서실장의 목소리에 조소가 섞였다.

“정보의 입수와 동시에 진위를 가려내야지. 그걸 하라고 자네가 있는 건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욕속부달입니다.”

“실망이군. 자네라면 투입하자마자 대어를 낚을 줄 알았더니.”

장백주 비서실장의 말을 듣고 대찬은 권영식 보좌관의 귀띔이 거짓이라고 더더욱 확신했다.

‘장백주 연출, 양철 각본, 권영식 주연이군.’

장백주 비서실장은 고의로 대찬의 자존심을 긁고 있었다.

조바심을 유발하는 말이었다.

조바심이 나면 서두르게 된다.

서두르면 서투르다.

장백주 비서실장은 권영식 보좌관이 전해준 그 거짓 소문을 정보로서 보고하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책을 저지르고, 그 실책으로 하여 견책을 받으라고 압박하고 있었다.

권영식 보좌관의 귀띔은 미끼다.

그들은 그 미끼로 대찬이라는 대어를 낚으려고 하고 있었다.

물론 미끼임을 알고서 그걸 덥석 무는 대어는 없다.

미끼를 꿰뚫어보고 거기에 속지 않는다.

미끼에 속지 않고 크게 자랐기 때문에 대어다.

그 시각, 양철 부장은 권영식 보좌관과 통화하고 있었다.

“조대찬, 그놈 반응이 어때?”

“어떻긴요. 대박 정보 입수했다고 좋아하던걸요. 옳다구나 하고 회사에 보고했을 텐데?”

“실장님 전화 받았는데 아직 신중하더래. 그놈, 얕보면 안 돼.”

양철 부장의 말에 권영식 보좌관은 싱겁게 웃었다.

“고작 29살짜리에 뭘 그렇게 벌벌 떨어요? 형님답지 않게.”

“그놈한테 된통 한번 뒤집어썼으니까 그러지. 조금 더 정교하게, 정교하게 속여야 해.”

“아니, 도대체 그놈이 뭔데 그쪽 실장님이나 형님이나 발 벗고 나서서 그놈 엿 먹이는 작전을 수행하는 겁니까?”

물음에 양철 부장은 툴툴거렸다.

“실장님이 저놈 모가지에 목줄을 채우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잖나.”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냔 말이요.”

“이 일에 실패하면 내가 회사 신임을 완전히 잃어버릴 판이라니까. 힘 좀 확실하게 써. 내가 너한테 구구절절 회사 속사정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

권영식 보좌관은 입가를 씰룩였다.

“그건 그래요. 나는 내 이득만 챙기면 되니까. 이번 PB상품 포장업무 하청, 꼭 우리 사촌 회사에 줘야 합니다?”

“알았다니까 그러네. 나도 백마진 받기로 돼 있잖아. 무조건 입김 불어넣는다니까.”

“오케이, 형님만 믿어요.”

“그래. 나도 너만 믿으니까 제발 그놈 엿 좀 먹이자.”

양철 부장은 권영식 보좌관으로부터 몇 차례나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

권영식 보좌관에게는 일을 확실히 해내야 할 동기가 차고 넘쳤다.

그렇기에 의욕을 갖고 대찬에게 계속 접근했다.

“조 대리, 제가 알려드린 거 회사에 보고했어요?”

“아뇨, 아직 말씀 안 드렸습니다. 왜요?”

“왜 여태 뭉개고 계시는 겁니까?”

대찬은 멋쩍게 웃었다.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씀드리려고요.”

“그러면 못 씁니다. 조 대리가 아직 이 바닥 생리를 몰라서 그러는데, 정보의 생명은 속도입니다. 아웃데이트 된 정보는 아무 가치가 없어요.”

“저도 그걸 모르진 않습니다만, 며칠만 더 기다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권영식 보좌관은 대뜸 소리를 질렀다.

“진짜 이럴 겁니까?”

“왜, 왜 그러십니까?”

갑작스런 고함에 대찬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껏 조 대리 생각해서 알려줬더니 그냥 뭉개고 있어요? 사람을 우습게 여겨도 분수가 있지!”

“진정하세요. 그런 게 아닌 거 아시잖습니까.”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뭡니까?”

“교차검증이 돼야죠. 섭섭하게 들리실지 몰라도 제 입장에서는 보좌관님 말씀만 듣고 덜컥 보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권영식 보좌관은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렇게 교차검증까지 끝나면 정보로서의 가치가 없어진다니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대찬은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고는 또 다시 며칠을 그대로 뭉갰다.

이쯤 되니 권영식 보좌관의 가슴이 타들어갔다.

대찬을 속이지 못하면 사촌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물어다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약속받은 커미션도 물거품이 된다.

“조 대리! 진짜 이럴 거예요? 내 성의를 이렇게 짓밟을 거야?”

“보좌관님은 왜 그렇게 집착하십니까? 막말로 제가 회사에 보고해서 칭찬받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요.”

“왜 이득이 없어요? 이 건이 잘돼야 조 대리와 나 사이에 든든한 유대가 생기는 거고, 그 든든한 유대를 토대로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는 건설적인 관계를 세우려던 참인데!”

“저는 이미 보좌관님께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권영식 보좌관은 진절머리를 냈다.

“가슴 깊이 감사,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마음은 허깨비 같은 거요. 조 대리가 실질적인 이득을 챙겨야만 우리 사이에 채무가 발생해요. 그 채무가 우리 관계를 보증하는 거예요.”

“그럼 제게 확신을 주세요.”

권영식 보좌관은 눈썹을 위로 치떴다.

“확신이라니?”

“박태술 의원님은 여당이니까 여당은 됐다 쳐요. 대신 야당 쪽에서도 이 법안에 공조한다는 정황만 포착하면 윗선에 바로 보고할 수 있습니다.”

“밥 퍼줬더니 이젠 아예 숟가락으로 떠먹여 달라는 겁니까?”

“떠먹여주기까지 하시면 제 채무도 더 늘어나겠죠.”

권영식 보좌관은 이를 갈았다.

“좋아요! 참 나, 이 빚은 이자까지 톡톡히 쳐서 받을 테니 그런 줄 알아요.”

“감사합니다.”

대찬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권영식 보좌관은 결국 야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동료에게 아쉬운 소리를 했다.

“야, 대충 말만 흘려줘. 내가 술 한번 찐하게 살게.”

“그러다 내가 헛소문 퍼트렸다고 옴팡 뒤집어쓰면 어떡해?”

“내가 다 책임질게. 원하면 각서도 쓸게.”

“왜 이런 장난질에 사활은 거는지는 모르겠지만… 급하다니까 이번 한 번만 도와준다.”

권영식 보좌관은 야당 의원실 보좌관과의 자리를 주선해주었다.

대찬은 그의 진술까지 받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확실한데요.”

“그러니까 이젠 제발 좀 보고합시다. 진짜 이 이상 지체하면 국 식어요. 뜨거울 때 먹어야지.”

“예, 알겠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그래, 이 호구 밥통아.’

권영식 보좌관은 막대한 커미션을 떠올리며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겉으로는 철저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우리 이 건을 계기로 잘해봅시다. 우린 충분히 상부상조할 수 있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게 큰 선물을 주셨어요.”

“알아주시니 기분 좋군요.”

사람 좋게 웃던 대찬은 표정을 굳혔다.

“뻔뻔하게 거짓말로 사람 등쳐먹으려고 하다니, 이 정도는 돼야 국회에서 밥 빌어먹고 사는 모양입니다.”

“뭐라고요……?”

갑자기 달라진 기류에 권영식 보좌관의 표정도 뒤틀렸다.

그때 누군가 대찬과 권영식 보좌관이 마주앉은 자리에 합류했다.

그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ONB 최재한 기자입니다. 재밌는 기삿거리가 있다고 해서 왔어요.”

권영식 보좌관은 펄쩍 뛰었다.

“뭐, 뭡니까!”

“논의되지도 않는 법안을 기정사실로 꾸며 여기저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보좌관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권영식 보좌관은 대찬에게 눈빛을 쐈다.

“당신이 불렀어?”

“네, 괜찮은 기삿거리 같아서. 저한테 하셨던 말씀은 모두 녹음해뒀고요.”

대찬은 양복 앞주머니에 넣어놓은 만년필을 꺼내 흔들었다.

만년필을 꼭 닮은 녹음기였다.

“이런 젠장할……! 내놔!”

“에이, 안 되죠.”

권영식 보좌관이 낚아채려는 시도를 대찬은 가볍게 회피했다.

이미 눈이 돌아간 그가 우당탕 탁자를 무너뜨리며 대찬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개입했다.

천 년 된 느티나무처럼 넓은 그늘을 드리운 그는 무지막지한 악력으로 권영식 보좌관을 제압했다.

마강국이었다.

대찬의 경호원 자격으로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테이블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

마강국은 권영식 보좌관의 손목을 비틀고, 사찰의 사천왕상처럼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내려다봤다.

“힘자랑하지 맙시다.”

“…으, 으윽… 이거 놔……!”

권영식 보좌관이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자 마강국은 손을 놔주었다.

권영식 보좌관의 팔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마구 흔들리던 권영식 보좌관의 눈이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씩씩 숨을 내뱉던 그가 대찬의 앞에 대고 빽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같잖은 수작이야! 이런 걸로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거 같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일단 엉터리 법안이었다는 건 확인됐군요.”

“멋대로 생각해! 그러든 말든 아무 상관없으니!”

대찬은 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보좌관님이 이러고 다니는 거, 박태술 의원님은 아십니까?”

“흥! 국회에 떠다니는 뜬소문이 한두 가진 줄 알아? 이런 걸로 쇠고랑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 이러니까 네가 아마추어라는 거야.”

권영식 보좌관의 응수에도 대찬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거 자체로는 대단한 일이 아니죠. 다만, 그 뒤에 숨은 건수는 대단해 보이는데요.”

“…뭐?”

켕기는 구석이 있는 권영식 보좌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양철 부장한테 사주받았죠?”

“넘겨짚지 마!”

“몇 년이나 같이 근무했던데요, 뭘. 이런 대단한 건수가 있으면 양 부장한테 알려주지, 저 같은 풋내기한테 던져줄 이유가 없죠. 일면식도 없는데.”

“맘대로 생각하라고.”

“이런 뚱딴지같은 헛소문을 왜 나한테 일러줬을까요? 그냥 양 부장이랑 친해서? 그건 너무 약한 동기잖아요. 그게 동기라기엔 보좌관님은 너무 열성적이었단 말이죠.”

“나, 나불대는 건 네 자유라고…….”

정곡을 찔린 권영식 보좌관의 목소리가 불가항력으로 요동쳤다.

“뭔가 챙길 게 있으니까 이렇게 적극적이셨겠지.”

“그걸 이제부터 제가 한번 파보려고 하는데요.”

최재한이 빙긋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대찬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양 부장이 쥐고 있는 힘이라고 해봤자 저희 회사 내부의 일이겠죠. 제가 이 건을 제보하면 윤리경영팀에서 이 잡듯이 뒤질 겁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

“그럼 보좌관님 꿍꿍이속을 저도 알게 되겠죠. 뭘까요? 너무 궁금하다.”

권영식 보좌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침을 삼키는 그의 목울대가 바빴다.

그는 한동안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강국의 눈빛 때문에 더욱 심한 부담감에 짓눌렸다.

한동안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대찬을 올려다보며 건조한 입술을 뗐다.

“…줘.”

“네? 뭐라고요?”

“봐줘.”

“뭐라고요?”

“…봐주세요.”

대찬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본인 입으로 실토하시죠, 양 부장 사이의 구린 거래를. 그럼 보좌관님께 법적 책임을 묻는 일까진 없을 겁니다.”

권영식 보좌관은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는 대찬에게 양철 부장과의 일을 모조리 고해 바쳤다.

대찬은 완벽한 무기를 손에 쥐었다.

집으로 같이 돌아가는 길에 최재한이 말했다.

“야, 이거 나 리포트로 내고 싶은데.”

“한 번만 봐줘라.”

“뭐 어때. 부장 날리는 김에 보좌관도 날려버리면 되지.”

최재한의 말에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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