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 할 수 있어-85화 (84/556)

난 할 수 있어 85화

“네, 대외협력 3팀 조대찬입니다.”

“어, 부장이야.”

“네, 부장님.”

“잠깐 내 자리로 와.”

부장의 호출을 받은 대찬은 잰걸음으로 달려갔다.

부장이 단독으로 호출하는 일은 별로 없어 불안했다.

그 불안감은 적중했다.

양동식 부장은 다리를 꼰 채로 발가락 끝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자네가 이번 프랜차이즈 업체 선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서 윗선에서도 크게 만족스러워하셔.”

‘그럴 리가.’

윗선의 분위기를 아는 대찬은 양동식 부장의 말을 자연스럽게 반어법으로 해독했다.

부장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자네한테 특별한 업무를 주려고.”

“…특별한 업무라니요?”

대찬은 이 지점에서 불안한 예감을 확신했다.

“우리 필래마트 있잖아.”

“예.”

필래유통은 필래마트라는 대형 마트 체인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체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보유한 점포가 고작 흥읍시에 있는 흥읍점 한 곳이었다.

서청규 사장이 야심차게 출범시킨 필래마트는 기존 강호들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폐업했다.

이제는 흥읍점 한 곳만 남아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양동식 부장은 말을 이었다.

“거기서 트러블이 좀 있었어. 우리 쪽 잘못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독사한테 물렸단 말이야.”

“독사, 라뇨?”

양동식 부장은 대찬에게 충분히 품을 들여 설명했다.

얼마 전, 마트의 한 직원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파격 세일을 하는 감귤의 가격표를 실수로 천혜향 진열대에 부착했다.

천혜향은 귤의 일종으로 감귤보다, 그것도 파격 세일을 하는 감귤보다 값이 몇 배는 더 비쌌다.

그런 실수를 누군가 파고들었다.

천혜향을 카트 가득 몇 박스씩이나 담은 것이다.

당연히 마트 측에서는 실수였다며, 그 가격에 판매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이런 실수를 한번 인정해 버리면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똑같이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천혜향을 그렇게 한가득 담지도 않았을 것이거니와, 담았어도 충분한 해명을 듣고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양동식 부장이 그 고객을 독사라고 부른 까닭이 있었다.

그는 유명한 악성 고객이었다.

게다가 더 최악인 것은, 그가 흥읍시 일대 여성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소위 ‘맘 카페’의 운영자라는 것.

곧바로 맘 카페에 필래마트를 성토하는 글이 올라왔다.

-필래마트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마지막 남은 흥읍점도 망해야 하는 이유!!!(필독)

운영자 원영맘입니다.

회원님들, 안녕하신가요?

저는 안녕 못해요 ㅜㅜ

며칠 전 필래마트에서 당한 일 때문에 속이 팍 상해서 잠이 안 오더라구요!!

아직도 그 일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답니다~~

…….

당연히 직원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

그런 주제에 오히려 눈을 막 부릅뜨고 선심 쓴다는 듯 상품권이나 받아 가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죠?

이런 마트가 우리 맘들 돈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꼴을 어떻게 보고 살겠어요~

원영맘의 글에 댓글이 폭주했다.

그의 말을 종교처럼 믿는 회원들의 필래마트에 대한 극렬한 혐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역의 기혼 여성들은 마트의 주요 소비자였다.

필래마트, 그리고 모회사인 필래유통으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양동식 부장이 대찬에게 말했다.

“자네가 수완이 좋고 머리 회전이 빠르니까 이 일을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

“…알겠습니다.”

이런 일은 고객만족팀 담당이었다.

물론 이 문제는 단순한 민원이 아니니 그 선에서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외협력 1팀이나 2팀에서 나설 것이지, 대관 업무를 주로 하는 3팀의 팀원에게 시킬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3팀의 신입 사원에게 단독으로 시킬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구구절절 읊어 봤자 이미 사장의 지시를 받은 양동식 부장은 도리어 꾸짖기만 할 것이다.

대찬은 별말 없이 흥읍시로 향했다.

그는 우선 흥읍시 맘 카페에 글을 올렸다.

사과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필래마트 사원 조대찬입니다.

회원 여러분이 주지하시듯 불미스러운 일을 일으킨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

회원님들을 비롯한 이 지역의 어머니들이 저희의 핵심 고객층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저희의 갑이십니다.

이 사실 유념하며 앞으로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불미스러운 일에 거듭 사과드리며, 호된 질책은 겸허히 받들겠습니다.

대찬의 사과문은 절절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렇다 저렇다 변명이 없었다.

양동식 부장의 갑작스러운 분부에 대찬을 걱정하던 한태윤 대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배를 바닥에 바짝 깔았군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진정성을 보여 줄 수 있으니까요.”

“진정이 없는 진정성이군요.”

대찬은 한태윤 대리와 비슷한 웃음을 머금었다.

“당장의 분노는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겁니다.”

“갑이라는 표현은 신선하네요. 간결하고 명확해요. 그렇다고 노골적이지도 않고. 갑 대신 밥줄이란 단어를 썼으면 지나치게 비굴해 보였을 겁니다.”

2008년, 갑 혹은 갑질이란 시쳇말이 등장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계약서상의 갑이라는 표현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시쳇말로서의 갑은 널리 쓰이지 않을 때였다.

2008년의 한태윤 대리에게는 신선한 표현으로 다가왔다.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는 사과문은 효과가 있었다.

여전히 볼멘소리가 댓글로 달렸지만 정도는 훨씬 덜했다.

죽이네, 살리네 하던 댓글이 그러게, 잘 좀 하지 그랬냐는 핀잔으로 바뀌었다.

이 일은 2팀의 팀장인 오 과장이 양동식 부장에게 보고한 문제였다.

2팀의 팀원인 허운이 괜한 부채 의식으로 대찬을 돕겠다고 나선 터였다.

그는 사과문을 보고 개운치 못한 얼굴로 대찬에게 물었다.

“그럼 이걸로 끝?”

“뭐가 끝이야?”

“깔끔하게 사과하고 대충 흐지부지되는 걸로 끝이냐구. 그래도 매출 손실이 가시적으로 발생해서 일이 해결됐다고 보긴 어려울 텐데.”

“끝 아니야. 양 부장 이전에 내가 만족 못해. 내가 잘못해서 이런 거면 또 모를까.”

“그럼 어떻게 할 작정이야?”

대찬은 심호흡하고 말했다.

“사생결단을 내야지.”

대찬의 사과문은 미봉책에 불과했다.

당장의 분노를 잠재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고객을 소홀히 대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더불어 필래마트에서는 고객이 난장판을 쳐도 괜찮다는 잘못된 인식을 만연케 할 수도 있었다.

대찬에게는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과정은 까다롭고 수고롭겠지만 그는 기꺼이 나섰다.

대찬은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네빌론 아이디 있으세요?”

네빌론은 가장 큰 인터넷 포털 사이트였다.

문제의 카페 역시 네빌론 카페였다.

“그럼, 있지!”

“잠깐 빌려주실래요?”

“아이디를? 왜?”

대찬은 어머니로부터 아이디를 빌려 카페에 가입했다.

기본적으로 여성만 가입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사과문을 올린 건 회사의 공식 계정이었지만, 대찬이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공식 계정으로는 행하기 어려운 음지의 일이었다.

대찬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흡사 돌부처 같았다.

종일 카페를 들여다봤다.

과연 운영자 원영맘의 활동량이 압도적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뭘 먹었는지 꼬박꼬박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의 시시콜콜한 뒷담화나 오랜 앙숙인 듯한 윗집 여편네 욕까지 하루에도 10개가 넘는 게시물을 올렸다.

댓글은 댓글대로 많았다.

“박지성급 활동량이네…….”

대찬은 혀를 내둘렀다.

그는 원영맘의 정보를 꼼꼼히 기록했다.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만몽철학원식 정보 기록 방법이었다.

└원영맘 : 광희태권도 좋아요~ 저희 아들램도 다니는데 사범님도 친절하구요~

원영맘이 남긴 댓글을 보고 기록했다.

-아들이 태권도 학원 다님.(광희태권도 친절하다고 함.)

수도 없이 쏟아지는 댓글들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모두 확인했다.

달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라고 했다.

아무리 달변가라고 해도 말이 많아지면 실수가 나오는 법이다.

달변가가 그럴진대 하물며 평범한 사람인 원영맘이야 오죽할까.

그는 압도적으로 많은 말을 쏟아 냈다.

필연적으로 남들이 불쾌할 만한 말들이 더러 있었다.

그녀의 성격이 또 보통이 아니었다.

고의적으로 날을 세운 말들도 많았다.

양반후반 : 사거리 뒤쪽에 있는 맘맘치킨 여기서 유명하던데, 음~ 제 입에는 좀 별로였어요 ㅠ 튀김옷이 너무 두껍더라고요.

└원영맘 : 동네에서 맘맘치킨이 제일 맛있던데요~ 맘맘치킨 맛있다는 건 우리 맘들 사이에서 다 얘기 끝난 건데, 이런 식으로 혼란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양반후반 : 혼란 주려고 한 건 아니고요. 그냥 개인적인 느낌 말한 거예요.

└원영맘 : 개인적인 느낌은 일기장에 ^^

이런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회원들과 충돌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다만, 카페 운영자라는 권위 아닌 권위가 보호막이 되었다.

그를 따르는 친위대도 제법 적지 않은 듯했다.

원영맘에게 공개적으로 물먹은 양반후반은 그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다른 글에서 2차전을 벌였다.

원영맘 : 아후~ 그 삼겹살집 아줌마 완전 싸가지!! 맛은 그냥 그런데 엄청 비싸고 서비스도 엉망!! 다신 안 갈 거예요.

└양반후반 : 개인적인 느낌은 일기장에 쓰시죠.

하지만 양반후반은 유감스럽게도 고독한 늑대였다.

그에게는 친위대가 없었다.

└꽃님공주 : 양반후반님; 말투 진짜 날카로우시네요. 베이겠어요.

└조아조아용 : 말을 그 따위로밖에 못하세요? 저도 저 식당 가 봤는데 비싼 거 맞고요, 서비스 엉망인 거 맞는데요?

└탭댄스마니아 : 뭘 모르면 그만 가만히 계세요;;

└로또인생 : ;; 싸가지 보니 양반 가문은 아닌 듯. 닉네임 노비후반으로 바꾸시죠.

양반후반은 친위대의 폭격을 맞고 찌그러졌다.

대찬은 장면 장면을 꼼꼼히 기록했다.

-반란군 : 양반후반

친위대 : 꽃님공주, 조아조아용, 탭댄스마니아

그렇게 기록하다 보니 대찬은 흡사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된 기분이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만 해도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는 궁중 암투를 방불케 했다.

또 저희끼리는 어떤 중상모략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개판이네.’

개판이었다.

원영맘의 좌충우돌하는 성격은 대찬이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전술이다.

그러니까 원영맘의 적수인 양반후반은 대찬의 동지가 될 자격이 있었다.

대찬은 양반후반에게 쪽지를 보냈다.

그녀와 은밀히 접선했다.

화증이 쌓일 대로 쌓인 양반후반은 대찬과의 동맹에 적극적이었다.

“안녕하세요. 필래유통 조대찬 사원입니다.”

“아, 네……. 양반후반이에요.”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닉네임을 발음하는 그 순간, 양반후반은 세련된 작명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양반후반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니면 본명을…….”

“고, 고숙희예요.”

“네, 고숙희 씨.”

고숙희는 아들 하나를 둔 30대 기혼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그 카페 회원의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대찬은 그에게 사건의 진상을 속속들이 알려 주었다.

그러자 고숙희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건 전적으로 원영맘 잘못인데요?”

“네, 맞아요.”

“그런데 왜 사과문 올렸어요! 바로 반박했어야지.”

고숙희는 자기 일처럼 분노했다.

누가 보면 그녀가 당사자고, 대찬이 제3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반박하는 즉시 저희 마트 이미지는 시궁창에 빠져 버리니까요. 그래서 제가 지금 고숙희 씨를 만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도움이 된다면, 협력해 주실 의향이 있으세요?”

대찬의 물음에 고숙희는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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