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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45화 (144/556)

난 할 수 있어 145화

서원웅과 조대찬의 이름 석 자 역시 꽤 오래 사람들의 입술에 머물렀다.

기쁜 사람들이 있으면 슬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계약을 체결한 이후, 안두홍은 길길이 날뛰었다.

필래그룹에 굴욕적인 계약을 강요당했다는 것도 분노의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대찬이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그 망할 놈의 새끼가 어떻게 안 거지……?”

안두홍은 치를 떨었다.

그는 무수한 가설을 스스로 세우고 무너뜨렸다.

어떤 가설을 세워 봐도 대찬이 알 방법이 없었다.

눈앞에 짙은 안개가 낀 듯 안두홍은 답답했다.

박광규 과장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바로 그날, 안두홍은 ADH디벨롭먼트를 폐업처분하고 증거인멸에 나섰다.

흔적을 아주 깨끗이 지우기는 어려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썼다.

이번 일은 안두홍에게 뼈아팠다.

ADH디벨롭먼트는 안두홍의 캐시카우였다.

곶감 빼먹듯 재미가 쏠쏠하던 창구를 닫아야만 했다.

게다가 납득할 수 없는 계약으로 회사 내 입지도 상당히 좁아졌다.

AKD테크는 창립자 3명의 성을 따 만든 이름이었다.

로마의 삼두정치에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압도하듯, 프랑스 통령정부에서 나폴레옹이 나머지 두 통령을 압도하듯, 3명의 창립자 중에서 안두홍의 존재감은 나머지 둘과는 차원이 달랐다.

부회장인 안두홍의 A가 회장의 K보다 앞에 올 만큼 AKD테크는 안두홍 왕국이었다.

그런데 이 건으로 인해 회장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서 안팎으로 웃음거리가 돼버렸다.

안두홍은 굴욕감에 사흘간 잠을 설쳤다.

그는 ADH디벨롭먼트 건을 알고 있던 극소수의 측근들을 불렀다.

말보다 손이 빨랐다.

안두홍은 눈을 부라리며 측근들의 뺨을 올려붙였다.

짝, 짝, 짝.

가죽을 때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

박광규 과장 이하 직원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유구무언이었다.

다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한 마디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집어치워! 그딴 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어떤 놈이냐, 어떤 놈이 조대찬 그 새끼한테 흘린 거야!”

“저희는 정말 철저히 비밀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새끼가 어떻게 알고 있느냔 말이야! 네놈들이 입을 열지 않고서 저놈이 어떻게 알아! 분명히 필래에서 돈으로 꼬시니까 줄줄 읊어댔겠지!”

그러자 박광규 과장이 말했다.

“하지만 이건 필래 경영진은 모르는 일 같습니다.”

“뭐?”

“만약 서청수 회장까지 이걸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뒤끝 없게 일을 처리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두홍은 화를 억누르며 박광규 과장의 말을 곱씹었다.

일리가 있었다.

앙숙인 서청수가 알았다면 자신이 이 일을 알고 있다는 걸 내비쳤을 것이다.

그래야 안두홍의 속도 뒤집고, 더 강하게 그를 압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청수 회장을 비롯한 필래그룹의 경영진은 어리둥절해하기만 했다.

다만,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며 함박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럼 이걸 조대찬 그 자식만 알고 있었단 말이야?”

“그렇게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저희가 조대찬에게 이 일을 발설할 까닭이 전혀 없고요. 그 사람한테는 위험 감수할 만한 돈이 없으니까요.”

“일개 과장이 무슨 취재력이 있어서 이걸 캐내?”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를 이렇게 들쑤시지 못하도록 단단히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안두홍은 얼굴을 찡그렸다.

“돈으로 구슬리는 것도 실패했다며! 돈으로 안 되는 놈 아가리를 어떻게 막으란 거야?”

“당근이 아니면 채찍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안두홍의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조대찬이 우리 회사 직원이면 모를까, 남의 회사 직원한테 어떻게 채찍을 휘두른단 말인가.”

“꼭 법의 테두리 안에서 채찍을 휘두르란 법이 없잖습니까.”

“그럼 불법이라도 자행하겠다는 거야?”

“뒤탈만 없으면 합법이든 불법이든 무슨 관계겠습니까.”

박광규 과장은 안두홍의 말이 우스웠다.

자기는 실컷 불법을 자행해서 배를 불리다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합법, 불법을 따지니 우스울 따름이었다.

안두홍은 잠깐 고민하다가 박광규 과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요량이야?”

“어깨들 좀 부르죠. 으름장을 놓는 겁니다. 조대찬이가 아무리 의기양양해도 눈앞의 주먹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음… 그렇긴 할 거야.”

“이런 쪽에 경험이 많은 친구들을 수배해놓죠.”

안두홍은 잠시 침묵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당하고만 넘어가기엔 안두홍은 자존심이 상했다.

서청수 회장도 아니고 그 밑의 끄나풀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어떻게든 분풀이를 하지 않으면 화병이 도질 판이었다.

“좋아. 뒤탈 없는 놈들 수배해서 손 좀 봐줘. 다시는 이런 꿍꿍이 벌이지 못할 정도로.”

“알겠습니다.”

박광규는 허리를 푹 숙였다.

* * *

“야! 조대찬! 안두홍한테 한 방 먹였다며!”

마강국은 대찬에게 전화를 걸어 통쾌하게 웃었다.

“소식 한번 빠르다.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서원웅이 알려줬지.”

“가만 보면 걔도 양반은 못 돼.”

“안두홍 그 능구렁이를 어쩜 그렇게 간단히 수술해버렸냐?”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목소리가 왜 이렇게 업 돼 있어? 기분 좋은 일 있어?”

“안두홍이 얼굴에 똥물 끼얹은 게 기분 좋은 일이지! 서원웅한테 듣고 한참 웃었다, 야.”

마강국 역시 안두홍의 안티였다.

그도 대찬에 이어 에피니키온의 회장을 지냈다.

그러면서 안두홍의 눈꼴 시린 행태를 피부로 느낀 터였다.

당연히 안두홍의 입장에서 을사늑약에 버금가는 굴욕적인 계약이 체결된 것이 고소했다.

“기분이다! 오늘 내가 한잔 살 테니까 나와.”

“내가 또 공술은 마다하지 않지.”

대찬도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마강국의 제안을 받았다.

그 역시 이 기념비적인 날을 흐지부지 넘기고 싶지 않았다.

대찬은 모처럼 일찍 퇴근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김산하도 그렇고 마강국도 그렇고, 꼭 이 기수대의 에피니키온 일당들은 허름한 식당을 좋아했다.

에피니키온, 허영 가득한 그리스식 이름 아래 소속되었던 값을 못했다.

오래된 문짝이 덜컥거리는 황소곱창이라든지 1, 2년 안에 장사를 접을 것만큼 연로한 할머니가 운영하는 냉동삼겹살집이라든지 그들은 꼭 그런 곳만 찾아다녔다.

오래된 가게의 꿉꿉한 곰팡내나 환풍기에 들러붙은 먼지 따위가 개미의 페로몬처럼 그들을 모종의 화학작용으로 끌어당기는지도 모른다.

대찬 역시 그랬으니 그들을 함부로 허물 잡지 못했다.

때문에 대찬은 퇴근하고 나서 눈이 부신 네온사인이나 삼삼오오 갈 길 가는 인파들을 등지고 후미진 골목어귀를 돌고 돌아 걸어갔다.

인적이 드물어지더니 이제 아예 없어졌다.

휘적휘적 걸어가는데, 대찬의 양옆으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두서넛의 그림자가 점점 대찬을 옥죄고 들어왔다.

대찬은 고개는 돌리지 않고 곁눈으로만 기척을 살폈다.

그러고는 점점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그러면서 마강국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강국은 바로 받았다.

“어, 왜.”

“어디쯤 오냐?”

“거의 다 왔는데? 한 블록 남았어. 이제 와서 늦는다 이런 얘기는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닌데 문제가 좀 있어.”

대찬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문제? 문제라니?”

“나 마중 좀 나와줘야겠다. 모르는 사람들이 따라온다.”

마강국은 감각이 좋은 편이었다.

대찬의 말은 금방 알아차렸다.

“골목만 돌면 바로 식당이야.”

“좋아.”

대찬은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상의의 양복 단추를 풀었다.

걷는 속력을 줄였다.

그러자 그림자와의 거리가 더 줄어들었다.

대찬은 뒤를 흘끗 돌아봤다.

사람은 셋.

모두 험악한 인상이었다.

다행히 흉기나 둔기는 없었다.

눈이 마주친 놈들이 이쪽을 향해 육박했다.

대찬도 전력으로 질주했다.

난데없는 추격적인 벌어졌다.

갑자기 힘이 들어간 근육이 뻑뻑했다.

잘 정리된 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졌다.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양복바지가 허벅지에 꽉 꼈다.

넥타이가 말갈기처럼 휘날렸다.

놈들의 달리기 실력은 대찬보다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근접했다.

그들은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야! 거기 서!”

“아저씨들 같으면 서겠어? 말 같은 소릴 해야지.”

대찬은 그렇게 응수했다.

그는 골목어귀까지 전력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어귀에 다다른 그 순간, 몸을 측면으로 틀었다.

놈들의 뻗은 손이 허공을 저었다.

대찬은 그들의 등 뒤로 몸을 빼냈다.

놈들 역시 대찬을 향해 몸을 틀었다.

“아저씨들, 누가 시켜서 왔어?”

“괜히 피 보기 전에 얌전히 따라오지.”

“아저씨들이나 괜히 피 보기 전에 얌전히 불어.”

대찬의 도발에 놈들은 동시에 주먹을 내지르려고 했다.

그때 그들의 뒤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강국이었다.

대찬과 마강국은 눈인사를 했다.

인기척을 느낀 놈들도 당황한 듯 뒤를 바라봤다.

마강국의 거대한 덩치는 그들을 당혹시키기에 족했다.

놈들 중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가 다그쳤다.

“야! 우린 셋이고 저 새끼들은 둘이야! 뭘 쫄아!”

“산수는 잘하시네.”

대찬은 웃으면서 빈정댔다.

놈들은 이를 갈며 대찬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내지르는 3개의 주먹 중에 2개는 피하고 하나는 맞았다.

어깨에 고통이 전해졌다.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그쪽이 선빵 때린 겁니다?”

“미친놈, 어디서 여유야…….”

놈들은 약이 더 바짝 올라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대찬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그들을 더 외진 골목으로 이끌었다.

이곳도 충분히 후미졌지만 이따금 보는 눈이 있었다.

대찬은 자신이 놈들에게 당하리란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확실히 두들겨 패주기 위해서는 인적 없는 곳에서 싸워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의 생각은 오만이 아니라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이었음이 입증되었다.

대찬과 마강국을 앞뒤로 맞닥뜨린 놈들은 금세 흠씬 두들겨 맞고 앓는 소리를 냈다.

대찬도 충분히 1인분을 했지만 마강국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역시 체대 물을 헛먹은 게 아니네.”

“그리고 현직 경호원이올시다.”

마강국은 피식 웃었다.

고등학교 때 대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마강국은 이제 기량이 대찬을 넘었다.

마강국은 마구잡이로 놈들을 골고루 팼다.

체급에서부터 상대가 안 되는 그들은 마강국이 쥐고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놈들은 혼이 빠져나갔다.

“아, 안 되겠다. 일단 철수해!”

그렇게 세 놈은 후다닥 도망치려고 했다.

대찬은 셋 중 둘은 그대로 보냈지만, 개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놈을 붙잡았다.

잔챙이는 필요 없었다.

목덜미가 잡힌 놈은 아등바등 달아나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나머지 둘은 잡힌 놈을 구해볼까 뒤를 돌아봤지만 마강국이 눈을 부라리자 얼른 생각을 접고 달아났다.

대찬은 녀석의 목덜미를 쥐고 가만히 내려다봤다.

“참 의리도 없다, 그지?”

“이, 이거 놔…….”

“살금살금 내 뒤 밟을 땐 언제고 이제는 놔달래. 아주 지 맘대로야.”

대찬은 놈을 질질 끌고 갔다.

마강국이 속해 있는 경호업체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아직 퇴근하지 못한, 마강국의 덩치에 비견되는 그의 선배들이 있었다.

“강국아, 쟨 뭐냐? 웬 피반죽을 데리고 왔어?”

“여기 허여멀건한 놈은 제가 말했던 조대찬이란 친구고요.”

“오, 그 잘난 친구? 만나서 영광입니다.”

마강국의 소개에 선배는 소탈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대찬은 웃으면서 악수에 응했다.

“제가 영광이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말씀 많이 안 들어도 들었다고 했다.

마강국은 대찬에게 목덜미가 잡힌 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놈은 조대찬이 뒤를 밟던 놈입니다.”

“뒤를 밟아? 뭐 하는 놈인데?”

“이제부터 조사해보려고요.”

“도와줄까?”

선배들이 주춤주춤 다가오면서 묻는 것만으로도 놈에게는 엄청난 압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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