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87화
대찬은 고숙희의 옆에 서서 조언했다.
“일단 첫 글은 간략하게 써야 해요. 문장들을 주렁주렁 달아 놓으면 사람들이 읽다가 포기합니다. 잽잽잽으로 가지 말고 어퍼컷 한 방 시원하게 쳐야 해요.”
“워낙 건수가 많아서 그게 될까요?”
“일단 건수 하나에만 집중하죠. 뭘 선택할래요?”
“음, 아무래도 내용이 풍부한 삼겹살집?”
대찬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맘맘치킨 건을 쓰는 게 좋아요.”
“근데 여긴 정기 모임도 여러 차례 진행해서 다른 회원들도 사장님이랑 면식이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친분이 있으니 효과가 덜할 텐데요.”
“원영맘 개인이 돈을 챙긴 문제에 방점을 찍으면 안 됩니다.”
고숙희는 의아한 얼굴로 대찬을 올려다봤다.
“왜요?”
“그건 파괴력이 약해요. 나쁜 일을 해서 돈 번 것도 아니고, 좋은 말 몇 마디 보태 주고 돈 몇 푼 챙긴 게 뭐 그렇게 대수냐는 반응이 나올 거예요.”
고숙희는 의구심을 품었다.
“정말 그럴까요?”
“네. 그건 자기들 이익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할 거예요.”
“어떻게 해요, 그럼?”
고숙희의 질문에 대찬은 즉답을 내놨다.
“원영맘이 회원들을 팔아넘겼다고 쓰세요.”
“팔아넘겨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기 모임을 맘맘치킨에서 하는 대신 사장한테서 돈을 받았다잖아요. 이게 팔아넘긴 게 아니면 뭐겠어요. 이게 회원들의 반감을 극대화하는 뇌관이에요.”
“역시 그렇겠네요. 자기들 돈을 원영맘과 사장이 나눠 가진 격이니까.”
“이 경우에는 맘맘치킨 사장과 회원들 사이의 친분이 도리어 독으로 작용할 거예요. 앞에서는 그렇게 살랑거리더니 뒤에서는 호구 취급 한 거니까.”
대찬의 부연 설명이 고숙희는 만족스러웠다.
고숙희의 글은 카페를 강타했다.
맛없는 치킨을 억지로 치켜세워 줬더니, 뒤에서는 원영맘과 사장이 금품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렸다는 사실은 회원들의 분노를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고숙희는 대찬의 지도를 받아 자극적인 단어를 동원해 최대한 짧게 글을 작성했다.
그럼에도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해 맘맘치킨 사장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을 첨부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댓글이 폭주했다.
└흥읍초미녀 : 진짜 충격이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세아들맘 : 저도 정기 모임 다섯 번은 나갔는데 원영맘한테 기부 제대로 했네요.
└꽃님공주 : 에이, 이게 정말 사실일까요? 운영자님이 그럴 리가요~
└세아들맘 : 닥치세요. 한 패라고 감싸는 거 보소. ㅋㅋ
└온이엄마 : 원영맘한테 얼마 받았어요?
└JJ5412 : 어쩐지 그 집 치킨 더럽게 맛없는데 이상하다 싶었어요.
└개굴개굴 : 돈 다 토해 내게 해야 됩니다!!!
└석가모니 : 원영맘 라온아파트 104동 505호 살아요. 쳐들어가실 분 구해요. 쪽지 주세요.
무지막지한 비난이 쏟아졌다.
친위대들이 나서서 옹호하려 했지만 오히려 회원들의 분노를 유발할 뿐이었다.
통렬한 복수에 성공한 고숙희는 박수를 치며 통쾌해했다.
“아, 이제야 묵은 체증이 내려가네. 이대로 글 더 올리면 되겠죠?”
“아뇨. 고숙희 씨 역할은 이제 끝입니다.”
그러자 고숙희는 경악했다.
“에? 이제 막 재밌어지려는데!”
“재미로 한 거 아니잖아요.”
“조대찬 씨는 몰라도 저는 재미로 하는 건데요.”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재미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입니다. 본질은 원영맘의 실체를 회원들에게 알리는 거죠.”
“그 말도 틀렸어요. 조대찬 씨의 본질은 떨어진 마트 이미지를 올리는 거잖아요.”
“하하…….”
“그런데 왜 그만하려는 거예요? 이렇게 끝낼 거면 그 고생을 왜 했어요?”
“끝낸단 소리 한 적은 없어요. 다만, 고숙희 씨 역할이 끝났다고 했지.”
“네?”
대찬은 고숙희에게 더 글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고숙희는 표면적으로 원영맘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정적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고숙희를 계속 스피커로 내세우는 건 부담이 따랐다.
순전히 음해공작이 아니냐는 반박이 먹힐 공산이 있었다.
스피커를 분산할 필요가 있었다.
대찬은 원영맘의 피해자이자 카페 회원이기도 한 미용실 원장에게 말했다.
“예전과는 달리 목소리를 낼 만한 환경이 조성됐습니다. 나서 주시죠.”
“물론이에요.”
당할 만큼 당한 원장은 대찬의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
-원영맘의 횡포에 당한 미용실 원장입니다.
원장은 자신이 입은 피해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이미 죽일 년의 낙인이 찍힌 원영맘에게 비난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미용실 원장은 동네에 있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대찬은 그들에게 수집한 자료들을 나눠 주었다.
그 자료들을 토대로 원영맘을 비판하는 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갔다.
원영맘과 친위대가 발붙일 새도 없이 성토가 쏟아졌다.
“마타도어가 필요해요.”
“마타도어?”
“투우에서 마지막으로 소의 숨통을 끊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 대찬의 얼굴이 섬뜩했다.
쏟아지는 비판은 어쨌거나 회원들의 목소리였다.
대찬은 공식적인 낙인을 찍어 확인 사살을 할 요량이었다.
공식적인 낙인이란, 언론이었다.
대찬은 최재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즘 기삿거리 없지?”
“사회부 쪽은 항상 기사에 목말라 있지.”
“재밌는 거 하나 있는데, 가져갈래?”
대찬의 말에 최재한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오, 정말? 뭔데?”
며칠 후, 카메라를 대동한 기자가 이 근방의 삼겹살집, 미용실 등을 방문했다.
기자는 그 앞에서 리포트 했다.
“운영자 모 씨가 취한 금전적 이득은 확인된 것만 수천만 원가량. 만일 이 일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이득을 취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작은 권력으로도 큰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이들을 씁쓸하게 합니다. ONB 뉴스, 최재한입니다.”
뉴스가 방송되고 난 후, 원영맘이 동네 망신 다 시켰다며 회원들은 또다시 광분했다.
원영맘은 짧은 사과문을 남기고 카페를 탈퇴했다.
사태의 추이를 내내 지켜본 허운이 대찬에게 말했다.
“그런데 일을 다 잘해 놓고 왜 정작 중요한 건 빼먹었어?”
“응?”
“이렇게까지 수고한 목적이 뭔데. 우리 마트 이미지 높이려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왜 정작 그건 안 하냐구.”
대찬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때가 아니니까.”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카페가 소란스러웠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회원들은 원영맘에게 돌팔매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판에 필래마트의 억울한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해 봤자 관심을 끌기는 어려웠다.
다른 사건들과 도매금으로 엮여 유야무야될 뿐이었다.
그래서 대찬은 꾹 참았다.
잠잠해질 때까지.
원영맘이 퇴출되고 난 뒤, 카페는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그러는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고숙희로부터 들려왔다.
“조대찬 씨! 저 운영자 됐어요.”
원영맘 다음으로 고숙희가 운영자가 되는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애초에 앙숙이었고, 고숙희가 원영맘의 추악한 면모를 가장 먼저 고발했으니 공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축하드려요.”
대찬은 웃으면서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대찬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맘 카페는 작은 공동체지만, 필래마트에 있어서는 좋든 싫든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집단이었다.
그런 곳의 운영자가 원영맘에서 고숙희로 바뀐 건 희소식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는 것도 아니지만, 앞으로는 조대찬 씨 직장에 부당한 피해가 안 가도록 노력할게요.”
“예. 그래 주시면 고맙죠. 지금 이 시끌시끌한 분위기도 빨리 잠재워 주세요. 그래야 저희 억울한 사연을 풀어 놓죠.”
“그럴게요.”
고숙희는 약속한 대로 카페 분위기를 서둘러 정돈했다.
덕분에 오랫동안 끙끙 앓아 왔던 문제를 해결할 환경이 마련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사흘 정도 후에 글을 올려도 괜찮을 거 같아.”
“드디어 앓던 이가 빠지는구나.”
허운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이건 2팀의 현안이기도 했으니, 허운으로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기도 했다.
이제 카페에 그날의 자초지종을 차분히 설명한 글만 올리면 이런 굴욕도 모두 사라지리라.
허운은 대찬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이번 일 잘 끝나면 맥주나 한잔하자.”
“그래. 내가 거하게 쏠게. 액땜은 확실히 해 둬야지.”
“좋은 마인드다.”
허운은 엄치를 척 치켜세웠다.
대찬은 슬슬 일을 마무리했다.
흥읍시 맘 카페에 접속해 글을 올렸다.
-제목 : 필래마트 조대찬 사원입니다. ‘천혜향 사건’의 진상을 말씀드립니다.
…….
이처럼 저희 필래마트의 대처는 상식적이었습니다. 이전 운영자였던 닉네임 ‘원영맘’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필래마트 역시 이번 일을 계기로 작은 결함도 기민하게 시정하고, 더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래마트 조대찬 사원 올림
“다 됐다.”
우호적인 댓글이 달렸다.
당연한 결과였다.
글의 내용은 모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었고, 원영맘의 몰상식적인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었다.
그 증거까지 완벽했으니 나쁜 말을 할 구석이 없었다.
이로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나 필래마트는 오명을 벗게 되었다.
또 잘못한 부분이 없음에도 부당한 지탄을 감내했으니 도리어 이미지가 좋아졌다.
아줌마들의 소문이란 바람보다 빨랐다.
대찬은 보고서를 작성해서 양동식 부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부장님, 필래마트 천혜향 클레임 건 보고서입니다.”
“어? 어, 그래……. 잘 해결됐나?”
“예. 기존의 오해를 모두 해결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우리 마트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잘했군. 가 봐.”
양동식 부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이미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대찬은 새삼 칭찬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는 깍듯이 인사하고 양동식 부장의 앞에서 물러났다.
양동식 부장은 탁자 위에 올려진 대찬의 보고서를 찜찜한 표정으로 톡톡 건드렸다.
“거참, 적당히 깨지지, 이걸 기어코…….”
양동식 부장은 이마를 탁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보고를 받은 서청규 사장의 입에서 불이 뿜어진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2008년 8월.
말 많고 탈 많던 촛불 든 사람들과 컨테이너 산성의 대립이 끝났다.
그즈음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한국에게는 불모지였던 수영에서 금메달이 나왔다.
차후 약물 복용자의 낙인이 찍히는 선수인 터.
그걸 아는 대찬은 남들보다는 식은 온도로 열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모르는 걸 혼자만 안다는 건 생각보다 외롭고 답답했다.
한창 올림픽 얘기로 시끌시끌할 무렵, 대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아버지였다.
“네, 아버지.”
“그래, 일은 잘되냐? 점심은 잘 챙겨 먹었고?”
대찬은 웃음을 머금었다.
“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이 시간에 전화를 다 주시고…….”
“아, 뭐 할 말이 딱히 있는 건 아니고.”
아버지의 아들로 오래 살아 본 결과,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뭔데요. 말씀하세요.”
“곧 추석인데 연휴 땐 어디 갈 생각 말고 집에만 있어라.”
대찬은 흔쾌히 요구에 응했다.
“명절에는 당연히 그래야죠.”
“다들 귀성길에 차 막히는 거 싫다고 이번에는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다. 어차피 시골집에 할머니도 안 계시니까.”
대찬은 할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대로 할머니 역시 작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시골집엔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다른 친척분들도 다 수도권에 사시는데, 굳이 공들여서 시골로 내려갈 필요는 없죠.”
“그래서 오랜만에 일가친척 다 모이기로 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들어와라. 괜히 트집 잡히지 말고.”
“혹시 안산 큰고모도 오시나요?”
대찬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물었다.
아버지는 착잡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오랜만에 오신단다.”
“하, 마음 단단히 먹고 가야겠네요.”
“너도 알고 있을 테니 더 말 안 한다.”
대찬은 전화를 끊고도 한숨을 쉬었다.
큰고모 얘기가 나오자 대찬의 무기력증이 되살아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3남 2녀, 5남매의 맏이인 안산 큰고모는 일가친척 사이에서 악명 높았다.
대찬은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