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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86화 (85/556)

난 할 수 있어 86화

“원영맘을 파멸시킬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어요.”

결연한 각오에, 대찬의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대찬과 고숙희는 공동 작전에 돌입했다.

목표는 원영맘의 평판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건 치사한 전술이다.

하지만 메신저의 강력한 입김을 타고 틀린 메시지가 사실로 인지되는 경우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메신저의 평판이나 후광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논리로 승부를 펼치려면, 카페 내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는 원영맘의 위세를 꺾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없는 사실을 거짓으로 만들어 내거나 손톱만 한 과실을 부풀릴 생각은 없었다.

그건 원영맘과 다를 바 없는 행태니까.

“발품을 좀 팔아야 해요. 단서는 많지 않으니까.”

대찬은 주말에 양반후반, 고숙희를 만났다.

불필요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의 남편한테도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제 아내가 카페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꼬락서니를 본 그는 눈이 뒤집혀 도리어 더 대찬의 열렬한 지원군이 되었다.

“힘써 주십시오. 제가 도울 일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요.”

대찬은 양반후반 내외가 든든했다.

남편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은 대찬은 부담 없이 고숙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제법 오랜 시간을 들여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말했다.

“원영맘과 그 추종자들은 굉장히 조직적으로 여론을 이끌어 갔습니다. 특히 지역 상인들, 식당이나 커피숍, 미용실 대상으로.”

“맞아요. 여긴 어떻다, 저긴 어떻다, 무슨 교리처럼 딱 정해 놓거든요.”

고숙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의심됩니다. 저게 정말 저 사람들의 솔직한 의견일지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금까지 특정 업체에 대한 이들의 의견이 전부 일치해요. 게다가 호불호를 강하게 드러내고요.”

고숙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렇게 의견이 일관되게 같기는 힘들거든요. 그리고 중간이 없어요. 이 식당은 엄청 맛있다, 이 식당은 최악이다, 극단적으로 갈리거든요?”

“맞아요, 맞아요.”

“제 생각엔 커미션을 좀 받는 거 같네요. 돈을 받고 홍보성으로 카페 내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식으로요. 고숙희 씨, 맘맘치킨 가 보셨죠?”

대찬이 맘맘치킨을 언급하자 고숙희의 눈에서 불빛이 팍 튀겼다.

“네! 거기 진짜 맛없거든요!”

“그런데 운영자 이하 그 사람 친위대들은 맛있다고 난리죠?”

“진짜 혓바닥이 마분지로 돼 있나, 사람 혓바닥이면 그거 먹고 맛있다고 못해요.”

고숙희는 닉네임이 양반후반, 즉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일 정도로 튀긴 닭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치킨의 치읓 자도 모르는 원영맘이 적반하장으로 자신을 몰아대니 부아가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이 전부 마분지 혓바닥일 리는 만무하고요. 이미 저희 마트에서도 그렇게 진상 짓을 했으니 커미션 의혹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가능 정도가 아니라 100퍼센트네요, 100퍼센트.”

고숙희는 대찬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럼 오늘 저녁은 맘맘치킨으로 하시죠.”

대찬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운영자 년 물 먹일 수 있다면야. 한 끼 정도는 기꺼이 그 흉물을 먹어 줄 수 있어요.”

“흉물까지야…….”

대찬은 겸연쩍게 웃었다.

그렇게 둘은 맘맘치킨을 방문했다.

고숙희의 혹평이 무색하게 손님들로 북적였다.

원영맘의 홍보가 빛을 발했는지도 모른다.

대찬은 고숙희의 닉네임대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주문하고, 생맥주도 한 잔씩 곁들였다.

치킨은 척 보기에도 영 먹음직스럽지 않았다.

맛을 보니 역시나였다.

“이걸 먹고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확실히 문제가 있네요.”

“그렇다니까요.”

고숙희는 닭은 입에도 대지 않고 맥주만 축냈다.

“그럼 운영자 양반이 돈을 받고 홍보를 해 준 건지, 아니면 그저 선의로 그랬는지 확인해 보죠.”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냥 카메라가 아니었다.

문외한이 봐도 전문가가 쓸 법한 카메라였다. 흡사 대포를 방불케 하는 대물렌즈가 달려 있었다.

최재한에게 빌듯이 부탁해 그가 다니는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 것을 잠깐 빌려온 것이다.

대찬은 그걸로 치킨을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뉴판을 찍고, 식당의 간판을 찍었다.

먹으러 와서 먹지는 않고 애먼 사진들만 찍는 대찬을 보고 손님들도 의아하게 여겼다.

사장이야 오죽할까.

그는 닭을 튀기는 와중에도 흘끗흘끗 대찬의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대찬은 그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댔다.

그쪽이 먼저 다가오지 않으면 대찬이 먼저 넌지시 운을 띄워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맘맘치킨의 사장은 인내심이 강하지 않았다.

맛에 자신이 있었으면 찍거나 말거나 내버려 뒀을 터다.

“저, 손님?”

“네?”

대찬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시선으로 사장을 돌아봤다.

“혹시… 블로거세요?”

“아, 어떻게 아셨어요?”

대찬이 블로거임을 부정하지 않자 사장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나긋나긋해졌다.

“그러셨군요! 카메라가 범상치 않아서요.”

“하하, 그랬나요.”

“저, 치킨 맛은 어떠세요?”

사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찬은 음, 뜸만 들이고 시원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뭐, 그럭저럭…….”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까?”

사장도 혓바닥이 마분지가 아니라면 자신의 음식이 크게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장의 얼굴에 조바심이 드러났다.

‘그걸 알면 사람을 구워삶을 게 아니라 닭을 제대로 튀길 궁릴 해야지…….’

대찬은 속으로 끌끌 혀를 찼다.

“제가 좀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서요. 거짓말도 잘 못하고.”

“아이고, 뭐가 부족한 건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말라면 더 쓰이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사장은 대찬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깐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 나누실까요?”

사장은 예상보다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대찬을 주방 안쪽의 창고로 데려갔다.

카메라 1대의 위력이란.

사장은 시종 저자세로 대찬을 대했다.

“저… 블로그에 방문자 수는 좀 많으신 편입니까?”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하면 대번에 찬밥 취급을 할 게 뻔했다.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럭저럭 있습니다.”

대찬은 지금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안 쓰는 블로그가 있으니 블로거라고 할 수 있다.

방문자 수가 그럭저럭 된다고 한 것도, 한창 유행하던 동영상 하나를 공유해서 올리는 바람에 방문자가 더러 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셨군요……. 저희도 좋은 음식 대접하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습니다.”

“노력이야 누구나 하죠. 그게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아서 그렇지. 소비자는 결과만 보잖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물론, 물론 그렇지만…….”

대찬은 빙긋 웃었다.

“그래도 언어가 가진 힘이란 게요, 참 묘하잖아요.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니까.”

“그렇죠! 똑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말로 전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까.”

“그건 글 쓰는 사람의 기분에 달린 겁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말이 나오고, 나쁘면 나쁜 말 나오고. 사람이 그런 동물이죠, 뭐.”

대찬의 말을 사장은 곧장 알아차렸다.

“그, 그럼 저희가 성의 표시를 좀…….”

“성의 표시라면… 이거?”

대찬은 엄지와 검지를 동글게 말면서 사장에게 슬쩍 보였다.

그러자 사장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거.”

“제가 뭐 노골적으로 그런 걸 요구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들은 게 좀 있어서.”

“들은 거라뇨?”

“그, 왜, 여기 지역 맘 카페 운영자분 있잖아요. 닉네임이 원영맘인가.”

대찬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론 사장은 본론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대찬은 긴장 속에 사장의 대답을 기다렸다.

의혹은 있지만 확신은 아니었다.

“아, 그분!”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우리 가게 은인인데.”

대찬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알음알음 얘기를 들었거든요. 홍보의 가치에 대해서 잘 아는 분이시라고.”

“하하, 좋게 말씀해 주시는군요.”

“원영 어머니 그분이야 원체 카페에서 영향력이 있으셔서… 꽤 대우해 주셨겠습니다?”

“예. 뭐, 섭섭지 않게 해 드렸죠. 하하.”

사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대찬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드렸어요?”

“예에? 아, 그걸 콕 집어서 말씀드리기는 좀…….”

“가이드라인이란 게 있잖습니까. 다른 사례를 참고해야 사장님하고 저하고 협상도 편하고 그렇지.”

“그 말씀인즉슨, 그쪽이 원영 어머니만큼 영향력이 있단 말씀입니까?”

대찬은 계속 거짓말은 삼갔다.

“아니, 그만큼은 안 되죠. 당연히 그분만큼 챙길 요량은 아니고요.”

“어디 가서 말씀하면 안 됩니다?”

“물론이죠.”

“맨 처음에는 100만 원 드렸고, 그다음에 효과를 톡톡히 보니까 틈틈이 50씩 챙겨 드렸죠. 카페 정기 모임을 저희 가게에서 주로 하고, 매상도 좀 떼어 드리고.”

대찬의 눈이 약간 커졌다.

“그랬군요.”

“아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드리지 않으면 가게가 망할 판이니, 원…….”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대찬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어, 어디 가세요? 얘기 좀 더 나눠야죠.”

“아녜요. 돈은 괜찮습니다. 블로그에 나쁜 얘기는 안 올릴 테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요.”

대찬은 여전히 맥주만 홀짝이는 고숙희에게 말했다.

“고숙희 씨, 가시죠.”

“얘기 잘됐어요?”

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셔츠 앞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녹음기가 들어 있었다.

“네, 잘됐어요.”

“그럼 이걸로 바로 원영맘 그 사람 치는 건가요?”

“조금만 더 수고하고요.”

대찬은 맘맘치킨을 나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장은 가게를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대찬과 고숙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근처의 한 삼겹살집이었다.

바로 원영맘과 그 친위대가 주도적으로 사장이 불친절하고 맛도 없고 비싸다고 혹평한 가게였다.

“먹을 만한데?”

치킨 몇 조각을 먹고 배부른 상태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도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기본 반찬들도 정갈했다.

고숙희 역시 대찬에게 동감했다.

“괜찮네요.”

“가격도 보통 수준이지, 비싸다고 볼 순 없고…….”

“그럼 남은 건 서비스 수준인데.”

대찬은 사장과 종업원의 일처리를 유심히 지켜봤다.

유별나게 친절하다는 인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결격 사유가 있지는 않았다.

사장은 다소 무뚝뚝해 보이기는 했다.

대찬이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최근에 여기 지역 맘 카페에 사장님 가게에 대해서 올라온 글 보셨나요?”

“글이요?”

“모르시나 보네요. 잠시…….”

대찬은 모은 자료를 사장에게 보여 주었다.

그걸 확인한 사장은 분노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람이네요. 어쩐지 요새 손님이 좀 줄었다 싶더니.”

“아마 영향이 있었을 겁니다.”

“글 쓰는 투를 보니 누군지 알겠네요. 며칠 전에 아줌마 한 무리 왔었거든요.”

“와서 뭐라고 하던가요?”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기가 어디 커뮤니티 대장이라고, 자기가 말 한마디 하면 다들 우르르 몰려와서 팔아 준다고 그러더군요. 자기가 흡사 피리 부는 사나이 같다고.”

“어딜 가나 위풍당당하네요.”

“그러더니 이날 먹은 음식 값을 공짜로 해 달라고 하더라니까요. 투자라고 생각하라고. 아마 몇 배 이익으로 돌아올 거라고.”

대찬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거절하셔서 이 사달이 난 거군요.”

“웃기지도 않는 사람이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지금 말씀해 주신 부분, 공개해도 문제없겠습니까?”

“제발 공개 좀 해 주시죠.”

대찬은 삼겹살집을 포함해 원영맘으로부터 혹평을 받은 식당, 미용실, 카페, 어린이집 등을 방문했다.

그들은 원영맘의 요구를 묵살 혹은 거부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는 이를 공론화하는 데 동의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데 일주일이 소요되었다.

“이제 시작하죠.”

대찬의 말에 고숙희는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숙희는 분노에 가득 찬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제목은, ‘운영자 원영맘의 실체를 고발합니다.’.

대찬이 직접 글을 쓰진 않았다.고숙희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고숙희는 이 공동체의 내부자였다.

대찬은 그들로부터 한 차례 된서리를 맞은 외부인이었다.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도리어 내부의 결속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안에서 터지는 폭탄은 그야말로 파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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