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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할 수 있어-65화 (64/556)

난 할 수 있어 65화

“오, 거기. 이름 밝히고 말씀을 해 보시죠.”

“네! 저는 오태호라고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감사의 말씀?”

“네! 지금까지 공부만 하고 체력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정독 시간과 야간 산행을 계기로 체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청규의 얼굴에 웃음기가 떴다.

“그렇습니까?”

“예!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오태호 사원은 아주 바람직하군요. 여러분, 모두 오태호 사원에게 박수를 보내 줍시다.”

그러자 신입들은 오태호를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오태호의 어깨가 절로 으쓱 올라갔다.

“맞습니다. 이게 바로 신입 연수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도 오태호 사원처럼 많은 가르침을 받아 가길 바랍니다.”

대찬 일당은 일제히 혀를 찼다.

“저 새끼는 밸도 없어.”

허운이 작은 목소리로 대찬에게 중얼거렸다.

“확 마음 같아서는 질러 버리고 싶네요.”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진짜 해 봐요.”

대찬의 말에 허운은 펄쩍 뛰었다.

“미쳤어요? 입사하자마자 잘리게?”

“에이, 이런 걸로 어떻게 잘라요. 대기업 체면이 있지.”

“안 잘려도 거의 왕따 당할 거 아니에요! 사장한테 대든 신입을 누가 가까이 하겠어요.”

“한번 시험해 볼까요?”

대찬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자 허운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지금?”

대찬은 대답하지 않고 실실 웃기만 했다.

오태호의 답변에 썩 만족한 서청규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자, 또, 또 할 말 있는 신입 있나?”

그때 대찬이 번쩍 손을 들었다.

서청규가 그쪽을 보며 씩 웃었다.

“그래요, 거기.”

“조대찬이라고 합니다.”

대찬이 손을 들자 허운과 서원웅, 유채경은 일제히 놀랐다.

대찬에게 적잖이 무모한 면이 있는 걸 아는 그들이었다.

설마 서청규의 앞에 대고 신입 연수의 부조리함에 대해 성토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정말 들이받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이 들었다.

한편, 대찬의 이름을 들은 서청규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서원웅의 돌쇠 노릇을 하라고 서청수가 붙여 준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의 이름이 조대찬이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요, 조대찬 사원……. 할 말이 뭐지?”

“신입 연수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불합리하고 부조리하고 몰상식한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불합리? 부조리? 몰상식……?”

그 말에 신입들의 모골이 일제히 송연해졌다.

미친 짓이었다.

허운은 잔뜩 목소리를 죽인 채 중얼거렸다.

“조대찬 씨, 나 때문에 그런 거면 제발 그만둬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응? 제발 그만해요!”

그러나 대찬은 허운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신입들의 시선이 대찬에게로 쏠렸다.

오태호의 사탕발림으로 한껏 들떴던 서청규의 기분이 시궁창에 처박혔다.

본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더 아픈 법이었다.

서청규는 기분을 그야말로 잡쳤다.

“뭐가 불합리고 부조리고 몰상식이라는 거지?”

“정독, 그리고 야간 산행이 그렇습니다.”

“논리적인 근거를 대야만 할 걸세.”

“네. 창업주 회장님의 경영 이념을 신입 사원으로서 귀담아들을 필요는 있습니다. 때문에 정독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청규의 얼굴이 점점 표독스러워졌다.

“하지만 팔을 앞으로 나란히 뻗고 기마 자세에서 낭독하는 건 체벌에 가깝습니다. 요즘 군대에서도 이러지 않습니다.”

“자네는 귀를 좀 열고 다닐 필요가 있겠군. 방금 자네 동기가 한 말 못 들었나? 체력이 중요하다고. 아니면 일부러 안 듣는 건가?”

“단기간의 얼차려가 아니어도 체력을 기를 방법은 많습니다. 성인에게 이런 체벌을 강요하는 건 전통을 빙자한 군기 잡기에 불과합니다.”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대찬의 당돌한 목소리가 퍼질수록 서청규의 얼굴은 더욱 구겨졌다.

인사팀 직원은 아찔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하, 하하. 자, 간담회는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것으로…….”

“아직 말 안 끝났습니다.”

대찬은 단호하게 인사팀 직원의 무마를 차단했다.

그는 서청규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얼차려 뒤의 야간 산행은 그 자체로 가혹 행위일 뿐더러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습니다. 실제로 제 동기 역시 산행 중 발목을 다쳤습니다.”

“…….”

서청규의 얼굴에 노기가 점점 짙어졌다.

대찬은 말을 끊지 않았다.

“부상자가 발생할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인솔자 선배님께서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저희의 힘만으로 숙소까지 와야만 했습니다.”

“조대찬 씨이……!”

허운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이제 파랗게 질려 갔다.

“좋은 취지로 간담회 자리를 마련해주셨으니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음 기수부터는 이런 구시대적이고 야만적인 일정은 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구, 구시대적? 야만적……?”

서청규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제 표현이 거칠었을지는 몰라도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너그러운 답변 부탁드립니다.”

대찬은 그것으로 말을 종결했다.

서청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얼떨떨했다.

세상천지 어느 신입 사원이 저따위의 싸가지로 사장 앞에서 뻗대겠는가.

그것도 신입 연수에서.

대찬의 말에 좌중은 모두 경악했다.

그 자리에서 얼굴이 질리지 않은 건 대찬이 유일했다.

“…뭐, 안 좋은 부분이 있었다면 개선하는 게 좋겠지.”

서청규는 떨떠름한 얼굴로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조대찬 사원 역시 상황을 다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군. 정독 시간과 야간 산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하네.”

서청규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간담회가 끝나고 아침 식사를 하러 가면서 허운이 난리를 쳤다.

“조대찬 씨! 어쩌자고 이랬어, 응? 내가 진짜 조대찬 씨 때문에 못 살아!”

“왜요, 마음 같아서는 확 질러 버리고 싶다면서요. 허운 씨 대신해서 질러 줬는데 왜 그래요? 너무 약했나?”

“아니, 누가 질러 달래요? 사장님 면전에다 대고 똥물을 뿌려 버리면 어떡해!”

먼저 줄을 선 대찬은 식판을 허운에게 건네며 툴툴거렸다.

“똥물은 무슨. 내가 틀린 말 했나?”

“미쳤어, 진짜.”

“아침부터 시끄러워 죽겠네. 됐고, 밥이나 받아요.”

대찬은 좀 전의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판 가득 밥을 펐다.

서청규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건 우발적인 결심이 아니었다.

필요에 의한 계산적인 행동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담배를 피우러 가는데, 평소 흡연을 하지 않는 서원웅이 쪼르르 대찬을 따라왔다.

“왜 그랬어? 당장이야 시원은 한데 나중에 후환이 닥칠 텐데…….”

“허운 씨만으로도 질리는데 너까지 또 그 소리야?”

“걱정되니까 그러지.”

대찬은 웃으면서 서원웅을 바라봤다.

“어차피 후환은 예정된 수순이었어. 내가 그렇게 안 했어도.”

“예정됐다니?”

“네가 필래유통에 떨어질 때부터 그럴 운명이었다구. 사장이 널 좋게 볼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대찬은 담뱃불을 붙이려다 기관지가 약한 서원웅을 위해 담배를 도로 담뱃갑에 집어넣었다.

“필요 있지.”

“어째서?”

“서청규 사장은 온갖 방법으로 우릴 탄압하려 들 거야. 그 전에 미친개처럼 이빨을 드러내 줄 필요가 있었어.”

“그걸 명분으로 삼을지도 모르잖아.”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명분으로 삼아 주길 바란 거야.”

“왜?”

“공개된 자리에서 누가 봐도 명확한 부조리를 지적했어. 만일 우리가 푸대접 받는다면 누구나 다 오늘 일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할 거야.”

“오늘 같은 일이 없었으면 딱히 문제 제기를 할 근거가 없었을 테고?”

“그렇지. 최악의 상황에는 노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청규 사장이 우릴 해코지할 때마다 오늘 일이 거론될 거야.”

서원웅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찬은 그를 흡연실 밖으로 이끌면서 조용히 말했다.

“서청수 회장님께도 어필할 수 있어.”

“아버지한테?”

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필래유통으로 떨어진 이상, 회장님께 우리의 진가를 보여 드려야 해. 회장님께 어필하는 거야. 주눅 들지 않고 잘 버틸 거라고.”

“말이야 쉽지만, 너 배짱 하나는…….”

서원웅은 웃으며 혀를 내둘렀다.

대찬도 따라 웃었다.

“이런저런 이유는 다 집어치우고서라도 못 견딜 정도로 짜증났어.”

“암튼 보면 볼수록 별종이야, 너.”

“너한테는 마냥 나쁜 일은 아닐 거야. 네 옆에 미친개 한 마리는 있어야 함부로 못 대하지.”

“틀린 말은 아니네.”

서원웅은 선선히 대찬의 말에 동의했다.

흡연실을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길, 대찬은 동기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들이 오묘했다.

곁눈으로 슬금슬금 대찬을 살피는데, 언뜻 피하는 듯했고, 말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도 같았다.

그들의 이중적인 심정을 대찬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심중에 있던 말을 대신 해 줬으니 후련하기도 하고, 격려의 말이나마 한마디 보태고 싶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괜히 대찬과 얽혔다가 초장부터 신세를 망칠까 두려운 것이다.

대찬은 굳이 그들의 시선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았다.

“진짜 살다 살다 조대찬 씨 같은 미친놈은 처음 봤어요.”

“이젠 아무렇지 않게 내놓고 욕을 하시네.”

“이건 칭찬 반, 욕 반이에요.”

숙소로 돌아온 대찬을 보고 허운은 턱을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흡사 진찰하는 의사 같았다.

“조대찬 씨는 진짜 미친 거 같아.”

“미친 거 맞으니까 확 물기 전에 그만해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겁니까? 분노조절장애, 뭐 그런 거예요?”

대찬은 허운 쪽으로 눈을 흘겼다.

“맞아요. 분노조절장애 맛 좀 보여 드릴까?”

“사양할게요.”

허운은 그렇게 말하고 대찬을 빤히 보더니 픽 웃었다.

대찬이 불만 가득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왜 웃어요?”

“멋있어서. 입만 나불대는 종자는 많이 봤는데, 대찬 씨처럼 막 지르는 사람은 처음 봤거든.”

“앞으로 종종 보게 될 겁니다.”

“크, 존경합니다.”

대찬은 허운의 실없는 반응에 웃음을 머금었다.

유채경도 대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고마워요, 대찬 씨.”

“네? 뭐가요?”

“솔직히 어제 좀 억울했거든요. 다친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땅히 케어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대찬 씨가 말 안 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거잖아요.”

“채경 씨도 그랬지만 사실 저도 화가 많이 났었어요. 그런 데다 사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퓨즈가 나간 거지, 뭐.”

유채경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멋있었어요.”

“예? 아뇨, 뭐…….”

대찬도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허운은 심술 난 얼굴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10분 후에 교육 시작해요. 움직입시다.”

어느덧 2주간의 연수가 끝났다.

대찬의 조도 해산했다.

허운은 코를 훌쩍이며 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유통이 하도 지점이 많아서 그럴 확률은 낮다고 봐야죠. 나중에 동기 모임, 뭐 이런 거 통해서 만날 수 있겠죠.”

“그렇죠? 암튼 만나서 좋았어요.”

허운은 대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찬은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저도 2주간 정들었는데 헤어지려니 아쉽네요.”

“아마 한 이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제 이름이 허운이었나, 허준이었나도 헷갈릴걸요.”

“에이.”

“원래 훈련소에서도 죽고 못 살 것처럼 하다가 자대 배치받으면 홀라당 까먹어 버리잖아요.”

“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예의상으로라도 아니라고 해 줄 법도 하지 않나요?”

대찬은 킥킥 웃었다.

“각자 자리 잡고 여유 좀 생기면 한번 모입시다.”

대찬은 유채경을 바라보면서도 말했다.

“채경 씨도 모쪼록 잘 풀리길 바랄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그들은 재회를 다짐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재회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찾아왔다.

인사팀에서 신입 사원들을 각 부서에 배치했다.

대찬과 서원웅 역시 배치를 통보받았다.

“대외협력부.”

대찬은 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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