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93화 (92/556)

난 할 수 있어 93화

“같이 치우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아, 씨! 이거 얼마짜린 줄 알고 잡아!”

“같이 치우자고요!”

유백기는 청소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작작 좀 치대요! 진짜 짜증나 죽겠네. 이따위로 하면 내가 회사에 건의해서 아줌마 자르라고 할 거예요. 알아? 아줌마 당장에 실직자 만들 수도 있다고!”

그의 일격에 청소부는 할 말을 잃고 멍하게 그를 바라봤다.

잠잠해진 청소부를 보고 나서야 유백기는 진저리를 치며 회의실을 떠났다.

결국 청소부끼리 모여 카페트 같은 바닥에 촘촘히 박힌 종이 조각들을 치워야만 했다.

청소기로 빨리지 않는 건 일일이 손으로 주웠다.

그걸 줍는 청소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손등에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청소부는 그날 저녁 대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찬은 퇴근하자마자 그녀를 만났다.

녹음된 목소리를 들을 것도 없었다. 청소부와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온 유백기는 한참을 구시렁거렸다.

그 듣기 싫은 목소리를 대찬은 그대로 들어야만 했다.

그러니 저간의 사정이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청소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청소가 내 할 일이란 건 잘 알아요.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그렇게 일을 벌려 놓고 되레 큰소리를 빽빽 지르는 게……. 내가 진짜 손발이 떨려서…….”

“여사님 마음, 이해합니다.”

대찬은 유백기의 그 성질머리에 가장 많이, 오랫동안 데여 본 장본인이었다.

청소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떻게든 갚아 주고 싶어요. 안 그러면 속병 나서 앓아누울 거 같으니까.”

“도와 드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안전한 길은 아니에요.”

“안전한 길이 아니라니?”

“남한테 폭탄을 던지는 일이니까. 파편이 튈 수 있어요. 일자리까지 걸어야 할지도 몰라요.”

대찬의 말에 청소부는 피식 웃었다.

“이깟 청소부 자리도 감투 취급 해 주는 거예요? 속병 생겨서 병원 신세 지느니 청소부 안 하고 말아요.”

“그래도…….”

“됐어요. 막상 어떻게 해 보려고 하니까 무서워진 거죠?”

청소부의 도발에 대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럴 리가요.”

“그럼 뭘 더 주저해요? 지금껏 하란 대로 했으니 이제 그쪽이 움직일 때예요.”

시원시원한 태도에 대찬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떠올랐다.

대찬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일이 터진 건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대찬은 청소부의 집을 방문했다.

허름한 연립주택이었다.

아들, 딸은 모두 짝을 만나 독립하고, 남편은 진즉 세상을 떠나 혼자 지내고 있었다.

이젠 어엿한 가장이 된 아들이 중학생일 적 샀다는 텔레비전은 힘겹게 제몫을 해내고 있었다.

채널은 최재한이 근무하는 종합 뉴스 방송국에 고정되어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한 대기업 직원이 청소부에게 폭언을 가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습니다. 이 소식, 최재한 기자가 보도합니다.

최재한은 음성 변조된 녹음 파일을 재생하며 꼼꼼히 상황 설명을 했다.

적절하게 편집된 녹음 파일은 원본보다도 유백기를 더 악랄하게 만들었다.

변조된 목소리도 원본보다 더 몰상식하고 비열하게 들렸다.

-아줌마 당장에 실직자 만들 수도 있다고!

카랑카랑한 유백기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리포트는 끝났다.

사건의 무게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았고, 큰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뉴스 끄트머리에서 짧은 시간 동안 다뤄졌다.

하지만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 내기에는 충분했다.

그 분노는 유백기라는, 일개 말단 사원이 감당할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뉴스는 회사를 특정하진 않았지만, 영리한 사람들이 그 빌어먹을 직원이 다니는 잘난 회사가 어딘지 금방 찾아냈다.

뉴스가 나가고 다음 날, 필래유통 고객 만족 센터의 전화기 150대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이 사태는 윗선에도 즉각 보고됐다.

서청규 사장의 집무실에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야, 이 씨, 내가 말단 사원이 빽빽 소리 지른 것까지 케어해야 돼? 도대체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유백기 그 새끼는 내가 하라는 간단한 것도 해결 못하면서 왜 멋대로 똥을 흘리고 다니냐고!”

“엄중하게 혼을 내겠습니다.”

“혼은 무슨 혼! 그 새끼 당장 잘라 버려!”

“지, 징계 절차에 착수하겠습니다.”

“에이, 씨! 별 거지 같은 새끼 때문에 내 꼴이 이게 뭐냐고!”

사장의 불호령은 유백기에게 곧바로 운석이 돼서 떨어졌다.

우주의 티끌이 지구에 떨어지면 공룡도 멸종시키는 파괴력을 갖기 마련이다.

사장의 별것 아닌 호통이 유백기에게 그러했다.

유백기에게 즉각 대기 발령 조치가 내려졌다.

“아이고야,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송희근 과장의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천원석 대리 역시 평소와는 달리 표정이 경직되었다.

한태윤 대리도 겉으로는 의연했지만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 사무실에서 태평한 건 폭탄을 떨어뜨린 대찬뿐이었다.

기계처럼 복사기를 돌리던 대찬에게 서원웅이 주위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너지?”

“어? 어. 나야.”

서원웅은 최재한의 보도를 보고 대찬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대찬 역시 서원웅에게 굳이 감추지 않았다.

“어쩌자고……!”

“왜, 내가 못할 짓 했어?”

“이렇게까지 뻥튀기 할 건 없었잖아.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지…….”

“그렇게 하면 누가 좋은데? 유백기 말고 좋은 사람이 하나 없어요. 우리 청소부 여사님 다친 마음은 누가 달래 주나.”

“회사에도 큰 타격이 갔을 거야.”

대찬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그거 좋은 소식이네. 필래유통 잘돼 봤자 네 원수 같은 삼촌만 좋지, 너나 회장님한테 좋을 게 눈곱만큼이라도 있어? 이 거지 같은 회사는 망해도 좋아.”

“말을 해도…….”

“틀린 말 한 음절이라도 있으면 꼽아 봐라, 없지.”

“그래도 너한테 불똥이 튈 수도 있는 건데…….”

서원웅의 말이 사달이 되었는지, 낯선 직원들 서넛이 대찬에게 다가왔다.

“대외협력 3팀 조대찬 사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찬은 다 된 복사물을 추려 들고 대답했다.

직원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사팀입니다. 이번 유백기 사원 징계 건과 관련해서 조사할 사항이 있으니 따라오시죠.”

“네, 알겠습니다.”

대찬도 딱딱하게 대답하고 인사팀 직원들을 따라갔다.

서원웅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인사팀 직원은 대찬을 앉혀 놓고 추궁했다.

“이 녹음 파일이 어떤 경위로 언론사에 입수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뇨. 모릅니다.”

“이번에 이 일을 보도한 ONB 최재한 기자가 조대찬 사원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인 걸 알고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절 의심하시는 겁니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게다가 평소 직속 상사인 유백기 사원과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대찬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파편 같은 정황은 그쪽의 의심에 대한 증거가 못 됩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하면 가벼운 징계에 그칠 겁니다.”

대찬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런 좋은 건수를 쥔 서청규 사장이 대찬을 가볍게 징계할 리 만무했다.

아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유백기보다 더 가혹한 징계로 다스릴 것이다.

그럼에도 가벼운 징계 운운한 건,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논리적인 증거가 없다는 걸 자복하는 꼴이었다.

“제게 쏟아지는 의심이 매우 불쾌합니다. 잘못은 유백기 선배가 저질렀는데 제가 왜 마치 범죄자가 된 것처럼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솔직히 말하세요, 그쪽이 언론에 찔렀다고.”

“아뇨. 막무가내로 몰아가는 이 상황이 불쾌하기만 할 뿐입니다.”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올 겁니까?”

“그쪽이야말로 이런 식으로 나오지 마시죠. 지금 아무 힘도 없는 신입 사원이라고 윽박지르는 겁니까?”

대찬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대립각을 세웠다.

기세에서 밀릴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조대찬 사원이 유백기 사원에게 폭언을 들은 청소부를 살갑게 대했다는 증언도 있어요.”

“뭐라고요? 어이가 없네요.”

대찬은 헛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신입 사원의 건방진 제스처에 인사팀 직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찬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서청규 사장의 눈 밖에 난 이상 그가 부리는 수족들에게 주눅 들 이유가 없었다.

대찬은 할 말을 다 했다.

“유백기 사원과 청소부 여사님 사이에 발생한 일은 전적으로 유백기 사원의 잘못입니다.”

“아니 그렇긴 한데…….”

“저는 상사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심적 피해를 어루만져 줬을 뿐입니다. 금일봉은 못 꽂아 줄망정 지금 그걸로 절 공격하시는 겁니까?”

“…….”

“이렇게 절 추궁할 시간에 차라리 청소부 여사님께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어떠한 보복조치도 하지 않겠다 약속드리세요.”

“…….”

“그게 조금이라도 회사 이미지가 나아지는 길임을, 신입 말단 사원으로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곡한 충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신분 노출을 염려한 최재한이 다른 기자에게 이 건을 넘기겠다고 했지만, 대찬은 굳이 최재한의 이름으로 보도하라고 권했다.

대찬은 서청규 사장 측에서 이렇듯 심증은 있되 논리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윽박질러주기를 바랐다.

괴롭힘을 즐기는 특이 취향인 까닭은 아니었다.

대찬은 서청규 사장에게 내내 트러블 메이커여야만 했다.

그래야 신입 사원이라는 보잘것없는 주제로 서청규 사장에게 맞설 수 있었다.

다윗이 이름을 얻은 건 돌팔매질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골리앗이기 때문이었다.

골리앗이 싸워 주지 않았다면, 다윗은 다윗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 회사에서 잘나가고 뼈를 묻겠다는 것이 대찬의 목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서청규 사장이 내리는 시련을 견디고 극복한다.

그럼으로써 서청수 회장의 확실한 인정을 받는다.

그게 대찬의 목표였다.

그러자면 서청규 사장이 자신을 계속 괴롭혀 줘야만 했다.

인사팀은 대찬이 최재한과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이며, 유백기와 관계가 좋지 않다는 데까지는 알아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덴 실패했다.

결국 모양 빠지게 윽박만 지르다 대찬을 놓아주었다.

서청규 사장은 즉각 청소부가 소속된 청소 파견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저질러 버리네…….’

대찬은 입술을 깨물었다.

회사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서청규 사장이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저질렀을 것이다.

그도 아니면 아랫것이 그의 눈치를 보고 지레 저지른 일일 것이다.

이유가 둘 중 무엇이든 간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

‘여사님이 돈 한 푼이 아쉬운 입장이었으면 이 일도 못했겠지…….’

장성한 아들딸 있고, 허름하나마 자기 이름으로 된 집 한 채 있으니 미련 없이 청소부 자리를 때려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천 원, 이 천 원에 몸이 떨리는 처지였다면 대찬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

대찬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행히 청소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일자리를 얻었다.

서청수 회장은 새로 개장하는 테마파크 환경미화 작업에 해고된 청소부를 비롯한 이들을 직접 고용 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청규 사장의 좁쌀만 한 그릇을 비웃는 제스처였다.

이제 남은 건 유백기에 대한 처분이었다.

징계위원회는 그에게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리고자 별렀다.

회사의 이미지를 해친 것도 해친 것이거니와, 서청규 사장의 분노가 자심하니 기군망상의 괘씸죄가 적용될 판이었다.

유백기는 사무실 자기 자리에 머물지도 못하고, 텅 빈 회의실에서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유백기는 침을 꼴깍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아, 아버지.”

“못난 놈.”

“죄송해요……. 저 근데 대기 발령 상태에서는 휴대폰 사용 금지라…….”

“닥치고 듣기나 해라.”

“…네.”

아버지의 엄한 목소리에 유백기는 찔끔 다리를 오므렸다.

“지금 네 사장 만나러 가는 길이다.”

“사, 사장님을요?”

“그래. 만나서 구제해 볼 테니까 넌 더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네…….”

유백기의 아버지는 전화를 끊고 옷매무새를 매만진 다음, 필래유통 사옥 안으로 들어갔다.

유백기의 아버지가 사옥 안으로 들어가자 필래유통 비서실의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차관님.”

“어, 마중 나와 줘서 고마워요.”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른 가지.”

유백기의 아버지, 그러니까 유 차관은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고 사장실까지 향했다.

서청규 사장은 유 차관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고, 먼 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운전은 기사가 다 했는데요, 뭐.”

“어서 앉으십시오. 커피 괜찮으십니까?”

“녹차 있으면 그걸로 부탁하죠.”

서청규 사장이 눈짓하자 비서는 얼른 차를 준비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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