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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117화 (116/556)

난 할 수 있어 117화

대찬은 허운에게 물었다.

“요즘 그쪽 팀 분위기 어때?”

“뭐, 나쁘지 않아. 예전에는 자기들끼리만 회식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래도 끼워는 준다.”

“잘됐네.”

“서원웅이가 큰일 했어. 덕분에 회사 다닐 맛 좀 나네.”

대찬은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흐뭇하게 웃었다.

결과적으로 서원웅의 행동은 전보된 직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서원웅은 월드몰 출신 직원들과 전보된 직원들 모두의 호감을 얻었다.

훗날을 위한 거대한 자산이 될 터였다.

그러나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모두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개중에 몇몇은 꼭 삐딱선을 타기 마련이었다.

대찬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황경원 대리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서원웅이, 그리고 그와 가까운 대찬이 의기양양한 꼬락서니가 눈꼴시었다.

사내 분위기가 바뀌어 내놓고 이런 마음을 표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속에서는 여전히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었다.

김영우 차장과 황경원 대리는 집 가는 방향이 같았다.

그래서 김영우 차장은 종종 황 대리의 차에 동승해서 퇴근했다.

기름값 한 푼 안 보태고 무임승차하는 꼴이 황 대리는 마음에 차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회 생활이니 꾹 참았다.

그는 조수석에 앉은 김영우 차장을 보며 말했다.

“차장님, 조대찬 이거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응? 조대찬이가 왜.”

“회장 아들 등에 업고 의기양양한 것 좀 보세요. 첫날부터 싸가지 없는 건 알아봤지만, 기까지 살아서 설치는 꼴이 역겹잖아요.”

“황 대리, 지금 조대찬이 질투하는 거야?”

“예? 지, 질투라뇨?”

“그렇잖아. 황 대리는 조대찬이랑 동급인데 조대찬이가 치고 나가니까 질투 나는 거잖아.”

속 좋은 말에 황 대리의 부아가 더 끓었다.

“차장님, 솔직히 우리랑 조 대리가 하하호호, 하면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에요. 견제를 해야지.”

“견제씩이나.”

황 대리는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차장님, 그렇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씀하시면 안 돼요. 조 대리 때문에 차장님 앞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요.”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서원웅 대리의 고속 승진의 이미 따놓은 당상이죠.”

“그렇겠지. 핏줄이 다르니까.”

“우리 부서 몇 명 되지도 않잖아요. 조 대리까지 치고 나가면 승진 고달파진다니까요?”

“에이, 그건 황 대리나 그러겠지. 나랑 조 대리 짬밥 차이가 얼만데.”

김영우 차장은 싱겁게 웃었다.

황 대리와도 입사 연도가 제법 차이가 나는데 그하고는 비할 바가 못 됐다.

그런데 대찬이 자신과 승진 경쟁을 하게 될 거라니, 코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황 대리의 표정은 진지했다.

“조 대리를 다른 직원들이랑 똑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서원웅보다는 못해도 비슷한 템포로 갈 거 같다니까요?”

“그래. 황 대리나 실컷 걱정해.”

황경원 대리는 답답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조 대리는 확실한 동아줄이 있다고요. 서원웅이 뜨면 조대찬도 떠요. 게다가 조 대리는 필래 공채 출신, 우리는 월드몰 출신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하던 김영우 차장도 이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까지 왔다.

“물렁하게 있다가는 진짜 큰코다친다니까요.”

김영우 차장은 푹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황 대리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야?”

“조 대리가 안됐긴 하지만 업무에서 최대한 배제해야죠.”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여전히 미온적인 김영우 차장에게 황 대리는 따끔하게 한마디 쐈다.

“나중에 죽은 자식 불알 안 만지려면 지금부터 견제해야 해요.”

“으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고요. 조대찬은 생태계 교란종이에요. 황소개구리 같은 놈이라고요.”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맞죠. 백번 맞죠. 조만간에 제가 자리 한번 마련할게요.”

“무슨 자리……?”

“황소개구리에 대항하는 참개구리 모임이요.”

“참개구리.”

김영우 차장은 피식 웃었다.

황 대리는 자신의 작명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참개구리 모임, 참개구리 모임, 여러 번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들의 작당 모의를 대찬은 알지 못했다.

박만섭 부사장이 물러나고 서원웅이 일갈한 이후로 대찬은 일에만 몰두했다.

윗선과의 끈끈한 인연을 다져 놓았으니 이제는 본업에 집중할 때였다.

김태준 사장도 그의 성격상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대찬을 기꺼워했다.

대찬의 과감한 제안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필래그룹의 오너 가문을 보좌한다는 측면에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선배 가신이 유망한 젊은 가신을 눈여겨보는 건 당연했다.

더불어서 부사장 자리를 꿰찬 이동수도 음으로 양으로 대찬을 돕는 인연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부사장 자리를 선물한 장본인이 대찬이었다.

또 대찬은 이동수가 부사장 자리를 꿰찰 수 있었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위인 중 하나였다.

각별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

김태준 사장이나 이동수 부사장은 이따금 위신 높은 사람과의 식사 자리에 대찬을 대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찬은 사양했다.

“아직 대리 업무도 벅찹니다. 벌써부터 높으신 분들 만나고 다니면 버릇없어져요. 제가 좀 더 깊어지면 감사히 동석하겠습니다.”

이득이 되는 제안이 아니었다.

김태준 사장의 권유는 진심이 아닐 것이다.

눈에 좀 들었다고 간이고 쓸개고 내주는 속 좋은 인간이 아니었다.

시험해 보려는 것일 게다. 허파에 바람 좀 찼다고 우쭐거리는 속 빈 강정인지 아닌지 떠보려는.

그 제안에 덜컥 응했다가는 애써 얻은 신임을 대번에 날려 버릴 가능성이 컸다.

이동수 부사장의 제안은 진심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도와준 대가를 지불하고 싶을 것이다.

입에 뭘 물려 놔야 안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대찬은 이동수 부사장의 제안도 사양했다.

이동수 부사장의 제안을 받아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는 일도 김태준 사장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김태준 사장은 자신의 제안은 거절하면서 이동수 부사장의 제안은 덥석 받는 대찬의 행동을 간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건 차라리 김태준 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니만 못하다.

또 이동수는 부사장이 되었지만 길어야 5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부사장에서 더 올라갈 여지도 별로 없다.

그러니까 굳이 붙들어 둬야 할 가치는 없는 동아줄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위만 바라보는 출세 지향의 태도는, 줄기는 높게 뻗치지만 뿌리는 얕을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든든하려면 뿌리, 그러니까 주변의 동료들, 부하 직원과의 유대를 단단히 다져 놔야 한다.

그리고 협잡에 가까운 사내 정치가 아니라 분명한 능력으로 확실한 성과를 내야 한다.

아직 월드몰에서 인수한 16개 점포의 오픈까지는 시간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대찬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정시 퇴근을 하는 와중에도 야근을 고집했다.

황 대리는 그런 대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노력이 황 대리에게는 밤낮없이 눈에 불을 켜고 참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황소개구리로 보일 뿐이었다.

퇴근 후 진한 데이트가 예정된 오다혜 사원이 대찬에게 물었다.

“조 대리님, 퇴근 안 하세요?”

“네, 조금 더 있다 갈게요. 오다혜 씨는 먼저 들어가요.”

오다혜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상사가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어떻게 그래요.”

“오다혜 씨가 이러면 나도 맘 놓고 일 못하거든요? 나 편하게 일 좀 하게 해 줘요.”

“정말 가도 돼요?”

오다혜의 집요한 질문에 대찬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가 줘요.”

“고맙습니다, 대리님.”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게 뭐 고마워할 일이에요? 얼른 가요.”

대찬은 오다혜를 보며 웃고는 다시 업무에 열중했다.

오다혜는 종종걸음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오다혜를 보내고 커피나 한잔할 심산으로 건물 1층에 있는 카페로 가는데, 멀찍이 김산호와 오다혜가 나란히 걸어가는 게 대찬의 눈에 보였다.

김산호는 외근을 나갔다가 바로 퇴근한 뒤라 우연히 둘의 동선이 겹칠 일은 없었다.

‘뭐야? 둘이 섬씽 있었어?’

대찬은 그쪽을 흘끔 보면서 커피를 주문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로 주세요.”

카드를 내밀면서도 대찬의 시선은 그쪽을 향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좁은 부서에 사내 커플이 2쌍이나 있네.’

대찬은 김산호와 오다혜가 사라진 자리를 한번 흘끔 보고는 커피를 마시면서 사무실로 올라갔다.

거리를 두고 걷던 김산호와 오다혜는, 사무실 정문 앞 골목을 꺾자마자 바로 팔짱을 꼈다.

오다혜는 김산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자기야.”

“응?”

김산호는 꿀이 똑똑 떨어지는 시선으로 오다혜를 내려다봤다.

“조 대리님 멋있지 않아?”

“뭐?”

애인이 하는 다른 남자 칭찬을 기껍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을 터.

김산호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아니,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하지만, 그걸 떠나서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잖아.”

“아, 그래. 그럼 나도 데이트하지 말고 회사에 남아서 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어야 되나?”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지금.”

김산호는 뾰로통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대학 시절부터 필래랑 협업으로 잘나가고, 입사하고 나서도 완전 초고속 승진! 이건 남자가 봐도 멋있는 일 아니야?”

“난 관심 없어, 그 사람한테.”

오다혜는 김산호에게 눈을 흘겼다.

“열등감 느끼는구나?”

“뭐? 너 지금 말 다 했어?”

“다 했다, 왜!”

밑도 끝도 없이 남자의 자존심을 후비는 오다혜의 모습에 김산호는 분노했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렇다고 애인에게 험한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오다혜를 향해야 할 분노가 애먼 대찬에게 튀었다.

“정신 차려. 조 대리 별명이 뭔지 알아?”

“뭔데?”

“상사 믹서기야.”

“엥?”

“필래에 있을 때 자기 직속상사 날려버렸대. 게다가 이번에 박만섭 부사장 날아간 것도 조 대리 꿍꿍이라는 소문이 돈다구.”

“에, 정말?”

“그래!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상사도 갈아 버리는데 우리라고 못 갈 거 같아? 겉으론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분명히 속은 더러울걸.”

지금까지 대찬에게 별 감정이 없던 김산호였지만, 오다혜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꼴을 보고 거부감이 팍 치솟았다.

혹시 은근히 대찬이 자신의 애인을 빼앗을 꿍꿍이를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수 없는 새끼.’

김산호의 표정이 단단히 굳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황경원 대리였다.

“하, 이놈이고 저놈이고…….”

“뭐야, 황 대리가 이 시간에 왜 전활 하지?”

기분을 잡친 김산호는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인위적인 친근함을 한껏 뽐냈다.

“네, 황 대리님! 김산호입니다.”

“뭐야,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신호는 두 번밖에 울리지 않았다.

“하하… 죄송합니다.”

“퇴근했다고 긴장 풀지 마. 자기 전까지, 아니 자고 있어도 회사 생활은 계속되는 거야.”

“옙! 명심하겠습니다.”

“아직 멀리 안 갔지? 황소곱창으로 와. 과장님이랑 있으니까.”

“…네? 지금요?”

김산호의 물음에 황 대리는 짜증을 냈다.

“여러 번 말하게 할 거야? 잔말 말고 와. 오다혜 씨한테도 연락해서 오라고 하고.”

전화는 뚝 끊겼다.

김산호의 분노가 폭발했다.

당장 휴대전화를 바닥에 집어 던지려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진짜, 이놈의 회사!”

“왜, 무슨 일인데?”

“황 대리가 황소곱창으로 오래. 자기도.”

“뭐? 뭐야, 진짜…….”

잔뜩 열 받은 김산호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깡통을 발로 찼다.

그나마도 빗맞아서 깡통은 조금 날아가다 멈췄다.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자기는 5분만 있다가 와.”

“…알았어.”

김산호는 화를 꾹 억누르며 황소곱창으로 향했다.

그 시각, 여전히 회사에 남은 대찬은 황 대리로부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다.

“야! 조대찬!”

“어, 누나.”

김산하였다.

오랜만에 듣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너 내일 시간 비워라. 무조건 비워라.”

“뭐야, 갑자기?”

“누나가 술이 몹시 땡기니까.”

“막무가내야, 막무가내. 새벽 3시에 남의 집에 함부로 쳐들어오질 않나.”

“아, 그래서 속죄의 의미로다가 아침상 차려 놓고 나왔잖습니까.”

대찬은 피식 웃었다.

“그래. 잘 먹긴 했다만.”

“앞으로 짜증나는 일 있으면 너 불러내서 술 사게 할 거니까 긴장하고 있어.”

“참 나, 술은 불러내는 쪽이 사야지.”

“시끄럽고. 내일 잊지 마.”

막무가내인 김산하가 싫기보다는 도리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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