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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47화 (146/556)

난 할 수 있어 147화

AKD테크 이사회는 안두홍을 부회장에서 해임하는 안과 AKD테크의 사명을 KD테크로 변경하는 안을 즉각 통과시켰다.

검찰은 안두홍 전 부회장에게 징역 7년과 추징금 68억 원을 구형했다.

필래마트와 AKD테크와의, 정확히 말하면 대찬과 안두홍 사이의 공방전은 이렇게 대찬의 승리로 끝났다.

“크하하하! 잘했어, 잘했어!”

서청수 회장은 대찬을 불러 크게 치하했다.

그에게는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한 쾌거였다.

지긋지긋하게 자신을 괴롭혀온 안두홍을 감방에 보내버렸다.

이날만큼은 대찬이 아들보다도 더 예뻐 보였다.

“다 회장님이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안두홍이 미워하기로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나 아닌가. 자네를 도운 게 아니라 내 일이기도 했던 거야.”

대찬이 아무리 간이 크기로서니 이런 일을 독단적으로 행할 깜냥도, 배포도 없었다.

서청수 회장의 지원사격이 없었다면 도리어 대찬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대찬은 서청수 회장과 일을 상의했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KD테크 측에서 이를 문제 삼아 계약을 파기해버릴 수도 있었으나, 계약 불이행에 따른 막대한 벌칙조항 때문에 안심하고 안두홍을 도려낼 수 있었다.

KD테크 측에서는 안두홍 부회장의 축출 이후 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자는 의사를 타진했다.

안두홍은 필래와 KD의 공공의 적이었다.

이 일로 안두홍의 뒤를 닦아주던 박광규 과장을 비롯한 대외협력팀 직원들이 대거 해고되었다는 후문도 들렸다.

해고는 물론이요, 법의 심판을 두려워하게 된 신세였다.

“그런데 자네는 도대체 그 페이퍼컴퍼니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던 거야?”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AKD테크의 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해서 얻은 막연한 추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쪽에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니 추정이 맞구나 싶었죠.”

대찬은 서청수 회장에게 본의 아닌 거짓말을 고했다.

내가 그 회사랑 일해봐서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진실보다 도리어 거짓이 그럴듯했다.

“역시, 역시 대단해. 아주 훌륭했네.”

“일이 모쪼록 잘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모습이 아주 훌륭하지만, 자네 몸도 좀 생각해. 깡패 놈들한테 변을 당할 뻔 했잖나.”

“그래도 김태준 사장님이 배려해주신 덕에 경호원까지 붙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자네가 해내는 일이 중하니 경호원이 붙는 건 당연하지. 그 경호원이 마강국 군이라지?”

“예, 맞습니다.”

“이참에 마 군 자리도 하나 마련해줘야겠군.”

아,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대찬은 그렇게 말하려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일은 자신에게 호재이기도 했지만 마강국에게 더 큰 호재였다.

대찬에게 이를 사양할 권한이 없었다.

게다가 선천적으로 유약한 기질을 타고난 서원웅의 옆에 마강국이 붙는 것도 좋은 일이라 판단했다.

위엄이 사는 일이었다.

대찬은 서청수 회장 앞에서 씩 웃어 보였다.

대찬과 안두홍의 공방전은 에피니키온 사람들에게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설마하니 안두홍이 새파란 대찬에게 잡히겠냐고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은 결과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에피니키온의 대부 노릇을 하던 안두홍이 쇠고랑을 차고 끌려가는 장면은 그들에게 충격이었다.

결과를 두고 여론은 반반으로 갈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득과 손해의 문제였다.

대찬의 후배기수들은 결과에 환호했다.

선배들이 공공연히 빨간 물이 들었다고 씹어댈 정도로 이들은 대찬에게 우호적이었다.

복잡한 먹고사는 문제와는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그들이었다.

그들은 철옹성 같던 영감쟁이가 대찬의 손에 쇠창살 신세가 된 것이 통쾌하기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대찬의 선배들로 영역을 넓히면 기류는 퍽 달랐다.

안두홍의 그늘 아래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ADH디벨롭먼트의 부정을 알고도 이를 눈감아준 공공기관 관계자도 월짝회 출신이었다.

그밖에도 온갖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대찬은 그런 여론을 당장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2010년도 에피니키온 정기총회.

대찬은 마강국, 최재한, 서원웅, 김산하, 민승기 등 자기 사람들을 대동하고 총회에 참석했다.

회사에서는 대찬이 서원웅의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에피니키온에서는 그들은 모두 대찬의 사람들이었다.

김산하, 민승기의 기수인 24기부터 그 아래로는 쭉 빨간 물이 든 사람들이었다.

현재 대학생 신분인 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대찬이 마련한 토대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다.

대찬을 추종했다가 선배들의 지원이 중단되어 손가락만 쪽쪽 빠는 신세라면 모를까, 서청수 회장의 필래로부터 그에 못지않은 지원을 받고 있으니 대찬을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대찬을 열렬히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선배님!”

“오랜만이다. 잘들 지냈지?”

“네! 자리 만들어놨어요. 여기로 오세요.”

대찬은 그들에게 손목을 잡혀 이끄는 대로 이끌렸다.

파릇파릇한 후배들의 호의에 대찬도 흐뭇하게 웃었다.

하지만 회의장 안으로 들어가자 공기는 사뭇 달라졌다.

왁자지껄하게 후배들의 인파에 떠밀려 들어오는 대찬을 보는 시선들에 불쾌감이 어려 있었다.

대찬은 애써 그 시선에 응수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배들은 그런 대찬을 가만히 놔둘 태세가 아니었다.

에피니키온 총동문회장은 안두홍이었다.

그가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자 후임을 맡은 건 한긍윤이었다.

안두홍의 절친한 동기이면서 전 산업부차관, 지금은 한국전력공사 사장으로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축사 낭독하라고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대찬을 저격했다.

“최근 우리의 위대한 동기이자 선배를 영어의 몸으로 만들었습니다. 올해로 쉰다섯이 된 그는 차디찬 골방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에피니키온의 창립멤버인 안두홍입니다.”

한긍윤의 말에 마강국이 눈살을 찌푸렸다.

“개자식! 무슨 개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개자식이니까 개소리를 하지.”

김산하도 못마땅한 듯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채 한긍윤을 쏘아봤다.

한긍윤의 말에 선배들의 시선이 대찬 쪽으로 향했다.

대찬의 표정은 고요했다.

“우리는 안두홍의 친구이며 후배입니다. 우리는 그의 그늘 아래 얼마나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까? 그런데 그런 그를 감옥으로 보낸 장본인이 우리의 후배라는 점에 나는 너무나도 가슴이 쓰립니다. 분노마저 느낍니다.”

“미친 새끼!”

김산하가 씹어 뱉듯 말하자 민승기가 그의 팔을 잡았다.

“목소리 낮춰. 여기서 흥분해봤자 좋을 거 없어.”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어? 너는 화도 안 나니?”

“나도 화나. 그래도 억지로라도 분을 삭이란 말야.”

한긍윤의 일장연설은 점점 고조되었다.

“안두홍의 수감으로 우리 에피니키온의 위상도 추락했습니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부끄러워야 합니까?”

대찬은 묵묵히 한긍윤의 말을 참고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다시 명예롭게 만들지 후배님들은 고민해주십시오. 과일바구니의 과일 하나가 썩으면 근처의 과일들도 모조리 썩어버립니다.”

한긍윤이 말하는 썩은 과일은 대찬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를 도와 안두홍을 여론의 재판정에 세운 최재한도 썩은 과일이었다.

하지만 대찬의 생각 속에 썩은 과일은 자신이 아니라 안두홍, 그리고 그의 죄를 두호하고 나서는 한긍윤 같은 무리였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 같이 썩어야 합니까? 아니면 썩은 과일을 내다버려야 합니까? 피붙이에게 칼을 겨눈 피붙이는 더 이상 피붙이가 아닙니다.”

한긍윤은 그렇게 말하고 단상을 내려왔다.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무거운 분위기가 대찬을 옥죄었다.

총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와인 잔을 부딪칠 수 없게 돼버렸다.

대찬이 바로 태풍의 눈이었다.

대찬은 빈 단상을 노려보다가 위에 걸친 양복 외투의 단추를 채웠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원웅의 눈이 커졌다.

“뭐 하려고 그래?”

대찬은 서원웅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갔다.

좌중의 시선이 대찬의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빈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늙고 젊은 에피니키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대찬의 돌발행동을 사회자도 차마 제지하지 못했다.

대찬은 마이크를 들었다.

좌우를 죽 둘러보던 대찬의 시선이 한긍윤에게서 멈췄다.

대찬은 한긍윤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한긍윤 선배님,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

한긍윤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대찬을 쏘아봤다.

“그 썩은 과일이 접니까?”

“그래! 너다!”

한긍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그는 속이 뒤집어졌다.

까마득한 선배의 일성에 반성은 하지 못할망정,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응수하는 철면피라니!

“알겠습니다. 썩은 과일을 내다버려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

“수고를 좀 덜어드리겠습니다.”

“뭐……?”

“제 발로 나가드리죠. 저는 오늘부로 에피니키온을 탈퇴하겠습니다.”

대찬의 선언에 좌중은 술렁였다.

저렇게 싸가지 없는 자식이 있을 줄이야!

수직적인 문화를 자랑으로 삼는 에피니키온이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찬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썩은 과일이 물러나기 전에 썩은 내 한 번만 더 풍기겠습니다. 부끄러운 줄 좀 아십시오. 사람이 어떻게 그럽니까?”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성큼성큼 단상을 내려왔다.

“저, 저 미친놈……!”

한긍윤은 엉거주춤 서서 충격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와 가까운 사람들도 벌떡 일어나 대찬에게 삿대질을 했다.

“저 배은망덕한 놈을 봤나!”

“야! 거기 안 서!”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등 뒤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대찬은 듣지 않았다.

누구의 말마따나 개소리였다.

사람의 귀로는 이해하지 못할 소리였다.

대찬이 회의장 밖으로 나가버리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요즘 것들 운운하는 한탄이 전염병처럼 옮았다.

“조대찬 저거 미친놈 아니야?”

김산하는 어이없다는 듯이 대찬의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민승기가 김산하에게 말했다.

“네가 가서 다시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왜?”

“왜냐니……?”

김산하는 탁자를 쾅 내리쳤다.

대찬의 퇴장으로 갈 곳 잃은 시선들이 그에게로 쏠렸다.

김산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민승기에게 속닥거렸다.

“나도 미친년이야.”

“…뭐?”

김산하는 마이크도 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울렸다.

“24기 김산하도 오늘부로 탈퇴합니다! 잘 먹고 잘 사세요!”

“저, 저런……!”

기막혀하는 선배들을 두고 김산하는 종종걸음으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같이 가, 조대찬!”

그러자 회의장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때 마강국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26기 마강국도 오늘부로 탈퇴합니다!”

“25기 최재한도요.”

“27기 양희성도 오늘부로 탈퇴합니다.”

“25기 서원웅도 탈퇴합니다.”

좌우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버리자, 회장을 역임한 체면을 생각해 가만히 있던 민승기도 일어났다.

“24기 민승기도 탈퇴합니다!”

대찬이 앉아있던 테이블이 텅 비었다.

그러자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필래장학회 소속의 가까운 기수 선배들이 이 물결에 동참했다.

“18기 오준섭, 탈퇴합니다.”

“16기 이민용, 탈퇴합니다.”

“20기 장병태, 탈퇴합니다.”

필래장학회 선배들이 제2파로서 썰물처럼 우르르 빠져나가자, 이에 용기를 얻은 대찬의 후배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아예 기수별 대표가 일어나 외쳤다.

“27기 전원 탈퇴합니다!”

“28기 전원 탈퇴합니다!”

“29기 전원 탈퇴합니다!”

“30기 전원 탈퇴합니다!”

물결은 1학년 신입생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대찬의 밑 기수는 단 한 명도 회의장에 남지 않았다.

중년의 퀴퀴한 살 냄새만 회의장에 가득 차있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라며 떠받들어지던 한긍윤들은 멍청한 얼굴을 했다.

* * *

“같이 가자니까!”

김산하는 대찬의 어깨를 잡았다.

대찬은 몸을 돌려 김산하를 봤다.

“누나는 왜 따라와?”

“나도 썩은 과일이니까.”

김산하는 구름처럼 몰려오는 이들을 뒤돌아보고는 말을 정정했다.

“아니, 우리들도 썩은 과일이니까.”

대찬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뒤따라온 이들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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