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146화
어줍지 않게 문신이나 머리의 스크래치 따위로 남을 겁박하는 어중이떠중이와는 달리, 이들은 진짜배기였다.
잘못하다간 뼈도 못 추리겠다는 위기감이 그를 엄습했다.
“선배님들까지 도와주시면 이 친구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에이, 우리는 죽이진 않아. 티 안 나게 조사줄 뿐이지.”
“그게 더 무섭게 들리네요.”
“아무튼 너희 손으로 조져도 저놈한테 지조와 절개가 남아있으면 우릴 불러. 당장 이완용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고맙습니다, 선배님.”
마강국은 놈을 폐쇄된 사무실로 끌고 들어갔다.
이미 놈은 당장이라도 오줌을 지릴 듯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대찬은 놈을 바닥에 앉히고 자신은 의자에 앉았다.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누가 보냈어?”
“…몰라.”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데 생판 모르는 남 뒤를 밟았다고?”
“형님이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야…….”
“네 형님은 뭐 하는 놈인데?”
“…….”
“그래, 말 안 할 줄 알았어.”
대찬은 손목시계를 끌렀다.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붙였다.
놈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 어떻게 하려고…….”
“뭘 어떻게 하겠어.”
대찬은 놈의 뺨을 후렸다.
“크악!”
한 대 맞자마자 입안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남은 쉽게 때려도 맞는 데는 소질이 없는지, 따귀 한 대에 놈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것만 대답해. AKD테크 쪽 사주 받고 내 뒤 밟은 거지?”
대찬은 안두홍의 사주라고 확신했다.
그가 아니고서야 주먹을 셋이나 뒤에 붙이는 수고를 감수할 사람이 없었다.
또 그럴 만큼 치졸한 사람도 없었다.
“…말 못해.”
“그럼 말하지 마. 그냥 처맞고 뒈져.”
대찬은 그에게 진득하게 묻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가 마강국의 선배들에게 말했다.
“선배님들, 수고롭겠지만 저 새끼 좀 죽여주세요.”
“오랜만에 주먹에 헤모글로빈 좀 발라볼까.”
대찬의 주문에 선배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공간에 가득 들어찬 덩치들이 놈을 에워쌌다.
그러자 겁에 질린 놈은 곧이곧대로 실토했다.
“마, 맞아! AKD테크라고 했어! 그쪽이 사주했다고 했어! 그러니까 제발 때리지 마…….”
마강국의 선배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식이, 조폭이 의리도 없으면 어떡하냐, 쯧.”
대찬은 놈에게 다시 물었다.
동시에 녹음기를 켰다.
“AKD테크 측이 나를 해치라고 당신한테 사주한 게 맞습니까?”
“마, 맞아요……. 그렇게 사주 받았습니다.”
대찬은 놈을 경찰에 넘겼다.
어차피 그놈의 개인행동이었다며 꼬리 자르기에 들어갈 것이다.
AKD테크는커녕 놈이 속한 조직의 굵직한 녀석까지도 얽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고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요식행위이되, 목표가 분명한 요식행위였다.
다음 날, 대찬은 여느 날과 같이 출근했다.
그런데 평소의 풍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대찬은 책상에 서류가방을 올려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강국, 네가 왜 여기 있어?”
“사무실 좋다, 야. 와보니까 조대찬이 출세한 게 실감나네.”
마강국은 헤벌쭉 웃으면서 대찬의 책상을 한번 쓸었다.
“아니, 당신이 왜 여기 계시냐고요. 외부인은 사전 통보 없이 출입 안 될 텐데.”
“외부인 아닌데?”
“뭐?”
“저기 서원웅 부실장님 오시네. 상사한테 직접 물어봐.”
서원웅은 팀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자 한태윤 과장 이하 직원들도 서원웅에게 꾸벅 인사를 올렸다.
서원웅은 대찬에게는 특별히 손을 들어 인사했다.
“조 대리, 좋은 아침.”
“마강국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뭐가 그렇게 급해. 커피부터 한잔하고 천천히 얘기하지.”
서원웅은 대찬과 마강국을 사옥 1층의 카페로 데리고 갔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분하게 말했다.
“강국이가 오늘부터 너 경호할 거야.”
“경호라니?”
“어제 위험할 뻔했다며. 또 이런 일 없으리란 법이 어딨어. 사장님께 보고했더니 알았다고 하셨어.”
“아니, 일개 대리가 어떻게 경호원을 둡니까?”
“우리끼리 있을 땐 말 편하게 하라니까.”
“회사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고 하겠지.”
“칼침 맞고 죽어서 하늘나라 가느니 그냥 건방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쪽이 좋지 않아?”
대찬은 탁, 이마를 짚었다.
“너 누구한테 뻔뻔스럽게 말 늘어놓는 법 배웠니?”
“누구한테 배웠겠어, 너한테 배웠지.”
둘의 승강이가 마강국은 그저 재밌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공식적으로는 내 경호원으로 등록돼 있어. 그리고 출퇴근길, 외근 때만 붙을 거니까 입방아 걱정 안 해도 돼.”
“하지만…….”
이제 서원웅은 대찬의 말을 중간에 자를 정도로 대담해졌다.
“내가 너 상사인 거 알지? 자꾸 항명하면 인사고과 재밌게 나온다?”
“윽…….”
결국 대찬은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미 김태준 사장한테 보고가 들어간 건을 거부할 수도 없었다.
서원웅의 호의를 계속 뿌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대찬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강국에게 말했다.
“잘 부탁해.”
“나야말로 완전 땡 잡았지. 꼰대 영감이 아니라 조대찬 경호하는 편이 훨씬 보람 있고 좋으니까.”
“고맙다.”
서원웅은 흐뭇하게 웃다가 표정을 천천히 굳혔다.
“그런데 어제 그놈들은 안두홍이 보낸 거겠지?”
“심증 100, 물증 20.”
“나쁜 자식!”
서원웅 기준으로 나쁜 자식은 아주 심한 욕설이었다.
마강국도 인상을 험악하게 굳혔다.
“이대로 묻고 갈 거야?”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뭐 어쩌려구? 그놈 하나 족쳐서 얻어낸 진술만으로는 안두홍한테 생채기도 못 입힐 텐데?”
서원웅의 질문에 대찬이 대답했다.
“좋은 무기가 있잖아.”
“무슨……?”
“언론. 심증만으로 수술대에 올릴 수 있거든.”
대찬은 퇴근 후 최재한과 만났다.
마강국은 대찬을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오랜만에 대찬, 마강국, 최재한 셋이 뭉쳤다.
한가하게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이나 팔고 싶었지만 그들에게 그럴 짬은 없었다.
사흘 후, 대찬은 ONB 뉴스를 틀었다.
최재한의 리포트가 비교적 앞부분에 등장했다.
-굴지의 IT업체인 AKD테크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협력사인 필래마트의 직원을 폭행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AKD테크의 굴욕이라는 후문이 나왔던 두 회사 간의 계약이 그 배경이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AKD테크 측은 즉각 이를 부정했습니다. 최재한 기잡니다.
앵커의 말을 화면 속의 최재한이 받았다.
-필래마트 소속의 대리 A씨는 최근 조직폭력배로부터 폭행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A씨는 경호업체 소속인 지인과 만나 다행히 부상은 입지 않았습니다. 일당 중 하나를 붙잡아 묻자, AKD테크 측의 사주를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AKD테크 측이 나를 해치라고 당신한테 사주한 게 맞습니까?’
‘마, 맞아요……. 그렇게 사주받았습니다.’
대찬이 녹음한 내용이 음성변조 되어 전파를 탔다.
-A씨는 최근 AKD테크와의 계약을 필래마트 측에 유리하게 주도했던 게 AKD테크 측의 원한을 샀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체결된 두 회사 간의 계약은 필래마트 측에 유리하게 작성되었습니다.
화면은 그래픽으로 필래마트 측에 유리하게 적용된 조항들을 전시했다.
-하지만 AKD테크 측은 전면으로 부정했습니다.
‘허무맹랑한 소설이죠. 쌍팔년도도 아니고 조폭을 동원해서 협력사 직원을 해코지하는 게 말이나 됩니까?’
-AKD테크 측은 A씨의 주장으로 회사의 명예가 크게 손상되었다며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ONB 뉴스, 최재한입니다.
뉴스가 전파를 타자 AKD테크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뉴스를 내보냈다며, 최재한 역시 고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재한의 리포트는 무리가 있었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지도 않았고, 다만 한 줄 녹음에 의지해 뉴스를 내보냈다.
그 녹음이란 것도 누가 보든 어색하고 허술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미끼에 불과했다.
AKD테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자 이 싸움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여론은 비등비등했다.
A씨, 측 대찬의 자작극이라는 주장과 설마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났겠느냐는 주장이 맞섰다.
싸움은 항상 50 대 50이 재밌는 법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정말 AKD테크가 조폭에게 사주했냐는 것에서, 왜 AKD테크가 필래마트에게 그런 굴욕적인 조건을 허락했냐는 것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여론의 관심이 극에 달했을 때, 최재한의 두 번째 리포트가 전파를 탔다.
-AKD테크가 필래마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수락한 것을 두고, 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필래마트 대리 조대찬 씨가 새로운 주장을 내놨습니다. 필래마트 측에서 AKD테크 안두홍 부회장이 실질적인 소유주로 있는 페이퍼컴퍼니의 존재를 감지한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재한 기자가 조대찬 씨를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대찬은 직접 언론에 자신을 노출시켰다.
화면에는 마이크를 잡은 최재한과 대찬이 마주앉은 장면을 등장시켰다.
대찬은 그 자리에서 ADH디벨롭먼트에 대한 내용을 세세하게 폭로했다.
-제가 입수한 자료는 한정적이었고, 제 주장의 골자는 추측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추측을 전해들은 AKD테크 측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수락했습니다. 즉, 제 추측이 사실에 매우 근접했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AKD테크 측에서 폭행을 사주했다는 주장도, 그것으로 인한 원한 때문이라는 것입니까?
-네,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AKD테크 측이 아니라 안두홍 부회장 측이겠지요.
-하지만 역시 물증이 충분하지 않은데요.
-AKD테크 측에서 한사코 부정하고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으니, 당당하시다면 검경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면 됩니다. 만일 제 주장이 거짓이라면 제가 응분의 대가를 받겠죠.
대찬의 목소리는 한 점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자신 있으십니까?
-네.
대찬의 인터뷰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조폭, 페이퍼컴퍼니, 게다가 과거 안두홍과 서청수의 악연까지 흥행요소는 충분했다.
게다가 AKD테크의 영향력으로 이를 뭉개지도 못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보도국의 데스크를 압박하든지 경찰이나 검찰 측이 회유되어 유야무야되거나, 최악의 경우 대찬이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찬도 빈손이 아니었다.
그걸 능히 막아낼 인맥이 있었다.
보도의 당사자가 대찬의 죽마고우였고, 그 뒤에는 필래그룹의 서청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서청수 회장이 대찬을 도울 이유는 충분했다.
대찬은 자신의 부하 직원인 동시에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런 대찬의 가치를 배제하더라도 안두홍의 반대편에 누가 서든 서청수 회장은 그를 지원할 터였다.
수사당국에서 눈치를 보자면 안두홍보다는 서청수였다.
여론의 압박까지 받은 검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에 돌입했다.
안두홍이 기를 쓰고 흔적을 지우려고 했지만 흔적이 안 남을 수가 없었다.
기록보존이 잘돼 있는 공공기관의 특성 상, ADH디벨롭먼트에 일감을 주었던 내역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검찰은 횡령 등의 혐의로 안두홍 부회장을 구속기소하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안두홍은 순식간에 죄수복 입고 쇠고랑 차는 신세가 되었다.
AKD테크 측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AKD테크는 안두홍의 영향력이 100퍼센트 발휘되는 회사가 아니었다.
안두홍 부회장은 AKD테크에서 A였다. 안두홍의 안을 따서 A였다.
AKD테크는 A인 부회장 안두홍과 회장인 K, 사업본부장인 D와 함께 합작한 회사였다.
K와 D의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었고, 안두홍 부회장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그를 배신한 이사들이 그쪽에 붙었다.
이참에 안두홍을 축출하려는 심계를 품은 K와 D는 손을 잡고 검찰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