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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83화 (82/556)

난 할 수 있어 83화

잡탕밥은 식사류 중에 가장 단가가 높았다.

그러니까 요리가 아니라 식사만 간단히 하러 온 사람들이 짜장 대신 비싼 잡탕밥을 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멘보샤는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 살을 넣어 튀긴 음식이다.

맛은 있지만 메인 요리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결국 요리 하나를 더 시켜야 성이 찬다.

잡탕밥과 멘보샤에는 그런 사려 깊은 에피니키온의 경영학적 판단이 들어 있었다.

마강국 일행은 제법 많은 매상과 함께 황금루는 잡탕밥과 멘보샤가 맛있다는 소문을 일대에 퍼트리고 사라졌다.

대찬은 돌아가는 그들에게 은밀히 엄지를 척 세워 주었다.

마강국은 느끼한 윙크로 화답했다.

그들 덕분에 매장은 훨씬 더 활기를 띠었다.

“마케팅의 힘이 무섭긴 무섭구나.”

에피니키온 후배들의 고전적인 입소문 전략으로 단단히 맹위를 떨쳤다.

인터넷에서는 졸지에 노근기의 황금루가 잡탕밥과 멘보샤 맛집이라는 글이 횡행했다.

에피니키온 부원들은 무서운 속도로 음식을 해치워 매출을 올렸다.

노근기 사장은 그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아무튼 우리 조 선생, 인복은 타고났어.”

그는 음식이 떨어질세라 서둘러 웍을 돌렸다.

대찬도 열심히 빈 그릇을 치우면서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웃음을 머금었다.

건장한 에피니키온 부원들이 먹성 좋게 음식들을 해치우는 걸 보고, 매장의 손님들은 그 앞에 줄을 섰다.

“고객님, 여기도 자리 있어요.”

“우리 집 냉면도 맛있는데!”

“싸장님, 네팔 싸람이 하는 인디안 커리 좀 먹고 가!”

경합에서 뒤질세라 경쟁 업체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손님들은 굳이 황금루의 앞에 줄을 섰다.

어떻게 황금루만 사람이 많은지 궁금증이 동한 까닭이기도 했고, 노근기의 얼굴이 대중에게 친숙한 까닭이기도 했다.

덕분에 노근기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요리에만 열중했다.

이따금 휴대폰으로 자신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영업용 미소까지 걸쳐야 하니, 중노동도 이런 중노동이 없었다.

유백기와 합을 맞추는 포 빌리지의 담당자는 잔뜩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줄 서려면 좀 멀찍이 떨어져서 서요. 남의 영업 방해하지 말고.”

그는 부스 앞을 막은 손님들에게 툴툴거렸다.

그런 그에게 유백기가 다가왔다.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아, 오셨어요? 주말인데 웬일로?”

포 빌리지 담당자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알은체를 했다.

“겸사겸사 데이트도 할 겸, 부스 어떻게 돌아가나 점검도 할 겸 왔어요.”

“애인이시구나. 안녕하세요? 미인이시네.”

포 빌리지의 담당자는 역시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했다.

유백기는 흐뭇하게 자기 애인을 바라보고는 다시 담당자에게 물었다.

“상황 좀 어때요?”

“말도 마요. 황금루 때문에 옴팡 망하게 생겼어요.”

“빌어먹을 자식들.”

유백기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싸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말에 유백기의 애인이 그를 흘끔 올려다봤다.

“오빠,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응? 아, 하하, 아니야. 저쪽하고는 쌓인 게 좀 많아서.”

유백기는 겸연쩍게 웃었다.

하지만 포 빌리지 담당자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가시지 않았다.

“지금 우리 부스 앞 가린 사람들, 전부 황금루 쪽 손님이에요. 짜증나게.”

“뭐라고요? 아니, 근데 왜 남의 부스까지 가로막고 난리야.”

“제 말이 그 말 아닙니까.”

포 빌리지 담당자가 쿵짝을 맞춰 주자 유백기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저쪽에는 뭔 접시들이 저렇게 쌓여 있어?”

“웬 대학생이 한 무더기 왔는데, 처먹는 것도 아주 게걸스럽게 한 트럭을 처먹고 있잖아요. 지금 앉은 지 거의 1시간이 다 됐다니까.”

“개새끼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욕설에 애인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오빠!”

“아, 나도 모르게 나쁜 말을 해 버렸네? 미안, 미안.”

유백기는 세상 살가운 웃음을 지으면서 애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 모습이 체대생의 위장으로 두 번째 잡채밥을 해치우던 마강국의 레이더에 걸렸다.

“어? 뭐야, 저거 유백기 아니야?”

그는 슬쩍 대찬의 곁으로 가서 허리를 쿡쿡 찔렀다.

“야, 대찬아, 저거 유백기 아니냐?”

“어, 맞아.”

“저 새끼가 왜 여기 있어?”

대찬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분이 내 대학 선배이시자 회사 선배님 아니시냐. 같은 팀이라 같은 업무 받았어.”

“아우, 저 재수없는 면상 때문에 밥맛이 뚝 떨어지네.”

“보통 잡채밥 두 그릇에 멘보샤 한 접시 먹고 나면 밥맛이 없어지는 게 정상이야.”

“배가 차서 그런 게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라고, 정서적인! 어라, 애인도 끼고 왔네.”

“주말이니까 흠잡을 일은 아니지.”

“저거 사람 좋은 웃음 짓는 거 봐. 가식 보라고. 역겨워.”

“먹던 거나 마저 먹어. 괜히 시비 붙지 말고.”

“왜? 못 붙을 건 뭐야?”

그 말에 대찬이 마강국을 급히 붙들려 했다.

잽싼 마강국은 그런 대찬의 시도를 진즉에 눈치채고 회피했다.

그는 유백기에게 다가갔다.

“어? 유백기 선배 아니세요?”

“누구세요?”

유백기는 마강국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유백기가 에피니키온에서 쫓겨난 건 대찬의 신입생 시절이었다.

그러니 그보다 한 학번 아래인 마강국의 얼굴을 알 리가 없었다.

모르는 거구가 자신을 선배라고 부르니 유백기는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마강국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선배, 저 에피니키온 26기 마강국입니다!”

“어, 어어……?”

유백기의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 갔다.

그에게 에피니키온은 인생 최악의 굴욕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필래유통에 한 발 걸치게 되긴 했지만, 그걸 빼고는 온통 나쁜 일투성이였다.

그러니 이 순간 에피니키온 후배를 만나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그렇기에 유백기는 마강국에게 시선도 맞춰 주지 않았다.

“어어, 그래. 맛있게 먹어라.”

“아이, 그러지 말고요, 선배.”

“뭐, 왜 그러는데?”

유백기는 마강국의 존재가 한없이 짜증나기만 했다.

마강국은 천진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있는 친구들 다 에피니키온이거든요. 저희 밥 좀 사 주시면 안 돼요?”

“미쳤냐? 내가 왜 일면식도 없는 놈들 밥을 사 줘.”

“에이, 에피니키온 의리가 있죠. 내리사랑 아닙니까, 선배님.”

곰 같은 덩치의 애교가 유백기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유백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내가 왜 에피니키온이야?”

“그럼, 에피니키온 아니십니까?”

“당연히 아니지. 에피니키온 쫓겨난 게 언제…….”

유백기는 그렇게 말하다가 애인의 존재를 뒤늦게 인식하고 입을 합, 다물었다.

마강국은 의뭉한 웃음을 지었다.

“아, 쫓겨나신 거요?”

“돼, 됐어!”

유백기의 애인은 잠자코 있었지만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한창 잘돼 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야생동물 같은 놈 때문에 연애 감정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유백기는 애인의 몸을 휙 돌리며 마강국을 외면했다.

그러자 마강국이 그의 등 뒤에 대고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선배! 밥 안 사 주시면 확 비밀 폭로해 버립니다?”

“비밀?”

마강국의 외침에 유백기보다 그의 애인이 먼저 귀가 쫑긋 섰다.

애인의 비밀만큼 궁금한 게 또 있을까.

그 말에 유백기의 낯이 창백해졌다.

그는 급히 몸을 돌려 마강국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 뭐야?”

“뭐긴 뭐예요, 선배한테 밥 얻어먹고 싶어 하는 후배지.”

“난 너 모른다고. 그러니까 제발 네 갈 길 가.”

“아, 이래 버리면 선배가 창업 경진 대회 때 다른 선배들 뒤통수 치고 돈 빼돌린 거 얘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유백기의 동공에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이 새끼가……!”

감추고 싶은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고 홀라당 까 버리는 마강국을, 유백기는 죽이고 싶었다.

그의 눈에 핏발이 곤두섰다.

그걸 멀찍이서 지켜보던 대찬은 팔짱을 낀 채로 피식 웃었다.

‘대학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남 비위나 배배 꼬는 스킬만 배웠네.’

마강국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유백기에게 사과했다.

“아이고, 정말 죄송해요, 선배. 밥도 못 얻어먹겠네. 좋은 시간 보내세요!”

마강국이 등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려 하자, 눈이 뒤집힌 유백기가 그의 팔목을 거칠게 잡았다.

“이 새끼가 어딜 내빼려고 해!”

“내빼긴 뭘 내빼요?”

마강국은 그를 돌아보며 흉흉한 눈빛을 쐈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눈빛에 유백기의 몸이 움찔했다.

아무리 분노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유백기라지만, 저 거구에 덤볐다간 뼈도 못 추리겠다는 계산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밌는데 조금 더 놀려 줄까?’

잠자코 있던 대찬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찬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유백기에게 말했다.

“선배도 와 계셨어요?”

“…조대찬.”

“옆에는 여자 친구신가 봐요. 안녕하세요? 유 선배 회사 직속 후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유백기의 애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찬의 인사를 받았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불쾌할 뿐이었다.

웬 놈팡이가 갑자기 애인의 과거를 들먹이는 것도 그랬지만, 한없이 착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애인의 추한 면모를 엿보게 된 것이 가장 불쾌했다.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서 아침 일찍 화장하느라 못 잔 잠이라도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백기는 뻣뻣한 얼굴로 대찬에게 물었다.

“저 덩치, 네가 섭외했냐?”

“예? 섭외라뇨. 저 친구 진짜 에피니키온이에요.”

대찬 앞에서 유백기의 목소리는 조금도 정제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지랄하라고 사주한 거 아니냐고.”

“선배, 오늘 토요일이에요. 제가 어떻게 선배 오실 줄 알고 미리 섭외를 했겠습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백기는 맞는 이치보다도 당장의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다.

저 말 안 통하는 덩치보다는 회사라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몰아세울 수 있는 대찬이 훨씬 상대하기 편했다.

“너 지금 뒷돈 먹여서 에피니키온 애들 부른 거지? 내가 모를 줄 아냐?”

“제가 돈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공연한 의혹 만들지 마세요.”

“공연하지 않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어떻게든 이겨 보겠다고 지금 술수 쓰는 거잖아.”

대찬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이 친구들 도움이 아주 없진 않지만, 굳이 후배들한테 손 안 벌려도 넉넉히 이길 거 같은데요.”

“뭐, 뭐야……?”

“그렇게 저 친구들이 탐나면 선배도 후배들 섭외 좀 해 보세요. 아, 섭외할 후배가 없으신가……?”

대찬의 비아냥거림은 마지막에 소의 숨통을 끊는 투우사, 마타도어처럼 유백기의 이성의 끈을 툭 끊어 버렸다.

유백기의 온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이 개, 개새끼가……!”

유백기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퍽!

“윽!”

유백기의 주먹이 제대로 꽂혔다.

그런데 대찬이 아니라 마강국의 턱주가리에 명중했다.

“아이고, 내 턱!”

마강국은 턱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러는 와중에도 후방낙법을 구사했다.

숱한 폭력의 역사에 몸이 단련된 마강국이었다.

유백기의 물주먹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아이고, 내 턱!”

실감 나는 연기에 대찬도 일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다 눈을 찡긋거리는 마강국을 보고 그제야 연기임을 실감했다.

대찬도 애드리브에는 미숙한 편이 아니었다.

곧바로 마강국의 보조를 맞춰 주었다.

“강국아! 괜찮아?”

대찬은 마강국의 뺨을 가볍게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숨 쉴 수 있어? 뼈 부러진 거 아니야? 구급차 부를까?”

“아으으… 몰라……. 아파……. 나 죽네, 나 죽어!”

매장은 삽시에 아수라장이 됐다.

손님들은 오랜 대기에 지루하던 차였다.

그들은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있다는 싸움 구경을 하려고 삽시에 몰려들었다.

개중 몇몇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백기는 식은땀이 흘렀다.

대찬은 엉거주춤하는 후배들을 향해 말했다.

“야, 뭐 해! 강국이 데리고 빨리 병원으로 가!”

“네, 네! 선배!”

식사를 다 마친 후배들은 때마침 쓰러진 마강국을 들쳐 메고 퇴장했다.

마강국은 축 늘어져 퇴장하면서도 유백기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고, 고소할 거야……!”

유백기는 정신이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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