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할 수 있어 61화
대찬은 딱히 받아칠 말이 없어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이어 갈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입은 쉬질 않았다.
“대찬 씨는 인턴 경험이 없어도 당당해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지만, 대찬 씨랑 같이 온 분 있잖아요.”
서원웅을 의미했다.
“네, 그런데요?”
“그분은 어째 겉보기에도 허약해 보이고, 너무 긴장하시는 게…….”
“떨어질 거 같아요?”
“초면에 죄송하지만 그런 예감이 팍팍 드네요.”
“그렇군요.”
대찬이 그다지 대화에 열의를 보이지 않음에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대찬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저는 허운이라고 합니다.”
“예. 조대찬입니다.”
대찬은 얼결에 악수를 받으며 통성명까지 했다.
허운은 자연스럽게 대찬의 옆에 앉았다.
‘넉살도 좋다.’
대찬은 내심 생각했다.
허운은 대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격증은 많이 따 놓으셨어요?”
“아, 운전면허하고…….”
“세상에, 무슨 운전면허가 자격증이에요.”
대찬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뭐, 그거랑 컴퓨터활용능력 정도…….”
“겨우 그게 다예요?”
‘겨우’라는 말이 대찬의 신경을 쿡쿡 건드렸다.
그러나 굳이 옥신각신할 필요는 느끼지 못해 대찬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관뒀다.
“뭐, 겨우라면 겨우죠.”
“조대찬 씨가 잘됐으면 좋겠네요. 열정 하나만 갖고 지원하신 거잖아요? 순수해서 좋네요. 낭만도 있고. 파이팅!”
실소가 터지려는 걸 대찬은 입술을 악물어 겨우 참았다.
그런데 허운의 표정이 정말 응원하는 것 같아 불쾌하진 않았다.
그때 면접장 안에서 누군가 나와 응시자들에게 말했다.
“면접 수험번호 A11005번부터 9번까지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대찬은 그 번호 사이에 포함돼 있었다.
허운과 더 나눌 말도 마땅치 않은 차에 잘됐다 싶었다.
대찬은 몸을 일으켰다.
“원웅이도 들어와야 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대찬은 화장실 쪽으로 흘끗 고개를 돌렸다.
그때 면접 안내를 했던 직원이 대찬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어, 조대찬 씨!”
직원의 알은체에 대찬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본사로 돌아가셨다더니 인사팀에 발령 받으셨나 봐요.”
“네! 맞아요.”
대찬이 한창 웜샤인과 협업할 때 안면을 튼 직원이었다.
직원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회장님이 왠지 팍팍 밀어주실 거 같은데요? 인사 담당관 분들은 알고 계시겠죠?”
“아뇨, 아마 아닐 겁니다. 일절 도움은 안 받겠다고 했거든요. 정정당당하게 들어가려고요.”
대찬의 말에 직원은 빙긋 웃었다.
“역시 멋지네요.”
“아, 그런데 지금 원웅이도 와야 하는데…….”
그때 서원웅이 허겁지겁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큰일 날 뻔했다!”
서원웅은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대찬은 그에게 가벼운 핀잔을 건넸다.
“하마터면 점수 팍 깎일 뻔했잖아.”
“그러게.”
서원웅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서원웅을 본 직원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서원웅 님도 오셨군요! 진즉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니, 님이라뇨. 너무 낯간지럽네요…….”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기대가 크다고 하시더라고요! 모쪼록 면접 잘 보시길 바랍니다!”
직원의 목소리에는 잔뜩 군기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도 참, 기대까지는 하시면 안 되는데…….”
서원웅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면접장 안으로 들어갔다.
대찬은 허운을 돌아봤다.
허운은 직원이 대찬에게 인사를 건넬 때부터 얼떨떨했다.
회장님 어쩌고 말이 나올 때부터는 낯빛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험담했던 서원웅의 정체를 알고는 아예 넋이 나가 버렸다.
대찬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허운 씨도 들어갑시다.”
“네? 아, 네!”
대찬은 그와 함께 면접장으로 들어가면서 웃었다.
“서로 좋은 결과 있었으면 좋겠군요. 파이팅!”
허운은 멍한 시선으로 대찬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무슨 꼴값을 떤 거지…….”
그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찬은 서원웅과 나란히 착석했다.
인사 담당관들의 모습은 엄격함을 넘어서 험악하기까지 했다.
‘필요 이상으로 딱딱하신데.’
흔히 말하는 압박 면접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피면접자의 인격을 완전히 깔아뭉개는, 비인간적인 방식이었다.
피면접자를 궁지로 몰아 순발력과 담력을 시험한다는 명분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노가 치솟았다.
감성이 예민한 이들은 현장에서 눈물까지 쏟는다.
대찬은 말아 쥔 주먹을 무릎에 올려놓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가장 왼쪽의 허운부터 면접이 시작되었다.
“허운 씨, 동생 있네요? 사이 좋아요?”
“네. 나쁘진 않습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 중인데 근무 시간에 연락이 와. 동생이 차에 치여 상태가 심각하대. 그럼 어떻게 할래요?”
“어, 어떻게라뇨?”
“계속 업무 볼래요, 아니면 동생 보러 갈래요?”
“…다, 당연히 업무 봐야죠.”
면접관은 인상을 썼다.
“동생 생각 하느라 여념이 없을 텐데 일이 제대로 되겠어요? 무슨 상태인지 직접 가서 보긴 해야지. 안 그러면 일도 당연히 개판으로 되지 않을까.”
“그, 그래도 근무 시간이니…….”
“나 같으면 오전 반차만 쓰고 병원으로 갈 겁니다. 두 눈으로 상태 확인하고,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한 다음에 회사로 복귀하겠어요.”
“…….”
면접관은 입술을 비틀었다.
“지금 허운 씨 대답은 회사에도, 가정에도 이롭지 않습니다. 덮어 놓고 회사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으면 장땡입니까?”
“죄, 죄송…….”
면접관은 죄송합니다, 다섯 글자 말할 여유도 그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거, 아주 회사를 우습게 보는 겁니다. 어떻게든 시간만 때우면 월급 나온다는 허술한 마인드로 무슨 일을 어떻게 잘하겠다는 겁니까? 능동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은 직원을 우리가 왜 채용해야 하죠?”
“죄, 죄송합니다!”
면접관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죄송하다는 말보다 침묵이 차라리 나았다.
뽑지 않겠다면 그러라고 하면 그만이다.
스스로 죄인이 될 이유가 조금도 없다.
죄송하다고 말해서 뽑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못해 줄 것도 없다.
하지만 ‘죄송합니다.’는 ‘할 말이 없습니다.’랑 발음은 다르되 뜻은 같았다.
할 말 없는 피면접자는 그대로 탈락이다.
아마 면접관이 말한 모범 답안을 허운이 그대로 읊었어도 문제가 됐을 것이다.
어떻게든 궁지로 몰아넣는 게 면접관의 임무였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면접관은 조자룡 헌 창 쓰듯 피면접자의 모가지를 간단히 날려 버렸다.
압박 면접은 진행될수록 논리와 이성을 상실했다.
허운 다음으로 타깃이 된 응시자는 더 큰 모욕을 당했다.
“이방호 씨, 살이 좀 심하게 쪘는데 몇 킬로 나갑니까?”
“네? 아, 저 96킬로…….”
“170도 안 돼 보이는데 좀 심하지 않아요?”
“…빼겠습니다.”
“아, 다른 게 아니고 그렇게 살이 뒤룩뒤룩 찌면 인상부터 손해 보고 들어가거든. 사람이 좀 우습게 보인달까?”
“빼겠습니다.”
“뺀다고 말해서 빠지면 여태 못 뺐을 리가 없지. 다이어트, 이런 것도 의지의 문제예요. 의지가 없으니까 그 지경이 되는 거야.”
“그 지경…….”
이방호의 얼굴에 점점 그늘이 드리워졌다.
“삶에 치열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게 있어. 반성 좀 해요. 살도 제대로 못 빼는 사람이 어떻게 일을 잘하겠어.”
“알겠습니다…….”
면접관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말 들으면 화나지 않아요?”
“화…….”
난다고 할 수도 없고, 안 난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럼 뭐라고 그럴듯한 근거를 대서 반박을 해야지. 그저 넙죽넙죽 알았다고만 합니까? 젊은이가 기백도 있고 패기도 있고 그래야지.”
“…….”
뭐라고 바득바득 받아쳤으면 입사 후 상사가 될 사람한테 그렇게 예의가 없어도 되겠느냐, 무례한 사람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고 했을 것이다.
면접관은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이방호를 한동안 응시했다.
면접관의 시선이 이제 대찬에게 옮겨 갔다.
대찬에게도 여지없이 칼날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조대찬 씨.”
“네.”
“이 나이 되도록 인턴 경험 한 번이 없네?”
“네. 하지만 필래그룹 소속의 자회사인 웜샤인과 오래 협업해 왔습니다.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타사 인턴 경험보다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쪽 생각이고.”
면접관은 그렇게 퉁을 놓고 말을 이었다.
“협업이라는 게 동아리 말하는 거지? 그거 순 애들 장난 아니에요? 회사랑 동아리는 엄연히 별개야. 회사는 엄격한 규율, 수직적 질서가 있는 집단이거든.”
“수영실업이라는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신입 사원으로서의 자세는 충분히 함양했습니다.”
면접관은 피식 웃었다.
비릿한 미소가 심기를 건드렸다.
“그 ‘충분히’라는 건 누가 결정합니까?”
“외람되지만 주변으로부터 제 몫은 해낸다는 평가를 두루 들었습니다.”
“주변? 그 주변이 누군데? 동아리 선배? 아니면 그 코딱지만 한 회사 사장? 그만 한 사람한테 좋은 말 몇 마디 들었다고 우쭐하는 겁니까?”
“우쭐하진 않습니다만, 저는…….”
“아, 됐습니다.”
면접관은 대찬의 말을 싹둑 잘랐다.
대찬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에 빈정이 상해 버리면 저들의 의도대로 끌려가는 것이다.
면접관은 서원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서원웅 씨.”
“네.”
“입사하면 잘할 자신 있죠?”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뭐든지 열심히 하겠다는 그 마인드,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은 서원웅 앞에서는 한없이 자비로워졌다.
그도 서원웅이 서청수 회장의 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실 앞에서 면접관의 칼날은 무디고 무뎌졌다.
“서청수 회장님으로부터 회사의 중책을 소화할 만하다는 평가를 들은 걸로 압니다. 이른 나이에 벌써 회장님의 인정을 받았다니, 대단하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감사합니다.”
면접관은 대찬에게 다시 사나운 눈빛을 뿌렸다.
“조대찬 씨, 이 정도는 돼야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조대찬 씨 주변에 있는 나부랭이들이 아니라.”
대찬은 피식 웃었다.
면접관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지금 이 순간, 피면접자의 생사여탈권은 면접관에게 있다.
그런 주제에 감히, 웃어?
면접관의 밸이 뒤틀렸다.
“지금 웃었습니까?”
“네, 웃었습니다.”
대찬의 대답에 면접장의 공기가 싸해졌다.
그와 나란히 앉은 응시자들의 동공이 커졌다.
‘미친놈! 어쩌자고…….’
그것이 응시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면접관은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대찬을 노려봤다.
“뭐가 그렇게 웃기지?”
“면접관님이 말씀하신 제 주변의 나부랭이들에 서청수 회장님도 포함되거든요.”
“뭐, 뭐……?”
서릿발 같던 면접관의 표정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입사 지원을 먼저 권해 주신 분이 다름 아닌 서청수 회장님입니다.”
“그, 그럴 리가…….”
대찬의 말이 블러핑이라고 믿고 싶은 면접관의 소망을 서원웅이 즉시 깨 버렸다.
“네. 회장님께서는 저보다 오히려 조대찬 씨를 더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
면접관은 그제야 어렴풋이 들었던 풍문을 떠올렸다.
서청수 회장의 아들인 서원웅에게 친한 고등, 대학 동문이 있으며, 그 동문이 짧지 않은 기간 필래와 협업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잘못 건드렸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에 스쳤다.
대찬은 굳은 표정으로 면접관을 노려봤다.
“굳이 회장님을 들먹이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면접관님의 말씀이 상식을 벗어나서요. 저도 상식적으로 면접 볼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 그게……!”
“압박 면접을 하려거든 제대로 하세요. 지금 면접관님이 하고 계신 건 면접이 아니라 공갈협박에 인격 모독입니다.”
“…….”
“면접관님은 옥석을 가려내야 하는데, 도리어 인재를 쫓아내고 있습니다. 면접관님 말씀만 들으면 필래그룹은 천하의 말종 회사거든요.”
“마, 말씀이 조금 심하시네!”
이제 면접관은 항의도 존댓말로 했다.