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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79화 (78/556)

난 할 수 있어 79화

대찬은 노근기의 막힌 운수가 뚫리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을 뿌듯하게 여겼다.

“노근기 셰프가 운영하는 식당이 황금루야. 얼마 전에 우리 회사 근처에 2호점을 냈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는 건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출점하려는 건 아닌 거 같고.”

허운이 대찬에게 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노근기 셰프 얘기를 왜 하는데?”

“노근기 셰프가 원웅이랑 나하고 안면이 좀 있으시거든.”

“지인 DC라도 받는 사이라는 거야?”

“DC 받지. 전액.”

그 말에 허운과 유채경의 동공이 커졌다.

서원웅은 씩 웃으면서 티켓 1장을 보여 주었다.

‘황금루 평생 무료 이용권.’

“펴, 평생?”

“우리도 염치란 게 있어서 뻔질나게 드나들진 않을 거야.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유세 좀 떨어도 괜찮겠지.”

“어떻게 했길래 노근기 셰프가 평생 공짜 밥을 주겠대?”

서원웅이 제 공로인 양 어깨를 으쓱이며 한쪽 손을 대찬의 어깨에 턱 올려놨다.

“말하자면 길어요. 요약하면, 대찬이가 셰프님 목숨을 살려 준 거나 다름없어요.”

공치사를 다 듣고 나서야 대찬은 겸손을 떨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암튼 오늘은 부담 없이 맘껏 먹어.”

그렇게 정성 어린 코스 요리가 상 위에 올랐다.

본점보단 못하지만 역시 명불허전인 음식을 4인방은 여유롭게 즐겼다.

서원웅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동기들에게 말했다.

“대찬이, 허운 씨, 채경 씨, 정말 고마워요. 제 동기여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몰라요.”

그러자 허운은 서원웅의 어깨에 팔을 걸며 말했다.

“그럼 원웅 씨도 이제 나 형이라고 불러 주기다?”

“그럴게요, 형.”

유채경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나도 오늘부터 원웅이 오빠라고 부를게요! 오빠도 말 편히 해요.”

“그, 그럴까? 채경아.”

역시나 허운이 또 끼어들었다.

“나도 이제 말 편하게 한다? 채경아?”

“허운 사원님한테는 허락한 적 없는데요.”

“그래! 너는 실컷 허운 사원님이라고 불러라. 나는 말 놓을 거니까!”

“아씨, 말 놓는 거 허락 안 했다고!”

“어, 너도 놨네. 쌤쌤이다.”

“놓지 말라고요!”

“응, 낙장불입.”

투닥거리는 둘을 보고 대찬과 서원웅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양복을 빼입은 4인방은 시끌벅적하게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양동식 부장이 부서원들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막 자리에 앉은 대찬도 바로 엉덩이를 떼야 했다.

부서원들이 우르르 회의실로 몰려갔다.

대찬이 의아한 얼굴로 허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래?”

“그러게. 이렇게 떼로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참새끼리 재잘거려 봤자 봉황의 뜻을 어찌 알 것이며, 도라지끼리 모여 봤자 산삼의 발끝에 어찌 미치겠나.

둘은 이러쿵저러쿵 더 말하지 않고 회의실로 향했다.

신입 사원인 대찬의 자리는 말석이었다.

넙대대한 양동식 부장의 얼굴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는 위치였다.

양동식 부장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사항을 전달하려고 부서원들을 다 모이게 했네.”

그러자 1팀의 구용표 과장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최근 백화점 매출이 경쟁사보다 뒤처진다는 말들은 다들 들었을 거야.”

이에 신입을 제외한 부서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오래된 고질병인 듯했다.

양동식 부장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우리 대외협력부에도 따로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어.”

“관련해서 여러 업무 진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원활한 신규입점 위해서 정치권에 로비도 하고, 지역 유관 단체와 좋은 관계 구축하고…….”

“그거 외에 별도로 진행하라고 지시하셨어.”

“뭡니까?”

부서원들의 시선이 양동식 부장의 입술로 집중됐다.

양동식 부장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백화점 내 입점할 프랜차이즈 요식업체를 찾으라는 지시야.”

그러자 부서원들이 술렁거렸다.

똑 부러지는 한태윤 대리가 부서원들의 공통된 의문을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거라면 영업부에서 처리할 일 아닙니까? 그걸 왜 대외협력부에 지시하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렇지. 원래는 영업부 소관인데… 어쨌든 업체 물색하는 것도 일종의 대외협력이니까 이번에 우리 쪽에서 맡아서 해 보라고 하시더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군요.”

“뭐, 어쨌든 사장님 지시사항이니까 따라야지, 별수 있나.”

구용표 과장은 슬그머니 2팀 쪽을 바라봤다.

“저희 1팀은 지금 전 직원 봉사 프로그램 구축하느라 바쁘고, 3팀은 대관 업무 수행 중이니 2팀이 맡아서 하면 되겠군요.”

그러자 2팀 팀장인 오 과장은 구용표 과장에게 눈총을 쐈다.

대놓고 업무를 떠넘기니 고운 시선이 나올 수가 없었다.

3팀 팀장인 송희근 과장도 구용표 과장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게 이치상 맞기는 하네요.”

하지만 양동식 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 업무는 대리급 밑에서 진행하라고 지시하셨어.”

“예? 대리급 밑에서라뇨?”

부서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애초에 영업부 소관의 업무를 대외협력부로 떠넘긴 것도 그렇거니와, 백화점의 고질적인 문제라면서 대리급 이하에 이 일을 지시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찬 역시 미간을 찌푸렸다.

‘대리급 밑이면 기껏해야 주임 몇 명하고 나 포함 신입 사원이 전분데.’

부서원들의 기류가 좋지 않자 양동식 부장이 첨언했다.

“지금까지 늙은 간부들이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는 바람에 일이 잘 안 된 것 같다는 말씀이지.”

“그래서 젊은 사원들 감각을 믿어 보겠다는 뜻입니까?”

구용표 과장의 질문에 양동식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리급까지 빼 버리고 풋내기들끼리…….”

“그래도 어쩌겠나, 사장님 지시니까 따라야지. 말씀은 대리급 밑에서 진행하라고 하셨지만, 선배들이 눈치껏 백업해 줘야 할 거야.”

천원석 대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럼 적절한 업체를 선별해서 보고서 작성하면 되겠습니까?”

“기본적인 포맷은 그래. 그런데 사장님이 조금 특이한 방식을 원하셔.”

천원석 대리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특이한 방식이요?”

“어. 각자 개인이 업체를 물색해서 한 달간 임시 영업을 해서 경합을 하는 거야.”

“겨, 경합이요?”

점입가경이었다.

“그 실적을 토대로 업체를 선정하시겠다는군.”

한태윤 대리가 다시 나섰다.

“백화점 매출을 끌어올릴 만한 업체라면 규모가 꽤 번듯할 겁니다.”

“그렇겠지.”

“아쉬운 소리를 해도 올까 말까 할 텐데요.”

“뭐, 그럴 거야.”

“한 달씩이나 임시 영업을 하고 경합까지 한다면 응하는 업체의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충분한 검증 기간을 거쳐야 자본이 허비되지 않는다는 게 사장님 말씀이야.”

“아무리 그래도…….”

양동식 부장은 참을성 있게 한태윤 대리의 반론을 들어 주지 않았다.

“경합에서 이긴 업체는 백화점 전체 점포에 입점하게 될 거야.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이 일을 맡은 실무자들에게도 큰 책임이 따를 거라고 하셨어.”

“부장님!”

“아무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이상.”

양동식 부장은 그렇게 말하고 회의를 파했다.

어차피 고된 일이야 아랫것들이 도맡아할 것이다.

지시사항을 전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일은 끝났다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진 부서원들 중 흡연자들은 간이 정원으로 직행했다.

거기서 삼삼오오 모여 담배 연기를 위로 올려 보냈다.

특히 직접적으로 짐을 떠안은 주임, 신입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허운은 담배를 급하게 피우며 대찬에게 말했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 돼?”

“낸들 알겠어. 막막할 뿐이지.”

대찬은 마른 웃음을 지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답답한 마음에 대찬을 따라온 서원웅의 얼굴도 어두웠다.

대찬은 담배를 피우면서 흘끗 건너편의 유백기를 바라봤다.

‘뭐야, 유백기 표정은 왜 저렇게 천하태평이야?’

유백기 역시 이 업무의 실무자였다.

그런데 유독 그의 표정이 활짝 펴져 있었다.

대찬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담배를 문 채로 유백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순간, 유백기와 대찬의 시선이 맞닥뜨렸다.

대찬을 본 유백기는 입술을 벌리며 흐흐 웃었다.

‘뭔데 저렇게 자신만만하냐고…….’

그걸 고민하다가 필터 끝까지 담배가 탔다.

대찬은 꽁초를 버리고 천천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대찬은 퇴근길에 서원웅을 따로 만났다.

순두부찌개로 저녁을 때우면서 그가 말했다.

“원웅아, 들어 봐라.”

“응?”

“이상한 점 하나, 영업부 일을 일부러 우리 부서로 넘겼다.”

“응.”

“이상한 점 둘, 중요한 일이라면서 되도 않는 명분을 들이대고 일을 주임하고 사원급에게만 넘겼다.”

“응.”

“이상한 점 셋, 굳이 필요도 없는 임시 영업, 경합을 연다.”

“응.”

“이상한 점 넷, 뭣도 모르는 신입 사원한테 일을 시켜 놓고 그 책임을 막중하게 문다고 한다.”

“응.”

“이상한 점 다섯, 당연히 우리랑 마찬가지로 죽상이어야 할 유백기 표정이 너무 해맑다.”

“그래?”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암만 해도 이상한 거 천지거든. 사장이 그렇게 감각 없는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야.”

“그럼 모종의 이유가 있을 거란 뜻이야?”

“응. 뭔가 노리는 바가 있는 게 분명해.”

“그게 뭘까?”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대찬은 말하느라 다 식은 순두부찌개를 밥에 슥슥 비벼 먹었다.

다음 날부터 주임과 사원들은 기존의 업무에서 모두 열외되었다.

각 팀의 팀장들은 그들에게 사장의 특별 지시사항을 이행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라고 명령했다.

우민호 주임이 튕겨져 나간 후, 대외협력부에 남은 주임은 유백기를 포함해 셋이었다.

거기에 신입 사원 넷을 더해 도합 7명이 각자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양동식 부장은 일주일 안에 업체를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필래유통 소유의 복합 문화시설인 필래플렉스에서 한 달간 임시 영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각자는 업체를 물색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주임과 사원만 진행하는 업무였지만, 그들의 상사들은 음으로 양으로 지원에 나섰다.

어떻게든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야만 했다.

사장의 특별 지시사항이라는 딱지가 붙었는데도 어물쩍 대충 넘기려 든다면 앞으로의 출세 가도에 빨간불이 들어올 터였다.

1팀의 막내인 유채경은 1팀 상사들의 지원을 받았다.

구용표 과장의 지시하에 1팀 직원들은 모두 유채경에게 달라붙었다.

같은 1팀인 서원웅에게는 어떤 지원도 없었다.

의도적인 배제였는데, 서원웅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서청수 회장은 필래그룹 본사의 직원들을 가동했다.

그의 비서실장은 은밀히 지시를 하달해서, 서원웅을 위한 최고의 요식업 프랜차이즈 물색에 나섰다.

한편, 술로 맺어진 끈끈한 우애를 과시하는 2팀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2팀의 상사들은 곽 주임과 허운을 공평하게 도왔다.

게다가 그들이 허구한 날 퍼먹던 술도 약으로 쓸 데가 있었다.

이러저러한 음식들에 조예가 깊어지고, 요식업 관련 인맥도 제법 넓은 축에 속했다.

그러니 그들도 형편이 나쁘지는 않았다.

이제 문제는 3팀이었다.

3팀에서 업무에 투입되는 인원은 대찬과 유백기였다.

그런데 어째 돌아가는 모양새가 수상했다.

송희근 과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일단 우리 팀은 유백기 중심으로 움직이자고.”

대찬에게는 어안이 벙벙한 말이었다.

그런데 천원석 대리는 그런 송희근 과장의 말을 넙죽 받았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죠?”

한태윤 대리만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대찬 씨는 어떡합니까, 그럼.”

그에 송희근 과장이 둘러댔다.

“하나로 모아서 가는 게 좋아. 어차피 승자는 1명이야. 괜히 전력을 분산해서 둘 다 어중간한 등수 하느니 한쪽이 1등 하고 한쪽이 꼴등하는 편이 좋다고.”

천원석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합리적인 전략이에요. 더군다나 우리 팀은 일도 많아서 둘 다 도와줄 수가 없어요.”

한태윤 대리는 단단히 속이 뒤틀린 표정이었다.

“그럼 조대찬 씨랑 유백기 씨 둘 중에 누굴 도울지 공평하게 골라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천원석 대리가 피곤하다는 듯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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